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mino de Santiago|| D9. Ep.22 선택의 기로
밤비
Camino de Santiago
Day Nine
Episode Twenty Tw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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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andestine
산토 도밍고 마을 입구에 도착.
순례자들을 제외하고는 거리가 휑~하다..
마을 입구에서 도보로 멀지 않은곳에 알베르게가 있어 서둘러 발걸음을 옮겨본다.
롯데형과 알베르게 앞에서 만나자고 했었기에 주위를 둘러보니 알베르게 건물 뒷편에 있는 벤치에 앉아계셨다.
"크크크 형님 버스 추우셨어요?" 내 잠바를 빌려입고 계신 형. 덕분에 단번에 알아볼수 있었다.
"응 잠바 따시더라"
일찍 도착하셔서 배낭을 알베르게에 맡겨두고 동네를 한번 둘러보셨다는 형.
"마트는요?!?!"
"엄청 큰거있어!"
카미노를 걸으면서 식비를 아끼려다보니, 저녁을 해먹으려면 항상 장을 봐야했다.
문제는 작은 마을들은 냉장고도 없는 구멍가게가 전부여서 식자재를 조달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그래서 새 마을에 도착할때마다 큰 마트가 있는지부터 알아보는 습관이 생겼다.
▲출처: AlbergueCaminoSantiago
"그나저나 엄청 빨리왔네?" 우리의 상태를 보고선 믿겨지지 않는다는 표정을 짓는 롯데형.
"상태가 좋지 않아도 코리안 스피드는 엄청나잖아요 형"
알베르게가 순례객들을 받아들이기까지 30분정도 남아서 길바닥에 엉덩이를 깔고 앉아 멍 때리는 시간을 가졌다.
이제는 어쩌면 적응되야 할 고통이 아직도 우리를 힘들게 한다.
초반에는 물집도 하나 없다며 좋아라하던 윗니마져도 카미노의 혹독함에 지쳐가고 있는 듯 하다.
정오가 되자 굳게 닫혀있던 거대한 나무문을 열고 나타나신 수녀님.
"Buenas"
발자국 소리조차 나지않게 사뿐사뿐 걷는 수녀님을 따라 알베르게 안으로 들어갔다.
5유로를 지불하고 침대를 배정받았다.
알베르게마다 부츠를 벋어놔야하는곳이 지정되어 있다.
6시간만에 처음으로 부츠를 벗고서, 돌로 만들어진 지압판 같은 바닥을 가로질러 2층으로 향하는데
곡소리가 절로 난다.
18세기에 지어졌다는 목조건물, 예전에는 수녀님들의 거주공간이었지만 지금은 순례자들을 위해 쓰여진다고 한다.
한껏 기울어진 벽들, 깊은 한숨이라도 몰아쉬면 무너져 내릴것같은 위태로운 천장, 그리고 세월의 한을 품없는지 삐걱대는 바닥소리마저 둔탁하다.
설계를 초등학생 스케치북에 한건지 알수없는 구조의 알베르게.
방안에, 방이, 그리고 또 방 안에, 방이 있다.
욕실도 2층에는 하나밖에 없어서 서둘러서 샤워를 마쳤다.
쉴 틈도 없이 마트로 향하기로 한다.
상태가 좋지않은 윗니와 발렌타인은 알베르게에서 쉬고 있으라 하고 롯데형과 둘이서만 알베르게를 나섰다.
한가한 거리를 10분정도 걷다보니 제법 번화가 스러운 큰 길이 나왔다.
조용했던 알베르게 주변과는 달리 엄청난 인파가 몰려있다.
동네사람들이 다 모여있는듯한 광장에는 결혼식이 있는지 흑백의 신랑신부가 사진 세례와 환호를 받고있었다.
"동네가 조용한 이유가 있었네요 형."
마을들이 작다보니 아마 결혼식이나 행사가 있을때 동네사람 모두가 모일거라 생각 해 본다.
마트에 들어가서 이것저것 골라본다.
스테이크를 구워먹자 제안했지만 롯데형은 시큰둥하시다.
알베르게의 주방시설이 열악하다며 오늘은 그냥 사먹는게 낫지 않겠냐며 제안을 해 오신다.
아직까지 음식점에서 돈주고 뭘 사먹어 본적이 없던 나는 잠깐 고민을 했지만
발 상태를 생각해선 나도 편하게 대접받고 여유를 즐길수있는 저녁도 나쁘지 않겠다는 판단을 내렸다.
광장으로 돌아와 윗니와 발렌타인에게 나오라고 연락을 했다.
그들을 기다리는동안 약국에 들려 소독용 알코올을 사려는데 요오드액 말고는 없단다.
그래도 요오드가 휴대하기 편리한 사이즈라서 고민없이 구매해버린다.
넷이서 광장에 모였다.
어디로 가야하나 검색을 해보는데, 마땅히 맛집이란것도 없는 동네인듯하다.
결국 그냥 광장에서 제일 규모가 큰 레스토랑에 자리를 잡았다.
주문을 하려는데 웨이터가 도통 눈을 마주치지 않는다.
기다리다 지쳐 큰형님이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외치신다, "뻬르돈."
그래도 눈길을 주지않는 웨이터.
결국 롯데형이 비장의 무기를 꺼내신다, "뻐킹 뻬르돈."
그제서야 달려오는 웨이터.
스페인어로 적혀있는 메뉴를 당췌 알아들을수 없어서 대충 눈치로 여러개를 시켜 나눠먹기로 한다.
롯데형과 발렌타인은 주문한 음식이 오래동안 안나오자 옆에있던 햄버거 가게에서 4유로짜리 버거를 하나씩 사오더니
단숨에 해치우셨다.
하지만 맛은, 최악이라는 후기를 남기고 대신 레스토랑 음식을 기대했다.
음식들이 썩 나쁘지 않다.
물론 조미료맛이 을씬 나지만 이것저것 따질 처지가 아니여서 감사한 마음으로 그릇들을 비웠다.
식사를 마치고 마트에 다시들려 내일 아침거리를 샀다.
그리고 숙소로 돌아가는 길,
내 발 상태가 너무나 좋지 않다는걸 느낀다. 치료가 시급하다.
숙소로 돌아와서 알베르게 와 성당 사이에있는 마당에 앉아 발 치료를 시작한다.
요오드액으로 소독을 하고 라이터 불로 소독한 바늘로 물집을 터뜨린다.
그리고 바늘에 실을 꿰어 물집에 실을 꿰어 넣고선 자투리를 잘라낸다.
카미노 길에 오르기 전, 다큐멘터리에서 본 방법인다.
효과가 좋다고 해서 토레스 델 리오에서 처음 사용해봤는데,
효과. 만점이다..
물집에 차는 액체가 실을 통해 계속해서 배수되기 때문에 물집이 다시 형성 될 걱정이 없었다.
내 발을 다 치료하고 윗니의 발을 치료해주기로 한다.
발이 너무 작고 아담해서 포도알 같은 발가락에 조그맣게 형성된 물집들.
태어나서 한번도 이렇게 물집이 생긴적이 없었다는 윗니는 아픈거 보다 신기하다며 싱글벙글.
반면에 요오드액을 한방울 한방울 물집 안 새살에 바를때마다 비명을 쏟아낸 발렌타인과 나는 그녀의 당당함에 비교되서 부끄러울 수 밖에 없었다.
마당에 드는 햇볕이 좋아 바닥에 벌러덩 드러누워 맥주 한잔의 여유를 즐겼다.
시시껄렁한 얘기로 시간을 보내다가 다른 순례객이 들고다니는 기타가 보여서 잠시 빌려본다.
셋이서 이곡저곡 부르다가 부르노 마스의 Just the way you are이란 노래를 부르게 되었다.
드럼을 전공하는 발렌타인과 가수를 꿈꾸었을 정도로 실력이 있는 윗니와 같이 3파트 화음을 넣어 부르게 되었는데
소름돋을 정도로 듣기 좋았다.
대화도 대화지만, 역시 음악으로 하는 교감은 또 색다르다.
윗니의 간드러지고 감미로운 목소리에 취해 시간가는줄 모르고 순례자들의 휴식시간인 씨에스타를 홀딱 다 써버렸다.
부쩍친해져서 그런지 장난이 심해진 발렌타인이 윗니의 손을 꺾다가 결국 그녀를 울려버렸다.
순간 화가 치밀었다.
자라오면서 워낙 여자몸에 손가락 하나도 건드려선 안된다는 부모님의 교육을 받고 자라왔던지라 (물론 친 누나와 격하게 싸우며 자랐지만)
눈물 흘리는 윗니를 보며 마음이 편치 않았다.
넘처흐르는 분노를 억제하지 못하고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혼자 알베르게를 나섰다.
잠깐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며 분노를 삭혀보기로 한다.
잠깐 걷고 있는데 또 어디선가 불쑥 나타나신 텐트형이 말을 걸어오신다.
텐트형은 말동무가 필요하셨는지 주저리 주저리 말보따리를 풀어보려 하신다,
결국 단호하게 말씀 드렸다, "저 죄송한데, 지금 저 혼자있고 싶어서요..."
차갑게 말하는 나에게 좋은시간이 되라며 바로 자리를 피해주시는 텐트형.
아무 죄 없는 그분에겐 미안하지만 난 잠시 고독의 시간이 필요했다.
동네 이곳저곳을 누비는데 성당에서 산토 도밍고 마을에 관한 재밌는 일화를 듣게 된다.
옛날옛적 호랑이가 와인 마시던 시절 순례길을 걷고있던 독일 일가족이 산토 도밍고에 하루밤을 머물게 된다. 그날밤 숙소 주인장의 딸이 독일 일가족의 아들인 '휴고넬'(Hugonell)에 사랑에 빠지게 되는데 휴고넬이 그런 그녀를 거부했다고 한다. 악을 품은 주인장 딸은 은으로 만들어진 술잔을 휴고넬의 짐 안에 숨겼고 다음날 날이 밝아오자 휴고넬을 도둑으로 몰아냈다고 한다. 결국 휴고넬은 교수형에 처해 죽음을 맞이한다. 슬픔에 젖은 휴고넬의 부모는 집으로 돌아가려는 길에 휴고넬의 목소리를 듣게 되어 그 출처를 따라갔더니 도밍고 성인이 휴고넬과 함께있는걸 목격하게 된다고 한다. 휴고넬의 부모는 당장 처형을 집행한 판사에게 가서 자신들의 아들이 살아있다고 알리자 저녁을 먹고 있던 판사는 휴고넬은 자기의 밥 그릇에 놓인 닭요리처럼 죽어있다며 그들을 비웃었다고 한다. 순간, 닭요리에서 깃털이 나기 시작하더니 닭이 완전체가 되어 날아올랐단다.
그래서 도밍고 성당안에서 실제로 닭장안에 든 닭을 관람 할 수 있다. (일주일에 한번씩 새로운 닭들로 교체된다고..)
미사드리는 시간이 되어 성당을 빠져나와 한참을 더 걸었다.
걸으면서 잠시 깊은 고민에 빠진다.
나도 이제 내 혼자만의 카미노 길을 걸을때가 되지 않았을까?
누군가와 힘든여정을 함께 했다는 건 물론 축복받은 일이다.
하지만, 잃는것도 많았다.
한 그룹에 소속이 되다보니 새로 만나는 순례객들과 교감할수있는 기회도 그만큼 줄어든것 같았다.
다양한 사람들과 만남을 제공해주는 카미노위에서 너무 "익숙함"만 선호했던게 아닐까?
그리고 일정이 빡빡하다는 한국 패밀리에 맞춰 굳이 31일만에 800km를 끝내야 할 이유도 없었다.
생각을 하면 할수록 내일아침 혼자 떠나야겠다는 쪽으로 마음이 굳혀졌다.
알베르게로 돌아오니 모두들 한밤중이다.
일기장을 꺼내서 편지를 써 본다.
윗니에게,
그동안 고맙고, 즐거웠어.
기회가 되면 카미노 길 위에서 또 만나자!
하고싶은 말은 많았지만 이별이라 생각되지 않아서 필요한 말만 적었다.
다시 카미노 길 위에서 만날걸 알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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