Ep.11 알고 보면 정 많고 선한 베트남 사람들. |베트남|닌빈|




4시간 정도를 광활한 농지대와 농촌 마을을 가로지르던 버스는 카르스트 바위의 발치 앞에 멈춰섰다. 닌빈이라는 짤막한 소개와 함께 하차하라는 기사 아저씨. 그의 명령에 배낭과 함께 길가에 버려졌다. 두리번 거려보니 영어 간판이 즐비하다. 여행자 거리인가. 구글 지도를 켜보니 땀꼭 근처에 핀을 떨군다.

화장실이 급하다는 윗니. 다낭행 기차표 구매 문의를 빌미로 여행사에서 해결하기로 했다. 이왕이면 좋은 화장실을 써보자는 마음에 간판이 가장 큰 업소로 들어갔다. 어느정도의 수수료는 예상했지만 배불뚝이 사장은 인터넷에서 알아보았던 가격보다 20달러나 뻥튀기된 가격을 제시한다. 당황해하는 나에게 서둘러서 구매하지 않으면 매진될 거라며 재촉한다. 배부자 사장 욕심부자였구만. 마주친 그의 동공이 흔들린다. 윗니가 나오길 기다리며 최대한 신빙성 있는 표정으로 고민하는 척을 했다.

'누굴 호구로 알고'

  화장실에서 막 나온 윗니의 손을 붙잡고 도망치듯 여행사 건물을 빠져나왔다. 상황이 좋지 않다. 현재 시각, 오후 네시. 닌빈을 둘러보기에도 부족한 시간을 쪼개어 기차표 구매를 위해 발품을 팔아야 한다니... 짱구를 아무리 굴려봐도 기차역 창구에서 직접 구매하는 방법밖에 생각이 나질 않는다. 문제는 기차역이 여행자 거리에서 6km나 떨어져있었다는 점. 기차역까지 왕복을 택시기사에게 어처구니없는 가격만 제시해온다.

결론은 하나였다. 오토바이 렌트를 하는 것. 싸파를 이어 닌빈에서 다시 한번 우리의 날개가 되어줄 녀석을 찾아 보기로 한다. 오토바이 렌트해주는 곳을 찾아 여행자 거리를 20분 정도 걸었다. 오토바이 대여 사인이 걸린 업소는 모두 방문해 보지만 늦은 시각 때문인지 대여해줄 오토바이가 없단다. 세계에서 오토바이가 가장 많이 있는 나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도로에 지천인데...



더이상의 발품은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결국, 도망쳐 나왔던 여행사로 돌아가 오토바이를 렌트하게 되었다. 엿먹이려는 건지 배불뚝이 사장은 가게 앞에 주차된 오토바이 중 가장 낡아 보이는 녀석으로 가져가란다. 다른건 이미 다 렌트 되었다고... 몇십년 동안 한 번도 갈지 않았는지 맨질맨질 한 타이어, 데스그립을 쥐어야 걸리는 브레이크, 고장난 계기판, 나가가 풀려 뱅글뱅글 돌아가는 사이드미러, 곧 떨어져 나갈 것 같은 배기통 등등 문제가 한두가지가 아니였다. 게다가 반나절도 아닌 두, 세시간 빌리는건데 하루치 값을 내놓으란다. 기름은 넉넉하냐고 물어봤더니 고장난 계기판을 가리키며 문제없단다...

더이상 지체했다간 닌빈은 커녕 다낭도 포기해야 할 것 같아 울며 겨자 먹기로 하루치 렌트값인 10만동을 지불하고 기차역으로 곧장 달린다. 찾아가는 길을 몰라 뒤에 탄 윗니가 구글맵을 보며 내비가 되어줬다. 포장도 아니고 비포장도 아닌 길을 달려 여행자 지역을 빠져나갔더니 10차선도 넘어 보이는 넓은 고속도로 길이 나온다. 엑셀을 아무리 당겨도 최고시속 50도 나오지 않는 고물 오토바이로 고속도로라니...

용감하면 무식하다고 하지 않던가. 스치면 산산조각 날 것 같은 오토바이에 의지한 채 집채만한 화물트럭들과 어깨를 견주었다. 얼마나 긴장했는지 손바닥이 땀으로 흥건히 젖은채 15분정도 달리니 닌빈 도심에 진입했다. 윗니의 지시에 맞추어 달렸더니 곧 기차역이 모습을 들어낸다. 창구로 곧장 달려가 두서없이 다낭을 외치니 직원이 종이에 무언가를 열심히 적는다. 잠시 후 유리창 밑으로 내민 종이에는 베트남 문자를 닮은 알파벳으로 무언가가 적혀 있었다.

$35 x 2

Name:

passport #:


이름과 여권번호를 기재한 종이와 표값을 함께 건네주었더니 표 두장을 발권해 주었다. 표에 적혀있는 기차 시간을 보여주며 빨간펜으로 동그라미 서너개를 그려 넣는다. 그러더니 다시한번 기차시간을 가리키며 고개를 끄덕인다. 절대 늦지 말라는 묵언의 협박같다. 답문 대신 손으로  OK사인을 만들어 보였다.

10시 25분. 다섯시간 안에 닌빈을 둘러보고 저녁을 해결한 후 어떻게든 기차역으로 돌아와야한다. 억지 스러울 정도로 촉박한 스케쥴이지만, 이동수단이 생겼으니 어떻게든 되겠지...

심장을 졸이며 고속도로를 달려 여행자 거리로 향했다. 미간을 찌푸리게 하던 밝은 태양은 어느덧 시간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지평선을 향해 몸을 뉘인다. 하롱베이를 밝게 비추던 석양이 다시한번 하늘을 채운다. 카르스트 바위 사이로 비스듬이 쏟아지는 금빛 빗줄기를 가르는 오토바이. 등 뒤로 그림자를 길게 늘어뜨리며 논과 밭 사이로 어지럽게 놓여있는 길을 가로지르는 우리. 일정에 대한 초조함은 마음에서 비워지고, 어느새 행복으로 가득 채워지고 있었다.



5분을 채 달리지 못 해 빅동 파고다 (Bich Dong Pagoda) 입구에 도착했다. 자갈이 깔려있는 공영주차장에 오토바이를 세웠더니 근처에 있던 점원이 달려나와 주차비, 2만동을 내란다. 가볍게 콧방귀를 뀌고 오토바이 위에 다시 올라타 갓길에 주차해놓고 점원을 노려보며 빅동 사원 입구로 걸어갔다.

하노이에서 데이투어를 신청해 닌빈에 오게되면 보통 땀꼭이나, 2010년에 새로 개발되었다는 장안 습지를 투어한단다. 중국의 계림처럼 느긋하게 나룻배를 타고 카르스트 지형을 구경하는 루트/형식인데, 란하베이와 하롱베이를 다녀온 윗니와 난 조금 덜 알려진 여행지를 찾아보고자 빅동 사원을 선택했다. 10~11세기에 고대 수도인 '호아루' (Hoa Lu)가 자리잡았던 닌빈에는 당시 왕을 기리기 위한 궁전과, 사원, 그리고 무덤이 건축되었다고 한다. 그 당시의 것은 아니지만 18세기에 건립된 빅동 사원은 호아루 수도의 건축기법을 토대로 지어졌다고 한다. ( 빅동 사원의 입구는 실제로 딘보왕을 기리는 사원의 입구를 빼닮았다).



연못의 수면위에 낮게 세워진 돌다리를 건너, 거대한 카르스트 암벽의 허리춤을 빙둘러 놓여진 - 사원으로 이어지는 길을 걸었다. 카르스트 바위가 내쉬는것 같은 땅의 깊은 내음이 그득한 바람이 불어온다. 대지의 깊은 허파에서 불어오는 숨결인지 거칠고, 차다. 조금은 신비한 기운에 휩쌓여 사원입구에 도달하였다. 




넓고, 기다란 잎사귀를 가진 열대 나무와 풀들이 사원을 뒤덮고 있는걸 보니, 세월의 멋을 자연과 함께 빚었나 보다. 관리가 소홀하진 않았는지 건축물들이 생각보다 잘 보존되어 있다. 불교사찰 고유의 향 냄새와 무거운 정적으로 가득해 겸허한 마음으로 숨직이며 사원을 둘러보게 되었다.



불교 사원으로 자리를 지켰지만, 전쟁시엔 탄약창고로도 쓰였다는 빅동사원. 어두운 역사를 가져서 그런지 카르스트의 바위처럼 거친 표면을 닮은 구석이 있다.




동굴 안으로 이어진 가파른 돌 계단을 오르니 부처상이 놓여진 작은 제단이 어두운 동굴을 밝히고 있다. 오롯이 자연의 빛과, 작은 양초로 비춰진 동굴 내부가 어두워 발디딤이 조심스러웠지만 '탐험'하는 느낌을 줘서 흥미롭다.




세월의 무게에 짖눌려, 바닥에 주저 앉으려는 사원의 지붕을 단단한 카르스트 바위들이 떠받들고 있어 앞으로 다음세기의 빛을 마주할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일조(照)의 마지막 온기가 가득한 사원. 금빛에 잠긴 윗니의 옆모습이 이뻐 사진에 담아본다. 피곤할법도 한데 눈이 마주칠때마다 미소 지어주는 그녀.

사랑한다는 말을 할까 고민하다 "좋다"라는 말이 먼저 튀어나왔다.

"응. 좋다"

행복도 나누면 배가 된다는 말이 가슴으로 와닿는 순간이다. 혼자만의 배낭여행을 선호하던 내가. 이젠 발걸음을 멈춰 설때마다 그녀를 찾아 뒤돌아보는 습관이 생겼다. 그녀의 존재가 너무나 당연해져서, 곁에 없으면 외로움이 어김없이 마음의 문을 두드린다.



사원을 황급히 떠나려는 석양. 시간적 압박의 등쌀에 못 이겨 왔던길을 되돌아 빅동사원을 빠져나왔다.






다시한번 오토바이로 달려 도착한곳은 퉁냠 새 공원. 닌빈 여행을 마치기엔 뭔가 아쉬워서 급하게 찾아 들어온 곳인데, 입장료가 1인에 5만동(2,500원)이나 한다... 입장료있는 여행지는 쿨하게 패스하는 우리지만, 기차값 40달러 아낀걸로 퉁치자며 지갑을 열었다. 입구에있는 주차장에 오토바이를 주차하니 역시나 주차비라며 5천동을 받는다... 입장료에 당연히 포함되어 있지 않다는게 납득이 되질 않지만, 따지고들 시간이 없다.




남 사진 찍어주듯 성의없이 셔터를 눌러댔더니 사진에 담긴 사진이 모두 흐릿하다. 고맙게도 윗니는 그런 내 뒷모습을 사진에 담아줬다.



속보로 걸어 도착한 곳은 새 서식지를 조금더 가까이서 관찰하게끔 운영한다는 보트 선착장. 입장료가 5만동인데 비해, 배값은 3만동밖에 하지않아 조금은 의아했다. 콩알만하지만 저들도 양심은 있다는걸 증명하려는 걸까...?

해는 이미 저물어, 파란빛이 겉도는 호수. 10인승은 족히 되어보이는 기다란 보트에 올랐더니 환갑을 훌쩍 넘긴듯한 할머니가 노를 잡는다. 아니... 표 판매원과 선착장에서 배 관리하는 직원은 건장한 사내들이 였는데, 그들의 어머니뻘 되는 뱃사공이라니. 손등의 핏대를 세우며 노를 젓는 할머니.




사진 찍는다고 웃어보이신다. 사진이 조금 흔들렸지만 마음이 편치 않아 셀카는 한장만 남기기로 한다. 업친 데 덥친 격, 공원 폐장 시간이 다가온다고 할머니는 목에 핏대를 세우며 미친듯이 노를 저었다. 정말 웃픈 상황이 아닐 수 없었다. 돈을 냈기에 구경은 해야겠고, 등 뒤엔 가쁜 숨을 몰아세우며 미친듯이 노를 젓는 할머니가 있고...

본업에 충실한 할머니는 이 곳 저 곳에 세우며 우리에게 사진찍으라며 배를 세워주셨다. 몇십장은 찍은거 같은데, 내 마음을 표현하듯 모든 사진이 다 흔들렸다. 하지만, 더욱 더 슬픈 사실이 있었으니... 보트 투어는 왕복이라는 사실. 왔던 길을 되돌아 가야했다. 발톱 끝에서 부터 끌어모은 반동을 몸에 싣어 노를 젓는 할머니는 30분에서 40분 정도 걸린다는 배 투어를 10분만에 완주하셨다. 블로그 후기들을 읽어보니 가끔 여행객들이 팁을 요구하는 뱃사공들하고 말다툼 한단다. 어쩌면 동정심을 유발하는 마케팅 기법이 아닐까하는 괘씸한 생각이들지만, 진심으로 너무나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그의 수고엔 턱없이 부족하지만 2만동을 꺼내 손에 쥐어드렸다. 내 죄송한 마음을 읽으셨는지 크게 웃어보이시는 할머니. 



어둠이 빠르게 찾아왔다. 선착장을 등지고 출구로 찾아 이동했다. 이제는 정말로 돌아가야 할 시간. 우리가 마지막 손님이었는지 뱃사공 할머니가 앞장서신다. 가로등이 많이 없어 하마터면 한참 헤맬수도 있었지만, 할머니를 뒤따랐더니 출구를 단번에 찾을 수 있었다. 주차장에 다다르자 뒤돌아 손을 흔들어 주시는 할머니에게 우리도 손을 흔들어 작별인사를 드렸다.


주차장에 가로등이 하나도 없어 폰의 LED 라이트를 이용해 앞길을 밝혔다. 주차표를 끊어주었던 경비 아저씨가 어둠속에서 불쑥 나타나 손전등을 비춰주신다. 빛을 따라 시선을 돌리니 구석에 외롭게 서 있는 오토바이가 보인다. 키를 꼽고 시동 버튼을 누르는데 정적이 흐른다. 미세한 스파크 소리조차 나질 않는다. 배터리가 방전되었나 싶어 킥스타터(수동 시동장치)로 시동을 걸어보지만 엔진이 꿈적도 않는다. 혹시나해서 스쿠터를 좌우로 흔들어 보니 다행이도 기름이 출렁이는 소리는 들린다. 어쩔줄 몰라 당황해 하고 있는데 손전등을 비춰주시던 경비 아저씨가 다가오신다. 물론 정상적인 대화는 안되기에 시동을 거는 시늉을 하며 울상을 지어보였다. 오토바이를 넘겨 받으시더니 엑셀 핸들(스로틀)을 미세하게 당긴 후 킥스타터에 온 몸의 체중을 싣으신다.

"부릅!"

짤막한 엔진소리가 들려온다. 이거다 싶으셨는지 다시한번 체중을 싣어 킥스타터를 밟으신다.

"부르릉~부 부 부 부"

어둡던 주차장에 한줄기 빛이 생겼다.

"오! 깜언! 땡큐!"

행여나 가는길에 엔진을 꺼트릴까 걱정되셨는지 절대 멈추지 말라는 시늉을 몇번이나 하시던 경비아저씨. 손전등으로 출구를 표시해주시며 끝까지 친절한 그를 통해 베트남 사람들의 따뜻한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가로수등이나 인가의 불빛도 찾아볼 수 없는 칠흑같은 어둠. 배터리가 방전된것도 있지만, 워낙 연식이 있는 오토바이라 흐릿한 헤드라이트 때문에 시야가 1미터도 확보되지 않는다. 게다가 길 중간 중간에 바퀴의 반지름도 넘는 거대한 웅덩이들이 도사리고 있어 자칫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고, 또 엔진을 커트리는 참사가 있을 수 있다. 오토바이를 운전하기에 최악의 컨디션이 아닐 수가 없다. 게다가 기차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다. 뒤에 앉아 발을 동동 굴리던 윗니는 핸드폰의 LED등을 켜서 길을 밝히려한다.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 않았으나, 같이 고민해주는 그녀가 있어 마음만은 든든하다.

희미하게 보이는 빛을 따라 기어가듯 전진한 결과, 낮에는 10분도 걸리지 않았던 길을 30분정도 걸려 마을로 무사히 복귀할 수 있었다. 수고했다며 뒤에서 꽉 껴안아 주는 윗니, 경직되있던 몸에서 긴장감이 빠져나갔다. 



여행사를 찾아가 오토바이를 반납하니 배불뚝이 사장은 오토바이를 정밀하게 살펴보더니 알 수 없는 복잡한 표정을 짓는다. 마치 돌아오지 말았어야 하는 사람들이 멀쩡하게 나타났다는 듯. 고물 오토바이를 줬으니, 작은 사고 하나쯤은 나지 않을까 예측하고 있지 않았나 싶다. 배터리 사건은 언급하지 않은채, 맏겨둔 배낭을 짊어메고 다시한번 도망치듯 여행사를 빠져나왔다.

크리스마스에 어울릴법한 오색등으로 치장한 여행자거리. 제일 화려해 보이는 숙박시설의 식당을 찾아들어갔다. 메뉴판을 두세번 꼼꼼히 가장 무난해 보이는 2인 세트 메뉴를 주문했다. 음식이 나오는 동안 사장님에게 콜택시를 불러달라 부탁했더니 택시는 없고 자신의 개인 자가용으로 데려다 주겠단다. $5를 부르는 아저씨. 오토바이 하루 렌트값이 $5인걸 고려하면 말도 안되는 가격이다. 게다가 차로는 5분도 되지 않는 거리. 충분히 흥정 할 여지가 있었지만 큰 그림을 그리고 있던 난 흔쾌히 수락했다. 대신 샤워실을 사용여부를 물어보았더니 그러라고 한다. 숙박시설에서 운영하는 음식점이라 로비 화장실에 샤워시설이 있을거라 예측했던게 맞아 떨어졌던 것이었다.

비록 찬물이었지만 오토바이를 운전하며 흠뻑 젖었던 삭타구니와 겨터파크를 깨끗히 씻고 먼지를 뒤집어 쓴 머리도 감았다. 새사람이 되어 식당으로 돌아가니 음식이 서빙된다. 팔각 향이 짙은 소고기 수프와 호박죽, 그리고 쌀 페이퍼로 만든 베트남 대표음식 짜조가 에피타이저로, 선택메뉴였던 물소 볶음과 닭 볶음이 파파야 샐러드와 함께 메인으로 서빙 되었다. 한식의 기본인 간설파마후깨참(간장, 설탕, 파, 마늘, 후추, 깨, 참기름)의 참만 빠진 익숙한 양념에, 레몬그라스로 고기의 잡내를 잡아 아주 깔끔한 맛을 냈다.

식사를 다 마쳤을 즈음 직원을 불러 차를 대기시켜주신 사장님. 가방을 싣고 차에 타려는데 생수 1리터짜리 두병을 건네주신다. 냉장고에서 방금 꺼내왔는지 살얼음까지 껴있다. 기차에서 가방을 조심하라는 조언까지 해주시며 조심히 가라고 문앞까지 배웅해주시는 사장님. 오늘 하루는 인복이 터졌다. 여행지에 대한 좋은 기억은 사실 이런 소박한 정에서 생기는 것인데. 돈에 눈이 멀어 멀리 내다보지 못하는 장사꾼들 때문에 이런 정 많고 선한 사람들까지 욕을 먹게 된다는게 참 씁쓸하다.




9시 25분인 기차 시간에 맞춰 기차역에 도착했건만, 정작 기차는 연착이 되어 10시 정도에 역에 도착한단다. 표에 그려넣어진 빨간 동그라미가 야속하다.



여유롭게 차나 한 잔 하자며 기차역 안에 있는 매점에서 녹차고구마라떼(윗니, 실패)와 홍차(밤비, 성공)를 주문했다. 매점이름이 눈에띈다. "Canteen", 미군이 부대시설인 식당을 일컷는 말이다. 베트남전쟁 이후 가시처럼 박혀있는 미국의 폐해는 이렇듯 잊혀질 수 없는 아픔이다. 설탕을 넣지않아 그런지 홍차가 유난히 씁쓸하다.




우렁찬 경적과 함께 도착을 알리는 기차. 역장은 플랫폼에 나와 빨간색과 초록색 셀로판을 붙힌 휴대 램프를 흔들어 보이며 기차를 역으로 안내한다. 속도를 늦추던 기차는 둔탁한 쇠소리로 역을 가득 채운다. 정차한뒤 깊은 숨을 몰아쉬더니 마찰로 달궈진 바퀴 위로 하얀 연기를 내뿜는다. 내리는 승객이 없어 바로 승차했다. 낮에 여직원이 끊어준 표가 침대칸인건 알았지만 사실 6인실인지 4인실인지 확인을 하지 않았었다. 긴장되는 마음에 표에 적혀진 자리번호를 따라갔더니 4인실이 나타났다.



특실이라 하기엔 뭐하지만, 밤열차에서 가장 비싼칸이라 그런지 생각보다 쾌적하고 깔끔하였다. 객실마다 에어컨도 있고 육안으로는 깨끗해보이는 침구도 깔려 있었다. 2층 침대 발치엔 배낭 수납 공간도 있어, 도난에 대한 걱정도 없었다.



모든일이 다 잘 풀린 하루. 베트남 사람들의 정을 느낄 수 있었던 하루. 좋은 하루였다.

"It was a good day", 윗니에게 속삭이며 깊은잠에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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