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mino de Madrid|| Ep.1 혼자 걷는 길, 카미노 데 마드리드.

Camino de Madrid

Episode One.


0 7. 0 6. 2 0 1 6





카미노de마드리드

            혼자 걷는 길      




불편한 잠자리 였음에도 불구하고 눈을 떠 보니 몸이 개운하다.

익숙해진 그녀의 샴푸 향, 한달내내 뒤집어 쓰고 다니던 흙냄새, 그리고 이젠 구수하게만 느껴지는 우리의 발냄새와 땀냄새는 온데간데 없고

혼자가 된 후 어제 하룻밤 방을 쉐어했던 다섯 남정네들의 악취로 가득한 방냄새가 낯설기도하고, 무엇보다 역하다.


늦은 밤에 체크인을 했던지라 방문부터 침대사이의 거리만을 발끝으로 느낄수 있었던 방 모습을 아침에서야 확인 할 수 있었다.

침대에 누워 하반신 마비에 걸린 환자마냥 고개만 돌려 방을 둘러본다.


밤새 마셔라 부어라 했는지 외출복을 입고 자유낙하 자세로 뻗어있는 친구,

방바닥이 아닌 모든 면적에 아무렇게나 걸쳐저있는 젖은 팬티와 양말들,

자기 자취방인 것 마냥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는 옷가지들과 소지품들

그리고 방 한켠에 라면컵과 젓가락을 번갈아가며 쌓아 위태롭게 세워진 컵라면타워.


'한국인들과 함께 해야하는 어쩔 수 없는 운명인가?'


아니다,


어젯밤 사실 이 방, 이 호스텔에 체크인 하기까지 엄청난 우여곡절이 있었다.


한국으로 훌쩍 떠나버린 윗니와의 생이별 후

빠져나가려는 멘탈을 간신히 부여잡고

마드리드 공항을 빠져나와 도시로 향하는 마지막 기차를 잡아탔다.


지하철은 끊긴 시간이라

도심철도인 렌페(Renfe)를 사용해야 했는데 가격도 부담되고 티켓구매하는 방법도 몰라

그냥 지하철 표만 끊고 기차에 올라 자는척을 했다.

다행이도 솔광장역에 내려 술취한 여행객들 사이를 헤메다

공항에서 핸드폰으로 검색해둔 호스텔로 도보로 이동했다.


Toc 호스텔에 도착해서 체크인을 마치고 배정받은 6인실 방으로 향했는데

모든 침대가 이미 다 차지되었다.

프론트에 내려가서 이 사실을 알리지 다른 방을 배정해준다.

Toc 호스텔은 독특하게도 지문인식으로 방문을 열어야 하는데,

문제는 내가 두번째로 배정받은 방문이 유독 내 지문만 인식하기를 거부한다는 거였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배정받은 세번째 방이 바로 이 코리언 청년들이 가득한 방이었다.

아침에 일어나 침대에서 핸드폰만 만지작 거리는 녀석들은 내가 신기한지 계속해서 쳐다봤지만, 그들의 눈인사 마저 외면한 채 짐만 챙겨서 바로 방을 나섰다.


식당으로 향했더니 아뭬리칸 브랙퍼스트, 뷔페식 조식이 준비되어 있다.

물론...돈이 궁한 순례자인 난 조식이 불포함된 방을 예약해서 구경만 해야 하는 상황이었지만,

다행이도 그저께부터 배낭에 매고 다니던 엠페나자가 있어 아침은 굶지 않아도 된다.



▲고귀하신 엠페나자 (empenaza)의 자태


안그래도 마드리드 여행객들에겐 생소할 법한 카미노 복장을 입고 있어서 식당에 입장하는 순간부터 모든이의 눈길을 한몸에 받고 있었는데,

엠페나자를 전자렌지에 가열하자 피자와 같은 향이 식당을 가득 메워 그들의 후각마저 나에게 집중되어 있는 듯 했다.


포크와 칼을 빌려와 김이 펄펄나는 엠페나자를 품위있게 썰어 먹었다.

빵조가리에 버터나 바르고 있던 불쌍한(?) 여행객들은 거지모습의 내가 우아하게 난도질하는 엠페나자에 시선이 고정되어 침을 질질 흘렸다.


시선을 의식하며 한판을 다 먹을 기세로 최대한 열심히 칼질했지만 금세 질려버려 두조각밖에 먹질 못했다.

결국 남은건 다른 투숙객들 먹으라고 식빵과 토스터기 사이에 두고 (대신 사과를 하나 몰래 집어들고) 식당을 빠져나왔다.


호스텔 건물을 빠져나온건 아침 10시 20분.

카미노를 시작하기엔 늦어도 너~~~무 늦은 시간이었다.

어제밤 분명히 고민같은 걸 해본답시고 프랑스 루트를 같이 걸었던 트루디 누나와 신부님이 있는 포루투갈로 가서 그들과 합류를 할 지,

아니면 산티아고를 향해 또 다시 걸을지에 대한 선택을 고려해 보았지만.

이성적으로 판단될것 같지 않다는 생각이 내 결론이었다.


'그냥 아침에 일어나서 발닿는 길로 가자'


호스텔을 빠져나온 내 두 발은 자연스레 카미노 길로 향했다.





일단 카미노 여권을 발급 받는게 시급했기 때문에 마드리드 궁전 앞 어딘가에 있다는 산티아고 교회로 발걸음을 옴겨본다,

30분을 물어물어 간신히 찾은 산티아고 교회는 마드리드라는 대도시와는 걸맞지 않은 초라한 모습의 건물이었다.

코끼리 몸체만한 나무문을 힘겹게 열고 건물 내부로 들어가니 외관과 매칭되는 니오클래시컬 양식의 교회가 나타났다.

벽에 새겨져있는 교회의 역사를 읽어보니 마드리드에서 가장 오래된 교회였던 산티아고 교회(Iglesia de Santiago)는 오래전에 파괴되었고(아마 종교혁명때)

외관만 보면 흔한 정부 기관과도같은 모습을 갖추게 된 이건물은 19세기에 같은 자리에 신축된 교회라고한다.

모자를 벗고 경건한 마음으로 Padre, 신부님이 있는 사무실로 들어섰다.

산티아고 교회 답게 사무실 내부에는 카미노의 심볼인 조개모양의 장신구들로 가득했고 볕 잘 드는 창가에는 야곱의 제단이 모셔져있었다.


"Buenos dias Padre, Como Estas? Hoy aqui por una credencial de Camino."

스페인에 와서 처음엔 혀 끝에서만 맴돌던 스페인어가 이제는 자연스레 나온다.


의자에 앉으라는 그의 손짓에 가방을 내려놓고 제단으로 먼저 향했다.

손에 꼭 쥐고있던 2유로 동전을 기부함에 넣고 고개를 숙였다.


나는 무신론자.

신의 존재를 믿지만, 종교의 가르침을 거부한다.

덕분에 모든 신과의 소통이 자유롭다.


신부님을 마주보고 앉아 바삐 움직이는 그의  손등을 바라보았다.

한참을 눈도 마주치지 않던 그가 순례자여권에 도장을 있는힘것 내리찍고선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날 올려다 보았다.

아침 햇살을 받아 빛나는 그의 눈동자는 이질감이 없는 진한 갈색이었다.


"A Santiago?"

[산티아고로 향하니?]


그가 나에게 처음 물어온 건 어디서 왔느냐가 아닌 어디로 가는지에 대한 질문으로 시작되었다.


세고비아 까지만 간다고 답했더니 그저 미소지으며 "부엔 카미노"라는 말 한마디와 함께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신다.

아무말 없이 예배당으로 날 안내하는 그의 뒤를 따라 사무실을 빠져나왔다.


홀로 남겨진 나는 잠시 교회 내부를 둘러보고선 고프로를 꺼내집었다.




꿈을 꾼걸까?

그녀의 목소리, 그녀의 웃음소리, 그리고 숨소리마저도 생생한데

그녀는 지금 내 곁에 없다.

그녀가 없는 이 길 위에서 난 뭘 더 증명하겠다고 다시 혼자가 된 걸까?



이 두가지만은 확실하다,


그녀는 이 길 끝에 있다는 것.

그리고

내가 돌아온 길 위에는 그녀에게 했던 실수나 후회스러운 기억들만 존재한다는 것.


'그럼 가야지!'


'산티아고로!'





혼자가 되겠다고 나선 길 위에서 난 혼자가 아니었다.

배낭에 달린 조개를 보셨는지 산티아고에 가느냐고 물어오시는 어느 스페인 할아버지.

그렇다고 하자 자신도 사리아에서 산티아고까지 걸어 봤다며 자랑하듯 웃어보이신다.

프랑스 루트를 마치고 다시 산티아고를 향해 출발하고 있다는 내 말에 대견하다며 어깨를 토닥여 주신다.


가는 방향이 같다며 내 페이스에 발을 맞추며 폭풍대화를 걸어오시는 할아버지께 죄송할 정도로 부족한 내 스페인어 실력.

고등학생 이후론 제대로 사용해본 적 없는 언어로 알아듣기엔 너무 심오하고 깊이있는 마드리드 역사를 이야기 하셨다.

마드리드 대학 건설시 있었던 얘기들 부터 시작해서 중국 이민자들에 대한 불평까지 답문없는 대화를 한참 하시더니,

이내 내게 결혼 했냐고 물어오신다.

카미노에서 만난 소중한 인연이 있다고 하며 윗니의 사진을 보여드리자 연신 감탄사를 연발하신다.


"linda! bonita!"


괜히 고개가 으쓱해진다.


30분을 넘게 나와 같은 방향으로 걸으시는 할아버지가 그저 방향이 같다고 하시길래 그러려니 했는데 

그와 헤어지면서 알았다,

중요한 지점까지 안내해 주신걸...

카스티야 광장에 도착하자 카미노 길을 찾으려면 우측으로 길로 꺾어야 한다는걸 내게 신신당부 하시고선

왔던 길을 되돌아 가셨다.


할아버지가 떠나신 후는 정말 혼자가 되어 조용히 앞만 보고 걸었다.


아무 말 없이 걷다보니 금세 Valverde라는 마을에 도착. 

마드미드의 끝자락에 도달했는지 황무지 땅과 거대한 화물트럭이 무섭게 달리는 변두리 길로 들어섰다.


산티아고 교회를 떠난 후 아직 한번도 발견하지 못한 노란색 화살표.

슬슬 불안함이 엄습해 오지만 맥도날드 사인을 본 순간 모든 근심과 걱정은 허기라는 욕구앞에 무릎을 꿇었다.





전세계인의 공통어인 "빅맥 세트! 콜라!" 를 외치고선 구석에 자리잡고 앉아 와이파이 타임을 가졌다.

윗니에게 카톡으로 '죽겠다는 소리'를 했지만, 금세 살겠다는 표정을 하고 버거를 흡입했다.

일상에선 냄새도 맡기 싫던 패스트 푸드를 이렇게 자주 먹게 되다니...

무엇보다 얼음을 동동 띄운 콜라는 다죽어가는 사람도 어깨 춤추게 만드는 마법을 가지고 있다. 그렇게 굳게 믿고싶다.

그래서 내 어깨는 들썩인다.





마드리드 끝자락에 위치해 있다는 산타 마리아 성당을 찾아 다시금 출발했다.

일단 도장이라도 하나 받아야 고생을 보상받는 느낌이랄까?

이런 저런 생각보따리를 다시금 풀고 있는데 눈에 노란색 화살표가 들어왔다.

카미노 길을 걷다보니 한달동안 이 노란 화살표만 찾고 다녀서 인지 정말 뜬금없는 위치에 있던 이 첫번째(나의 첫번째) 녀석을 놓치지 않고 발견했다.






화살표를 따라 걷다보니 카미노 조개 심볼이 있는 소교구(Parochial) 건물이 눈앞에 나타났다.

조심스레 철문을 열고선 마당에 들어서본다.

본 건물은 닫았는지 문을 두드려도 인기척이 없다.

건물을 돌아 뒷마당으로 향하니 웃통을 벗은 인부가 뙤양볕 아래서 노동일을 하고 있다.


"올라~"


인사를 건네니 답문도 없이 경직된 얼굴로 날 경계하는 그.


순례자라고 하자 그제서야 "오늘은 쉬는날이야" 라는 말만 하고 등돌려 다시금 일에 집중한다.


비오는 창가에 맺힌 빗방울 처럼 땀방울이 빼곡히 맺힌 그의 등에 대고 산타 마리아 성당을 찾고 있다고 말하자

 좌측으로 5분만 걸어가라고 등도 돌리지 않고 외쳐댄다.


다시금 그의 등에 대고 고맙다고 말하자 아무 대꾸 없이 손만 흔들어 준다.


인부가 가르켜 준 방향으로 2분즈음 걸었을까?

카미노 길 사인과 함께 나타난 화살표는 내가 가는 방향과는 다른 흙길을 가르키고 있었다.


잠시의 망설임도 없이 화살표가 가리키는 길로 접어들었다.






외딴 산책로같은 길을 따라 걸었는데 금세 길을 잃었다.

분명히 화살표가 가르키는 방향이었지만, 정작 두개의 길로 갈라지는 지점에는 화살표 없었다.

구글맵을 봐도 트레스 칸토스 방향으로 향하는 길은 보이지 않는다.

게다가 트레스 칸토스 방향에는 기차 철로가 수직으로 길게 뻗어있었는데, 아무리 봐도 내가 서있는 위치에선 철로를 건너는 다리나 육교는 보이지 않았다.







뙤양볕 아래서 지도없이 해맨 30분은 3시간같이 느껴졌다.

안도의 한숨을 쉬어보지만, 안심하기엔 또다른 문제가 있었다.


정수리를 향해 손가락질 해대던 햇빛이 얼굴을 향해 각도를 틀었다는 것이다.

북쪽으로 향하는걸 고려하면 상식적으로 불가능한 일인데... 어떻게 된 일인지 도통 알수가 없다.

안그래도 체감온도가 40도를 넘나드는 오늘 그늘 하나없는 흙 길을 따라 20km정도를 걸어야 한다고 생각하니 걱정부터 앞선다.

마드리드의 기후는 스페인 북쪽에 위치한 프랑스 루트와는 확연히 차이가 났다.

습하고, 바람도 없고, 나무도 없어 부르고스와 레온사이에 있는 메세타 지역보다 (많은 이유로) 두배는 더 혹독했다.






렌즈에 뭍은 땀도 인지하지 못한채 고프로에 대화를 해댔다.

얼굴 정면으로 넘어오려는 햇빛을 이기려고 안간힘을 쓰며...

끝이없는 흙길을 따라 걷다보니 빈민가를 관통하는 길에 들어서게 되었는데, 별의 별 생각이 다 든다.


혼자 걷다보니 작은 소리에도 사스라치게 놀라고

혹시나 전기톱을 한손에 쥐고 나를 향해 달려오는 살인마가 내 뒤를 따라오고 있지는 않을까 하는 오싹한 생각이 들어 자꾸만 뒤를 돌아봤다.


혹시나 해서 마틸다 (쓰레기 통에서 주운 빗자루의 손잡이를 워킹스틱으로 사용하고 있다)를 꺼내들고 힘을실어 땅을 짚으며 걸었다.

하지만 누구를 위협하기엔 너무나 날렵하게 생긴 마틸다...

넌 누굴 닮...


날 닮았구나^^






우려했던 것과 달리 빈민가를 지나며 사람 인기척을 느낄 수 없을만큼 아무일도 없었다.


괜히 머쓱해져서 셀카를 한 장 남긴다.


'찰칵'

'해시태그, 덥다'

'해시태그, 허벌나게.'


빈민가를 지나 이어지는 길은 너무나도 혹독했다.

사람이 한동안 걷지 않았다는 흔적이 많다.

그 흔한 음료수 캔이나 비닐봉지 그리고 카미노 사인이나 화살표 조차도 찾아 볼 수 없었다.


'잘못된 길에 들어섰나?' 라는 의문을 갖기엔 트레스 칸토스를 향해 너무나 곧게 뻗어있는 이 길.

그렇다고 다른길을 찾다간 또다시 길을 잃을것 같았다.

그저 구글 맵 앱에 실 오라기처럼 가느다란 선으로 표식되어 있는 이 길을 따라갈 수 밖에...


오후 세시가 넘어가자 내가 들고 다니던 물병은 습기라고 부르기도 거시기한 정도의 수분만을 머금고 있었다.

물병에 가득했던 물은 모두 내 몸속으로 흡입이 되었다가 이미 땀으로 다 배출 된 후 였다.


식수대도 하나 없고,

상점도 하나 없고,

외딴 농가나 버려진 창고하나 보이지 않는다.



사람이 밥을 먹지 않아도 30일은 살아 남을 수 있지만

물없인 3일도 살아남지 못한다고 한다.

3일굶고 걸었던 폰페라다에서도 이정도로 힘들진 않았던거 같다.


워낙에 땀이 많은 나는 이미 몸의 모든 수분을 고갈하였는지

더이상 땀을 배출하지 않았고

대신 온몸이 불덩이 처럼 달아 오르기 시작했다.


현기증이 나서 10분도 채걷지 못하고 길바닥에 철푸덕 앉았다.

입술이 너무 말라 혀로 적시려는데 혀도 말라있다.

옷에 베어든 땀이라도 섭취하려고 옷을 쥐어짜려는데 

탈수되었을때 소금물을 섭취하면 죽을수도 있다라는 말이 생각나서 그만뒀다.


포기하고 싶었지만 여기서 지금 포기한다 해도 힘든건 마찬가지다.

내 몸처럼 달궈진 핸드폰을 손에 쥐고 구글맵을 켰다.


전방 2km 지점에 El Goloso라는 마을이 보인다.

희망이 생기는 순간 초인의 힘을 발휘하는 내 몸에 끌려 20분만에 간신히 마을 끝자락에 도착했다.


마을에 무슨 결혼식이라도 열렸는지

내 모습과 너무나도 대조되는 화려한 옷차림을 한 남성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들에게 다짜고짜

"agua agua"를 외치니 어느 한 남성이 다가와선 곤란하다는 표정을 짓는다.


'아니야.. 아니야!!'


이 마을엔 상점이 없단다.


내가 스페인어를 공부할때 부정사를 잘못 배웠나 하고 다시금 물어보지만 고개를 절래 절래 흔들어 댄다.

내 절망감이 느껴졌는지 잠시 생각에 빠진 그는 길 끝을 가르키며 마을 중심부에 고급 레스토랑이 있단다.


'아니... 진작에 말해주던가!'


'혹시나 내 꼴에 레스토랑은 부담스러워 할까봐 처음부터 일러주지 않았던걸까?'


발을 절뚝이며 그 남성이 가르키는 방향으로 걸어갔다.


아니,


달려갔다.




레스토랑 내부에 들어갈 힘도 없어서 테라스에 있는 의자에 앉았다.

이상한 놈이 다짜고짜 착석을 하자 쫒아낼 기세로 날 따라온 웨이터가 얹짠은 표정으로 물어온다,


"밥먹을거니?"


"물부터 물부터! 제발 물부터 주세요"


심기가 불편하다는 표정을 짓고선 구두에 유난히 힘을 실어 건물 안으로 들어간 웨이터는 잠시후에 물 한병과 유리잔을 내 앞에 내놓았다.

무슨 할말이 더 있는지 잠시 서있던 그는


계산서를 내 얼굴에 내밀었다.


"돈 먼저 지불해"


"...?"


내 꼴이 아무리 볼썽 사나워도 그렇지 고작 물 한병을 선불로 결제하라니...


괘씸해서 100유로 짜리를 식탁위에 던지듯 올려났고 웨이터는 한숨을 쉬더니 내가 내던진 지폐를 가지고 건물 안으로 사라졌다.


복수라도 하려는건지 그는 내가 물을 다 마시고 가방을 다시 멜때까지 잔돈을 가져다주지 않았다.






기분이 심히 상했지만 업자의 입장도 이해해야 한다.

검은옷에 땀에서 배어나온 소금기가 껴서 허옇게 물든 셔츠와, 선블록이 땀에 희석되어 얼룩덜룩한 살갗에다, 레스토랑의 분위기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은 복장을 한 내가 다른 손님들에게 불편함을 제공할 수도 있다는걸 나도 이해한다.


그래서 더 쉬고 싶었지만 민폐라는 생각에 일찌감치 일어섰다.


트레스 칸토스를 향한 마지막 10km를 더 열심히 걸어보기로 한다.


내 가치를 알아봐주는 사람이 없을때

난 무언가를 더 열심히 하는 것 같다.


그래서 일상에서도 더 어려운 길을

더 오랫동안 걸어왔던게 아닐까.






한참을 생각에 잠겨 걷다보니 카미노 심볼과 산티아고까지 남은 거리의 키로수가 적혀있는 비석을 발견했다.


"A SANTIAGO 654KM →"


목적을 이루고 원점에 돌아왔을때 

노력보다 포기가 더 어렵다는 걸 배운다.


그래서 난 오늘도 난 포기하지 않고,






목표 도시인 트레스 칸토스 (Tres Cantos)에 도착할 수 있었다.


세개의 노래 라는 이름을 가진 트레스 칸토스는 계획도시로 형성된 주거지역인데 도시의 번잡함을 싫어하는 갑부들이 형성한 도시라고 한다.

근처에는 자연보호 구역이자 중세시대에 왕들의 사냥지역으로도 쓰였던 숲이 있다고 한다.


계획도시라 그런지 마을이 확실히 정갈하고 깨끗하다.

여기도 역시나 내 꼬질꼬질한 모습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숙소를 찾아 마을을 돌다가 정부청사 건물 옆에 있는 카미노 지도를 발견했다.

1999년도에 개발 되었다가 2010년도즈음 카미노 붐이 사라져 순례자들의 발길이 끊겼다는 마드리드 루트는 지도에서 조차 초라하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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