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mino de Santiago|| D25. Ep.55 정신력 하나로 버틴 하루



밤비



Camino de Santiago
Day Twenty Five
Episode Fifty F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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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frangible





폰세바돈에서 악귀가 붙었나

고난의 연속이다.

7인실이라 좋아했던 알베르게가 최악의 밤을 선사할 줄이야..

미리 잠자리에 든 아재 세명이 코를 골기 시작하더니 이내 술에취한 드럼공연을 연상케하는 박자감없는 연주가 시작되었다.

종일 먹은것도 없이 돌아다녔기에 에너지가 방전되어 휴식이 간절했는데...

그중 한 아재는 수면무호흡증이 있는지 2분에 한번씩 숨막혀 죽는듯 꺽꺽 거리는데,

진심 가서 내 더러운 양말로 그의 숨통을 틀어막고 저세상으로 보내드리고 싶었다.


제일 큰 문제는 아재들의 불화합 코골이 공연도 죽음의 문턱을 오가는 무호흡 아재도 아니였다.

내 밤잠을 모두 약탈해간 그는 바로 백발의 백인 할아버지 였다.

아재들의 코골이에 할아버지도 잠을 설치다가 한숨을 쉬기 시작하셨다.

뭐라 할수도 없고 그렇다고 아재들을 흔들어 깨울수도 없는 상황이 답답하셨는지 한숨을 쉬시는데

이게 그냥 한숨이 아니라, 분노가 섞인 타령같았다.

분명 타인이 들으라고 하는 듯 진성을 섞어가며 "하아~~~" 를 5분에 한번씩 외치시는 할아버지.

잠은 다잤다고 체념하신듯 태블릿을 꺼내시더니 타자음을 켜놓고 무언가를 쓰시기 시작하셨다.


"딱 따닥 따다닥 따다다다닥 딱 딱 딱"


안그래도 아재들 때문에 신경이 곤두서 있던 나.

뇌를 때리는 듯한 타자음에 분노를 삼키지 못하고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할아버지를 살인 할 기세로 노려보았다.

글 쓰는데 집중하셨는지 한번도 눈길을 주지 않으시는 할아버지를 한시간 정도 앉아서 쳐다보았다.

가만보니 나도 좀 한심하다.

캐나다인 근성이 몸에 붙어서 그런걸까...

아니면 인도에서 쌓은 인내심이 쓸데없는데서 작동하고 있는걸까...


밤새 타자음을 내던 할아버지는 새벽 두시즈음 잠에 드셨고

그도 코골이 연주에 참여하여 합주하셨다.


전에는 윗니와 둘이 카미노를 걸으며 운이 좋았었던 걸까?

심하다 싶을정도로 나쁜 기억으로 남는 알베르게는 폰페라다가 처음이다.

아무래도 몸이 아프기에 조금 더 예민한게 아닐...


까 라고 생각하며 간신히 잠에 드려는데 새벽 세시부터 짐을 꾸리기 시작하는 할아버지.

궂이 침실에서 짐을 꾸려야 하는 이유도 없을 뿐더러, 남들 다 들으라는건지 아주 몸으로 말해요 게임을 하는듯 자신이 하는 행동을 온몸과 소리로 묘사를 해주셨다.

배려가 아예 없는건지 아니면 그냥 인성이 아주 글러먹은 사람인가...


그가 떠나고 난 후 새벽 4시즈음 잠에 들수있었다.





"밤비야 일어나"


익숙한 목소리가 날 흔들어 깨운다.

잠시 눈을 감았다고 생각했는데 벌써 일어날 시간이라니...


윗니에게 어제 밤에 있었던 이야기를 해줬더니 그녀도 밤새 뒤척였단다.


"걸을 수 있겟어?"란 윗니의 질문에,


"물론이지!"를 외치고선 당찬걸음으로 알베르게를 나섰다.





걸을 수 있다는 생각에서 동력을 얻어서일까?

한없이 무거울 것 같던 발걸음이 솜털처럼 가볍다.

3일동안 먹은 거라곤 소금 타서 마신 이온음료.

과연 오늘 24km를 걸을 수 있을까?






그래도 웃는 얼굴로 힘차게 출발을 외쳤다.


"가는데 까지 가보자!"




벽화로 그려진 카미노 길.

앞으로 세브레이로, 사리아, 포르토마린, 아르주아만 거치면 카미노 길 끝 마을인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 도착한다.


처음엔, "내 의지 따위로 끝까지 가겠어?" 하며 의구심을 가졌지만

윗니와 손잡고 걸으며 많은 우여곡절을 잘 헤쳐나갔다.

오늘도 잘 걷고, 카미노 역사에 한 획은 그으리라 다짐해 본다.





윗니가 가진 정보에 의하면 폰페라다 마을을 빠져나가는 두개의 길이 있는데

높은 언덕을 올라가야 하는 길은 피하자고 입을 모았다.

구글맵을 켜고 지도를 따라 걷는데 아침산책을 나온 동네 할아버지께서 카미노는 이쪽이라며 격하게 표현하신다.

반신반의하며 할아버지가 가르켜 주신 길로 걷는데,

우리가 피하려던 높은 언덕 길이다...


"나 말리지마, 할아버지 가서 혼꾸녕 내줄거야!"


정말 악운이 씌인게 확실하다.







폰페라다를 벗어나 마주한 첫 마을 콜롬브리아노스.

열심히 걸었지만 속도가 나질 않는다.

마음은 앞서서 저만치 앞을 걷고 있는데 그림자도 내 발목을 잡고 늘어지는 듯 한걸음 한걸음이 고통스럽다.

배낭의 무게가 버거웠는지 허벅지에 알이배겨 작은보폭을 유지해야 했다.







캄포나라야까지 1.8km.

'정말 갈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때마다 초심을 떠올렸다.

기어서라도 가겠다는 의지를 피레네 산맥을 넘으며 굳게 다졌었다.

그 의지를 마음에 되새기며 자꾸 멈춰서려는 다리를 달랬다.


라몬 의사형이 준 정보대로, 작은 마을들이 줄지어 있어 혹시라도 걷는걸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 오면 멈추면 된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해볼거다.


"한 마을만 더 걷자" 라는 말을 반복하며 계속해서 앞으로 전진했다.


 오늘도 여전히 내 눈치를 보며 허기지다고 말하는 윗니를 위해

캄포나라야 중심부에 있는 로터리에 위치한 Meson el Reloj  에서 아침을 해결하기로 한다.







마땅히 먹을게 없어서 샌드위치를 시켰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스페인 베이컨과, 신선한 치즈가 들어간 샌드위치.

먹어보지 않아도 맛을 알 수 있을거 같다.

(그만큼 스페인에서 많이 먹어 봤다는 말.)





윗니가 샌드위치를 먹을동안 셀카놀이를 즐겼다.

며칠 굶었더니 턱선이 날카로워져서 잘생겨졌다며 좋아라 했다.

불행속에 즐거움을 찾고있는 내가 신기하다.

윗니의 긍정적인 사고방식에 노출되어 있다보니

좋고 나쁜 모든 순간을 즐기게 되었다.






정말 악운인지 확인하고 싶어 레스토랑 안에 있는 슬롯머신 도전했다.

1유로 동전을 넣고 핸들을 잡아 당기니 화려한 불빛과 요란한 소리가 울려온다.

기대를 가득안고 기다렸지만 꽝이다.


'제길...'


배낭을 매고 다시금 출발해 본다.

음식점 앞에서 간만에 6월2일 생장팀을 만났다.

혼타나스로 향하는 날 이후로 보지 못했던 일본 순례객 슌.

그는 여전히 웃는 얼굴로 혼자만의 카미노를 걷고 있었다.

또다시 길 위에서 만나자며 짧은 인사를 나누고 다음 마을을 향해 걸었다.






고군부투하며 열심히 걷고 있는데 산티아고 까지의 거리를 알려주는 푯말이 눈에 들어왔다.


194.5km!


이제 200km도 남지 않았다.

벌써 600km를 걸었다는게 믿겨지지 않는다.








라몬형이 고향이라는 카카벨로스에 도착했다.

오늘 일정의 현실적인 목표로 삼은 카카벨로스는 카미노 길과 연이 깊은 마을이란다.

중세시대에 알베르게가 다섯개나 있었을 정도로 규모가 컸다고 한다.

아쉽게도 12세기에 지진으로 마을 전체가 초토화 되었다가 디에고 교주의 지시하에 다시 활성화 되었다고 한다.

지금은 와인산업으로 마을이 부유해 졌단다.





신기하게도 카미노 길 위에서 유일하게 한국라면을 맛볼 수 있는 음식점이 있는 카카벨로스.

아직도 설사가 멎지 않아 눈물을 머금고 그냥 지나쳤다.

이상하리 만큼 발이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간다.


무모한 선택이지만 계속해서 걷기로 하고

이상적인 목표였던 비야프랑카 (Villafranca del bierzo) 로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카카벨로스 외각지부터 시작되어 끝없이 펼쳐진 포도밭.

높고 낮은 언덕이 있어 가끔 현기증이 났지만

옆에서 응원해주는 윗니 덕에 정신줄을 놓지않고 계속해서 나아갔다.








마지막 까지 웃음을 잃지 않고,





걷고



또 걸어


비야프랑카에 도착하였다.


오롯이 정신력 하나로 버텨온 오늘하루.

내 발목을 붙잡았던 식중독, 그리고 주저앉았던 이틀...

나약했던 내 자신에게 증명을 하듯 난 이를 악물고 오늘의 일정을 소화했다.

오늘은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그저 내 몸을 앞서는 발자국에만 집중한채 거친숨소리를 리듬삼아 앞으로 나아갔다.

오랜만이다, 뭔가를 끝내겠다는 이런 불타는 의지.

일상에서도 이렇게 무언가를 열심히 해본적이 있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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