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mino de Santiago|| D24. Ep.53 치유



밤비



Camino de Santiago
Day Twenty Four
Episode Fifty Thr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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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l doctor Gagamel






모든 선택에는 그 선택에 비례한 포기가 잇따른다.

예상치 못했던 변수에 하루를 포기해야 했고,

그에 따른 막대한 선택을 해야했다.


2016년 6월 26일. 자코비안 루트를 따라 산티아고를 향해 걸은지 24일이 되는 날이다.

유난히 따스한 햇빛이 비추는 아침, 구름 한점없는 시퍼런 하늘, 그리고 그 아래로 펼쳐진 절경; 더럽게 아름답다.

가방을 대충 꾸리고 숙소 1층에 있는 bar로 향했다.


"택시 불러주세요"


어제부터 편리를 봐줬던 주인장 형에게 콜택시를 부탁했다.

수화기 너머로 짧은 대화가 오가더니 오십분 뒤에 숙소앞으로 나오라는 형.

체온계와 찻잔을 반납하고 고맙다는 말과함께 고개를 열댓번 꾸벅였다.

추우니까 방에 올라가서 기다리라는 형말에 침실로 돌아갔다.

윗니는 침대에 둥지를 트고, 난 변기위에 둥지를 텄다.


하루 굶으면 괜찮아 질 줄 알았는데... 설사가 멎을 생각을 하지 않는다.

오늘 택시를 타기로 선택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어제밤 복통이 악화되더니 검은색 변이 나오기 시작했다.

보통 검은색 변이 나오면 위에 상처가 있다는 증거.

인도에서 병균에 감염되어 위에 상처가 났던 경험이 있어서 사태의 심각성을 잘 알고 있었다.

서둘러서 큰 병원으로 가야 한다는 마음이 컸기에

카미노 길을 포기한 선택을 오히려 쉽게했다.


시간이 다 되어 약속장소로 향했다.

분명 택시는 도착해 있는데 운전사가 보이질 않는다.

bar로 들어가니 숙소 주인장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 아재.

잠시 기다리라는 제스처를 하길래 택시앞에 서서 기다렸다.

그리고 그는 20분간 수다를 떤 후에야 출발을 외쳤다.

(스페인 사람들의 어메이징한 느긋함)


▼영문버전 입니다.









느긋함음 인성과 상관없다는 걸 증명하려는 듯 운전기사 아저씨는 엄청나게 친절하셨다.

몸이 좋지않아 병원으로 향한다는 말을 들었는지 중요 랜드마크를 지날때마다 일일히 차를 세워서 사진찍을 시간을 마련해 주셨다.

프랑스 루트의 심볼인 크루즈 데 페로 ("Cruz de Ferro")에 차를 세워주셔서 아쉽지만 멀리서 눈으로만 구경했다.

크루즈 데 페로는 거대한 나무기둥과 그 위에 박힌 십자가를 뜻한다.

나무기둥 주위에는 거대한 돌무더기가 있는데,

순례자들이 자신의 고향에서 가져온 돌을 이곳에 버리면서 형성 되었다고 한다.

설에 의하면 자신이 짊어지고 있는 마음의 짐을 버리다는걸 뜻하는데

이미 카미노 길 위에서 많은걸 내려놓은 난 그저 건강을 되찾을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하였다.






만자린과 몰리나세카를 지나며 생각이 복잡해졌다.

줄지어 걷는 수많은 수례객들의 모습을 보고있자니 마음이 편치 않다.


어쩔 수 없었다 라고 말하고 싶지만

시도하지 않았다는 것에 대한 후회가 밀려온다.


바지에 설사를 지리더라도 도전은 해 볼껄..


굽어있는 산길을 한참동안 달리더니 Hospital de Reina, 여왕의 병원, 에 멈춰섰다.

깊은 한숨을 한번 몰아쉬고 접수처로 향했다.

택시에 깜박하고 놓고 내려 하마터면 마틸다 ( 내 워킹스틱 대용 빗자루 손잡이) 와 생이별을 할뻔했지만

기사 아저씨가 접수처까지 쫒아오셔서 마틸다를 주고 가셨다.


30유로라는 거금을 내고 접수를 마치니 대기실에서 기다리란다.

15분정도를 초조하게 앉아 기다렸더니 내 이름을 불렸다.





진찰실로 들어가니 스머프의 가가멜같이 생긴 의사형이 환하게 웃으며 반겨주신다.

자신을 라몬이라고 소개하는 의사형. 영어를 상당히 잘한다. (역시 의사의 지적인 클라스)

내 스페인 이름도 라몬이라고 말하니 오늘 여기서 우리가 만난게 운명이란다.


'음...글쎄 운명은 모르겠고.. 일단 진료부터!'


식중독이 걸려 고생하다 설사병으로 전이되어 고군분투 하고 있다는 내 말에 진료가 시작되었다.

배를 손으로 꾹꾹 눌러보더니 걱정스런 표정으로 누워있는 내게 걱정말란다.

가장 힘든건 다 지나가고 이제 조금만 고생하면 될거라는 형 말에 안심이 되었다.

앞으로 이틀정도만 더 굶으면서 변 상태를 모니터링 해보란다.

아쿠아리어스에 소금을 타서 마시면 좋을거라는 형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진료가 끝나고 순례길에 대한 대화가 오갔다.

내일 당장이라도 걸어야 한다는 내 말에 10km만 걸어보란다.

아무래도 이틀동안 먹은게 없으니 현기증이 나거나 하면 무조건 쉬라는 조언에 그렇게 하겠다고 했다.

혹시나 복통이 있거나 하면 병원에 다시한번 들리라는 형.


처방전을 써주는 형 팔에 상처가 많다.


"형 고양이 키워요?"


"응? 왠 고양이? 아! 이 상처들은 어제 조깅하다 난거야. 오랜만에 산길을 뛰었는데 잔가시가 많아서 자꾸 스치더라구"


그러고 보니 형 목이며 팔등이며 상처가 많다.

형의 엉뚱함에 웃을 수 밖에 없었다.





이것도 기념이라며 사진한장을 부탁했다.

내가 엄지를 치켜세우니까 형도 따라서 엄지를 치켜세우는데 형의 코처럼 엄청 크다.

가가멜도 손가락이 엄청 크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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