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8 출항! 란하베이&하롱베이 데이투어 |9박10일간 베트남 배낭여행 |베트남|란하베이




잠에 쫒기고, 꿈에 쫒기고, 시간에 쫒겨 세안도 포기한 채 숙소를 나섰다. 새벽 7시에 일어나야 한다는 걸 잊은채 밤 늦게까지 칵테일을 홀짝인게 화근이었다. 여행 중 로맨스는 여유 있는 자만이 누릴 수 있는 것이란 걸 잊고 있었다. 시간의 노예인 윗니와 나에게 여유는 배낭에 담을 수 없는 사치일뿐...


여행사 앞엔 열 명 남짓한 백인 친구들이 픽업을 기다리고 있었다. 엉겨 붙은 머리를 손으로 격하게 빗어대는 걸 보아하니 녀석들도 어젯밤 1+1 칵테일 바에서 달빛을 한 껏 쬐었나 보다.

잠시 후. 흡사 태권도 학원에서 운영하는 승합차의 비주얼을 가진 낡은 차가 발치앞에 멈춰선다. 백인 친구들의 체구를 봐선 윗니와 내가 뒷자리에 타는 게 맞겠지만, 녀석들이 먼저 우르르 몰려 타는 덕에 제일 넓은 앞자리를 차지. 나와의 여행 중, 크고 작은 운이 따르는 건 아무래도 성급하지 않은 내 성격 덕분이라고 하는 윗니. 그저 운이 좋다고 믿었지만, 생각을 해보니 윗니의 말이 맞는 것 같아 고개를 끄덕여 본다.





어제 입도(島) 했던 선착장과 정반대인 곳에 위치한 벤 베오(Bến Bèo) 선착장에 내려진 우린, 주변을 둘러볼 새도 없이 가이드 아저씨의 등쌀에 떠밀려 배에 실렸다. 오늘 데이 투어를 책임질 가이드, 린(Linh) 아저씨는 월남전쟁 시 베트콩들이 입었을 법한 옷차림을 하고 있어서 딱딱하고 No Jam 으로 보인다. 



선내로 들어서자, 갑판과는 전혀 다른 느낌의 공간이 나타났다. 목조로 짜진 선실 내엔 객실의 좌석이 아닌, 식당에나 어울리는 테이블과 의자가 배치되어 있었다. 또, 전면이 유리창으로 되어있어 창문 너머로의 절경을 감상할 수 있게 되어있다.



간드러지는 중저음의 뱃고동 소리와 함께 미끄러지듯 항구를 빠져나온다. 배로 떠나는 여정은 언제나 설렌다. 포항에서 태어나고, 항구 도시에서 반평생을 살아와서 그런지 짠내 그득한 바닷 바람이 좋다. 



뱃머리에 걸터앉아 청승을 떨어본다. 하얀 천과 바람만 있으면 어디든 갈 수 있...



혼자 배낭여행을 하다 보면 남 사진 찍어 주기에 바빴지 정작 내 모습은 사진에 담을 기회는 많이 없었던 것 같다. 이번 베트남 여행은 윗니 덕분에 좋은 사진을 많이 남긴다. 카메라를 의식하지 않은 자연스러운 모습을 담아내고 싶다는 윗니. 셔터를 누르는 사람의 시선에 비친 나의 모습은 가끔 어색하고, 그리고 낯설기도 하다.





벤 베오에서 2km정도 떨어져 있는 까이 베오(Cai Beo) 수상마을로 들어서자 배가 속도를 줄인다. 주변에 있는 수많은 배와 수상가옥, 그리고 양어장을 보호하기 위함인 것 같다.



까이 베오는 300가구로 형성된 수상 마을이라고 한다. 신석기 시대부터 이곳에 정착한 호아 빈(Hoa Binh) 문명이 지금까지 그 문화를 이어오고 있단다. 베트남에서 현재 규모가 가장 큰 수상마을이라 그런지 주민들의 일상도 많이 훔쳐볼 수 있었다. 외나무다리처럼 아슬아슬한 나무 판자 위를 뛰어노는 아이들의 모습도 보이고, 꿀렁거리는 뗏목에 몸을 맡긴 채 여유롭게 잠을 자는 강아지들도 보인다.



카약 투어에 필요한 카약을 보관해두는 곳에 잠시 배를 정착하고 수상가옥을 직접 둘러볼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진다. 겉으론 견고해 보이던 건축물들은 가까이서 보니 허름하고, 허술하기 짝이 없다. 크기도, 그리고 무늬도 가지각색인 각목으로 짜인 프레임에 여기저기서 주워온 듯한 낡은 나무합판을 대어놓아 발을 한발 한발 내디딜 때마다 생명의 위협을 느낄법한 삐걱거리는 소리가 났다. 심지어 이런 위태한 구조물을 수면 위로 지탱해줘야 하는 부표들은 실밥이 터진 줄로 느슨하게 묶여있어, 조금 큰 파도가 일면, 온몸이 파도의 리듬에 맞춰 웨이브 춤을 추었다.

불안해 하는 우리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가이드 아저씨는 보여줄 게 있다며 싱글벙글이다. 무려 50년이나 살았고 2미터가 넘는다는 물고기를 보여주며 함박웃음을 지어 보이는 린 아저씨. 무뚝뚝할 줄 알았던 아저씨는 알고 보니 미소천사였다. 겉모습만 보고 섣불리 사람을 판단해선 안 된다는 교훈을 되짚어 본다.



까이 베오 마을을 벗어난 배는 엽서에서 봤을법한 멋진 절경을 향해 질주 하였다. 따가운 햇살을 두려워하지 않는 백인 친구들은 약속이라도 한것마냥 다들 갑판위에 벌러덩 들어누워 일광욕을 즐긴다. 녀석들을 뒤따라 뒤늦게 갑판위로 올라가 보지만, 바다표범 무리들 마냥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는 녀석들 사이엔 비집고 들어갈 틈 조차 보이질 않는다. 갑판위에 서서 우왕좌왕 하는 우리의 모습을 본 린 아저씨는 VIP자리가 있다며 어디서 매트를 가져와 선장실 위 조그만 공간에 자리를 만들어 주셨다. 



타이타닉의 남주가 된 것 같다며 노래를 흥얼 거렸다. 니얼~ 팔~ 웨어 에버 유어~~



바람이 차다는 핑계로 윗니를 꼭 껴안고 용이 내려앉은 하롱베이를 감상해 본다.


한시간 정도 걸려 도착한 카약 투어 포인트는 하롱베이가 아닌 란하베이 안에 있는 어느 카르스트 섬이었다. 깟바 섬에서 하롱베이투어를 시작하면 좋은점이 관광객이 몰리는 하롱베이가 아닌 란하베이에서 카약 투어를 진행한다는 점! 즉, 아시아 아웃도어 팀을 포함해 단 두 팀 만이 란하베이 전역을 전세냈다는 말!

선상에서 바로 카약으로 갈아타는건 보기보다 쉽지 않지만, 린 아저씨의 엄청난 균형감각과, 발놀림으로 전원 모두 물에 빠지지 않고 카약으로 갈아탔다.



윗니 손에 물집이 생기는게 싫었던 나... 자청해서 일일 뱃사공이 되기로 했다. 기를 쓰며 노를 젓는 나를 보고 피식 웃는 윗니. 힘들면 교대해주겠다는 말에 그런 일은 없을거라며 호언장담을 한다.

 

 


카약 경험이 많은 나, 반면에 노 젓는게 능숙하지 않아 마치 목숨을 다한 똥파리처럼 수면 위에서 윈드밀을 돌고 있는 백인 친구들. 게다가 2인 카약이라 둘이 손발이 맞지 않으면 방향을 잡기란 거의 불가능. 나서서 도움을 줄까 생각했지만, 린 아저씨는 그럴 생각이 없는지 재밌다는 듯 지켜본다. 알아서 하겠거니 하고 앞장서서 카르스트 지형의 섬을 관람해 본다.

   



가까이서 보니 무시무시할 정도로 거대한 석회암 덩어리들로 형성된 카르스트 지형의 웅장함에 감탄사를 연발하던 찰나, 낮은 천장의 동굴이 나타났다. 부식으로 인해 생긴 것인지 물길이 빚어낸 터널 같은 동굴이 검은 입을 벌리고 있다. 동굴 천장이 갑자기 무너져 내리는 건 아닐까 하고 걱정도 되었지만, 수만 년을 걸쳐 형성되었다니...

 

놀이공원에서나 보았던 동굴의 비쥬얼이다. 물때가 맞지 않으면 물에 잠기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천장에 붙어있을 거북손이나 조개 따위를 찾아 주위깊게 둘러 보았으나 석회암 결정체 밖에 보이질 않는다.


큰 동굴을 빠져나와 얼마못가 다시한번 동굴이 나타났다. 카약 한대가 간신히 지나갈 만한 비좁아 보이는 구멍이 입구란다. 이곳을 지나야 "비밀 바다"로 갈 수 있다는 린 아저씨 말에 조심스레 진입해 본다. 번복해서 조심하라는 린 아저씨 말에 긴장이 된다.




90도 인사하듯 상체를 굽혀야 간신히 통과할 정도로 천장이 낮아, 노를 젓는 대신 손바닥으로 천장을 밀어 전진해본다.




그리고 마주한 "비밀 바다"는 상상했던 것보다 더 신비로웠다. 우리가 통과해 온 동굴을 제외하곤 모든면이 카르스트 섬으로 에워싸여 있어 마치 바다가 섬 안에 갇혀있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 "비밀 바다"는 카약이 아니라면 찾아오지 못할 그런 비밀스러운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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