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mino de Santiago|| D16. Ep.37 카미노에서 (돌팔이)의사가 되다.


밤비


 

Camino de Santiago
Day Sixteen
Episode Thirty Seven
2 0 1 6. 0 6. 1 8


Camino Doctor

 


 

 

 

 

 

여행하면서 습득한 노하우가 있다.

 

나처럼 땀 돼지인 여행객들은 삭타구니가 젖어 허벅지가 쓸리는 고통을 겪은적이 한두번 있을 것이다.

 

지난 8년간 내 허벅지를 지켜준건 다름아닌 수영복이다.

 

통풍도 잘 되고, 가볍고, 무엇보다 빨래를 하면 보통 아침에는 바삭하게 말라있다.

 

혹시나 비를 맞으면 수영 한번 했다고 생각하면 그만이고,

 

길을 걷다가 강이나 냇가가 보이면 그대로 입수해 정말로 수영을 하면 된다.

 

단, 빨간색 삼각 수영복을 입을시 경찰에게 체포 될 수 있다. 반바지 같이 생긴, 트렁크 스타일로 준비하자.

 

 

 

 

해가 중천에서 심술을 부리고 있을즈음 테라디요스 ("Terradillos de los templarios") 에 도착했다.

 

황량한 마을의 분위기와 다르게, 잔디밭이 인상적인 Albergue Jacques de Molay 라는 알베르게에서 지내기로 한다.

 

창가 옆 침대로 배정받고 침대 귀퉁이에 잠시 걸터앉아 한숨을 돌렸다.

 

힘들었는지 씻지도 않고 침대에 벌러덩 드러눕는 윗니.

 

금세 새근새근 잠들었다.

 

한번도 낮잠을 잔 적이 없던 윗니가 쓰러져서 자는걸 보니, 그녀도 아직 카미노에 적응하기 보단 악바리 근성으로 버티고 있는게 분명했다.

 

까치발을 하고 방을 나서려는데 방에서 휴식하고 있던 순례객들이 그런 나의 모습을 보고 미소를 머금는다.

 

그런 그들에게 입가에 손가락을 가져다대 조용히 해달라고 눈치를 주니 다들 고개를 끄덕인다. 착한 녀석들.

 

 

 

쏟아지는 물줄기 아래서 한참동안 넋을 잃고 서 있었다.

 

얼굴을 타고 흐르는 짭조름한 땟국물이 입가에 머물어 인상을 잔뜩 지뿌린 채.

 

잠깐 서 있는 시간도 괴롭다. 아직도 무릎의 상태가 좋지 않다.

 

지난 5일간 진통 소염제로 여명을 하며 윗니에겐 최대한 내색을 하려 하지 않지만

 

약 기운이 떨어지려하는 시점인 정오 즈음에는 어금니를 꽉 깨물고 걸어야 할 정도로 고통스럽다.

 

 

 

샤워를 마치고 침실로 돌아갔는데 윗니는 아직도 깊은잠에 빠져있다.

 

구급상자와 핸드폰만 챙겨서 마당으로 향한다.

 

오랜만에 혼자갖는 시에스타 시간이 되었다.

 

마당에 있는 잔디밭에 발라당 드러 누웠다.

 

잔디의 촉촉한 느낌이 잠시 날 캐나다로 데려가 준다. 눈을 감고 햇볕을 온몸으로 받아 들이는데, 꼭 집으로 돌아 온 것만 같다.

 

아무생각 없이 누워있다가 잠깐 졸아버렸다.

 

눈을 떠 보니, 스페인의 강렬한 해가 지나간 자리가 후끈후끈하다. 걷는 내내 피하고 싶은 상대지만, 역시나 마음에 여유가 생기면 모든게 미화된다. 

 

산 미겔 맥주 한병을 사 와서 단번에 들이켰다. 술이 고팠나보다. 혼자 한없이 들이켜댔다. 그렇게 5병을 마셨다.

 

 

 

취기가 올라 앉은뱅이 나무에 등을 기대고 앉아 물집을 치료한다. 정말 치료가 필요한건 무릎인데 말이다.

 

한참동안 잔디밭에 앉아 혼자 발을 치료하고 있으니 지나가던 순례객들이 하나둘 모여든다.

 

수슬참관이라도 하는것 마냥, 내가 찡그릴때면 그들도 찡그리고 내가 한숨을 쉴때면 그들도 멎었던 숨을 몰아쉬었다.

 

소독을 잘 마치고 구급상자를 정리하는데 앞에서 구경하고 있던 호주누나(Carissa)가 자기 발도 좀 봐주면 안되겠냐고 물어온다.

 

"Of Course!" [물론이지!]

 

신고있던 양말을 벗고 칭칭 감겨져있는 붕대를 풀자 엄청난 녀석이 나타났다.

 

정말 태어나서 한번도 마주해보지 못한, 구글형이 보여준 적도 없는 거대한 물집들이 호주누나의 발에 자리잡고 있었다.

 

거짓말 보태서 발의 절반 이상이 이 거대한 물집들이 서로 연결되어, 고대 로마인들이 만들었을법한 수로(?)를 형성했다.

 

"흐억...SHIT!"

 

욕부터 나온다...정말 극혐이었다.

 

어떻게 하면 저렇게까지 방치한걸까?

 

분명히 어딘가서 잘못된 정보를 들었을 것이다.

 

"누나 이거 절대적으로 터뜨려야 해요!"

 

호주누나랑 같이 다니던 크리스틴이라는 여자애는 분명히 간호사라고 했는데...

 

 

 

윗니의 발은 잘도 만졌는데, 막상 호주누나의 발을 보니.... 더럽다고 느껴졌다.

 

결국 그냥 치료하는 법만 가르켜주기로 한다.

 

카미노에서 내가 애용해 왔던 실 궤어넣기 기법을 전수한다.

 

(그리고 누나는 카미노 길에서 나를 만날때마다 고맙다고 인사를 하며. "Camino Doctor"라고 불러줬다)

 

치료가 끝나갈즈음 윗니가 빨래감을 한웅큼 들고 내려와 빨래와 사투를 벌인다. 힘이 달리는지 낑낑거리며 손으로 탈수하고 있는 모습이 귀엽다.

 

 

그 다음 환자는 미국에서 온 젊은 학생이었다.

 

이 녀석도 500원짜리 동전만한 물집을 이곳저곳 방치하고 있었다.

 

녀석에게도 실을 궤어넣는 기법을 전수!

 

(녀석도 호주누나를 따라 나를 "카미노 의사"라 불러줬다)

 

 

 

 

 

윗니가 빨래를 마쳤길래 미리 주문해 놓았던 햄버거를 먹기로 한다.

 

계란 후라이가 들어간게 인상적이다.

 

옛날에 시골에서 할머니들이 만들어 주었던 햄버거가 생각나서 햄버거를 먹는 내내 추억에 젖었다.

 

 

 

 

게걸스럽게 먹고 있는데 옆에 앉아서 와인 한잔을 즐기고 계시던 흑인 할머니가 말을 걸어오신다.

 

"그 햄버거 엄청난데? 나도 하나 주문해서 먹어야겠어!"

 

"말도 마요. 카미노 최강 햄버거에요!" 느끼한 표정으로 음미하는 듯한 표정을 짓자 그런 내 표정을 보고 할머니가 호탕하게 웃으신다

 

초등학교 선생님이라고 소개하는 흑인 할머니는 갑자기 윗니와 나를 사진에 담고싶단다.

 

꾀죄죄한 모습이라 단번에 수락을 하지 않았지만 딸에게만 보여주겠다는 할머니의 말에 최대한 예쁜 표정을 짓고 "김치~~~" 를 외쳤다.

 

사실 카미노 길 위에서 며칠간 우리를 눈여겨 봤단다.

 

매일같이 손을 잡고 걷는 우리가 너무 보기 좋다면서

 

자기 딸에게도 카미노 길의 아름다움을 공유하고 싶다고 한단다.

 

너무나 감개무량하다. 우리가 누군가에게 '아름다움'을 느끼게 하는 존재가 될 수 있다는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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