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mino de Santiago|| D10. Ep.23 구원의 손길
밤비
Camino de Santiago
Day Ten
Episode Twenty Three
2 0 1 6. 0 6. 1 2
Savior
카미노에서 처음으로 알람소리에 잠을 깼다.
머리가 무겁다.
방을 둘러보는데 부지런한 윗니는 벌써 짐을 다 싸서 나갈 준비를 마치고 있었다.
'엇....이게 아닌데...'
조용히 편지만 남겨두고 혼자 떠나려고 했는데...
침대에 걸터앉아 잠시 생각에 빠졌다.
어젯밤 분명 혼자 떠나겠다고 결심을 했었다.
알람도 새벽 5시에 맞춰두고 마음의 준비도 해뒀는데...
어쩔수없이 직접 내 결심을 얘기해야하나?
모르겠다.
가방을 챙겨서 휴게실로 향했다.
벤치에 앉아 조용히 나갈 준비를 하며
분주하게 혼자 아침준비를 하는 윗니를 지켜봤다.
눈이 마주치자 웃음짓는 그녀.
마음이 약해진다.
계란이 다 삶아졌을 즈음 패밀리가 모두 휴게실에 모였다.
어제 일찍 잠자리에 든 사람들 치고는 상태가 그리 좋아보이지 않는다.
부츠를 신고 무릎 상태를 확인해 보는데,
정말 최악이다.
무릎에 조금이라도 힘을 줄때마다 안에서 무언가 찢어지는듯한 고통이 느껴졌다.
잔뜩 인상을 쓰며 서 있는데, 옆을 지나가던 제이크가 괜찮냐며 물어온다.
"아니 안괜찮아. 무릎이 엄청 아프다..."
"그래? 저런... 나 진통제(소염제) 있는데 하나 줄까?"
"응 뭐라도 있으면 하나 줄 수 있어?"
"물론이지!"
정갈하게 쌌던 배낭을 다 풀어해치고선 배낭 깊숙히 있던 진통제를 통째로 내게 건네는 그.
"몇개 가져가도 되. 나는 필요없으니까."
"아니야... 하나만 가져갈게 고마워!"
고맙다는 인사를 끝내자마자 알약을 입에 털어넣고 꿀떡 삼켰다.
제이크는 캐나다에서 온 녀석인데.
밀집모자를 쓰고 다니며, '잘생김' 을 카미노 길에 흩날리고 다니는 친구다.
키도 훤칠하고, 턱 수염도 멋드러지게 난 제이크.
항상 그와 마주치면 캐나다에서 왔다는 이유 하나로 친근감을 느꼈는데,
과묵하고 내성적인 그가 나에게만 유독 잘해주는걸보면 그도 비슷한 감정을 느꼈나 보다.
패밀리가 아침을 먹는동안 내내 찡찡 거렸다.
아퍼서 못가느니, 쉬어야 겠느니.
안그래도 힘이 없어보이는 그들에게 너무 부정적인 에너지만 발산하는게 아닌가 싶다.
어쩌면 그렇게 그들과 멀어질 이유를 찾고 있던게 아니였을까...
내게 하루만 쉬라는 롯데형
앞으로 남은 일정을 생각해서라도 자존심은 버리고 무리하지 말라며 조언해주신다.
하지만 떠나려는 패밀리,
떠나려는 윗니를 보고 있자니 어제 했던 결심도, 몸의 고통도 사그라들었다.
순간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출발"을 외쳤다.
그런 나의 모습을 걱정스럽게 쳐다보는 패밀리.
감동도 그리고 멋도 없는 정신나간 말을 해버린다, "다리 하나 잃으면 기어서라도 가죠 뭐."
첫 오분동안의 걸음이 지옥의 불 길을 걷는것과 같이 고통스럽다.
그런 내 마음을 아시는지 롯데형은 클럽으로 유명한 이비자 얘기를 꺼내시며 우리를 한참동안이나 웃기셨다.
"혼자가서 셋으로 나오는 곳"으로 유명하다며...
걷기 시작한지 15분 즈음 지났을까?
진통제 효과가 있는지 무릎상태가 나쁘지 않다.
패밀리를 뒤로하고 스피드를 내서 걷기 시작했다.
그렇게 두시간동안
혼자서 묵묵히 꾸준한 스피드를 준수하며 미친듯이 걸었다.
누가 보면 올림픽 경보 선수인 줄 알았을 것이다.
지나치는 사람마다 "부엔 까미노" 대신에 나한테 "조심하라며" 걱정을 한다.
그도 그럴것이 40분정도 먼저 출발한 사람들까지 다 제치고 혼자 선두를 달리고 있었다.
어느새 카미노 행렬의 제일 앞 까지 온건지 한동안 내 앞에서 아무도 나타나지 않았다.
빌로리아 데 리오하(Viloria de Rioja)를 지나칠때 시간을 확인해보니
두시간 반 만에 14.8km를 걸었다.
에스텔라 이후로 역대급 시속이었다.
빌로리아 데 리오하를 지나 멀지않아 비야마요르 델 리오(villamayor del rio)에 도착했다.
마음 초입에 멋드러진 카페가 보여서 잠시 쉬어가기로 한다.
캔 콜라를 하나 뽑아와서 테라스에 자리를 잡고 앉으려는데 뒤에서 누군가 인사를 건네온다.
"누구지?" 하고 돌아봤더니!
히드로우에서 같은 비행기를 타고 비아릿츠에 내려 버스정류장앞에서 인사했던 순례객들이었다.
처음으로 "부엔 카미노"란 인사를 주고 받았던 그들이 반갑게 인사를 해 온다.
잘 지냈니? 카미노는 어땠니? 마치 오래동안 알고 지내왔던 사람들처럼 안부와, 이런저런 얘기를 주고 받다가
내 발 상태를 물어오는 존(가명).
"사실 아픈데..."
"응 알아. 걸어오는거 보니까 많이 안좋아 보여. 일단 부츠먼저 벗어봐."
"아니에요... 저도 구급자격증이 있어서 약도 먹고 걷는자세도 신경쓰면서 걷는데 아무래도 쉬어야만 나을거 같아요..."
"됐고 일단" 부츠나 벗어보라는 그.
양말을 벗자마자 땀에 흥건히 젖고 냄새가 나는 나의 발을 맨손으로 집어 들어올리시더니 물집상태를 확인한다.
"오, 일단 물집은 잘 대처했는데 실 소독은 했니?"
"실....은....안했네요"
생각해보니, 물집에 실을 넣어 둘 때 당연히 소독을 했어야 했는데... 신경쓰지 못했던 부분이었다.
순간 걱정이 되었다. 나 혼자 잘못되면 괜찮은데 윗니에게도 잘못된 치료법을 사용해서 물집 치료를 해줬는데...
또 엄지 발가락과, 두번째 발가락 사이 부분이 엄청 아프다니, 감염이 되었을 수 있다며 직접 소독을 해 주셨다.
알고보니 그는 미군에서 20년이 넘게 의병을 해 온 메딕이란다.
부츠를 신고 행군을 하는 군인들의 발을 수 없이도 많이 치료해봤다며 이제는 이쪽 분야는 자기가 누구보다 잘 안다며 걱정마란다.
아킬레스건과 무릎도 진찰하더니 붓기가 조금 있다며
이부프로펜이란 소염진통제를 복용할 것을 권했다.
고맙다고 인사를 하고 있는데 곁눈질로 본 길 건너편에서 패밀리가 손을 흔들고 있다.
발 상태가 좋지 않았던 발렌타인에게도 메딕 형한테 어서 치료를 받으라고 했다.
실례가 될 수 도 있는 행동인것도 모르고 메딕형한테 친구 발도 좀 봐줄수 있냐고 물어보니 저기엔 '조앤' 이란 여성도 간호사라며 그 사람에게 치료받을것을 권했다.
경솔했다. 나에게 친분이 있어서 날 도와준거지만 그가 남을 위한 자선단체는 아니지 않은가?
미안하다하고 서둘러 자리를 피하는 그들에게 작별인사를 나눴다.
조앤이라는 여성분은 미국에서 간호사로 일하고 있단다.
카미노에 오기전 병원 창고를 털어서 이것저것 챙겨왔다며 흔쾌히 치료를 해주시겠단다.
발렌타인의 발을 보더니 표정이 일그러진다. 물집을 왜 뜯었냐며.
새로 생긴 물집을 터뜨려 주는것과 소독 말고는 별로 해줄수 있는게 없다며 안타까워 하신다.
발렌타인이 조앤에게 치료받는동안 내가 직접 윗니의 발도 치료해 주기로 한다.
메딕형이 가르켜준 올바른 방법으로 물집을 치료해줬다.
요오드액을 넣을때마다 살짝 찡그리는 그녀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
비겁하게 말도 안하고 떠나려 했던 내 자신이 부끄러워 치료가 다 끝나고 고맙다고 하는 윗니의 얼굴도 제대로 쳐다보지 못했다.
날이 더워질거같아 치료만 마치고 서둘러서 다시 출발했다.
오늘의 목적지인 벨로라도가 코앞이라 마음은 가벼웠지만,
모두들 발 상태가 좋지 않아 속도가 많이 나지 않았다.
결국 돌길을 피해야 한다는 생각에 위험을 무릅쓰고 고속도로 갓길로 걷기로 한다.
그래도 잘 걷지 못하는 윗니.
걱정이 되어 자꾸 멈추는 그녀 곁을 지키며 격려의 말을 해 주었다.
"괜찮다며" 웃어보이는 그녀의 얼굴엔 미소 대신 고통의 어둠이 드리워져 있었다.
한참을 그렇게 걷다 안되겠다 싶어 조심스럽게 제안을 한다,
"[윗니]야 음... 너 지금 발 상태가 너무 안좋으니까 내가 잠시동안만 배낭 들어줄게."
아니라며 손사래를 치는 그녀.
"아니야 나 메딕형한테 치료받아서 지금 진짜 상태가 괜찮아서 도움주려는 거야. 내가 잠깐 들어보고 나도 아니면 바로 너한테 줄게. 그땐 그냥 같이 천천히 걷자."
더 반박을 할거같아서 서둘러 그녀의 배낭을 빼앗았다.
앞뒤로 배낭을 메고 걷기 시작한다.
갑자기 늘어난 엄청난 무게에 무릎이 소리를 지른다. 그러지 말라고. 억지로 웃어보인다.
그리고 문득 든 생각.
'내가 지금 뭐 하고 있는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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