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mino de Santiago||D27. Ep.61 운명의 길 카미노


밤비



Camino de Santiago
Day Twenty Seven
Episode Sixty One
2 0 1 6. 0 6. 2 9


Fate




오르려면 허리가 심히 굽어야 할 정도로 경사면에 자리잡은 포르토 마린.

본능적으로 헥헥 거리며 알베르게를 찾으러 마을을 헤집고 다녔다.

조용한 곳을 찾고싶어 인기가 좋은 알베르게는 그냥 지나치고 Albergue de Peregrino를 선택했다.

마을과 조금 동떨어져 있지만 언덕위에 홀로 고즈넉히 자리잡고 있어 항상 왁자지껄한 순례객들을 피할 수 있다.

무엇보다 주위에 건물이 밀집 되어 있지 않아 호수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다.







체크인을 마치고 직원을 따라 침실로 향했다.

다른 투숙객이 없는건지 건물 전체가 조용하다.

창문을 활짝 열고 그림같은 포르토마린의 조경을 넋을 놓고 바라보았다.

발렌타인이 최고라고 찬사를 아끼지 않던 포르토마린에 나도 모르게 홀리고 있었다. 


감동도 잠시 퀘퀘한 냄새에 미간이 꾸깃해졌다.

한달동안 내 발가락의 지문까지 새겨질만큼 짓눌렸던 깔창을 일광욕 시킬겸 창틀에 두었는데

악취가 아주 스펙타클 하다.


뜰에 내 놓을까 생각도 해보지만 길냥이가 물어가면 낭패이기 때문에

그냥 오늘 하루는 구수한 꼬린내를 벗삼기로 한다.




2분샤워를 준시하는 나 였는데,

샤워실에 폭포수샤워기가 있어 오랜만에 아주 긴~~~  샤워시간을 가졌다.

등줄기를 사정없이 때리는 물줄기에 몸을 맏기고,


"어허~  시원하다"를 연신 외치며 하루의 피곤을 풀어본다.


'앗차...'


샤워기의 마력에 빠져 다음 순서를 기다리고 있던 윗니를 잊었다...

샤워를 마치고 침실로 돌아오니 윗니가 영혼을 잃은 표정으로 침대 귀퉁이에 앉아있다.


"미....미안...  좀 오래 걸렸지..."


괜찮다고 손사래치는 윗니에게 폭포수의 마력을 전파하고 홀로 숙소를  나섰다.


나른할 정도로 따신 햇빛을 등지고 마을 중심부를 향해 걷는데 어디선가 음악 소리가 들려온다.





성당앞 광장에 둥그렇게 서서 연주하는 악사들.

그들의 흥이나는 가락에 맞추어 동네사람들이 춤  솜씨를 뽐내고 있었다.


몸의 체중을 지팡이에 한데실은 허리굽은 할아버지께 다가가 오늘이 무슨날이냐고 물어보자 날 이상하게 쳐다보신다.

12사도중 산 페트로와 산 파블로의 기일이라며 꾸짖듯 일러주시는 할아버지.

그의 포스에 짓눌려 광장을 스리슬쩍 빠져나왔다.


마을을 잠시 둘러보다,

마트를 물어물어 찾아가 음료 두개와 물 한병을 사서 알베르게로 발길을 돌렸다.


침실로 돌아왔더니 피곤이 급격히 몰려와 오랜만에 씨에스타를 즐겨보기로 한다.


허기지다는 윗니의 말도 한귀로 흘리고

침대에 냅다 드리누워 코가 비뚤어 지도록 잠들어 버렸다.






마을 어디선가 폭죽소리가 들려와 눈을 떴다.

대낮에 웬 폭죽놀이냐며 의아해 하다가 문득 날 꾸짖던 할아버지의 얼굴이 떠올라 외쳤다,


"산 페드로!  산 파블로!"


구글형님에게 물어보니 Feast of Saint Peter and Saint Paul 라는 날이란다.


'그럼 우리도 만찬을 즐겨볼까?'


낮에 염탐해 두었던 음식점들을 찾아 광장으로 향했다.

뜨거웠던 열기는 사라지고  느긋한 저녁식사를 즐기고 있는 순례객들로 가득한 광장.


순례자 메뉴로는 충족시킬 수 없는 까다로운 내 입맛을 충족시킬 만한 맛집을 찾아야 했다.

결국 광장을 두세번 돌고 마을 변두리까지 돌다가

어쩔 수 없이(?)  호숫가를 한눈으로 내려다 보는 전망을 가진 고급 레스토랑에 자리를 잡았다.


항상 나를 배려해주는 윗니;

고기를 먹고  싶다는 내 의견을 흔쾌히 환영해 주어

아스토르가에서 맛 보았던 스페인 스타일 고기 만찬 파릴라다를 주문하였다.


고급 레스토랑이라 그런지 차려입은 손님들 사이에 꾀죄죄한 우리의 모습이 우스꽝스럽지만

남들의 시선을 전혀 개의치않는 우린 당당히 포크와 칼을 들고 만찬을 맞이했다.








아스토르가에서 맛 보았던 페릴라다와는 격이 다른 퀄리티의 음식들이 한상 차려졌다.


고기!  고기! 를 외치던 난 감탄사를 날리기 바뻣고

서둘러 포크질을 하기보단 음식에 대한 예의를 갖추자며

서버를 대신해 윗니에게 고기 부위에 대해 설명을 해 주었다.


먼저 등심을 한점 먹어보길 권했다.

안심과 더불어 양대산맥을 이루는 등심은 근육조직 사이사이에 지방이 있어 조리를 했을때 식감이 부드럽다.

등심쪽 지방은 열에 가해졌을때 유난히 좋은 냄새를 풍겨 한국인들 사이에선 '마블링'  이란 이름으로 불리는 지방이 많은 부위다.


다음은 티본스테이크.

등심과 안심이 고민될때 주문하면 알맞은 티본스테이크는 T자모양 뼈에 붙은 안심과 등심이 금상첨화를 이루는 부위다.

등심과 안심은 구워지는 속도가 달라 미디엄 레어로 조리하기 가장 까다로운 부위이기도 하다.


다음으로 먹을 부위가 고민되었다.

송아지냐 꽃등심이냐가 고민이다..

냄새에 현혹되어 어쩔수 없이 송아지를 선택!

송아지 고기의 특유의 향인 젖비린내가 일품인 송아지 스테이크!

우유를 먹여 키워서 칼슘과 철분 함량이 높아 빈혈치료에도 좋다.

지방기가 많지않아 조리할때 온도조절이 아주 중요한데

주방장 솜씨가 좋은지 아주 적절한 미디움으로 잘 구웠다. 


마지막으로 지방기가 가장 많은 꽃등심.

소고기 중에 가장 무난하다고 여겨지는 꽃등심은 지역과,  소의 퀄리티에 따라 가격이 천차만별인데

방목이 잦은 스페인  소들은 운동을 많이했는지 조금 질긴 편이다.


파릴라다에서 빠지지않는 초리조는 솔직히 구웠을때는 너무 질기고 짠맛이 강해 숙성된 상태로 먹는게 향도 더 좋고
식감도  좋다.



열정적인(?)  식사를 마친 윗니와 나는 과식을 해서 한껏  부풀어오른 배를 부여잡고 레스토랑을 기어서 나왔다.

도저히 이대로 숙소로 돌아갈 순 없다고 생각들어 바로 산책에 나섰다.


흑  과  백으로 치장한 마을이 너무나 감각적이다.

포르토마린이 모델도시같이 예쁜 이유는 바로 1962년도에 미노 강에 지어진 댐 때문이다.

강의 수심이 높아질걸 대비해 물가에 있던 중요 건축물들을 언덕위로 이동시키고 그 주위로 계획도시처럼 마을이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포트로마린을 잇던 옛 다리와 옮겨지지 않은 건물들은 강이 삼켜버렸단다.

마을로 향하는 다리위에서 물 아래로 내려다보면 물에 잠긴 옛도시를  볼 수 있단다.





항상 옆에 있어서 이제는 윗니와 떨어져 있는 시간이 상상도 되지 않는다.

20일이 넘는 시간동안 아침에 눈을 뜨고,  저녁에 눈을 감을때까지 난 그녀와 함께였다.

  앞으로 일주일 뒤면 그녀는 한국으로 그리고 난 캐나다로 돌아가게 될 것이다.

지구의 반대편에서 출발해 중간지점인 스페인에서 만나 카미노를 같이 걷고있다는 걸  단순한 우연으로 넘기기엔

너무나 운명같다.


둘 다 현실적이고 철저히 개인주의적이라 자부하지만

코  앞에 놓여진 운명을 믿지 못할 정도로 어리석진 않다.


우리가 만나기까지 너무나 많은 사건 사고들이 있었다.


여권을 분실해서 비행기 일정이 늦춰진 윗니.

카미노에 오르기 전 포루투갈을 먼저 여행하고 마드리드에서  발렌타인을 만났고

동행을 결심하고

 6월2일  생장에서 출발하게 되었다.


난 5일만에 카미노에 오를 준비와 결심을 하고 무작정 프랑스로 떠났지만

늦은시각 기차가 끊기는 바람에 바욘이란  곳에서 비박을 하게  되었다.

유어곡절 끝에 다음날 생장에 도착하였지만 하루를 쉬고

준이와 함께 다음날인

6월2일 생장에서 출발하게 되었다.


론세스바예스에서 새벽에 윗니와 잠깐 나눈 인사.

다음날 그녀는 주비리라는 마을에 나는  그 다음  마을인 라라소아냐라는 마을에 멈추었지만

발 상태가 좋지않은  탓에 준이와 작별을 하고 혼자 걷다가 팜플로나  전 마을인 '아레'에서 다시금 그녀와 마주쳤다.

그날 유난히 상태가 좋지않아 다음을 기약하고 아쉬운 작별인사를 나눴다. 

하지만 무슨 인연인지 팜플로나에서 같은 알베르게에 묵게되어  (팜플로나엔 공영 알베르게가 두개나 있다)

저녁도 같이 먹고 술자리도 가졌지만

다음날 아침 나바라 대학에 들려서 대학증서를 발급받아야 하는 나는 다시금 그녀와 작별인사를 나눴고

다시 만나지 못할거라 생각했지만 푸엔타 라 레이나에서 극적인 재회를 하였다.


그 다음날도 같이 걷길 원했지만 다리 상태가 좋지 않은 난 또다시 혼자 걷게 되었다.

언제 어디서 멈추게 될 지 모르는 난 에스텔라라는 목표를 향해 미친듯이 걸었고 다행이도 에스텔라에서 그녀를 다시 만났다.


차후에도 수많은 갈등과 시련이 우릴 갈라 놓으려고 했지만

손을 맞잡고  걷기 시작한 부르고스에서의 약속을 계기로 우린 계속 함께하게 되었다.

그때의 약속은 산티아고까지 였지만 지금은 피스테라와 마드리드도 함께  가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호수를 내려다 보고 있는 그녀의 뒷 모습이 두렵다.

마드리드  공항에서 바라보게 될 그녀의 뒷 모습이 머리속에 그려지면서 슬픔이 찾아온다.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마을은 저녁내내 축제  분위기를 이어가고 있다.

성당앞 계단에 엉덩이를 깔고앉아 잠시동안 공연을 관람했다.

흥겨워 보이는 관중들 사이 난 한없이 우울하다.


카미노가 끝나지 않았으면...


절대 다가오지 않을 것 같던 끝.

그 끝이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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