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미노로 다시 떠나는 이유.

 

"왜 다시 가서 고생하냐"고 물어보더라고,

질문의 무게가 너무 무거워 이제것 미루다 출발을 일주일 남겨두고 혼자만의 대화를 나누어보려고 해.


2016년 4월. 내겐 그 어떤 말로도 형용할 수 없을만큼 힘든 시기였어. 왜 살아가고 있지라는 질문을 수도 없이 하다보니,

차라리 죽는게 괜찮겠다 라는 쉬운답이 나를 지배하더라고. 

그런 내 상태를 아무도 알아보지 못했어. 너 주위에도 정말 아무 불평도 없이 살며 항상 웃고 있는 친구가 있다면 의심을 꼭 한번 해보길 바래. 그 친구도 2016년 내가 그랬던 것 처럼 절벽 끝에 서 있을수도 있어. 정말 평온하더라고, 마음이. 나를 괴롭히는 머리속의 목소리와 더 이상 상대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행복하기까지 하더라고.

 

 

그런마음으로 내 자신에게 마지막으로 해주고 싶은 말을 한 뼘도 안되는 작은 편지지에 적어 곧 마주하게 될 길의 끝을 향해 걷기 시작했어. 

 

 

신기한건 막상 길 위에 놓여지자 그 어떤 감정의 대화도 내 자신과 나눌 수 없었어. 그게 내 유일한 목표였는데 말이야. 그저 내 마음보다 한발 치 앞서는 발걸음에 집중한 채, '오늘은 언제 무얼 먹고, 어디서 자고 몇시에 일어나야 할까'하는 원초적인 생각들로만 하루를 꼬박 채우더라고.

 

 

그렇게 한달 조금 넘는 시간을 걸으며 피스테라의 절벽 바위에 앉아 편지를 열어보았고, 그 안에는 내게 미처 해주지 못했던 말 한마디가 담겨 있었어. 

"수고했어 홍주야", "넌 최선을 다했어" 라고. 

그래 맞아. 이 세상 그 누구도 날 질타하지 않았는데, 나만이 내 자신을 탓하고 있었어. 

나만 내 자신을 용서하면 됬는데, 곧죽어도 못하고 있었던 거야.

남에게도 엄격한 ENTP는, 자기 자신에게도 가혹하도록 엄격했던거야. 일관성있어 좋네...

 

카미노 걷기 직전, 걷고 직후.

 

카미노를 걷는 이들에게 전대사 (모든 죄를 면죄)를 부여해준다는 이유가 많은 이들의 순례길을 걷는 이유가 되었다고해. 근데 이젠 나도 알아, 그렇게 먼 길을 걸어 산티아고 대성당과 마주했을때는 이미 모든게 용서 되어 있다는 걸.

 

 

마음이 아픈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용서하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다는 걸. 

그리고 그 용서는 본인만이 해줄 수 있다는 걸.

 

그래서 왜 다시 떠나냐고?

글쎄 그 질문에 대한 답은 다녀온 뒤에 해줄게.

나도 사실 아직 잘 모르겠거든.

다만, 처음 떠난 카미노는 혼자 가서 둘이 되어 왔는데,

두번째는 둘이가서 혼자가 되어 돌아오지만 않으면 될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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