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mino de Madrid|| Ep.3 투우의 도시 콜메나르 비에호

Camino de Madrid

Episode Three.


0 7. 0 7. 2 0 1 6






카미노 de   

      Madrid







새벽 다섯시 삼십분.

눈 감은지 십분도 채 되지 않은것 같은데 벌써 일어나야 할 시간이다.

어제밤 새벽에 쥐가 나서 종아리를 부여잡고 잠시 침대위를 데굴데굴 굴렀던 기억밖에 없던걸로 보아 기절하듯 잠들었나보다.

새벽 여섯시까지 비워줘야 하는 시청의 알베르게,

'두시간만 더 자고 일어나면 상쾌하겠는데...' 라는 생각을 하며 침대위에서 뒹굴거리고 있는찰나

어제 날 저세상으로 인도하실 뻔한 경찰형이 노크도 없이 문을 열고 들어온다.


잽싸게 일어나서 마치 준비를 하고 있던 것마냥 분주히 움직였다.


배낭을 꾸리느 내내 문틀에 기대어 날 뚫어져라 쳐다보던 경찰형

피곤한 모습이었던 그는 건물 밖까지 나를 인도하는 내내 침묵을 지켰다. 

작별인사를 언제해야하는지 고민하고있는 나에게 선뜻 먼저 악수를 건네며 "부엔 카미노"라는 인사를 건넨다.


"그라시아스"


짤막한 작별인사로 그는 익숙한 그의 집으로,

난 낯선 거리로 향했다.




새벽 공기가 나쁘지 않다.

다리 상태도 나쁘지 않다.


어두캄캄한 거리에 무겁게 내려앉은 정적을 벚삼아 발을 내딛는다.

마드리드길을 처음 걸었던 어제 호된 신고식을 치룬 후 아침은 꼭 든든하게 먹고 출발해야 겠다는 결심을 해본다.

어제 마트에서 사둔 복숭아와 사과는 가방에 쑤셔넣고 어딘가서 김을 모락모락 피우며 날 기다리고 있을 스페인 오믈렛을 찾아 나섰다.

'이 꼭두새벽에 여는 음식점이 있을까?' 하는 걱정도 잠시,

혹시나 하는 마음에 어제 거리를 방황하다 지나쳤던 기차역 앞에 위치한 호텔로 갔더니 아재들이 커픠를 마시고 있는 모습이 창 건너로 보인다.

무난하게 오믈렛과 에스프레소 한잔을 시켜놓고 천장에 붙어있는 티비에 흘러나오는 아침뉴스를 귀담아 듣는다.

팜플로나에서 7월에 곧 개최될 산 페르민 축제가 비판적으로 다뤄지고 있었다.

산 페르민 축제가 곧 사라지게 된다는 이야기를 접하고선 꼭 참여하고 싶었는데...

난 지금 산티아고를 향해 다시 걷고 있다.


잠시 생각에 빠져있는데 주문했던 음식이 나온다.

고인돌 닮은 주인 아주머니가 내려준 에스프레소가 달달하다.

들고다니면 짐이 될거라며 게걸스럽게 먹어치운 납작 복숭아도 달달하다.

가벼운 마음으로 마드리길의 둘째날을 시작해 본다.




시작부터 갈림길이 나와 십분동안 서서 고민해야 했다.


자전거 길로 걸을 것인가?


아니면


카미노 길을 가리키는 노란색 화살표를 따라갈 것인가?


고민이라고는 하지만 사실 다음 마을까지 곧게 뻗어있는 (포장된) 자전거길을 선택하고 싶었다.

그래도 카미노 길에 오른이상 공식적인 카미노 길을 걸어야겠다며, 멀리 돌아가는 흙길을 선택.


뭔가 마음은 뿌듯했지만 그 행복은 오래가지 못했다.


이번엔 날씨가 변덕 스럽다.

라이온킹의 오프닝 노래에 걸맞은 햇살을 등지고 걷고있는데 빗방울이 모자의 챙을 가볍게 두들기더니 급기야 하늘이 탄냄비처럼 검게 물들며 차가운 빗줄기를 뽑아내고 있었다.




결국 쉘(방수잠바)을 껴입어보지만 빗방울이 거세지면서 긴바지까지 꺼내 입어야 했다.






그와중에 기록은 남겨야 겠다며 아이폰으로 인증샷과 고프로로 셀카를 찍으며 행군을 이어간다.


'Hell'

지옥을 향하는 길이라는 생각이 든다.

저만치 앞에 검은 구룸이 밀집되어 있는곳이 내가 오늘 들려야 할 콜메나르 비에호.

최악이다.


후덥지근했던 날씨가 쌀쌀해지고, 비를 맞으니 금세 춥기까지 했다.

뭐라도 껴입어야 겠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장대비를 맞으며 배낭을 꺼낼 염두가 나질 않아 차라리 땀을 내며 걷자며 발걸음을 재촉해 보았다.

미친듯이 비를 뚫고 걷고있는데 양 옆으로 펼쳐지는 목장과 허허벌판이 정말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넓다.

간간히 나오는 건물들은 폐가인지 흉가인지 사람이 살것처럼 보이진 않는다.




어제는 정말 정신없이 걸었던지라 감정에 충만하지 못했다.

다시금 혼자가 된 걸 가슴에 각인하려는듯 외로운 길에 오른 난 혼자서도 행복할 수 있어야 한다는 압박감에 마음이 무거웠다.


현대인들이 가지고 있는 우울함에 휘말려 나도 힘든 나날을 지냈었다.

그런 나에게 카미노는 너무나 소중한 친구들과 운명같은 사랑을 맺어주었지만 내가 카미노에서 원했던건 대인관계에서 얻을 수 있는 행복이 아니였다.

난 항상 좋은 사람들에 둘러쌓여 있었다.

살면서 대인관계가 항상 수월했던 내가 외롭고 우울할 수 있다는 사실이 나도 납득하기 힘들었지만,

군중 속의 고독과 외로움은 어쩌면 내 자신과의 대화와 시간이 부족했기에 일어난 일이 아니었을까?


남들이 괜찮다. 잘 하고 있다라고 해주는 말 보단

내 자신에게 드는 위로가 간절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세상의 끝이라는 피스테라에서 난 내 자신에게 쓴 편지를 읽으며 내 자신에게로 부터 위로를 받았다.




어려웠던 마음들은 세상 끝에 두고 난 새로운 나의 모습을 찾기 위해 다시금 길에 올랐다.





마드리드길이 정말 혼자가 되었을때도 행복하단 감정을 느낄 수 있는 조건을 갖추고 있진 않다.

하지만 이런 최악의 상황에서도 밝은 모습을 찾아가고 있는 지금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다.






물론 불평하는 습관은 버리지 못했다...

원래 태생부터 비관적이었기 때문에...


아침에 자전거길을 선택했으면 한시간 만에 왔을 거리를 멀리 반달모양으로 돌아왔음에 짜증이 조금 났다.

비도 덜 맞았을 텐데...






마드리드 길엔 멋진 건물도, 멋진 경관도, 소소한 사람들의 모습도 볼 수 없다.

하지만 분명 '멋'도 있고 '매력'도 있을 것이다.

그런 숨겨진 매력들을 나 혼자 다 가질 수 있다니,

가슴이 벅차다.





흙길로 접어든 이후로 정확한 카미노 사인이 없어 조금 불안했지만, 다음 마을인 콜메나르 비에호에 들어선 순간 마음이 놓인다.

트레스 칸토스와는 다르게, 중세마을의 분위기를 갖춘 콜메나르는 프랑스 루트에 놓여진 수많은 마을과 같이 드높은 성당을 중심으로 원형으로 형성되어있었다.



▲출처 콜메나르TV 공식 블로그


마을 뒤로 병풍처럼 펼쳐진 산이 내가 넘어야 할 산이라고 생각하니 깊은 한숨이 나오지만,

고난길 앞에서 희열을 느끼는 내 변태적인 도전정신을 꿈틀거리게 한다.





스페인 마을들이 이쁜 이유는 골목 골목 엉성한듯 정갈하게 놓여진 돌길 때문이 아닐까?

유럽 어딜가나 볼 수 있겠지만,





스페인의 작렬한 햇빛을 받으면 핑크빛으로,






저녁에 술 한잔을 걸치고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만나면 램프 빛을 받아 금빛으로 치장한 모습이 너무 매력적이다.


카미노에서 정말 못 보여줄 모습만 보였다고 말한 윗니.

하지만 난 그런 그녀의 때론 엉성하고 엉뚱하지만 소소하고 꾸밈없는 모습에 반했더랬다.

그런 그녀를 일상에서 만나면 이 돌길처럼 또 색다른 매력을 볼 수 있겠지.

상상만 해도 너무 설렌다.



콜메나르 마을에 도착해 곧장 향했던 성당은 마을의 제일 높은 지형에 위치해 있었다.

비를 맞으며 힘겹게 오른 언덕위에 마주한 성당이 반갑다.


프랑스 루트에서 매일같이 새로운 마을에 들어서면 보이던 성당이 어제 지냈던 트레스 칸토스엔 없어서,

마드리드 길엔 없겠지 하고 아쉬웠는데

이렇게 나타나 주니 고된 길 위에서 오랜 벚을 마주친 기분이다.


성당의 상징적인 거대한 문을 열고 내부로 들어섰다.

모자를 벗고 숨막힐 정도의 정적이 흐르는 교단을 가로질러 신부님의 방으로 직진했다.


비에 젖은 내 모습을 지긋히 바라보던 신부님이 아무 꺼리낌없이 포옹으로 맞아해 주신다.


단번에 내가 순례자라는 걸 알아채신 신부님은 100년도 더 되어보이는 낡은 상자에서 도장을 꺼내 보이시더니


"오랜만인걸?" 이란 말과 함께


도장을 "꽝!" 하고 찍어주셨다.


업무가 있다고 급하게 준비하고 나가시는 신부님을 뒤따라 성당을 나섰다.


밖에는 비가 하염없이 쏟아지고 있었고,

모자를 푹 눌러쓴 채 그 속을 가로지르는 난 무적이었다.



점심을 먹으러 가는 길이기 때문~♪




지역에 대한 정보가 아무것도 없던지라 성당 근처에 있는 박물관으로 무작정 들어갔다.

너무나 밝은 미소로 날 맞이해 주는 큐레이터 누님.


"비가 많이 오네?" 라며 장난스럽게 웃어보이는 누나를 따라 "un poco" [조금 오네요] 라고 되받아 쳤다.

너무나 한가해 보이는 박물관을 혼자 지키고 있던 누님은 심심하셨는지 내게 이런저런 질문도 해주고 직원들만 쓰게 되어있는 와이파이 비밀번호도 선뜻 알려주셨다.


투어를 해주겠다며 박물관 구석구석을 소개해주는 누님 덕분에 콜메나르에 대한 역사도 배울 수 있었다.

농촌으로 시작되어 지금은 크고 작은 공장이 산업을 이루고 있다는 콜메나르에는 투우 역사가 깊이 베어 있단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투우사들을 창출해낸 도시기도 한 콜메나르, 하지만 동물 보호단체에게 핍박을 많이 받아 이곳에서도 투우 문화가 서서히 사라지고 있단다.


산 페르민과 더불어 한 나라의 역사와 그 나라 사람들의 영혼과 열정이 깃든 문화들이 그저 시대적인 잣대에 의해 숙청되고 있다는게 조금은 씁슬하다. 인류의 사상은 분명 시대에 따라 옳고 그름을 택한다. 인권이며, 동물 보호단체의 이면적인 모습의 정황을 보면 그들의 모순된 발걸음을 발견할 수 있다.


집채만한 거대한 동물과 맞서 한치의 뒷걸음질도 치지 않고 우아한 몸짓으로 야수들을 다루는 투우사는 내가 스페인에서 느낀 스페인 사람들의 모습을 많이 닮았다. 그런 모습을 직접 눈으로 볼 수 없게 된다니 정말 안타까운 일이다.


누님과의 끝없는 수다의 흐름이 배에서 나온 울부짖음에 끊겨버렸다.

누님이 추천하는 최고 맛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El lagar" 라는 이름을 가진 이 음식점은 와인을 직접 생산하는지, 음식점보단 와인바 같은 분위기 였다.





El Lagar란, 스페인어로 [포도를 빻는 거대한 돌 통] 이란 뜻을 가졌다.

이런 문화가 베어있는 단어를 배울때마다 문과생의 희열은 엄청나다.


문앞에 시그니쳐 디시처럼 붙여진 callos artelu라는 음식을 먹어보고 싶었지만 저녁에만 된다는 말에 그럼 아무거나 달라고 주문을 하고 큐레이터 누님이 극히 추천하신 "Vino de rojo" 라는 음료를 시켰다.




주문한 음식이 나오길 기다리며 큐레이터 누님이 오늘 더울거라는 말과함께 챙겨준 부채를 펼쳐보았다.


아니... 이렇게 폭우가 쏟아지는데 더울거라니...

짐이 될거같아 종업원에게 선물로 줬다.




살이쪄서 호흡이 곤란하신지 씩씩거리며 걸어나온 주방장 아저씨가 직접 주문한 음식을 서빙해 주셨다.

입맛을 모르겠다며 샌드위치에 들어갈만한 소스는 죄다 내 앞에 나열해 주시고선 쿨하게 주방으로 사라지셨다.

정말 "아무거나 달라" 했기에 뭐가 나올지 궁금했는지 고작 샌드위치라니!

요리라 하기엔 그리고 5유로치곤 너무 간단한 샌드위치지만 손바닥 두께만한 스페인 베이컨을 가득 품고있어 모든게 용서 되었다.

달달한 스페인 베이컨이 짭쪼름한 스위스 치즈와 어우러져 금상첨화를 이루었다.


같이나온 vino de rojo는 바스크 지방에서 유명한 틴토 데 베라노와 별반 다를게 없었다.

저렴한 레드와인에 사이드를 부어 마시는 틴토 데 베라노는 "여름의 와인"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갈증을 해소하기에 최고의 음료인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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