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mino de Santiago|| D18. Ep.42 레온의 낮과 밤


밤비



Camino de Santiago
Day Eighteen
Episode Fourty Two
2 0 1 6. 0 6. 2 0


Leon




베드버그.


이름만 들어도 치가 떨릴만큼 혐오스러운 벌레.


인도에서 베드버그에 당한걸 생각하면 아직도 온 몸이 간지러울 정도다.


윗니를 만난 이후로 매 알베르게마다 침구를 세심하게 검사해 왔는데... 어떻게 된 일일까...


발가락부터 시작해서 얼굴을 제외한 내 온 몸에 삶의 터를 만든 베드버그.


이곳을 자르시오하는 점선처럼 길게 뻗어있는 그들의 발자취를 정말로 잘라 버리고 싶었다.


숙소를 가로질러 배낭이 있는 침실로 돌아왔다.


팬티바람으로 괴성을 지르며 뛰어가는 나의 모습이 우습기도 하지만, 서둘러서 배낭을 격리시켜야 했다.


그런 나의 모습에 잔뜩 놀란 윗니는 "왜 그러냐"며 물어온다.


대답을 할 기회도 주지않고 기겁하는 윗니, "그거 설마 베드버그야!?!?"


울먹이며 대답했다, "힝...응..."


한시도 지체할 시간이 없다, 배낭에 모든 짐들을 대충 욱여넣고 샤워실로 돌아와서


잠시 멍하니 서 있는데 뭔가 이상하다.


'도대체 왜 오늘 아침에는 몰랐던 거지...?'


출발하기 전에는 분명 멀쩡했는데??


짱구를 열심히 굴려보는데 도무지 베드버그의 출처를 알 수가 없다.



옷가지들과 빨 수 있는것들은 죄다 한데모아 숙소에 빨래를 맏겼다.


비장한 표정으로 샤워실로 들어가 머리를 세번이나 샴푸질하며 박박 문질러주고, 발톱밑까지 세심하게 씻은 후에야 샤워를 마칠 수 있었다.


카미노에와서 10분이상 씻어본적이 없는데, 30분동안 혈안이 되어 온몸을 박박 문질러 대고 나왔더니 머리가 어지러울 정도였다.


혹시나 프랑스에서 비박을 하며 숲속 바닥에 깔았던 침낭이 문제가 아닐까 생각이 들어


배낭만 따로 격리하고자 볕이 잘 드는 발코니 난간에 펼쳐 놓았다.


베드버그를 퇴치하는 방법은 그리 간단하지 않다.


약을 사서 뿌려도 며칠간은 긴장을 늦추지 못한다. (인도에선 4일동안 격리되어 있었다.)


매일매일 걸어야 하는 상황에 베드버그라니...





씻고 나와 곧장 약국으로 향했다.


약사에게 별말없이 몸을 보여줬더니 고개를 끄덕이면서 베드버그 퇴치제를 주셨다.


돈을 지불하고 돌아서려는데 약사누나가 부엔 까미노라고 인사를 해 주신다.


베드버그= 순례자 라는 공식인걸까?



숙소로 돌아와,


내 온 몸에, 배낭에 침구에 부츠에 심지어 지갑과 핸드폰 케이스에도 약을 뿌렸다.


살갖에 닿은 약이 따갑다. 벌레도 같은 고통을 100배로 받겠지 생각하니 마음이 놓인다.


베드버그 때문에 설레발치며 돌아다녔더니 허기가 졌다.


윗니의 손을 잡고 본격적으로 레온 탐사에 나서기로 한다.




순례객들보다 관광객이 많아 보이는 레온.


910년도에 레온 왕국이 세워지면서 1188년도에 유럽에서 최초로 국회를 설립하게 된 도시라고 한다.


팜플로나나 부르고스와는 달리, 폭도 넓직하고 줄자로 잰 듯 곧게 뻗어있는 길들이 인상적이다.


중세의 모습을 간직한 스페인의 타 마을들과는 현저히 비교될만큼 현대건축물도 눈에 잘 띄지 않고 도심에 갖춰진 인프라도 도시의 옛 모습과 대조되지 않게 조화를 잘 이루고 있었다.


무엇보다 차가 다니지 않아서 너무 좋다.


항상 뚜벅이인 윗니와 난 여유롭게 거늴수있는 레온이 너무나 마음에 들었다.




도심을 여유롭게 걸으면서도 그녀의 발 상태가 걱정된다.


"[윗니]야 너 오늘 상태 보니까 내일 걸을 수 있을지 조금 걱정되네... 오늘 배낭 없이 걸었는데도 많이 힘들어했잖아."


아무 대꾸도 못 하는 윗니.


"우리가 앞으로 가야 할 길이 많이 남아있어. 지금까지 아픈 거 꾹 참고 걸은 건 정말 대단한 일인데. 이제부터 남은 일정을 생각해서라도 무리해서 걷지 말고 레온에서 하루 더 쉬는걸로 하자."


31일 일정을 마쳐야만 마드리드에서의 비행기를 맞춰서 카미노를 끝낼 수 있는 윗니의 사정을 잘 알고 있지만,


계속해서 상태가 악화되는 그녀가 무모한 선택을 하는걸 더이상 지켜볼 수 만은 없었다.


"오늘 하루동안 생각해 볼게..."


그녀의 의지와 열정을 이젠 그 누구보다 잘 알기에


그녀의 선택을 기다릴 수 밖에 없다.




생각에 잠긴 윗니의 발걸음에 맞춰 정처없이 걷다보니 다시 성당으로 돌아왔다.


프랑스 고딕 건축 양식을 사용했다는 레온 성당은 엄청난 위용을 뽐내며 도시 중심부를 지키고 있다.


아쉽게도 입장료를 받는다기에 쿨하게 패스.


배고픈데 걸었더니 어지럽다.


서둘러서 음식점을 검색해 보는데,


역시나 씨에스타 때문에 7시 이후로 영업하는 음식점들.


어쩔수없이 기다려야했다.




카미노를 걸으며 느낀건데, 다른 순례객들에게 음식의 퀄리티는 중요하지 않은 부분인가 보다.


마치 사치라고 생각하는 듯, 그저 제공 된 음식에 감사하고 만족하는 듯하다.


자칭 미식가인 나는 쌀 한톨을 먹어도 맛있게 먹는게 중요한데...


대도시에 왔으니 맛있는거 먹자며 윗니에게 말해보지만, 역시나 가격이 부담되는지 선듯 응하지 않았다.


"걱정마 저녁은 내가 쏠테니까, 밥먹고 술 사줘!"


미안해서 우물쭈물하는 그녀에게 장난섞인 말로 달래본다.


"내 주량알지????"





오랜만에 인간다운 대접을 받기 위해 레온에 있는 383개의 음식점 중 3위, 그리고 스페인 퓨전 요리의 일인자로 불리우는 "Be Cook"으로 향했다.


자리로 안내받고 먼저 와인을 권하길래 로컬 레드와 로컬 화이트를 한잔씩 시켰다.


풀코스로 먹기위해 에퍼타이저 둘, 메인 둘, 그리고 디저트를 시켰다.



음식이 나오는동안 와인과 호밀로 만든 빵으로 허기를 달래려는데 에퍼타이저가 바로 나왔다.






스페인에서 개량되어 "Kumato"란 이름으로 알려진 토마토와 양젖치즈가 함께나오는 토마토 샐러드.


쿠마토의 독특한점은 보통 토마토와는 비교될법한 단단함이다.


씹히는 질감이 꼭 고기를 먹는것과 같았다.




다음으로 나온 스페인식 만두.


스페인에서 유명한 블루치즈 그리고 서양 고추냉이 소스와 곁들어진 고기만두.


치즈가 만두의 느끼함을 확 잡아주었다.





이어서 타타키 기법으로 겉만 살짝 익힌 오리 훈제요리.


팽이버섯과 검은참깨가 곁들여져 얼핏보면 일본식으로 보이겠지만 비네그레트 리덕션을 소스로 사용하고,


스페인의 눈 소금을 사용해서 "이건 스페인이야!" 라는 감탄사를 날리게하는 맛이었다.





이어서 나온 송아지 스테이크.


한식에선 사용되지 않는 비트("Beet") 절인걸 퓨레로 만들어 송아지 고기가 가진 특유의 잡내를 잡아주었다.






마지막으로 나온 디저트는 외관상으로만 봤을때 카푸치노 같지만


티라미수 케잌을 재해석한듯 위핑크림의 농도를 카푸치노의 기포처럼 보이게 만들어서 시각적인 효과를 주었다.


비록 지갑이 홀~~~~~쭉 해 졌지만 오랜만에 '요리'를 먹으니 악몽같은 베드버그의 간지러움을 잠시나마 잊게 해 주었다.




레스토랑을 빠져나와 타파스 거리로 향했다.


술 한잔에 뭐가 그리 즐거운지 신나게 떠들고 웃는 스페인 사람들.


분위기가 너무 좋았다.


하지만 저녁을 너무 잘 먹어서 그런지 배가 불러서


술 한잔을 하려던 계획도 잊은채 정처 없이 레온의 골목을 유랑 했다.




한참을 걷다가 숙소로 돌아왔다.


잘 준비를 하고 누우려는데 뭔가 아쉽다.


와이파이 타임을 갖고 있던 윗니에게 물었다,


"우리 다시 나갈래?"


사실 그녀에게 들어야 할 말이 있었다.





저음의 바람소리가 도시를 잠 재우는 저녁.


노란색 가로수등이 도시의 운치를 한층 더 끌어올린다.


성당 앞 큰 길을 따라서 걷는데 길 저만치서 누군가가 인사를 해 온다.


처음엔 술취한 사람이겠거니 하고 얼굴도 쳐다보지 않고 그냥 지나쳤는데,


뭔가 느낌이 이상해서 뒤돌아보니 그가 미소를 지으며 손을 흔들고 있었다.


그는 바로 페드로 아저씨!


친구들과 술 한찬 하러 간다며 합석할 것을 '요구'했다.


합류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았지만 윗니와 아직 해야 할 대화가 남아 있기에,


아쉽지만 죄송하다며 다음을 기약했다.


아무리 그가 순례객이 아니라도 카미노에서 만난 사람은 언젠가 다시 만나게 되니 말이다.



깊은 고민에 빠져있는지 한참동안 말이없던 윗니가 끝내 입을 열었다,


"그래 [밤비]야 나도 이제 여유를 조금 가지려고. 꼭 걸어서 끝내는게 의미가 있는게 아니라.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서 걷는게 카미노 인것 같아"


그제서야 그녀의 입가에 미소가 피어났다.


그녀를 바라보던 내 입가에도 어느새 미소가 걸려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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