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 운수 좋은 날. 일본으로 떠난 초저가 배낭여행 |일본|오키나와|





새벽 다섯시 십오분. 다인실 내 등이 켜졌다. 

뒤뚱거리는 배가 자장가 역할을 해준건지 깊은 잠에 들었지만 어제밤 혼자 마신 맥주가 탈이 났는지 일어나보니 머리가 깨질 듯 아프다.

흑맥주 세캔을 들이부엇더니 입 안에 잔 향이 많이 남아 헛구역질까지 난다. 힐링도할겸 서둘러 온센으로 향했다.

기분좋게 뜨거운 물에 둥둥떠서 바다를 바라보니 두통이 사라졌다.



침실로 돌아와 커튼을 걷히니 웰컴 투 후쿠오카라는 푯말이 대문짝만하게 걸려있다.

여기 저기 널브러져있는 소지품을 챙겨 가방을 꾸리니 7시 반까지 하선을 하라는 안내말이 들려온다.

일본말 먼저, 그 다음 한국말로 방송 하는 걸 보니 여행지에 도착했다는 실감이 난다.



후쿠오카도 식후경이라고...

식당에 내려가 식권을 구입하고 조식을 받아 창가 자리를 꿰차고 앉았다. 막 첫 수저를 떼려는데 누군가 말을 걸어온다,

"혼자왔니?"

중절모를 품에 안고계신 중년의 신사였다.

"네, 혼자 여행왔어요"

내가 태어나기도 전인 88년도에 첫 일본여행을 하셨다는 어르신은 젊을때 여행 많이하라는 말을 남기신채 유유히 사라지셨다.

느긋한 아침식사를 마치고 모두가 다 떠나고 직원들이 청소를 시작할 즈음 배에서 내렸다. 나처럼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승객들이 많을까 싶어 전략적으로 늦게 내린거였다. 오키나와 주변에 정말로 폭풍이 온건지 후쿠오카에도 강풍과 함께 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매번 여행이 그랬듯,

아무 사전조사없이 후쿠오카 선착장에 떨어진 나. 도심으로 간다는 버스가 있다는 사실만 선착장 직원에게 듣고서 무작정 버스에 몸을 실었다.

난 걱정이 없는건지 생각이 없는건지..비행기 시간까지 두시간 밖에 남지 않았지만 후쿠오카의 풍경에 사로잡혀 버스 창문에 코를 박고 구경 삼메경에 빠졌다. 띄엄 띄엄 바보 일어를 하는 내게 친절히도 버스 아저씨가 여기서 내리면 공항 갈 수 있다고 알려줘서 하카다 역에 내렸다.

선량한 일본 시민들 덕분에 별로 헤메지 않고 후쿠오카 국제 공항에 도착.



"코히오 오네가이시마스!"

심지허 시간이 조금 남아 카페에 앉아 커피를 홀짝이며 여행기를 썼다.



공항도 뭔가 정렬되어 있는 것 같은 일본. 아직까지 일본이 이렇다 저렇다 하기 뭐 하지만. 버스 운전 기사 아저씨가 정차를 할때마다 "정차 합니다" 하고 외치는 것과, 길을 물어보면 도착지까지 안내해주는 일본 사람들을 보니 글로만 읽었던 일본의 인격 구성으로 비춰진 사회학적 기반만은 환상이 아니라는 건 명확해졌다.

2012년도는 사실 반일감정이 용솟음 치고 있었을 때였다. 2005년 동아시아(중국, 대만, 한국)에서 시작된 반일 운동이 최고점에 도달했을 즈음 난 일본을 처음 여행하게 되었던 것이다. 다문화를 중요시하는 캐나다에서 자란 난 동 아시아가 가지고 있는 일본에 대한 일방적인 악감정이나 선입견을 이해할 수 없었다. 물론, 정치적 그리고 외교적으로 과거를 잊듯이 늠씰하는 일본의 괘씸한 행태는 직시하고 있었으나, 일깨어 있는 국민들 마저 한통속에 넣고 손가락질 하는 대한민국 국민들이 부끄러웠기 때문이다.

그래서 난 한국인들이 자주 사용하는 "짱깨"나 "쪽바리"란 단어들이 너무나 듣기 거북했다. 캐나다에선 이런 derogatory 단어들이 사회적인 걸 넘어 법적으로 금해지고 있기에...

미디어나 뉴스매체에서 부풀렸던 반일감정이 주입된 국민들이 팩트인것처럼 말해왔던 선입견들은 왜곡된 것이란걸 내 자신에게 증명해 보이고 싶었다. 무엇보다, 모든 국가나 그 국가의 이념을 이해하지는 못하더라도 직접 만나보지 못한 사람을 미워하지 말자는 내 신념을 지키고 싶었다. 



피곤해서 비행기에 오른 순간 깊은 잠에 빠졌다. 짧은 비행이 끝나고 오키나와에 내린 순간 말도 안되는 일이 벌어졌다.

구름 한점없는 맑은 하늘과 휴양지 느낌이 물씬나게하는 푹푹 찌는 날씨. 뉴스엔 분명 타이푼 마와르가 초토화 시키고 있는 오키나와의 모습을 보여줬었는데.


사진출처: 일본 기상청


필리핀에서 2명의 목숨을 앗아간 인명사고를 일으키고 오키나와로 올라온 타이푼 마와르와 맞서싸울 마음의 준비를 하고 왔건만...




날씨가 이렇게 좋을수가 있나...



공항에서 도심까지 연결해주는 유이 레일을 타고 후쿠오카에서 처럼 다시한번 물어물어 미에바시라는 역까지 이동.




사진출처: 블로거 앙나

역에서 내려 사전에 부킹닷컴에서 미리 알아 두었던 캠캠 오키나와 게스트 하우스로 이동하였다. 다행이도 역에서 도보로 2분도 걸리지 않는 거리에 있어 어려움 없이 찾을 수 있었다.



Booking.com




외관상으로도 그렇고, 내부를 봐도 너무나 후리한 캠캠 오키나와 게스트하우스. 직원들은 무료로 숙식을 제공받는 여행객들인지 일을 하는둥 마는둥. 별다른 체크인 절차는 없고 숙박비만 지불하니 몇가지 준수사항만 알려준다. 직원이 분명 한국사람 같았는데 굳이 영어로 말하길래 체크아웃 할때까지 영어로 대화를 나누었다.




긴 이동시간 때문에 피곤했지만 침대라고 배정받은 곳엔 나무판자위에 깔려있는 천 한조각이 전부...



일단 짐만 풀어놓고 나하 도시를 구경하기로 한다. 게스트 하우스를 나서려고 문을 여는 순간 자기 몸집만한 배낭을 맨 외국인과 맞닥드렸다. 스캐닝을 해보니 같은 동족임에 대한 확신이 생겨 먼저 인사를 걸었다. 녀석이 체크인을 하는동안 졸졸 따라 다니며 대화를 나눠보니 녀석도 나만큼 무계획으로 여행을 하고있는 자유로운 영혼이었다. 스웨덴에서 왔다는 안드레아스. "같이 밥먹으러 나갈래?" 라는 물음에 격하게 고개를 끄덕인다.



안드레아스는 나보고 운이 엄청 좋은거란다. 어제까지만 해도 도시 전체가 물바다 였단다. 내 눈앞에 보이는 나하도시는 이렇게 눈부시고 아름다운데.. 믿을수가 없다.

숙소에서 도보로 20분정도를 헤메어 국제거리라는 곳에 도착했다. 워낙에 무계획으로 온지라 나도, 그리고 녀석도 어디서 뭘 구경해야하고 어디서 뭘 먹어야 할지 몰랐기 때문에 무작정 걷다가 필이 꽂히는 음식점에서 밥을 먹자고 입을 모았다.



미군기지가 근처에 있어 이태원 같은 분위기를 가졌다는 국제거리. 한국을 가도 어짜피 내가 외국인이라... 이태원같은 느낌을 알리가 만무하다;; 그냥 일본같지 않다는 말인걸로...

눈에 채이는 곳이 없어 후각을 믿고 무작정 들어간 음식점. 주문을 하려는데 둘 다 일본어를 하지못했고, 종업원들도 영어가 안되는 아주 거시기한 대치 상황에 놓였다. 메뉴판을 가져왔는데 죄다 일본어다. 히라가나는 읽을 줄 알지만, 읽을줄만 알지 뜻을 모르니... 애플이라 읽고 애플이 사과인 줄 모르는 격.

주방장이 나와 뭐라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더니 (아무래도 나가라는 말이었던거 같다) 깊은 한숨을 쉰다. 뭐라 하는지 몰라 고양이 눈으로 얌전히 앉아있는 우리에게 이내 "오케이" 이란 짤막한 말만 남긴채 주방으로 사라진다. 잠시 후 직접 우동과 미쿠 돈부리를 내온 주방장은 다시한번 "오케이" 를 외치더니 다시 주방으로 사라졌다.

이게 정식으로 메뉴에 있는걸까 아니면 외국놈들 맛보라고 샘플로 만들어준걸까에 대한 깊은 토론을 나누며 안드레아스와 맛난 식사를 마쳤다. 계산을 하려는데 계산서에 1,500 엔이 적혀있다. 곱하기 13 (2012년 기준)이니까 19,500원. 일본 물가치곤 엄청 저렴한거 아니냐며 호들갑을 떠는 내게 안드레아스는 아무래도 내가 운이 좋은거 같단다. 자기는 어제 패스트 푸드 점에서 햄버거 하나 먹고 700엔 냈다며... 


숙소로 돌아와 본격적으로 대화의 꽃을 피워본다. 스웨덴에서 우체부로 일하다 세계여행에 오르게 되었다는 녀석. 엄청 엉뚱한데다 즉흥적이여서 자신도 앞으로 어디로 가야할지 모르겠단다. 말도 잘 통하고 개그 코드도 잘 맞아서 녀석에게 동행이란 단어를 조심스레 꺼내본다. 내일 부둣가로 가서 아무 섬이나 갈건데 혼자가면 심심할거 같다고 하니 녀석이 자기도 가겠단다.

구두계약을 성사시키기 위해선 술을 한잔 해야하지 않겠냐는 내 물음에 "당연한거 아니냐"며 되받아치는 녀석. 게스트하우스 주변을 떠돌다 조용한 펍이 보여 들어갔다. 잔을 비울 틈도 주지 않고 곧장 다시 채워주는 주인장 아저씨 덕에 의도치않게 취해버린다. 지갑을 연건 기억이 나는데 얼마를 지불했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분명 현금은 배낭에 숨겨두고 나와서 주머니에 얼마 없던거 같은데... 안드레아스 녀석이 술값을 계산했나보다.



게스트 하우스에 수많던 사람중에 안드레아스를 만난게 다행이라 생각 들었다. 녀석도 배낭여행 중이라 주머니 사정이 넉넉치 않을텐데...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녀석에게 고백해 본다.

"야, 나 사실 내일 어떤 섬에 가는지도 모르고 그 섬에 가서 뭐할지도 몰라"

녀석은 잠시 고민하는 척을 하더니 장난기 가득한 입꼬리를 치켜세우며 대답한다,

"할거 없으면 맨날 바닷가에서 술이나 마시지 뭐. 술은 너가 사!"



지출금

유이 레일 (데이패스): 700엔

숙박비(캠캠 오키나와): 1000엔

저녁: 750엔


반응형
TAGS.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