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mino de Santiago|| D18. Ep.40 선택의 기로


밤비



Camino de Santiago
Day Eighteen
Episode Fourty
2 0 1 6. 0 6. 2 0


Parallel




공기가 차디찬 이른아침,


화장실이 침실과 동떨어져 있어 근처에 있는 빨래터에서 이를 닦고있는데 보름달의 빛이 내 눈을 사로잡았다.


생장에서 등지고 출발했던 신월(新月), 초 하룻날의 달, 을 본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보름이 훌쩍 다가오다니...


시계의 눈금처럼 지평선을 향해 고개를 떨구는 달을 넋놓고 바라보았다.




"젊은이가 달을 바라볼 줄도 알고. 요즘 세대답지 않네?", 인기척 없이 내 옆으로 다가온 영국 할머니.


"저의 엄마가 보름달이 뜰대마다 저를 위해 기도해 주거든요. 외할머니, 외할아버지 둘다 달 밝은 날에 돌아가셨다며, 부모님에게 (달을 향해) 하는 기도라면서 말이죠"


달에서 시선을 떼지 않고 대꾸했다.


"좋은 어머님이시네."


"세상에서 최고입니다."


곁눈질로 할머니를 바라보니 입가에 달처럼 밝은 미소가 걸쳐있다.





침실로 돌아오니 윗니는 벌써 걸을준비를 마치고 아침식사를 하려고 날 기다리고 있었다.


토마토 한개, 복숭아 한개.


절대 음식물을 받아주지 않겠다고 거부하는 위를 달래본다.






반면에 아침에도 잘 먹는 윗니.


그녀의 먹는 모습만 봐도 내가 다 배부르다.






알베르게를 나서자 달은 어느새 모습을 감추고 해가 떠오르고 있었다.


성격이 급한 스페인 해가 중천을 향해 열심히 달리며,


새벽녘의 한기를 내쫒으려는지 아침부터 강렬하게 불타오른다.






발걸음 소리만 크게 들려오는 한적한 길 위에서 잔잔한 음악을 틀어놓고 걷는다.


따뜻한 햇빛에 나른해졌는지 눈을 감고 걷는 윗니.


그녀는 무슨 생각을 하고있는 걸까?


기억에만 담기엔 너무나 소중한 순간들이 있기에,


그런 그녀의 모습을 영상에 몰래 담아본다.


"무슨 생각해?"


"응? 아니.. 나 사실 잠이 덜 깬거 같아."


어제 내가 코를 골았던가...?


"어제 나 코 골았어?? 난 사실... 엄청나게 피곤할때 아주 가끔 코를 골때가 있어...."


혹시나 어젯밤 나 때문에 잠을 설쳤을까 싶어 변명을 해 본다.


"아! 아니야! 내가 원래 빈혈기가 있어서 조금 피곤 할 뿐이야. 너무 걱정마"


어제부터 문득 든 생각이있다.


나도 적은키가 아니기 때문에 보폭이 넓어서 하루종일 손을 잡고 걸으면 그녀가 힘들어 할 수도 있다.


"오늘은 손을 놓고, 조금 자율적으로 걸을까?"


그러자며 고개를 끄덕이는 그녀.



렐리에고스 ("Reliegos") 까지 남은 10km 정도를 자율적으로 걷기로 한다.


예상과는 달리 뒤쳐지기는 커녕, 오히려 앞서가는 윗니.


오늘은 괜찮다 싶어 소염진통제를 먹지 않았더니 무릎이 아침부터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결국 그녀를 시야에서 잃을 정도로 뒤쳐져 버렸다.


간간히 지나치는 순례자들마다 나보고 신부는 어딨냐고 물어온다.


타인의 눈에는 매일같이 손잡고 걷는 우리가 신혼으로 보이나 보다.


"신부가 도망갔어요..." 라고 울상을 지으며 장난을 친다.


다들 웃어제끼지만 장난인줄 모르고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순례객도 있었다... 멀리 도망가지 않았다며 서두르란다. [가....감사합니다...]




렐리에고스 입구에서 윗니와 상봉 했다.


잠시동안 떨어져 있었는데, 외로이 허공을 붕붕 날아다니는 손이 많이 허전했다.


다시금 손을 꼭 잡았더니 그녀의 손이 차다.





마을에 들어서자 이제 막 순례자들을 접대하려고 음식점들이 분주하게 준비하고 있다.


마을 초입에 있는 곳들은 그냥 지나치고


마을 중심부에 있는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음식을 이것저것 시켜놓고 여유로운 식사를 즐긴다.


아직 힘이 안난다는 그녀, 밥먹고 힘내라는 내 말에 정말 열심히 먹는다;






서로 경쟁이라도 하듯 열심히 흡입하고 있는데


거대한 봉고차가 테이블 옆에 정차한다.


차에 붙어있는 스티커를 보니, 배낭을 배달해주는 당나귀 회사다.


음식점 안으로 들어가더니 배낭을 가지고 나오는 배달부. 음식점 주인과 짤막한 작별인사를 나누더니 이내 골목길 끝으로 사라졌다.


"[윗니], 너 가방도 저 안에 있는거 아냐? 배낭이 조금 부럽다... 5유로면 다음 마을로 배달해 주고..."




마을을 떠나려는데 동네 멍뭉이가 내 곁을 떠나지 않는다.


개를 무서워하는 윗니는 냅다 도망가버렸다.


한참을 어루만져 주다가 출발하려는데 녀석이 뒤도 안돌아보고 골목을 돌아 모습을 감췄다...


산티아고까지 따라올 기세로 달려들땐 언제고... 매정한 녀석!



만시야 ("Mansilla de las Mulas")로 이어지는 길은 마치 고비 사막을 횡단하는 것 같달까?


스페인의 모든 중장비는 다 모여있을법한 규모의 공사장.


뭘 딱히 건설중이 아니라, 황토색보다 진한 모래들을 끊임없이 나르고 있는 덤프트럭들...


'기름이라도 나오나?'


덤프트럭이 지나쳐갈떄마다 야유를 보내고 이어서 흙먼지를 뒤집어 쓸때마다 절규를 했다.


영혼을 탈탈 털리고 나서야 만시야 마을 입구에 도착할 수 있었다.








마을을 통과하는데 생장에서 같이 시작한 독일형과 마주쳤다.


거인족같은 형의 등치에 압도되어 처음엔 눈 인사만 나눴지만,


잊을만 하면 마주치게 되어 반갑게 인사를 나누는 사이가 되었다.


형의 독특한 점은, 보폭이 일반인의 두배는 되어 내가 아무리 열심히 걸어도 형의 페이스를 절때 따라잡을 수 없을 정도다.


형은 레온까지는 너무멀어 무리란다, 형 속도면 분명히 또 마주치게될 것 같아 웃으며 작별인사를 했다.




만시야를 떠나서 이어지는 카미노 길은


수풀이 무성하더니, 이내 울창한 숲길로 탈바꿈하였다.


드디어 메세타 지형의 끝 지점에 도달한걸까?


에스라 ("Esla") 강을 건너면서 윗니의 상태가 급격히 악화 되었다.


발가락을 자꾸 신경쓰며 걷다보니 확실히 종아리와 허벅지에 무리가 갔나보다.


다리를 절뚝거리기 시작하는 윗니를 보고있자니 과연 오늘 일정을 소화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다행이도 그녀의 의지는 강했다.


천천히 걸어보겠다는 그녀의 옆에서 그저 숨죽이며 걸을 수 밖에 없었다.





푸엔테 데 비야렌테 ("Puente de Villarente")의 명소라는 고대의 다리를 직접 건너지 않고, 왼편에 있는 공원길을 통해 마을에 도착했다.


마을에 다다랐을때 윗니의 얼굴에는 짙은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비야렌테는 스물한개의 아치형 다리.....가 뭐가 중요한가. 윗니가 아프다는데.


마을 초입에 있는 음식점에 자리잡았다.


아쿠아리스 세캔을 시키니 주인아저씨가 바게트빵에 pate (숙성되거나 삶은 고기와 지방을 갈아만든 프랑스 식재료)를 발라주셨다.


윗니는 입맛도 없는 듯 빵 테두리만 깨작깨작 떼어먹는다.


"뒤로 바짝 앉아봐 마사지 해 줄게."


발이 땀에 젖어 있다며 부끄러워하는 윗니. 손으로 스윽 닦아 주었더니 "더러운데..."라는 말과 함께 울상을 짖는다.


매일같이 하루에 두번씩 발 마시지를 해줬더니, 이제는 내 발 같다.


종아리부분을 만져보니 확실히 근육이 딴딴하게 뭉쳐있다.




"어때... 계속 걸을 수 있을거같아?"


카미노에서 정말로 듣기 싫은 질문이지만, 그녀의 상태가 정말 의심스러웠다.


그녀의 의지를 의심하는게 아니다, 여지것 내가 봐 왔던 윗니의 모습과는 너무 다르기에...


"나 때문에 너무 늦어지는거 같아, 먼저.... 갈래?"


씁슬한 미소를 지어보고 있지만 마음속으로 절규하고 있는 것같은 윗니.


"아니야 나도 쉬엄쉬엄 가려고. 아직 갈 길이 12km나 남았잖아."


로그로뇨에서 나헤라로 가는 날, 나도 그녀와 같은 위치에 놓여있었다.


그땐 롯데형이 말장난도 쳐 주고 격려도 해 주셔서 무사히 끝가지 잘 걸을 수 있었는데.


묵묵히 그녀의 곁을 지켜주는 것밖에 할줄 아는게 없다.


그리고 뒤쳐지는 사람의 마음을 너무나도 잘 알기에, 같이 걷겠다는 말도 그녀에겐 부담이 될 수 있다는걸 안다.




정말 한~참을 쉬고 다시금 걸으려는데


여전히 발을 절뚝이는 윗니. 스틱을 쥐어보지만 걷는자세가 너무 불안정해서 그녀의 뒷모습이 안쓰럽기까지 하다.


앞서 말했듯이 자신과 싸움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 받는 동정은 독이될 수 있기 때문에, 그녀에게 하는 조언 하나하나도 조심스러웠다.


"조금만 걸어보고 정 안되겠으면 다른 방법을 생각 해 보자"


마음같아선 업고라도 가겠지만,


한없이 마음뿐이다.


"버스타고 갈래?"


짤막히 던진 내 말의 무게에 압도되어 잠시 멈춰서서 말을 잃어버린 윗니.


그녀가 선택의 기로에서 깊은 생각에 잠겨있을동안, 나도 중대한 선택을 해야 했다.


혼자 레온까지 걸어서 갈 것인가, 아니면 그녀와 함께 버스를 타고 이동해야 하나?


어젯밤 했던 걱정이 너무나 갑자기 현실로 다가와 버렸다.




엘 부르고 라네로에서 레온까지 37km.


지난 이틀간 윗니의 상태를 지켜봐 온 결과, 피곤이 많이 쌓였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잘먹고, 잘자는걸로만 풀리지 않는 피로가 가녀린 그녀의 몸에 눌러 앉았다는 걸 직감 할 수 있었지만 그녀의 불타는 의지를 꺾고싶진 않았다.


내가 해줄 수 있는건 쉴때마다 다리 마사지, 그리고 그녀의 발걸음에 맞춰 그녀의 옆을 지키는 것.


하지만 그녀가 필요한건 휴식이었다.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내 결정을 기다리는 듯 초조한 눈빛으로 날 바라보는 윗니.


"그럼 난... 걸어갈게."


버스 정류장으로 향하는 길, 고개를 푹 숙이고 아무 말 없이 걷는 그녀.


무서울 정도로 무거운 정적이 흐른다.


바보같지만, 난 사실 그녀가 같이가자고 물어봐 주길 바라고 있다.


그녀가 없는 카미노는 상상조차 하고싶지 않다 하지만, 혼자라도 끝까지 걷겠다는 내 의지를 꺾어버릴 수 있는 변명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버스 정류장 근처 그늘에 앉아 내 배낭에 보관했던 그녀의 여권과, 지갑을 건네고선 혹시나 해서 동전도 몇개 쥐어주었다.


울기 일보직전인 표정으로 앉아있는 윗니를 보고있자니


'내가 지금 뭐하고 있는거지?' 라는 생각이 뇌리를 스친다.


그녀가 내 위치에 있었다면, 한치의 고민도 없이 나와 함께하려 했을거다.


순간 내 자신이 부끄러워 졌다.


나와의 동행을 선택했을때, 그녀는 이미 많은 선택을 했을것이다.


나또한 부르고스의 알베르게, 어둑한 계단에 나란히 앉아 그녀와 했던 약속을 지키겠다고 굳게 다짐했다.


끝까지 함께 하겠다는 약속.


윗니와의 약속이 어쩌면 지금은 내가 카미노에 오르면서 세웠던 '도보로의 완주'보다 더 소중하고 의미있는 목표가 아닐까?



종아리를 주무리고 있는 윗니옆에 다가갔다.


옆자리를 내 주는 윗니.


그녀옆에 나란히 앉았다.


그리고 그녀에게 말했다,


"같이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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