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mino de Santiago|| D20. Ep.45 다시 순례자의 신분으로 산 마르틴을 향해!


밤비



Camino de Santiago
Day Twenty
Episode Fourty Five
2 0 1 6. 0 6. 2 2


Los Peregrinos





대망의(?) 날이 밝아왔다.


발에 아무런 고통없이 일어난다는 것이 신기할 따름!


"오늘 컨디션은 최고다!" 라고 외쳐보지만 다시 아플수도 있다는 생각에 두려움이 앞선다.





어제 지엘로에서 아점을 먹고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들렸던 과일과에서 산 바나나와 납작 복숭아로 아침을 해결했다.




오늘은 결의가 조금 남다르다.


레온에서 쉬면서 하루를 잃은 걸 커버하려면 (카미노 길을 걸었던) 지난 18일보다 더 열심히 걸어야 하기 때문이다.


혹 베드버그가 남아있을 배낭을 달갑지 않은 표정으로 짊어매고


등산화 끈을 질끈 동여맨 후 출발을 외쳤다.





새벽공기가 새롭게 느껴진다.


새롭다는거,


너무나 가슴뛰는 일이다.


지난 3주동안 카미노가 너무 일상의 쳇바퀴처럼 다가왔던 걸까?


매일 새로운 곳을 향해 걷는다는게 얼마나 가슴벅찬 일인지 오늘 아침 다시한번 실감하게 되었다.





산티아고 까지는 앞으로 306km.


30km씩만 걸어도 10일도 남지 않은 여정이다.


레온을 빠져나오는 길을 걸으며 정말 거짓말같이 멀쩡한 내 두 다리가 신기했다.


그렇게 질척이던 발걸음은 쉴 새 없이 앞으로 나아갔고


삐걱거리던 오른쪽 무릎도 마치 자기가 언제 투정을 부렸나는 듯 기름칠한 톱니바퀴마냥 부드럽게 굴러가고 있었다.





몸이 여유로우니 마음에도 여유가 찾아왔다.


카미노에서의 아침은 항상 다음 마을을 향해 앞만보고 걷기 바빴는데


레온을 떠나면서 마을도 구경하고 사진도 찍으며 늦장을 부렸다.



한참을 걷는데


윗니의 발걸음이 심상치 않다.


체중이 왼쪽으로 실린다 싶더니 이내 종아리가 아프다며 멈춰섰다.


오랜만에 걸어서 그럴 거라며 천천히 걸으면서 다리를 풀어보라 조언해 주었다.



레온을 빠져나오기 전부터 문제가 생기다니...


전혀 예측하지 못했던 일이다.


혹시 하루 쉬었던게 독이된 건 아닐까 걱정도 된다.



천천히 걸어도 호전되지 않는 윗니의 상태.


잠시 그녀를 멈춰세웠다.


"짐을 조금 덜어주는 건 어때? 1키로만 줄여도 한결 나을거야."


잠시 고민을 하는 윗니. 이내 조용히 고개를 끄덕인다.


배낭을 열어 제일 무거워 보이는 옷 가방을 내 배낭에 옮겨담았다.



짐을 덜고 나서도 5분정도 더 지켜보았지만 계속해서 발을 절뚝인다. 


안되겠다 싶어 배낭을 뺐어들려고 했다.


전 과는 다르게 완강히 거부하는 그녀.


대신 잠시 벤치에 앉아 쉬어가기로 한다.


앉아서 종아리를 주무르는 그녀의 표정이 어둡다.


이내 조심스레 입을 여는 그녀,


"나 너무 속상하고 부끄러워..."


그녀가 무슨말을 하는지 알 것같아 조용히 듣고만 있기로 한다.


"너의 호의는 정말 고마운데 내가 카미노에 오른 이유가 있잖아... 알다시피 나는 카미노에 오르면서 뭐든지 혼자할 수 있는 힘을 키우고 싶었어..."


낮게 깔린 목소리에서 신중함이 뭍어났다.


감정을 한 껏 억누르려는지 파르르 떨려오는 입술.


눈을 못 마주치겠는지 시선을 회피하며 대화를 이어가는 그녀,


"너를 만나고 정말 많은 도움을 받았는데, 레온에서 쉬면서 다짐했어. 나도 앞으로는 너에게 의지하지 않고 열심히 걷겠다고..."


망치로 머리를 한 대 맞은 듯, 멍 했다.


그녀가 방금 한 말은 내가 피레네를 넘으며 했던 다짐과 같았다.


나도 잠시 고개를 숙이고 생각을 하다가 그녀의 얼굴을 올려다 본 순간


눈물이 그렁그렁한 그녀의 눈과 마주쳤다.


바다같은 그녀의 눈에 고인 눈물. 차마 닦아주지 못한 채 한참을 바라보는데 어느새 내 눈가에도 눈물이 맺혔다.


경솔했다.


그저 배려라고 생각해서 한 내 행동들이 그녀에게 얼마나 무거운 마음의 짐을 안겨줬던 걸까.


그녀의 의지를 멸시하는 행동들이 아니었을까...


나 자신이 너무나 부끄러웠다.


"미안해 난 그저 너를 위한거라 생각하고..."


소매로 눈물을 훔쳤더니 그제서야 내 눈물을 보고 윗니도 당황스러워 했다.


"아! 아니야... 나도 너 마음 아는데, 무엇보다 너도 많이 힘들텐데, 짐이되고 싶지 않은 것도 있고..."


그녀를 안아주었다 그리고 아주 긴 시간동안 우리사이엔 정적이 흘렀다.


가슴을 통해 느껴지는 그녀의 굵고 깊은 심장의 울림으로 마음의 대화를 나누었다.





벤치에 앉아 마음을 가라앉히고 윗니의 발을 마사지 해주고 있는데


길 끝의 골목에서 누군가가 내 이름을 외쳤다.


눈에 초점을 맞추고 소리가 난 쪽으로 고개를 돌린 순간 미소짓지 않을수가 없었다.


골목 귀퉁이에서 나타난건 다름아닌 이탈리안 커플, 도니와 베레니스.


그리고 그 뒤를 이어 나타난 트루디 누나!

도니와 인사를하고 악수를 나누는데 나와 그, 둘다 손에 힘을 잔뜩 주었다.


마치 서로를 이해하고 존경한다는 듯한 대화가 악수를 통해 오갔다.


베레니스와 인사를 나누는데 그녀와 나눈 눈빛의 대화에도 이질감이 있었다.


산토 도밍고 이후로 그들이 사이가 좋지 않아졌다는 얘기를 들었다.


심지어 따로 걷는 걸 본적이 있던 그들이 오늘은 같이 나타나서 너무나 반가웠다.


나도 사실 윗니와 언젠가는 따로 걷게 (동행이 끝이나는 건) 되는 건 아닐까 하는 두려움이 항상 있었는데 그들이 함께 있는 모습을 보니


괜시리 마음이 안정되고, 남들에겐 말 못한 그들만의 시련을 겪어 냈을 걸 생각하니 존경스러웠다.




트루디 누나는 누나의 페이스에 맞는 동행을 찾았단다.


나바렛트에서 헤어진 이후로 혹시나 혼자 걷게 되시는건 아닐까하고 걱정되었는데 마음이 잘 맞는 동행을 찾았다니! 참 다행이었다. 


너무 반가운 마음에 다같이 사진을 한 장 남겨두기로 한다. (처음 본 순례객도 함께!)



반가운 순례객들로 하여금 다시금 윗니와 내 얼굴엔 미소가 가득했다.


내려놓았던 배낭을 다시 짊어매고 조심스레 트루디 누나를 뒤 따라 다시금 출발하였다.






그래도 짐을 덜어준게 도움이 된다며 배낭의 어깨끈을 꼭 부여잡고 열심히 걷는 윗니.


그런 그녀의 모습을 보며 그녀에 대한 걱정을 한시름 놓았다.




레온을 빠져나와 작은 언덕에 자리잡은 발베르데 ("Valverde de la Virgen") 마을을 쉬지않고 그냥 통과하기로 한다.


많은 순례객들이 음식점에 모여 아침식사를 하고 있었지만,


지금 멈추면 발이 다시 아플 것같단 윗니의 말에 열심히 걷다가 점심을 잘 먹자 결정했다.









앞서던 내 옆으로 다가와 먼저 손을 잡아주는 윗니.


걷는 내내 혹시라도 그녀가 다시 멈춰설까봐 신경이 곤두서 있었는데 그녀의 체온에서 안정감을 찾았다.






산미겔이라는 마을에 도착해서 마을 초입에 있는 집 앞에 잠깐 멈춰섰다.


분명 카미노에 관한 다큐멘터리에서 본 적 있는 스페인 할아버지가 순례자들에게 간식을 나눠주고 있었다.


무언가를 열심히 설명하고 계셨는데 대충 들어보니 도장을 받으려면 방명록을 꼭 남겨야 한다는 지시였다.


검증 된 정보는 아니지만, 차후에 어느 순례객한테 들은 얘기인데.


마을을 방문하는 순례객들의 수에따라 정부가 그 수에 비례한 지원금을 준다는 설이있다.


방명록에 남겨진 순례자들의 숫자로 그도 어떠한 보상을 받는걸까?


자선을 위한 자선은 없다는건가...




도장을 두개 받았으니 방명록도 둘 다 써야한다해서


간략하게 썼다.


"카미노 힘들다."






멈춰선 김에 산미겔 마을에서 아점을 해결하기로 한다.


엘 얀타르 델 페레그리노 ("El Yantar del Peregino"), [순례자의 식사] 라는 독특한 이름을 가진 음식점에 자리를 잡았다.


가정집을 개조해서 식당을 만들었는지 누군가의 집에 온 것처럼 푸근하다.


계산대로 가서 점심거리를 스캔 해 보는데 역시나 백인들을 위한 빵 조각과 오믈렛밖에 없다.


혹시나 주방에서 주문이 가능한지 주인 아주머니께 물어보니 샌드위치와 샐러드정도는 만들어 줄 수 있단다.





바게트 빵에 닭가슴살이 들어간 치킨 샌드위치와 다양한 야채가 들어간 샐러드를 시켜서 윗니와 나눠먹기로 한다.


밥을 먹는내내 발바닥이 불이난듯 아파온다.


잔득 경직되어 걸어서 발에 탈이 난듯하다.


충분한 휴식이 필요할 것같아 1시간이 넘는 식사시간을 가졌다.


하지만 너무 오래 쉬어서 일까?


다시 출발 했을때 해가 중천에 떠 있어 엄청난 더위를 극복해야 했다.





레온에서 오늘의 도착지 마을인 산 마르틴 까지는 26km.


대부분의 구간이 차길을 따라 놓여진 갓길을 걷는 카미노 길이다.


길도 비좁고 달리는 차들의 소음도 신경에 거슬렸다.


가끔 지나가는 트럭 운전자들이 인사의 의미로 (그리고 격려의 의미로) 경적을 울려주는데


소식적 교통사고를 당해 트라우마가있는 윗니는 매번 소스라치게 놀라며 인상을 찌뿌렸다.


그래도 걷다가 반가운 얼굴이 많이 보였다.


우리가 레온에서 하루를 쉬어서인지 6월2일 생장팀 중 하루가 뒤쳐져 있던 순례객들이 나타나서 반가운 인사를 나눴다.




산 마르틴으로 향하는 마지막 2km 직선 구간이 지옥을 향하는 행군과 같았다.


멘탈을 꼭 부여잡고 발을 열심히 내딛는데,


한걸음 한걸음이 고통스럽다.


분명히 어딘가에 물집이 생겼으리라 짐작이 될 정도로 발바닥에 물컹한 느낌이 나는 부위가 많았다.


산토 도밍고 이후로 물집과는 영영 굳바이라고 생각했는데...


순례길을 하루 쉬는동안 발바닥이 많이 물렀나보다.


아침에 했던 다짐과는 달리 다시 카미노에 오르면서 내 멘탈도 많이 물러터졌다.


예상했던 것처럼 카미노는 그렇게 호락호락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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