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mino de Santiago|| Ep.4 뜻밖에 시작된 동행


5/31 -7/13 프랑스-스페인 순례자의 길[Camino de Santiago] 여행기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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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저녁 6시까지 버스가 없습니다"


빌어먹을 철도파업!


현재시간 아침 8시. 바욘에서 하루를 보내기엔 시간도 아깝고,


카미노의 시작 지점인 생장에 늦게 도착하면 숙소를 못잡을수도 있기때문에 택시를 타서라도 이동해야한다.


바욘역 안에는 한국사람같이 보이는 남자 한명이, 그리고 역 밖에는 키가 멀대같이 큰 외국 여성 한명밖에 없었다.


기차역 안, 벤치에 앉아 어떻게 할까 고민하며 멍을 때리고 있었더니 밖에 서 있던 외국누나가 역 안으로 들어와 말을 건다,


"생장가니? 같이 택시타고 갈래?"


가까이서 보니 이 누나 등치가 최홍만이다.


누나의 등빨에 압도되어 조심히 답문했다, "어....얼만데요?"


100유로, 네명이서 쉐어하면 25유로씩이라며 자기는 지금 바로 출발할거니 당장 결정하란다.


별 망설임없이 그러자고하고 합승할 사람을 찾아보기로한다.


일단은 역 안에 나처럼 멍때리고 앉아있던 동양 남자분한테 말을 걸었다.


"한국인이죠?"


얼굴이 밝아지는 그, 잠깐의 통성명과 대화를 나누어 보니 본인도 생장 갈 방법을 궁리하고 있었단다.


셋이서 역 밖으로 나가 택시 주위를 서성이는데 외국 할아버지와 손주로 보이는 배불둑이 커플이 보인다.


호주에서 왔다는 그들 역시도 생장으로 향한단다.


정차 해 있던 택시기사 아저씨가 조금 더 큰 택시를 불러줘서 다섯이서 20유로씩 내고 생장으로 향했다.


비좁은 차 안에서 많은 대화가 오갔다.


독일에서 온 홍만이 누나.


호주에서 온 배불뚝이 할아버지와 배불뚝이 손자.


한국에서 온 준이와.


캐나다에서 온 나.


그리고 말이 많았던 기사 아저씨.


비록 프랑스 철도파업이 맺어준 인연이지만 모두 순례자라는 신분이라는 이유때문에 짧은시간안에 급격히 친해졌다.





산자락에 자리잡은 생장은 내가 상상했던것보다 규모가 커 보였다.


이른 시간이라서 그런가? 철도 파업때문인가?


순례자로 바글바글 할 것 같았던 예상과는 달리,


로컬로 보이는 마을주민들밖에 보이지 않았다.





혹시나 순례객들이 순례자사무실에 몰려있나해서 서둘러서 이동해본다.


가파른 언덕을 오른다. 숨이차다. 벌써 카미노가 시작된건가? 


다른 순례객들을 만날 생각에 가슴이 뛰기 시작한다.


하지만, 순례자 사무실에도 우리와 택시를 나눠탔던 순례객들이 전부였다...


'뭐지...?'


난 아침에 바욘에서 순례자 여권을 미리 받아 놓았던지라 준이만 여권을 발급받았다.


도장이 쾅 찍히는 순간 피곤으로 찌들어 있던 준이의 굳은 표정도 조금 밝아졌다.


그리고 제일 중요한 배낭무게 재기.


생각보다 묵직한 내 배낭이 저울위에 올려지자 바늘이 미친듯이 요동쳐댄다.


18Kg...


카미노에선 자신의 몸무게의 1/8만 들것을 권유하지만...


장비병이 장비를 버리면 병에 걸린다.




순례자 사무실 직원이 역시나, 혹시나 했던 순례자사무실 바로 옆 알베르게에 묵을것을 추천해준다.


(친절하게도 직접 같이가서 주인집 할머니에게 인사시켜주셨다)


카미노에 오기전 "까친연" 이라는 카페에 가입했었는데 어떤 한국 순례자분이 이곳 주인 할머니에게 싸대기를 맞았다는 얘기를 들은 바 있다.


숙소를 같이 잡기로 한 준이와 눈치를 보다가 도망 갈 궁리를 하고 있는데 하늘이 우릴 도우시려는 건지


주인집 할머니는 지금 치과를 가야하니 두시간 뒤에 오란다.


"꼭 올게요 (응 안와^^)!" 란 말을 남기고 도망쳤다.





준이와 함께 무작정 마을을 둘러보기로 한다.


가파른 언덕위에 자리잡은 마을, 생장.


지도도없이 무작정 골목을 누비다 마을 끝 부분에 있는 공터에 열린 장터를 둘러보게 되었다.


와인과 치즈, 벌꿀과 하몽 등, 현지에서 생산하는 식재료를 팔고있었다.


별 관심없이 둘러보고 있는데 하몽을 판매하고 있는 누나가 시식을 하라며 하몽 조각이 담긴 접시를 내민다.


대학생때 매일 조심스레 넘겼던 전공책 종이보다 얇은 하몽 한 조각을 입에넣고 오물거리는데, 왠걸.....


겁나 맛있다.


눈치를 보다 한조각을 더 입에 넣고 자연스레 지갑을 꺼냈다.


"얼마에요?"





"우리 안주가 생겼으니 당연히 맥주를 마셔야지?"


이른 아침 장사를 하는 펍이 없어서 한참을 돌다 큰 길가에 마침 연곳이 있어서 테라스에 자리잡았다.


아침 10시부터 때려부어 빈속에 다섯잔씩, 둘이서 열잔을 마셨다.


준이는 상대적으로 말이 많지않은 친구다.


묵묵히 내 말을 들어주다가 아주 날카로운 지적을 간간히 하는 무게감 있고 조심스러운 친구였다.


해외에서 오래 생활한 나를 조금은 어려워 할 수도 있을텐데, 아무 거리낌없이 다가와 오히려 내가 조금 당황스러웠다.


비아릿츠에서 내 첫 날이 힘들었듯이, 준이도 파리에서부터 엄청난 고난을 겪고 생장에 오게 되었단다.


철도파업때문에 출퇴근시간 지하철 2호선보다 붐비는 기차에 올라,


앉지도 못하고 서서 10시간을 달려 어제밤 늦게 바욘역에 도착했단다.


동질감을 느껴서 일까? 그와 함께 마시는 맥주가 달다.


공감대가 형성될때마다 잔을 기울여 힘껏 부딪혀 본다. "짠!"


그렇게 남자 둘이서 네시간동안 수많은 대화를 나눴다.


테라스에서 햇빛까지 쐬서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고


취기가 눈꺼풀에 들어앉아 눈이 반쯤 풀렸을 즈음에 숙소를 찾아 다시 떠났다.






"Sur le Chemin Au chant Du Coq"라는 알베르게에 체크인을 하고


가방을 침대에만 던져놓고 Lidl이라는 대형마켓으로 향했다.


어제밤 한숨도 못자서 조금 피곤하지만, 준이와 돈을 아끼자는 쪽으로 입이 모아져 숙소에서 음식을 해먹을 계획이었다.


파스타 재료를 사다가 숙소에 돌아와 요리를 시작하려는데,


주인장인 크리스틴이 달려와선 미안하지만 주방은 사용할 수 없단다.


시무룩해져서 준이와 멍하게 주방에 서 있었더니 크리스틴이 "에라 모르겠다" 며 그냥 사용하란다.


고마워서 저녁을 함께하자고 조심스레 물어본다.


크리스틴은 생장에서 "미친사람"이란 수식어를 달고 살 정도로 유별난 사람인데,


순례자들 사이에선 평이 좋지 않은듯하다.


슈퍼마켓에 가는길에 만난 외국인들도 우리가 숙소를 잘못잡았다며 고개를 절레 절레 흔들어 댔다.


하지만, 겪어보지않고 사람을 비관적으로 보는 건 캐내디언의 성품과는 멀다. (라고 말하지만 투숙객의 뺨을 때린 할머니는 피하고 싶다)


직접 부딪히며 나에겐 소중한 인연이 될 수 있을지 알아가 보는게 조금 더 순례자다운 마인드가 아닐까?


더군다나 카미노를 걸으면,


전 세계인들과 항창 마찰이 있을텐데 매번 틀에박힌 고정관념을 가지고 사람들을 대면하고 싶진 않다.


파스타를 만들어서 크리스틴, 그리고 준이와 함께 오순도순 저녁을 함께했다.


대화를 나누어 보니 크리스틴은 건강을 위해 800km가 되는 순례자길을 맨발로 걸은 대단한 사람이자,


강아지 세마리와 고양이 열마리와 (조...조금 과하긴 하다) 동거하는 사랑이 넘치는 사람이다.


또 숙소는 얼마나 깨끗한지, 파리가 앉다가 미끄러져서 다리가 부러질듯했다.


가정집을 순례자들에게 내어 준 마음이 따뜻한 크리스틴.


다수의 사람들이 그녀를 싫어하는 이유는 안봐도 뻔하다;


평생을 이기적으로 살아온 사람들이, 순례자의 길 까지 와서 자기의 편리와 권리를 주장하며 크리스틴의 숙소룰을 어기려 했을것이다.


정말 기본적인 룰들. 밤늦게 떠들지 않기, 새벽에 자고있는 다른 순례자들을 위해 아침에 조용히 나가기.


이 두가지의 룰만 지키면 된다.





소화도 할겸 저녁을 먹고 잠시 생장을 산책해본다.


비 시즌이지만 사람이 없어도 너무 없다...


아니면 다들 숙소에서 내일을 위해 쉬고 있는걸까?


카미노 공식 블로그에서도 언급되었던, 근래에 숫자가 급증한 한국인 순례자들 조차 보이지 않는다.


(아침에 인사를 나눴던 한국 아주머니 두분과, 커플로 보이는 남녀 둘을 제외하곤)


잠시 동행에 대해 고민을 해 본다.


분명 내일 아침에도 준이랑 함께하게 되겠지...


내 어두움에 거리감이 생겨 처음부터 끝까지 혼자서 하게 될까봐 걱정되는 카미노 였는데 이렇게 쉽게 동행이 생기는걸 보아


내 마음이 아주 굳게 닫혀있는건 아닌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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