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mino de Santiago|| D30. Ep.66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밤비



Camino de Santiago
Day Thirty
Episode Sixty Five
2 0 1 6. 0 7. 0 2


Santiago de Compostela



칠흑같이 어두운 알베르게 안,

윗니의 알람소리가 경쾌하게 울려퍼진다.

항상 남들보다 먼저 울리는 그녀의 알람소리

그녀의 부지런함을 상징한다.

여유를 갖자며 느긋하고 느릿한 삶을 추구했던 나와 달리, 바쁘고 역동적인 일상을 지내왔던 그녀.

어쩌면 극과 극인 우리의 만남은 이곳 카미노가 아니였으면 절대 이루어 지지 않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만약 서로의 다름을 이해하려는 마음과

서로에게 배려하려는 마음이 조금이라도 부족했더라면

우린 서로 다른 카미노  길을 걷고있겠지.


아르주아를 떠나는 순례자들의 행렬에 합류하여 산티아고를 향한 마지막 40km를 걷기 시작했다.

일정대로라면 아르주아에서 20km 정도되는 오 페드루조에서 스탑을 하고

내일 아침 일찍 출발해서 나머지 20km를 걸어 카미노길의 끝인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 도착하게 된다.


끝이 코앞에 다가왔다는 설렘도 있지만

그 끝에 서 있는 내가...

아니,  우리는 과연 행복할까?


숙고한 걸음걸이를 옮기다 보니 프레곤또뇨라는 마을에 도착한다.





윗니는 어제 배낭없이 걸었다.

오늘 다시 멘 배낭의 무게가 새로운지 조금 힘들어한다.

스틱을 꺼내들고 천천히 걷자는 내 제안에 밝은  표정으로 끄덕이는 그녀.


이제는 고비가 오면 웃음을 잃던 윗니가 아니다,

정말 걸음 걸이 하나도 소중하기에

고통도 행복으로 느껴지나보다.




알베르게도 없는 작은 마을들을 지나치며 깊은 고민에 빠졌다.

며칠전 피스테라에 가려고 했던 마음이 오늘에서야 조금더 확고해졌기 때문이다.

공교롭게 카예  ("Calle") "길" 이란 이름을 가진 마을에  도착해서 피스테라 일정을 고민해 보기로 한다.


1. 오늘 산티아고에 도착해서 내일 피스테라로 떠날 것인가!!?

2. 피스테라를 포기 할 것인가!!?


당연히 전자가 좋지만 과연 오늘 이틀치 일정을 소화 할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갈까?...가...가자!!"


사실 어려운 선택은 아니였다.

선택에 따른 포기가 힘들뿐.


걸어서 완주하는 걸 포기하기로 한다.

마을에 펍이 있길래 주인장의 도움을 빌려 콜택시를 불렀다.

딱 10km만 택시의 도움을 받기로...





오페드루조에 도착해 마지막 카미노 길을 걷기 전 배낭정리를 하기로 한다.

조용한 펍의 테라스에 앉아 배낭에 있는 모든 짐을 끄집어내


1.  필요한 것과,  2.  필요없는 것들로 분별했다.


카미노 길 초반부터 워낙에 많은것들을 비워낸 나는 딱히 버릴거라곤  식재료밖에 없었지만

윗니는 그동안 배낭 깊숙히 숨겨두었던 욕심덩어리들을 하나 둘 끄집어냈다.


한번도 입지 않았다는 조끼와, 린스 한뭉터기  등

한달동안 함께하면서 본적도 없는 많은 물건들이 그녀의 가방에서 나왔다.


"바부야!  이런  걸 여태 들고다녔던 거야? 가방  검사 좀 해 볼걸!"


순간  화가난다.


진작에 버렸더라면 덜 힘들었을 것을.... 

미련한건 알았지만 욕심이 있는지는 몰랐다.






큰 결심을 한 듯

침낭까지 버리겠다는 윗니를 응원을 해 줬다.

(소장품을 버리는게 얼마나 힘든 일 인지 알기에...)


그녀가 버리겠다고 내 놓은 물건 중에 노~오란 스카프가 눈에 띄었다.


땀이 많은 나는 이마에 맺히는 땀을 닦는게 귀찮아 매일같이 스카프를 두건마냥 이마에 두르고 다녔거늘.

저 스카프를 진작에 나한테 버렸으면 유용하게 사용했을 텐데...


아쉬운 마음에 목에 둘렀다.


윗니에게 "나 이뻐?"  라고 장난스레 물어보자


이쁘단다.


허허.







오페드루조에서부터 내딛는 발걸음엔

배낭의 무게보다 더 무거운

마음의 짐이 내 두 어깨를 짖누르고 있었다.


이젠 그 짐도 내려 놓으련다.


카미노  길에 가져왔던 고민들과  걸으며 했던 생각들은

내가 길 위에 남긴 발자국처럼 카미노에 남겨두고


길 위에서 했던 수많은 다짐들과 길 위에서 얻은 용기만 가지고 산티아고로 향한다.


↘생각에 잠겨 걷다보니 오  페드루조에서 9km정도 되는 지점에 위치한 라바콜라 (Lavacolla) 에 도착했다.

시온야 강  (Rio Sionlla)이 흐르는 라바콜라,

프랑스 루트를 걷는 순례객들이 사도(야곱)를 만나기 전 예의를 갖추기 위해 이 시온야 강에서 몸을 씻었다고 한다.


마음이 급한 윗니와 나는 이 사실도 잊은채 마을을 그냥 지나쳤다.


지난 한달을 되짚어 보면 윗니와 나는 순례자의 관례나 카미노길의 상징적인 것들에 대한 포기가 빨랐다.

덕분에 마음의 여유도 생기고  남들이 다 하는 순례 보다,

우리만의 카미노 길을 만든 것 같다.






라바콜라 마을 입구에서 인사했던 아일랜드 커플과 나란히 걸으며 담소를 나누었다.

사리아에서 시작했다는 그들은

생장에서 시작했다는 우리가 대단하다며 혀를 내두른다.

지구 반대편에서 시작한 카미노 길 위에서 운명같이 만나 매일같이 손잡고 걷는다는 우리의 얘기를 듣고

우리의 앞날을 걱정해 준다.


"앞으로 어떻게 할거야?"  란 질문에


"둘 중 더 보고싶은 사람이 만나러 가야겠죠" 라고 대답했다.


농담스레 던진 내 말에 씁슬한 표정을 짓는 그들.

정말 운명같은 만남앞에 너무 현실성 없는 내 대답이 실망스러웠나 보다.


"부디 해피엔딩이 있으면 좋겠다"는 그들의 작별인사를 뒤로하고 또다시 산티아고를 향해 걷는다.


→열심히 걷다보니 어느덧 산티아고까지 11km 남았음을 알려주는 이정표가 나타났다.


그리고 그 이정표 앞에서 안경을 주웠다.


주인을 찾아주려고 지나치는 순례객들마다 일일이  불러 세워 안경을 보여주었더니

자신의 것이 아니라며 하나같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조금 서둘러 걷다보면 주인을 찾을 수 있을거란 생각에 걸음 속도를 올려본다.





숲길이 끝나고 차 소리가 들리면서 산티아고로 들어가는 고속도로  진입로가 나타났다.


이젠 정말 산티아고에 근접했나보다.


길 옆에 "산티아고"가 새겨진 비석이 있길래 지나가는 순례객에게 부탁해 오랜만에 윗니와 둘이서 사진을 찍어본다.


지칠대로 지쳐있지만 사진에 담긴 우리의 모습은 행복해 보인다.

카미노 길을 걸은 첫날 론세스바예스에 도착해서 찍은 영상에 담긴 내 모습과는 너무나 다르다.



비석을 뒤로하고 다시 숲길로 이어지는 길을 따라 걷다보니 외딴곳에 위치한 펍이 눈에 들어왔다.

길가에 놓여진 테이블에 앉아 쉬고있는 순례객들에게 다가가 안경을 보여주니

마찬가지로 고개를 절레절레.


마지막 테이블에 있는 할아버지께 보여줬더니 옷안에 쥐라도 들어간것마냥 몸을 미친듯이 더듬어 대더니

이내 자신의 것이란다.


연신 고맙다고 인사하는 그에게 "부엔카미노" 라고 인사하고 발걸음을 재촉했다.

오히려 내가 더 고마웠다.

만약에 끝까지 주인을 찾아주지 못했더라면 내 마음이 불편했을텐데.

다행이다.


오지랖때문에 늘었던 마음의 짐을 한 줌 덜어내면서

기쁜 마음으로 마지막 10km를 걷는다.






몬테 도 고조,  "기쁨의 언덕"을 오르고 내리며

마지막 남은 체력을 쥐어  짜 냈다.


산티아고에 도착하기 전 마지막으로 마음을 정리하는 곳이라고 알려진 이곳에서 나는

주저앉으려는 무릎을 부여잡고

상가집을 연상케하는 곡소리만 남겼다.


라바콜라에서 만났던 아일랜드 커플들의 말대로 산티아고 초입에서 산티아고 성당까지 가려면 5km가 넘는 거리를 걸어야 했다.

산티아고에 도착한건 너무나 기쁘지만 온몸이 삐그덕 거려서 당췌 속도가 나질 않았다.





신시가지로 보이는 주택가를 가로질러 시멘트 길을 따라 걷다보니 구시가지를 상징하는 돌길이 나타났고

돌 길 위엔 어마어마한 인파가 몰려 있었다.


무슨 페스티벌이 열린건지 무대공연도 있고 상인들이 길가에 나와 음식과 물품을 팔고 있었다.


마지막 2km를 영상으로 담고 싶어 고프로를 집어들고 산티아고 성당을 향해 걷는다.







성당으로 향하는 마지막 계단 아래에서 백파이프 소리가 들려와 마음이 울컥했다.






그리고 마주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대성당.

윗니 앞에선 울지 않으려 했다...

하지만 나도 모르게 눈물이 주륵~~


흐르는 눈물이 야속했지만

내가 지금 느끼는 복잡한 감정을 억누르고 싶지 않아 질질짜며 성당 앞 광장을 거늴었다.





성당이 현재 수리중이여서 외관이 보기 흉할정도로 건축자재로 덮여있지만

별로 중요치 않다.


탁 트인 광장 중앙에 서서 한참동안 성당을 올려다 보았다.


내가 지금 이 자리에 서 있기 위해 얼마나 많은 걸음걸이를 내딛었던 걸까

얼마나 많은 고통과 시련을 견뎌 왔고

얼마나 많은 후회와 포기를 이겨냈던가.






윗니도 생각이 많은지 아무말도 하지 않고 광장을 두리번 거렸다.


그녀도 만감이 교차하겠지...


혼자 오른 길에서 둘이 되었고

난 끝까지 함께 하겠다는 약속을 지켜냈다.


다들 그랬을 것이다.

혼자서 끝까지 걷겠다고 오른 카미노 길 위에서

지켜내고 싶은 만남도 있었을 것이고

피하고 싶은 만남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카미노  길 위에선 자기 몸 하나 가누기도 힘들어

이러한 만남을 끝까지 지켜낸다는게 쉽지 않다.


그렇기에  산티아고까지 지켜낸 우리의 만남은 정말로 값지다.


같은 생각이었는지 그녀도,

그리고 나도 서로를 다독여 주었다.


"수고했어."


"너도 수고했어."





여운이 남아 성당을 마주보고 있는 건물 앞  그늘에 자리잡고 앉아 잠시 휴식을 취해본다.


산티아고에 도착한 다른 순례객들도 모두 눈물과 감격에 젖어 광장을 정처없이 떠돌고 있었다.





줄이 길기로 악명높은 순례자 사무실로 서둘러 발걸음을 옮기기로 한다.

산티아고 곳곳에 배치되어있는 자원봉사자들의 도움을 받아 순례자 사무실을 쉽사리 찾을 수 있었다.

우리가 늦게 도착해서일까?


10명 남짓한 순례객들이 줄을 서고 있었다.

순례자 여권을 들고 초조한 마음으로 기다리는 순례객들과 대화를 나누어 본다.


자전거로 8일만에 카미노를 완주했다는 분들은

한달동안 걸었다는 우리가 대단하다며 완주한것을 축하해줬고

사리아에서 출발한 순례객들은 도장으로 가득찬 우리의 여권을 부러워했다.


우리의 차례가 오고

카미노를 완주한 순례객들에게 무료로 주는 순례길 증서와

3유로를내야하는 키로수가 적혀있는 카미노 증명서를 받았다.


종이한장에 담겨진 한달의 고생이 너무나 허무했지만

앞으로 내 방에 걸려있을 상상을 하니 미소가 절로 났다.


아직 피스테라로 향하는 일정이 남았지만

오늘밤은 정말 꿀잠을 잘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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