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mino de Santiago|| D17. Ep.39 카미노의 대화


밤비



Camino de Santiago
Day Seventeen
Episode Thirty N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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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conversation




베르시아노에서 부터 오늘의 도착지인 엘 부르고 라네로 ("El Burgo Ranero") 까지 남은 7km를 한시간만에 완주하였다.


이유인 즉슨,


아침에 마주쳤던 한국 남성분이 우리 앞을 걷고 있길래 승부욕이 생겨서 였다.


그도 우리를 의식했는지 속도를 늦추지 않았고


쓸데없는데에 승부욕 낭비하는게 취미인 난 윗니의 손을 꼭 붇잡고 미친듯이 걸어 그를 제쳤다.


변태같은 승리의 미소를 짓고있자


"그렇게 좋아?" 라고 물어오는 윗니.


"응! 넘나 좋은것"



▲사진출처: 위키피디아


걱정 했던것과 달리 규모가 조금 있어 보이는 엘 부르고.


마을에 도착하니, 오늘 지나쳐 왔던 소규모 도시들과는 달리 활력이 넘쳐 보이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마을 초입부터 음식점도 간간히 보이고, 마트도 있다길래 오랜만에 군것질(맥주 안주)을 할 수 있겠다.


사전에 알아 두었던 라구나 알베르게 ("La laguna albergue")로 향하니


윗니의 검은 배낭이 사무실 앞에 고이 모셔져 있다.


주인인지는 모르겠으나 프랑스 억양이 강한 아저씨가 반겨주신다. 뭐가 그렇게 흥에 겨우신지 춤을 추시며 체크인을 도와주시는 그.


다인실과 3인실이 있다며 먼저 둘러보란다.


아저씨를 따라 알베르게 시설을 둘러보는데 마지막에 보여주신 3인실이 무척 마음에 든다. 돈은 조금 더 지불하지만 꿀잠을 위해서 3인실을 선택.


만에하나 코골이 한명이 들어 온다면 지옥을 보겠지만, 일단 다인실에도 자리가 많이 남은 걸 보아 마음이 놓인다.


윗니가 코피를 흘렸던건, 분명 수면부족의 영향도 컸을 것이다.


발 상태도 좋지않은 지금 잠까지 부족하면 정말 큰일 날 것 같아 매일매일 그녀의 잠자리가 걱정된다.


방에 짐을 내려놓고 바로 윗니의 발 검사부터 하기로 한다.


갓난 아기 발처럼 여린 발을 가진 윗니. 그녀에겐 물집도 생소한 경험이라 걸을때 불편한게 이만저만이 아닐거다.


다행이도 덧난 물집은 없고, 부츠에 닿는 부분만 조금 벌겋게 부었을뿐 크게 문제는 없어 보인다.


오늘 배낭을 배달한것도 도움이 되었는지, 다리 상태가 평소보다는 좋다며 나에게 걱정 마란다.


샤워실이 하나밖에 없어서 먼저 후딱 씻고 나왔는데 그새 윗니는 침대에 누워 곯아 떨어졌다.


항상 아기같이 새근새근 잠드는 윗니. 오늘도 내 보폭에 맞춰 주느라 많이 피곤했나보다.


선선히 불어오는 바람이 좋길래 창문만 살짝 열어두고 커튼과 방문을 조용히 닫고 나왔다.




뽀송뽀송한 옷으로 갈아입고 마트로 향했다.


온종일 부츠만 신고 있다가 크록스를 질~질~ 끌고 다닐때의 자유로움이란 말로 이루 설명할 수 없을만큼 좋다.


문이 굳게 닫혀있는 마트. 머리를 긁적이며 서 있는 날 지나치던 할아버지가 손목시계를 가르키며 손가락 10개를 내 보이신다.


"Diez minutos? Gracias!"


10분정도 기다리란다.


마트앞에 마련되어 있는 벤치에 앉아 콧노래를 흥얼 거리며 혼자만의 휴식을 취했다.


점심을 먹다말고 나오신건지 허리춤에 두른 앞치마를 풀며 달려오시는 마트 아주머니.


노래를 흥얼거리며 맥주를 고르는 내가 재밌는지 턱을 괴고 날 주시하신다.


"순례자니? 싼거줄까?" 가격표를 유심히 체크하는 날 보시더니 말을 걸어오신다.


"네!"


진열대 뒷편에서 팔뚝만한 병맥주를 꺼내보이시더니 "Solo un Euro!"라고 외치신다.


1리터짜리 맥주가 1유로밖에 안하다니...


어제 테라디요스에서 마셨던 산미겔은 350ml짜리가 2.5유로 였는데....


엄지를 척 내세우니 아주머니도 엄지를 높이 치켜드셨다.



알베르게로 돌아가 잔디밭에 앉아 혼자 맥주를 마시는데 낮에 마주쳤던 한국 순례자분과 눈이 마주쳤다.


멎적게 인사를 하고 다가가니 그늘막을 내주신다.


입을 대고 병째로 마시고 있던 맥주병 입을 옷 소매로 대충 슥 닦고 그에게 건네본다, "더럽지만... 맥주 한모금 하실래요?"


"저야 너무 좋죠!" 잠시의 머뭇거림도 없이 병을 받아들고 한모금 훔치는 그.


대화가 이어질수록 병의 무게는 줄어들었고,


결국 마트를 한번 더 들려야했다.


혼자 걷고 있다는 그, 손잡고 걷는 우리를 보면서 신혼인줄 알았다는...


카미노 커플이라고 말하니 부럽단다.


사제의 길을 걷던 그는 이성에 대한 욕망을 버릴 수 없었고, 결국 지금은 사제의 신분을 버리고 사랑을 찾아 카미노를 걷고 있단다.


아직까진 인연을 맺지 못했다며 계속해서 혼자 걸을 거라는 그.


간절하다면 이루어 질거라며 그런 그를 격려해 본다.




두번째 병이 동이날때 즈음 윗니가 낮잠에서 깼다.


후딱 씻고 밥 먹으러 가자는 말에 정말 후딱 씻고 나온 윗니.


마을에 처음 들어오면서 보았던 레오니즈 (레온 지역의) 전통 음식점으로 향했다.


메뉴를 볼것도 없이 레오니즈 전통 요리 2인세트를 주문하고 윗니와 맥주잔을 기울여 본다.


"짠!" 오늘도 수고했어. 그녀를 격려해 본다.


조용히 맥주를 들이키는 나를 쳐다보더니 갑자기 진지한 표정을 짓는 윗니.


"난 너가 나와 함께 있다고 해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할 기회를 놓치는게 아닌가 싶어 걱정돼..."


말을 잇지 못하는 그녀. 눈도 못 마주치고 한참동안 맥주 기포만 쳐다보다 뭔가를 결심한듯 다시금 입을 열었다,


"다른 사람들하고 대화하고, 어울리고 싶으면 내 생각말고 그렇게 해줬으면 해. 넌 영어도 되고 스페인어도 되니까 항상 백인들과도 잘 어울렸잖아."


좀전에 알베르게 마당에서 구-신부님과 맥주를 나눠마신 내 모습이 그렇게 행복해 보였나? 아니면 어제 혼자서 맥주 5병을 마셨던게 무언의 속풀이라고 오해한 걸까?


아니면 그녀가 나와 단둘이서만 하는 순례길이 지루해서 일까?


장난섞인 말투로 물었다, "그럼 우리 따로 걸을까?"


미간을 찡그리는 그녀. 이내 더욱더 심각한 표정으로 단호하게 "아니!"를 외친다.


"하하 야 장난이라구 장난! 나도 너랑 떨어질 생각 없어!", 그녀의 솔직함이 순수해 보이고 귀여워서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졌다.


"[윗니]야 걱정마, 난 너 눈치 보면서 일부러 다른 순례자들을 기피하고 그런적 없어. 지금 너와 함께 하는 시간이 내게는 이세상 그 어느 무엇과도 바꾸고 싶지 않은 값진 시간이야. 내게 이런 값진 시간들을 줘서 고마워. 난 너를 통해 카미노의 진정한 아름다움을 보고 있는거 같아."


내 마음을 조금은 이해했는지 고개를 끄덕이는 그녀. 손을 뻗어 조용히 그녀의 손을 어루만져줬다.





스페인 북부지방에는 뿌에로 ("Puerro")라는 대파가 유명하다.


단맛이 강하고, 메세타 지형에서 재배가 쉽기 때문에 지천에 널려있단다.


숯불에 직화로 바베큐 해 먹는게 전통이지만 레온에선 하몽에 곁들여 먹나보다.





한눈에 봐도 엄청난 건강식이다.


워낙에 가리는 음식이 없는 나는 맛있게 배터지게 먹었지만 윗니는 금방 포크를 내려 놓았다.





결국 숙소에 돌아와서 배낭에 고이 모셔두었던 라면을 끓여먹기로 한다.


매운걸 못먹는 나는 구경만 하기로...


행복한 표정을 지으며 라면을 흡입하는 윗니.


그런 그녀를 보며 웃음지어보지만


내일 일정에 대한 두려움이 엄습해 온다.


레온까지 37km나 되는 거리를 걸어야 한다.


둘이서 함께라면 두려울게 없다고 말 하지만, 상태가 조금씩 악화되는 윗니가 계속해서 걱정된다.


언젠가 정말 못 걷게 되는 순간이 온다면, 그때는 어떠한 선택을 해야할까. 나는 혼자서 걷게 될까?


아니다, 그녀와 떨어 질 생각은 하기도 싫다.


그럼 난 푸엔테 라 레이나 이후로, 어떠한 도움도 없이 걸어서 산티아고까지 가겠다는 나의 결심을 그녀를 위해 버릴 수 있을까?


그녀가 없는 카미노는 내게 의미가 없기에...


Un Camino sin ti es uno sin mi.


가 없는 카미노는 내가 없는 카미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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