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mino de Santiago|| D28. Ep.63 눈물의 카미노


밤비



Camino de Santiago
Day Twenty Eight
Episode Sixty Three
2 0 1 6. 0 6. 3 0


Tearful Camino




팔라스 데 레이, (Palace=궁전,  rei=왕) 왕의 궁전이라는 이름을 가진 도시치고는 소박한 모습의 마을.

12세기에 집필되었고,  순례자의 지침서라 여겨지는 코덱스 칼릭스티너스("Codex Calixtinus").

코덱스엔 팔라스데레이에 대해 이렇게 적혀져 있다,

한때 부와 명예를 한손에 거머쥔 갈리시아 왕이 전쟁을 패하면서 수많은 성채와 요새가 버려졌고,

이후  사기꾼과 도득들의 소굴로 탈바꿈하였단다.

팔라스 데 레이로 향하는 순례자를 유혹해 금품을 훔치는 창녀들에대해 언급 되었을정도로

왕의 기품과 반대되는 낙후된 마을로 타락하였다.


현재는 다행이도,  개인 알베르게 창업에 투자한 수많은 사업가들에 의해

소박한 규모에 비해 꽤 많은 알베르게가 마을 곳곳에 자리잡고 있다.


평이 좋거나 시설이 좋은건 우리에게 아무 의미가 없다.

잠귀가 밝은 윗니와 나는 오늘도 조용한 알베르게를 찾아 헤맨다.




▲사진출처:  google


첫번째로 들어간 알베르게는 시설이 좋으나 주방이 없어 쿨하게 패스하고

산티아고 교회의 담장 왼편에 위치한 산 마르코스 알베르게를 선택했다.


45유로인 개인방은 부담이 되서 돌아서려는 찰나 직원누나가 3인실을 다인실과 같은 가격에 쓰라고 편의를 봐줘서

"누나짱"을 외치며 체크인을 마쳤다.


알베르게 건물 제일 꼭대기층에 위치한  3인실  두개. 

 그 중 하나는 어제부터 길에서 자주 마주치던 스페인 4인 가족이 짐을 풀고 있었다.

전망이 좋을거라 생각하며 문을 연 순간 옥탑방보단 다락방이란 단어가 더 어울릴법한 공간이 눈앞에 나타났다.

창문도 천장에 붙어있어 환기도 잘 되지 않을 뿐더러

스페인의 작렬한 태양빛을 받아 방이 찜통이다.


그래도 코골이들에게 온갖 저주를 퍼부으며 밤을 지새울 걱정은 없어 천.만.다.행.





혼자만의 고독한 싸움에서 승리한 윗니는 가방을 내려놓은 순간 침대위에 쓰러져버렸다.


그런  그녀의 부츠와 양말을 벗겨주고 토닥여줬다.


"수고했어"


씻기위해 2층에 있는 공용샤워실로 향하는길에 한국 순례객들과 마주쳤다.

텐트형과 잠시 동행을 했었고  까리온 수녀원에서 저녁을 함께 먹었던 여성 순례객분.

원래는 동행이 있었는데 둘이 따로 걷다가 며칠 전 재회해서 카미노의 마지막 100km를 함께 걷고 있단다.

동행이 있어서 그런지 얼굴이 전보다 훨씬 더 밝아보인다.

역시 카미노는 혼자 걷기엔 너무  외로운 길이  아닐까?





윗니의 피곤을 씻겨낼  방법을 고민해보다가

그녀의 미각을 폭행  할 요리를 해주기로 마음먹고

오랜만에 칼을 잡기로 한다.


씻고나온 윗니를 앞장세워 마트로 향했다.

주 재료인 고기를 고르기위해 육류 코너를 구경하다 터키 다리 두개를 2.5유로에 구입했다.

스페인 대파,  푸에로와 갈리시아 지역에서 재배한 로즈메리,  타임,  코리앤더,  그리고 오레가노 한줌을 구입하고

양파,  마늘,  버터  그리고 칠면조 다리에 곁들일 아티초크도 한병 구입했다.

탄수화물은 비야프랑카에서부터 들고다닌 쌀로 밥을 짓고 계란을 곁들여 계란밥을 만들기로 한다. 





지하 1층에 있는 공용주방을 전세  낸 것 마냥 어지럽혀 놓고 소매를 걷어붙였다.

오븐이 없기에,  팔뚝만한 칠면조 다리를 잘 익히려면 뼈에서 살을 발라내어 불에닿는 면적을 최대화 해줘야  했다.


물도 베이지 않을  것같은 뭉둑한 식칼로 10분동안 사투를 벌이는데

그 모습이 신기한지 다른 순례객들이 곁눈질하며 관심을 갖는다.


알베르게에서 칠면조  요리를 하는 사람은 너밖에 없을거라며...






버터가 녹고 허브하고 마늘향이 육질에 베면서 후각을 폭행하는 냄새가 알베르게 전체로 퍼졌다.

침실에 있다가 맛있는 냄새가 나길래 내려와봤다는 순례객과 한입만 달라고 너스레를 떠는  아재들의 칭찬에 힘입어

더욱더 진지한 표정으로 요리에 열중했다.






한인 순례객들도 주방  근처에 모이더니 윗니를 부러운 눈빛으로 쳐다본다.

왠지 모르게 두 어깨에 힘이 들어간다.


모두에게 소중한 사람이 있는 법! 

표현하는 방식이 다를뿐 그들도 분명 누군가를 위해 열정을 불태워봤을 것이다.


사실 요리를 시작하기 전 윗니와 작은 해프닝이 있었다.

요리 준비로 분주하던 나를 대신해 라면을 끓여준 윗니에게 되레 화를 냈었다.

물 양을 조절하지 못해 맹탕이 되어버린 라면을 보고 나도 모르게 화가 치밀었기 때문에  말이다.

음식을 퀄리티를 무엇보다 중요시 하는 내겐  최악의 범죄라며 그녀를 꾸짖었더니

아무 반박도 못하고 시무룩해진 윗니.


그녀의 침울한 표정을 보고 내 행동에대한 잘못을 깨우치고 늦게나마 그녀에게 사죄를 했다.


그녀는 분명 좋은 의도로 한 일인데

라면 그깟게 뭐라고 화를 버럭 내버린 내 자신이 한심스럽다.


그래서!


요리에 더욱더 심혈을 기울였다!





먹기 좋으라고 살을 발라내서 허접한 플레이팅을 했다.





아티초크를 곁들인 칠면조 요리는 (내가 만들었지만) 환상적이었다.

불조절을 실패하면 고무처럼 질긴 칠면조 고기.

약불에 천천히 버터를 끼얹어가며 슬로우 쿠킹기법으로 조리했더니 육질이 부드럽고 육즙이 가득했다.


물론 다 먹질 못하고 남은 고기는 마침 저녁을 준비하고 있는 외국인 순례객들에게,

밥을 짓고 남은 쌀은 라이스 푸딩을 만들거란 스페인 여성 순례객에게 나눠주었다.






앉아있기도 누워있기도 힘든 포만감에 산책을 나가기로 한다.

나갈채비를 마치고 말장난을 치다가 윗니에게


"가!  그럼 너 혼자가!" 라고 말했다.


진심이 아니였거늘...


날카로운 눈길을 주고서 매몰차게 침실을 나서버린 윗니

절묘하게 바람이 불어 그녀뒤로 꽝!  하고 닫겨버린 문.


혹시라도 내가 한것이라 생각할까봐 그녀뒤를 쫒아 보지만

윗니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알베르게를 떠났다.


다시 돌아오겠지?  라는 생각과 함께 별 이상한 생각이 다 든다.


혹시라도 혼자  저녁거리를 돌아다니다 납치라도 당하진 않을까,

어디서 길을 잃어 울고있진 않을까하는 말도 안되는 삼류 시나리오가 머리속을 가득채운다.


잠시뒤 그녀를 찾으러 알베르게를 나섰다.

마주치는 사람들을 붙잡고 검은머리의 동양 여성을 본적이 있냐고 물어보자 다들

고개를 절레~절레~


그녀를 찾아 헤매는 시간이 늘어날수록 배가되는 불안감에 휩쌓여 미친듯이 뛰어다니며 마을 한바퀴를 다 돌았다.

그래도 그녀가 보이지 않는다.

혹시나 숙소로 돌아갔을까 싶어 알베르게로 들어선 순간 윗니가 라운지 쇼파에 앉아있는  걸 발견했다.

다짜고짜 그녀의 손목을 잡아끌고 알베르게 밖 조용한 곳으로 향했다.

벽에 그녀를 몰아세우고선 윽박지르듯이 그녀를 나무랐다

어디갔었냐,  내가 얼마나 찾아 헤맨지 아냐 등등

언성을 높여가며 그녀에게 한풀이를 했더니 고개를 떨구고 있던 윗니의 어깨가 들썩이기 시작했다.

말문이 막혀 아무말도 못하고 서있자 등을 돌리는 윗니.

그리고 그녀는 흐느끼기 시작했다.


그녀가 운다.


세상이 무너진다.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한동안 미안하단 말밖에 생각나질  않았다.


다독여주는 내 손길에 들썩이던 그녀의 어깨는 평화를 찾았고 윗니는 봇물터지  듯 자신이 느꼈던 서러움을 말해주었다.


이제  곧 끝이나는 우리의 길,

이별이 코앞에 찾아온 상황에

내가 무심코던진 "가버려"란 말이 너무나 무섭게 느껴졌다는  그녀.


그녀도 나만큼, 

아니 나보다 더 우리의 이별을 두려워하고 있던 것이었다.


지금 이 시점에서 그 어떤말도 그녀를 달래줄 수 없단 걸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아직  우리에겐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이 조금 더 남아있기에...

벌써부터 슬퍼하며 남은시간을 보내기엔 너무나 소중한 시간이라며
그녀를  달래본다.


마음도 가라앉힐 겸 못다한 산책에 나섰다.


카미노를 걷듯 윗니의 손을 잡고 마을을 거늴어본다.

저물어 가는 태양이 붉은빛을 발하며 따뜻한 온기로 우리의 몸을 달구어주었다.

한참을 걷다  지평선 너머로 몸을 숨겨버리는 태양을 뒤로하고 알베르게로 돌아왔다.


"잘자"


"잘자"


짧은 인사와함께 눈을 감는 윗니. 

건너편 침대에 새근새근 잠든 윗니를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눈을 감으면 그녀의 모습을 잊어버릴 것 같아 쉽사리 잠에 들지 못했다.

달빛이 벽을 스멀스멀 기어내려와 바닥에 차디찬 푸른빛을 물들일때까지 오래동안 침대위에서 뒤척이다

피곤이 눈꺼풀에 내려앉아 나도모르게 잠들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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