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mino de Santiago|| D21. Ep.48 아스토르가에서의 식도락.


밤비



Camino de Santiago
Day Twenty One
Episode Fourty Eight
2 0 1 6. 0 6. 2 3





카미노에서 한번도 언급된적이 없었던 아스토르가.


그저 작은 마을이겠거니 생각했던거와 달리 관광객이 북적이는 거대한 관광도시가 눈앞에 나타났다.




성당의 규모와 마을을 둘러싸고 있는 성벽의 규모로 보아 거대한 도시가 아니였나 예측해 본다.


한때 21개의 알베르게가 자리잡었을 정도로 순례길의 주요 도시로 손꼽혔던 아스토르가.


가난하거나 집이없는 노숙자들을 위해 알베르게에서 숙식을 제공 할 정도로 풍요로웠단다.


하지만, 16세기때 스페인이 영국하고 프랑스와 동시에 전쟁을 치루게 되면서 순례자의 (아스토르가 뿐만 아니라 전 카미노 길에) 발길이 끊기는 이례가 있었다.


그래서 이제는 단 두개밖에 남지 않은 알베르게. 


마을 초입에 있는 알베르게는 위치상 나쁘다고 판단되어 그냥 통과하고 아스토르가 성당앞에있는 산 하비에르 ("San Javier") 알베르게로 향했다.


도심을 가로지르는데 여행객들의 시선이 따갑다.


어딜가든 순례객들은 여행객들의 관심대상이 되는듯 하다.


꼬질꼬질한 내 모습이 부끄러울정도로 뚫어져라 쳐다보는 관광객들 앞에서 당당해 지고 싶었지만


동경의 눈빛보단 동물원의 원숭이를 보는듯한 눈빛인지라 땅만 보고 걸었다.




산 하비에르 알베르게에 도착하니 벌써 많은 순례객들이 도착해 있었다.


2층 목조건물인데 사람이 걸어다닐때 마다 천장이 무너질 기세로 삐걱거렸다.


'자다가 그대로 카미노에 묻혀버리는건 아니겠지...'


생사에 대한 걱정이 쌓이고 있는데 침실을 본 순간 윗니의 미간이 꾸깃꾸깃 접혀져 버렸다.


옛 건축물의 뼈대를 그대로 사용한건지 10세기는 족히 되어보이는 아우라가 곳곳에서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흙과 돌로 만들어진 벽에는 쥐가 파먹은 것 같은 구멍이 곳곳에 나 있고 바닥은 폭격이라도 맞은 듯 움푹파인 구덩이가 군데군데 있다.


다시말해


폐가 수준이었다.






후딱씻고 거리로 나섰다.


씨에스타시간이 되어 관광객이 없는 한산한 거리를 거늴게 되었다.






멀리까지 걷기엔 발 상태가 심히 좋지 않아


성당 근처에 있는 호텔 레스토랑으로 들어갔다.


테라스에 자리잡고 앉았는데 한참을 기다려도 주문을 받으러 오지 않았다.


"여기도 스패니쉬 타임인가?"


스페인에 있으면서 "스패니쉬 타임" 이란 걸 배우게 되었다.


느려서 속 터질 정도로 느긋한 스페인 사람들.


항상 마음이 급한 한국인으로서 용납되지 않는 느긋함이지만 이것도 다 문화라 생각하니 용서가 되었다.


한참을 더 기다리는데 도저히 주문받을 생각을 하지 않는다.


마음이 상해서, 차라리 조금 저렴한 맛집을 찾아보자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나치는 음식점마다 메뉴 델 디아 ("Menu del dia") 나 순례자의 메뉴가 서빙되고 있었다.


(예외도 있었지만) 학교 급식 같은 퀄리티의 음식으로 배를 채울 순 없다며 결국 마을을 한바퀴 다 돌고서야 대광장 귀퉁이에 숨겨져있는 맛집을 찾아냈다.





음식점에 들어가자 등치가 산만한 주방장 아저씨가 우릴 맞이해 주셨다.


씨에스타 인지라 혹 음식 주문은 안받을것 같아서 조심스레 물어봤더니 문제없으니 메뉴에 있는건 뭐든지 주문하란다.


긴 고민없이 2인용 파릴라다 ("Parrillada")와 맥주 두잔을 시켰다.





파릴라다는 스페인의 바비큐 요리인데 고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스페인에서 꼭 한번 먹어봐야 할 정도로 독특하다.


(가게마다 다르지만) 일반 고기집에서 맛보기 힘든 송아지 고기, 양고기, 돼지 통삼겹과 야채 그리고 그 지역의 특산물이 함께 서빙된다고 한다.


해안가 도시에선 대구나 새우 또는 랍스터가 함께 나온다고...


아스토르가는 내륙인데다가 딱히 이렇다 할 음식문화가 없는지 초리조가 함께 서빙되었다.






음식이 나오기전에 시원한 맥주로 오늘 하루동안 축적된 피곤을 삼켜버렸다.


"캬~ 쥑인다"


목젖을 간지럽히며 넘어가는 맥주의 시원함에 탄성을 지르자 윗니가 미소를 지어보인다.


그녀의 미소엔 복잡한 감정들이 뒤엉켜있는지 금세 입가를 떠났다.



오늘하루 찡찡이가 되었던 나.


힘들다고 하루종일 칭얼댔으니 걱정도 되었겠지만 마음 한켠으로는 꼴불견이라 생각했을거다.


그녀도 나만큼 힘들고 지쳐있을텐데.


내 눈치보느라 아무 내색도 하지 못하고 오늘 하루종일 내 비위를 맞춰주었다.




아무래도 레온을 출발한 이후로 발 상태가 좋지않아 앞만보고 걸었던거 같다.


카미노 길 위에서의 매 순간을 만끽해도 부족한 소중한 시간들인데,


그저 도착지만 보고 미친듯이 걸었던 내 자신이 한심스럽다.


윗니의 비행기 일정을 맞추려면 31일안에 카미노를 끝내야 겠다는 생각에, 윗니보다 오히려 내가 더 조급해진 것 같다.


레온에서 분명 여유를 갖자고 약속했었는데...






생각에 잠겨 맥주만 꿀떡 꿀떡 넘겼다.


다행이도 주방장 아저씨가 서빙해주면서 우리 사이에 흐르는 정적을 깨 주셨다.


"우어.....대단해...!"


감탄할 수 밖에 없었다.


거대한 은접시에 팔뚝만한 고기들이 종류별로 쌓여 있었다.


고기 덩어리 위에 눈이 내린 것 마냥 굵은 소금이 무자비하게 뿌려져있다. (하...스페인 사람들...)


놀랍지도 않다라며 소금 덩어리를 포크로 쿨하게 털어내었다.


"먹자!" 라는 말과 동시에 윗니와 나는 서로의 눈치를 볼 것도 없이


눈앞에 놓여진 아름다운 자태의 고기를 게걸스럽게 먹어치웠다.


"넘나 맛있는 것"



대광장에 있는 정부청사 건물의 시계가 두차례 울리고 나서야 우리의 식사가 끝이났다.


"불태웠어!" 임산부 배처럼 볼록 튀어나온 배를 손으로 탕탕 튕겨주며 외쳤다.


식사를 하면 곧장 일어나는게 습관되어 있었지만 배부른것도 잊고 한참동안 앉아 윗니와 긴 대화를 나눴다.


"우리 한 1년동안 알고 지내던 사이 같아"




생각해보니 그렇다.


하루 24시간을 함께 해 온 지난 3주.


저녁에 눈을 감을때도, 그리고 아침에 눈을 떴을때도 그녀가 내 눈 앞에 있었다.


처음엔 둘 다 혼자 오르게 된 카미노 길.


그 길 위에서 만나 이젠 서로의 존재가 당연하다고 느껴질 정도로 많은 시간이 흘렀다.


그리고 이상하리만큼 잘 맞는 우리 둘. 아직까지 단 한번의 충돌도 그리고 다툼도 없었다는게 신기할 따름이다.


난 사실 지난 8년간 자취생활을 했기에, 누군가와 이렇게 많은 시간을 같이 해본게 처음이었다.







"나는 아직도 너가 캐네디언이라는게 믿겨 지지가 않아. 외국인이라니...."


"윗니 너도 나에겐 외국인이야!"


국적 마저도 다른 우린 처음 만났을 당시 닮은게 정말 하나도 없었다.


그리고 워낙 내 색이 뚜렷해 절대로 변색되지 않으리라 생각했지만


함께 시간을 보내며 어느새 난 그녀의 색, 그녀의 향기와, 그녀의 온도를 닮아갔다.



너무 오래동안 대화를 나눴던걸까?


조용히 우리 테이블에 계산서를 가져다주시는 주방장 아저씨.


혹시라도 우리 때문에 씨에스타 동안 쉬지 못하셨나 싶어 미안하다고 하자


아저씨는 손사래를 치며 걱정 말고 더 앉아 있다가 가란다.



대화를 한참 더 나누고 있는데 골목 귀퉁이에서 트루디 누나가 나타나셨다.


마을 초입에 있는 알베르게에 자리를 잡았다는 누나는 레온에서 보았던 한국 순례객분과 여전히 함께 걷고 있다고 하셨다.


마트에 들렸다 저녁 먹을곳을 찾고 있었다는 누나에게 "바로 여기가 아스토르가의 맛집" 이라며 추천해드렸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지나친 비숍 (주교)의 성.


1889년도에 아스토르가 성당의 비숍인 돈 후안이 자신과 친했던 안토니오 가우디에게 부탁해 건설되기 시작된 이 건축물은


1893년도에 돈 후안이 숨을 거두면서 공사도 멈춰졌다고 한다.


그 이후로 시의회원들의 잦은 관섭으로 인해 가우디는 성의 시공에서 아예 손을 떼 버리고 후에 이런 말을 남겼다고 한다,


"난 열기구를 타도 아스토르가를 지나가지 않겠다."


우여곡절끝에 성은 완성되었지만 완공된 1961년도 부터 현재까지 순례자 박물관으로만 사용되고 있단다.






아스토르가에는 성당과 가우디의 성 말고도 볼거리가 많이 있다고 한다.


그 중 하나가 바로 초콜릿 박물관.


1528년도에 멕시코에서 처음 들여온 카카오 콩이 아스토르가에 들여지면서 유럽 전 지역으로 초콜릿이 알려졌다고 한다.


유럽 초콜렛의 탄생지라는 아스토르가는 1914년에 49개나 되는 초콜릿 공장이 있었을 정도로 초콜릿의 성지 였다고...






많은 순례자들이 기어서라도 간다는 초콜릿 박물관의 존재조차 알고있지 않았던 윗니와 나는 한가로이 도시를 거늴며 여유로운 시간을 가졌다.


가우디가 뭐고, 초콜릿이 대수냐!


둘만의 시간만으로도 행복하다.


동네 젤라또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콘 하나씩 쥐어들고


일찍 잠들기 위해 숙소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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