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mino de Santiago|| D22. Ep.49 산으로! 폰세바돈으로 향하는 길


가독성을 고려해 글 포맷을 바꿔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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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비



Camino de Santiago
Day Twenty Two
Episode Fourty Nine
2 0 1 6. 0 6. 2 4


The mountain





아침이 밝았다.

알베르게에선 오늘도 한국인들이 제일 부지런 하다.


일등으로 준비를 마치고 부엌이 있는 1층으로 내려갔다. 

텅 빈 라운지와 부엌. 주방에 윗니와 나란히 서서 아침식사 준비를 했다.


어제밤. 초콜릿 공장이며, 가우디며 다 제쳐두고 숙소에 일찍 들어와 서로의 무릎베게를 즐기다가

해가 지평선에 살짝 걸렸을 즈음에 새나라의 어린이처럼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덕분에 너무 개운하다.

 털이 설 정도로 시린 아침공기가 상쾌하다.


반면에 윗니는 비몽사몽.

어젯밤 인터넷에 떠도는 어느 게시글을 보고선 밤새 잠을 설쳤다는 윗니.

아스토르가 알베르게에서 베드버그에 물렸다는 글을 읽은 후 온몸이 가려워서 밤새 뒤척였단다.


다행이도 베드버그에 물리진 않았지만,

산을 넘어야 하는 오늘 일정을 잘 소화 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된다.






아침을 잘 먹으면 괜찮을거라고 하는 윗니. 아침부터 그녀의 식성은 어메이징 했다.

어제 먹다남은 파릴라다와 샐러드, 시리얼 그리고 납작 복숭아를 싹다 클리어 하였다.


옆 테이블에 앉아 바게트 빵만 깨작이던 흑인 할머니에게 샐러드를 조금 나눠 드렸다.

테라디요스에서 만났던 흑인 할머니. 아침부터 알콩달콩한 우리의 모습이 보기좋다며 흐뭇해하신다. 


여유를 즐길줄 아는 할머니는 천천히 출발하겠다고 해서

길 위에서 보자며 작별인사를 나눈 후 알베르게를 나섰다.





조양(朝陽)을 받아 붉게 물들은 아스토르가.

순례자들의 무거운 발걸음 소리가 아침을 알리고 있었다.


해가 높게 뜨지 못해 아직 한기가 맴도는 골목을 가로지르며 화이팅을 외치는 윗니.

그런 그녀를 보며 오늘 카미노 길이 자비롭길 기도해 본다.





아스토르가에서 40분정도 되는 지점에 발데비에하스 제단 ("La altura de Valdeviejas") 이 나타났다.

듣자하니 아스토르가에서 순례를 시작하는 사람들도 많단다.

그래서 이곳에서 순례자 여권 발급을 받는 사람도 꽤 있다고 한다.


마침 생장에서 발급받은 여권에 도장을 가득 채운 윗니가 새로운 여권 발급을 필요로 하던 참이었다.

(여권을 어디서 발급받는냐에 따라 여권의 모양도, 사이즈도 조금씩 다르다.)


의자에 앉아서도 지팡이에 의지해야 할 정도로 나이가 드신 수녀님이 홀로 제단을 지키고 계셨다.

세월에 짖눌려 눈꺼풀이 눈을 반쯤 덮어버리고 귀도 제 기능을 못하는지 여권을 새로 발급받을 수 있냐는 내 질문들에 답해주지 않으셨다.


그저 순례자들의 여권을 받아들고 도장을 찍어주시기 바쁘시다.

어쩔 수 없어, 눈치껏 돈을 기부함에 넣고 우리 스스로 여권을 발급받았다.






제단 귀퉁이에 한국말로 "신앙은 건강의 샘"이라 적혀있다.

종교의 가르침으로 하루 하루를 정직하게 살아가는 사람들 앞에 난 항상 한없이 작아지지만

내 신념대로 죄없이, 남들에게 베풀고 살아왔으니 나도 건강한 삶을 살아온게 아닐까.



글의 여운에 발목이 잡혀 잘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옮겨 폰세바돈을 향해 출발했다.


폰세바돈 까지는 26km.


이제 카미노도 후반부에 들어섰다.

그리고 윗니와의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다.


옆에서 씩씩하게 걷는 그녀에게 조심스레 물어본다,


"윗니야. 비행기 날자 변경 정말로 안되는거야?"


윗니와 단둘이 동행을 하게 된 후 욕심이 생겼다.

10일전, 그녀와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 실감한 후 비행기 날자 변경이 가능한지 물어봤었다.

내 바램과는 달리, 그녀는 오히려 단호하게 대답했었다,


"아쉬움을 남기자."


'진심인걸까?'

정말 이상적인 말이라 생각들어 이후로 몇차례 같은 질문을 반복해 물었다.

다행이도 함께 하는 시간이 늘면서 그녀의 생각도 바뀌었고,

어제 급하게 여행사에 연락해 날자 변경 가능여부에 대해 문의해 보았지만...


"성수기라 불가능" 하다는 대답이 돌아왔단다.


"무슨 방법이 있을거야!"



아직 확정된것도 아닌데 둘이서 보낼 시간에 대한 얘깃거리로 행복한 고민을 하며 걷는다.

한적한 아스팔트 길을 따라 걷다보니 무리아스 데 레치발도 ("Murias de Rechivaldo") 라는 마을에 들어섰다.

이 마을의 핫 플레이스라도 되는 듯 순례객들로 가득한 카페가 나타났다.


테이블에 옹기종기 앉아 다들 커피한잔에 여유를 즐기며 아침부터 웃음의 꽃을 피우고 있었다.





"우리도 커피 한잔 하고 갈까?"


가방을 내려놓고 줄을 섰다.

때마침 뒤따라 오던 (테라디요스에서 만난) 흑인 할머니가 내 뒤에 서더니 다시한번 아침인사를 건네오신다.

바에 진열된 술병들을 관심있게 보는 나에게 스페인 술에대해 소개 해주셨다.


"와인하고 맥주도 좋지만, 기회되면 카라지요를 한번 마셔봐"


Carajillo란 갈리시아 지방에서 생산되는 커피술이란다.


'스페인 전통주라면 또....어쩔수 없이...먹어봐야지.'


그래도 양심(?)은 있어서 술은 저녁에 마셔 보기로 하고,

밀크커피와 에스프레소 한잔을 시켰다.



밤을 꼬박 새다시피 한 윗니는 커피를 좋아하진 않지만 마치 약인것마냥 쭉쭉 들이켰다.

조선의 최고 허세남이라 자랑할 수 있는 난 에스프레소를 깔작대며 느끼한 표정을 지어보았다.


'음~ 에스프뤠소~'





지겨운 아스팔트 길이 끝나고 흙길이 나왔다.

결례인 걸 알지만 변화가 싫어 카미노길 옆에 놓인 찻길로 걸었다.

가끔 뒤에서 경적을 울리며 카미노 길로 가라고 손짓을 하는 운전자들도 있었지만

눈이 마주치면 속도를 늦추며 꾸벅이 인사를 해주는 고마운 운전자들도 많았다.




언덕에 자리잡은 산타 카탈리나 데 소모자 ("Santa Catalina de Somoza")를 통과하며

많은 순례객들을 지나쳤다.

꾸준히 시속 6km를 유지하는 윗니와 나에게 별 대수롭지 않은 일이지만,

산 정상에 있는 폰세바돈으로 향하는 순례객들과 다투는 '좋은 알베르게 쟁탈전'에서 승리를 거머쥐려면 서둘러야 했다.




잘 닦여진 길을 끝으로 험준한 숲길이 나타났다.


윗니에게

"나 또 달려볼게" 라는 말을 남기고 발에 시동을 걸었다.

이렇다 할 산책로도 아닌 산길을 혼자 오르고 올라 허벅지가 불타오를때 까지 멈추지 않았다.


벤쿠버에서 한인 산악회 협회에서 최연소 정규멤버로 있었고,

대학교에서 산행 동아리 회장을 맡을 정도로 산행을 워낙 좋아해서

카미노에서 오르막길이 나올때마다 한숨은 커녕 환호를 질렀다.


(다만, 무릎 상태가 좋지않아 내리막길에선 절규 하였다)


보통 절규-환호로 진행되는 산행구간에서

환호-절규를 반복했다.





산길도 금세 끝이나고 완만한 평지가 나오려니,

라바날 델 카미노 마을이 무성한 나무숲 너머로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산길에서 무리해서 속도를 냈던지라 마을까지 이어지는 허허벌판에서 더위와 고군분투를 하였다.

더위에 취약한 땀돼지인 내가 물통을 바닥내었을 즈음 라바날에 도착할 수 있었다.





라바날이 종착지인 순례객들이 여유로운 미소로 인사를 건네온다.


"부엔 까미노! 어서와! 오늘도 수고햇어"


폰세바돈까지 간다는 우리의 말에 조심하라는 말과함께 격려를 해준다.


라바날이 윗니와 나에게 특별한 이유는 윗니가 핸드폰에 저장해 두었던 사진 한장 때문이었다.


"이거 라바날에 있다는데?"


라는 말과 함께 나에게 보여준 사진한장이

나의 엄청난 기대와 희망이 되어버렸다.




설렘과 기대감에 정신까지 혼미하게 만든 그것은 바로


치킨.


카미노에서 닭이라곤, 퍽퍽한 냉동 닭가슴살 밖에 본적이 없는 우리에게


한줄기의 희망이 되어버린 라바날의 치킨.





탈수가 되어 어질어질 했지만 물보다 치킨을 찾아 마을 헤매었다.


사진에 "meson" 이라는 희미한 글씨를 단서삼아 마을을 샅샅히 뒤지다가,

언덕 끝자락에 있는 "Meson el Refugio" 를 찾을 수 있었다.


구석진곳에 자리를 잡고 앉아 메뉴를 살펴보는데 도통 닭다리라 짐작되는 음식을 찾을수가 없다.

웨이터 누나와 세계인의 공통어라는 손짓발짓으로 대화를 하다

윗니의 핸드폰을 뻇어들고 사진을 보여주자 깊은 깨침을 얻었다는 듯 고개를 크게 한번 끄덕이더니

엄지를 치켜세우신다.


맞엄지로 답변하였다.




기대하던 치킨이 나오고.



사진 을 복사해서 테이블 위에 놓은것마냥 정직한 비주얼에,

상상했던 담백 짭조름한 맛에 감동을 받았다.




"너 엄청 야윈거 같아..."


워낙에 체중변화가 심한 나.

한달이 멀다하여 70과 80을 넘나드는 고무줄 신체에 대비하여

카미노에 오르기 전 토실토실한 돼지처럼 살을 찌웠다.


하지만 카미노는 생각보다 가혹 하였고,

아무리 칼로리양을 채워도 내 체중은 급격히 줄어들고 있었다.


남이보면 부럽지만, 너무나 빠른 체중의 변화는 몸에 좋지않은 작용을 한다.


뭐 그래도 일단, 사진이 잘 나오니 잃는장사는 아닌셈!





지형에 변화가 있고부터

어둡기만 했던 내 감정에 변화도 찾아왔다.

카미노에 대한 열정이 많이 힘들기만 하던 요 며칠간 차갑게 식어 있었는데

풍성한 자연은 마음의 힐링이 된다.


산바람에 일렁이는 수풀의 축연에 눈이 즐겁고

간간히 지나치는 샘물에 직접적으로 목을 축이진 않지만, 보고만 있어도 시원하다.





열정에 고통이 반감되었나 보다.

 그리 힘들다 느껴지지 않고

웃는얼굴로 폰세바돈에 도착하였다.


바람이 감싸안고,

구름이 낮게 내려와 앉아 하늘과 땅의 경계선을 흐릿하게 만드는 마을.

폰세바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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