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mino de Santiago|| D1. Ep.5 고뇌의 피레네 산맥


5/31 -7/13 프랑스-스페인 순례자의 길[Camino de Santiago] 여행기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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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y1. 생장-론세스바예스. 거리: 27km



새벽 6시 반,


누군가가 뒤척이는 소리에 잠시 눈을 떴는데 몸이 너무나 개운해서 침대 귀퉁이에 걸쳐앉았다.


숲속 바닥에 비하면 메트리스는 천국 그 이상인듯...


건너편 침대에서 준이도 벌떡 일어나길래 나가자는 신호를 주고


배낭만 들고 숙소를 나섰다.


나름의 만반의 준비를 해본다.


신발끈을 두세번 질끈 동여메고


이제는 트레이드 마크가 되 버린 모자도 꾹 눌러썼다.





남들에 비하면 출발이 조금 늦어졌다.


보통은 새벽 5시즈음 일어나 곧바로 출발을 한다고 들었지만 잠이 필요했던 준이와 나에게는 무리였다.


남들보다 한시간 더 잤으니 걷다가 피곤한 일은 덜 하겠지...?


오늘의 목적지인 론세스바예스까지 27km.


순례객들이 제일 두려워 하는건, 원하는 알베르게에 수용인원이 꽉 차서


다른 알베르게나, 다음 마을까지 더 걸어야 할수도 있다는 거였다.


하지만 다른 순례객들이 이렇게 없는걸로 보아 피터지는 레이스를 하지 않아도 될거같았다.





고요한 생장의 아침거리를 걸으며 어제밤 혼자서 했던 고민들을 준이에게 조심스레 말해본다.


"준이야 우리 서로 너무 신경쓰지 말고,


자신만의 페이스로 걷다가 서로 맞으면 계속 함께 하자.


이렇게 힘든 길 위에 올라서 다른 누군가에게 짐이 되어 부담을 준다는건 옳지 않은거 같아.


분명히 누군가는 앞서가고, 누군가는 뒤쳐질테니 우리 그땐 쿨하게 자기만의 카미노를 걷도록 하자."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는 준, "그래요 형. 어짜피 다들 혼자 걸으려고 온거니까요."


"그래 그럼 출발!"







생장 중심부에 있는 성당에 들려 10초간 묵념을 한 후,


돌아올수없는 다리를 건너 카미노 길에 오른다.


다리를 건너는 순간 때마침 성당의 종이 울린다. 죽음의 종일까? 설렘반, 두려움 반 (해쉬태그 반반 무많이)


이제는 정말로 순례자다.


처음보는 다른 순례자들과 인사를 해 본다, "부엔 까미노"




처음부터 불태운다고 미친듯이 언덕을 오르다 생장의 모습을 마지막으로 눈에 담고싶어 뒤돌아 본다.


고요하게 정적이 흐르는 산자락 시골마을.


일년에 25만명(2015 기준)이 넘는 순례객들을 맞이하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결심과 다짐이 이곳에 쌓여있을까?


나 또한 확고한 결심과 다짐을 가지고 발에 힘을 실어 출발했다.





한참을 묵묵히 걷고 있는데 앞에서 걷던 준이가 속도를 늦춘다


아침을 못 먹고 출발해서 허기가 진단다.


캐나다에서 비장의 무기라며 챙겨왔던 Protein Bar(단백질 영양바)를 준이와 하나씩 나눠먹었다.


녀석 긴팔, 긴바지를 입고 더위도 안탄다.


반면에 땀돼지인 나는 벌써 팬티가 축축하다.





준이와의 걷는 페이스가 생각보다 잘 맞는다.


녀석도 기본체력이 좋은지 잘 쉬지않고 묵묵히 걸으며


내가 간간히 강속구로 던지는 아재개그를


일일히 잘 받아준다.





아직은 가슴 설레이는 길이다.


지나가는 사람들과 "부엔 까미노"를 외치는 것도 재밌고,


등 뒤로 펼쳐지는 풍경도 너무 아름답다.


그리고 무엇보다, 땀을 흘리며 무언가를 열심히 하고있다는 기분이 너무 좋다.





순례자를 위해 만들어진 오리손 대피소를 그냥 지나치며


체력을 과시했다.


겸손하지 못했다.






첫 언덕을 넘으며 가쁜 숨을 몰아쉰다.


생각보다 힘들다.


생각보다 멀고,


생각보다 내 의지가 부족하다.


앞장서는 준이가 부럽다.


나도 2년만 젊었으면 하는 생각을 가져본다.





이번 여행을 통해서 영상제작을 조금 배워볼까 생각해봤다.


어무이가 사주신 고프로를 들고 엄청 설쳐대지만


제대로된 영상이 나올지는 잘 모르겠다.


이것도 하다보면 익숙해 질까?





익숙해진다는 약속이 있다면 내게도 포기란 없을 것이다.


카미노가 그런 약속을 해주지 않을거란걸 알면서 왜 이 길에 올랐을까...


한걸음 한걸음 내딛을때마다, 그만큼 더 해냈다는 마음보다


포기에 더 가까워 질거란 생각에 두려움이 앞선다.





동행이 있는지금,


동행이 달갑지만 않은 이유는 내가 앞으로 누군가에게 의지하게 될 수도 있다는 생각때문이다.


그리고 그 사람이 정말 좋은사람이라면,


나의 짐까지 짊어지려 한다면...


그땐 내 자신이 너무 비참해 질 것 같다.







한참을 혼자 심각해져서 생각을 하며 걷는데


흰 트럭이 초원 끝에서 나를 반긴다.


피레네의 기적과 같은 푸드트럭에서 콜라 한캔으로 마구 요동치는 내 마음을 달래본다.





"힝 힘들엉"


햇볕이 따수어 잔디밭에 들어누웠다.


"엄마 말 듣고, 집에서 수박이나 먹으면서 집에서 쉴 걸...."


준이앞에서 처음으로 앙탈을 부렸다.


녀석 내 모습이 웃긴지 피식 웃는다.


한참을 누워있다가 재정비를 하고 다시금 서둘러서 걸음걸이를 옮겨본다.


악명높다는 피레네 산맥을 넘고, 정상에서 한숨 돌리고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간다.






이런저런 생각에 잠겨 걷다보니 어느새 내리막길 구간에 도달했다.


저 멀리 보이는 마을이 론세스바예스가 아닐까하고 예상해본다.


준이도 힘이 든지, 묵묵함에서 묵언수행으로 전략을 바꾼듯 했다.


결국은 라디오처럼 주절주절 혼잣말을 하며 걸어본다.






처음으로 론세스바예스의 이정표가 나왔다.


3.6km를 한시간 동안 가라는걸로 보아 엄청난 내리막길이 예상된다.


피레네 산맥을 넘으면서 뒷굼치가 쏠리기 시작하여 발가락에 힘을주고 걸었더니 발가락이 아프다.


하지만 묵묵히 걷고있는 준이 앞에서 징징거리기는 싫다.


조용히 신발을 단디 한번 더 묶어주고 다시한번 출발을 외친다.




가방의 무게가 실려서 일까?


무릎이 너무 아파온다.


소싯적 운동을 하다가 다쳤던 무릎이 부어오른다.


불안함이 엄습하지만, 조금만 더 가면 된다는 생각에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걸어본다.


돌이 많아서 미끄러울수도 있다던 내리막길 구간,


이미 많은 순례객들이 밟고 지나간 터라 생각보다 길 상태가 나쁘진 않았다.


하지만 한없이 내리막길을 내려가다 보니 도대체 언제쯤 론세스바예스가 나올까하고 조바심이 몰려온다.


급격히 상태가 악화 된 무릎은 이제 바늘로 찌르는 듯한 고통이 한걸음 한걸음 나아갈때마다 배로 악화되고 있었다.


묵묵히 앞장서고 있는 준이에게 미안해서 난 천천히 갈테니 먼저가서 체크인 하라며 미안함을 표한다.


그래도 녀석 의리가 있는건지 웃어며 말한다,


"아니에요 형, 저도 쉬엄쉬엄 가고있어요. 걱정마세요"


짜식, 날 얼마나 알았다고 벌써 나에게 배려를 해주는 걸까?


"그래 준아 가서 형이 쉬원한 맥주한잔 쏠게!"


"콜!" 을 외치며 다시 앞장서는 준.


그렇게 오후 두시가 넘어가고, 발을 절뚝이며 거북이 걸음으로 하산하고 있는 날 많은 사람들이 지나쳐갔다.


조바심을 버리고 마음의 여유를 가져보기로 한다.



그리고 드디어 마주한 론세스바예스.


하루만에 가늘어진 턱라인처럼 내 멘탈도 실처럼 가늘어져 버렸다.


"10분만 더, 열 검음만 더", 내 자신을 달래고 달래었다.


8시간 반 만에 27km를 완주하였다.


앞으로 산티아고까지 773km가 남았지만,


하루를 끝냈다는게 얼마나 감사한지...


항상 첫 걸음이 제일 힘들다는 걸 잘 알기에 내일은 조금 더 수월하리라 예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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