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mino de Santiago|| D16. Ep.36 카미노 중간지점.
밤비
Camino de Santiago
Day Sixteen
Episode Thirty Six
2 0 1 6. 0 6. 1 8
Midpoint
눈을 감은지 10초도 되지 않은거 같은데 이제는 익숙해진 윗니의 알람 소리가 들려온다.
매일같이 하는 아침 준비를 마치고 빨래를 걷으러 가는 길에 수녀님과 마주쳤다.
어제 내가 윙크를 날린,
나에게 노래할 기회를 만들어주신 수녀님이다.
잘 잤느냐고 물어오는 수녀님의 물음에
덕분에 너무 편안하게 잘 수 있었다고, 그리고 감사하다고 말씀드렸다.
오히려 자신이 고맙다는 수녀님. 어제 나의 노래를 통해 좋은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그리고 노래에서 슬픔이 느껴졌다며 혹시 슬픈 일이 있냐고 물으신다.
부연하게 말하고 싶지 않아 그저 씁쓸한 미소를 지어본다.
그런 내 마음을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신다.
이어서 기도를 해주시겠단다.
누추한 모습이지만 최대한 경건히 서서 수녀님의 기도말을 귀담아들었다.
한치의 떨림도, 버벅댐도 없이 잔잔한 시냇물처럼 흘러 내 가슴속에 새겨지는 말들.
어제 느꼈던 것과는 또 다른 전율이 내 온몸을 뒤흔든다.
"아멘"과 함께 끝난 기도,
이어서 줄 게 있다며 손을 내밀어 보란다.
너무나 큰 선물을 받는게 아닌가 싶어 곤란한 표정을 보이자 그저 고개를 끄덕이신다.
준비가 끝난 윗니와 함께 성당으로 향한다.
활짝 열린 성당의 문안으로 조심스레 들어갔다.
무거운 공기가 감도는 성당 안에서 수녀님들이 미사 전례의 시작 예식을 하는 듯했다.
사실 나도 어제저녁을 먹기 전 저녁미사를 참석하게 되었다.
신앙심은 없지만, 카미노의 큰 일부라고 생각되어 윗니와 성당으로 향했다.
종일 내 머리를 떠나지 않는 모자를 벗어 예의를 갖추고, 윗니가 하는 행동들을 눈여겨보며 흉내를 냈다.
종교는 심적으로 나약한 자들만이 갖는 것이라고 비관적인 시선으로 봐 왔던 나.
카미노를 통해 조금 더 우호적인 관점에서 종교를 바라 볼 수 있게 될까?
카미노 길 위에서 윗니와 종교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어 본 적이있다.
신이란 존재를 우상 하기 위하여 갖는 신앙심이 아니라,
종교를 통하여 곧바른 삶을 살아가는 이들과의 조우가 좋아서 카톨릭 신분을 이어간다는 그녀.
모태신앙으로 시작되었지만, 지금은 선택이 되었다는 그녀의 말에
나에게도 그런 선택의 기회가 주어질까 생각해본다.
마을의 끝을 알리는 다리를 건너 카미노 길에 올랐다.
오늘은 테라디요스 ("Terradillos") 라는 마을까지 걷기로 한다.
앞서서 걷고있는 패밀리 멤버들로부터 오늘의 힘든 여정에 대해 예고를 받았다.
쉼터도, 그리고 그늘막도 하나없는 17km길을 쉴새없이 걸어야 한다며 마음을 단단히 먹으란다.
난 윗니랑 함께라면 두려울게 없다.
가벼운 마음으로 걷는다.
다행인지 안개가 카미노 길 위에 내려 앉았다.
햇빛을 피할 수 있어 좋지만 약간 으스스한 느낌이 들 정도로 안개가 짙다.
이어지는 첫 15km는 아무 탈 없이 잘 걸었다.
하지만 아직도 신발에 문제가 있는지 자꾸만 멈춰서는 윗니.
그녀를 위해 또다시 배낭을 앞뒤로 둘러매고 다음 마을인 칼자디야 까지 걷게 되었다.
오늘은 배낭을 앞뒤로 매고서도 절대로 손을 놓지 않았다. 그저 그녀가 이끌어주는대로 믿음을 가지고 발을 내딛는다.
지나치는 순례객들이 그런 우리의 모습을 보고, "보기좋다"는 말과 함께 축복을 빌어준다.
정말 새로운 경험이다.
이렇게 축복받는 만남을 가져본적이 있던가?
단지 손잡고 걷는 윗니와 나의 모습이 좋아보여서 일까?
이유가 뭐가 되었던 기분은 좋다.
그리고 나는 어느새 카미노에서 유명인사가 되었다.
지나치는 남성 순례객들에게서 엄청난 RESPECT를 받는다.
자신의 몸도 가누기 힘든 카미노에서 누군가의 짐을 들어준다는건 쉬운일이 아니기에..
그들의 시선을 받아 괜시리 두 어깨에 힘이들어간다.
윗니는 항상 나에게 받기만 한다며 울상이다. 하지만 나도 그녀에게 엄청난 의지를 하고 있다.
난 항상 뭐든지 잘하는척, 강한척 하지만. 굉장히 엉성하고, 덤벙대며, 마음도 약해 상처도 쉽게 받는다.
그런 나를 알게모르게 윗니가 많이 챙겨주고 있다.
항상 미안해하는 윗니에게 일러준다,
"나도 언젠가 도움을 필요로 할때가 분명히 있을거야. 그때 기쁜 마음으로 도와주면돼!"
칼자디야 마을에 도착,
마을 초입에 있는 음식점에서 아침을 먹기로 한다.
스페인의 김치찌개와도 같은 스페인 사람들의 소울푸드 빠에야를 시키고
옆에 맛나보이던 샌드위치도 하나 시켜서 윗니와 나눠먹기로 한다.
아침을 잘 먹고 점심을 거르는 윗니와 나.
반대로 아침은 대충먹고 점심을 잘 먹는 백인 순례객들.
아침부터 그 많은 음식이 들어가냐는 눈치로 쳐다본다.
8년전 첫 배낭여행지였던 유럽. 그때 스페인에서 먹었던 빠에야는 비싸고, 기름지고.... 그냥 전체적으로 맛이 없었다.
하지만 칼자디야의 빠에야는 달랐다.
강황가루를 넣어서 느끼함이 없었고 무엇보다 쌀의 익힘이 아주 맘에 들었다.
(스페인에서 빠에야를 먹어본 사람들이 항상 불평하는 부분이, 쌀이 덜 익었다는 점이다)
화려하진 않지만, "이게 진정한 빠에야다!"라고 나에게 일침하는 듯한 맛이었다.
샌드위치는 비쥬얼만큼 훌륭한 맛이었다. (다시 말하자면, 고기 비중이 아주 맘에 들었다.)
좀 쉬었더니 괜찮다는 윗니.
밥심을 빌려서라도 열심히 걷자며 다시금 화이팅을 외쳐본다.
윗니와 함께한 거리는 315km, 단둘이서 걸은 걸이만 해도 110km가 넘었다.
이제는 서로의 눈빛만 봐도 마음을 알 수 있을것같다.
동체가 되어버린듯한 우리의 발걸음은 무엇을 향해 이렇게 바삐 움직이고 있는걸까?
끝을 향해 걷고 있지만, 끝은 또다른 시작이 된다.
카미노의 끝인 산티아고에서의 시작은 무엇을 향한 걸음일까?
레디고스 마을에 도착했다.
간판에 산티아고까지 373.87km 밖에 남지 않았단다.
생장에서 부터 대략 390km를 걸었으니 이제 공식적으로 카미노의 절반 이상을 걸은셈이다.
집을 나선지 벌써 20일이 다 되어간다는게 믿겨지지가 않는다.
레디고스를 떠나기전 "라 모레나"라는 알베르게에서 잠시 쉬어가기로 한다.
불량 아이스크림을 단번에 흡입하고 출발하려는데
나헤라에서부터 만났던 부녀 순례객들과 또다시 마주쳤다.
무슨 이유로 카미노 길에 오른지 모르겠지만,
부녀간의 호흡이 척척 맞는듯 오늘도 열심히 걷고있다.
그들은 항상 대화를 나누고 있다, 무슨 대화를 저렇게 오래하나 궁금하다.
고등학교 이후로 냉전을 이어가는 우리 누나와 아버지도 언젠가 저렇게 화목한 모습으로 무언가를 같이 할 날이 올까?
그들이 함께하는 카미노는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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