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mino de Madrid|| Ep.2 노래 세번, 비명두번에 저승으로 갈 뻔한 트레스 칸토스.

Camino de Madrid

Episode Tw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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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미노 de   

     마드리드




지나가다 주워들은 얘기로는


첫째. 트레스 칸토스엔 알베르게가 없다 는 팩트와

둘째. Ayuntamiento란 시청과 같은 개념의 정부행정기관이 순례자를 위해 쪽방을 내준다는 소문.


전자나 후자나 믿기 힘든 루머였지만


전자는 트레스 칸토스를 도보롤 샅샅히 뒤져본 결과 검증된 사실이었고,

후자는 터무니 없는 소문 같았지만 선택권이 없는 난 무작정 지도가 가르키는 방향으로 향했다.





때국물 흐르는 몰골로 삐까번쩍한 시청건물로 들어서자 문앞에서 일하던 직원이 인사도 없이 날 스캔하듯 쳐다본다.

날 경계하는 눈초리의 직원에게

"Estoy peregrino y yo quiero dormir aqui por favor"

[전 순례자이고, 이곳에서 잘 수 있다는 말을 듣고 왔습니다]

라고 또박또박 말하자 그제서야 미소를 지어보인다.

'다행이다'


잠시만 기다리라는 여직원의 눈길을 따라 문서를 곁눈질로 훔쳐봤지만 체크인 기록부같진 않고 가이드라인 같은 문서였다.

집중을 했는지 한동안 말이 없어서 초조하게 기다려 본다.


그녀의 다음말이 긍정의 대답이길 간절히 바랬지만

굳게 닫혀있던 입으로 흘러나온건 "안된다는" 말이었다.


시무룩해져서 다음 행선지를 심각하게 고민해본다.

내 상황도 모르고 뭐라 주저리 주저리 떠들어 대는 여직원의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말하는 속도가 아르헨티나 사람들 못지않게 빠르던 여직원은 내가 스페인어에 능숙한 줄 알고 계속해서 떠들어 대더니 답답하다는 표정을 짓는다.

자신이 차고있던 손목시계를 가르키더니 숫자9를 반복해서 가르키며 다시 돌아오라는 몸짓을 해댄다.


"아...?아....!?"


그제서야 이해가 됬다.


시청의 업무와 겹치지 않도록 9시 이후에 받아주겠다는 말을 하려던 것이었다.

가방만 방에 두고 잠시 어디 가 있다가 다시 돌아오란다.


그녀를 따라 수많은 계단과 복도를 통과해 지하에 있는 쪽방으로 안내되었다.

자세히 보니 중년의 여직원은 안내데스크 뿐만 아니라 경비도 담당하고 있는듯 했다.




잠시 둘러보는 방이 마음에 쏙 든다.

다만 단점이 있다면, 매트리스가 너무 더럽다는 거였다.

누가 밤새 오줌이라도 지렸는지 예술혼을 불태운 대동여지도가 그러져 있었고,

알지모를 짐승이 매트리스의 모서리를 뜯어먹은 흔적이 있었다.

그나마 괜찮아 보이는 매트리스를 골라 벙크베드의 아래층에 깔았다.


다행이도 이불은 빨아둔건지(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어서 처음엔 더러운 줄 알았다) 냄새도 나지않고

알지모를 누군가의 털 한오라기도 발견되지 않아 매트리스 커버로 사용하기로 했다.


서둘러 달라는 여직원의 말에,

혹시라도 밉보이면 쫒겨날까 싶어 급하게 지갑만 챙겨 시청건물을 빠져나왔다.


저녁 9시까지 뭘 해야할까라는 고민은


이라는 욕구앞에 어울리지 않았다.


숙소를 찾으려고 마을을 헤메다가 까르푸 몰이라는 곳에 눈도장을 찍어뒀었다.

이렇게 조금한 마을에 설마 몰이 있겠어하는 의심을 품었지만 건물 밖에서 풍겨지는 아우라는 분명 엄청난 규모의 시설임을 증명하고 있었다.








규모가 정말 엄청났다.

트레스 칸토스가 엄청나게 외지고 시골일거라는 내 편견을 한방에 날려버렸다.


하루종일 신고 있었던 무거운 부츠가 한없이 가볍게만 느껴지는 발걸음으로 몰을 탐색했다.


'내가 지금 제일 먹고 싶은건?'

이라는 질문을 주제삼아 몰 내부를 쥐잡듯이 답사하고선,


'일식을 먹어야 겠다'라는 결정을 내렸다.


공교롭게도 6시반부터 연다는 일식집.


'어쩔 수 없지!'라는 말인지 방구인지 알수없는 이유를 달고선 펍으로 향했다.





"CERBEZA GRANDISIMA"

[맥주 제일 큰걸로!]를 외치고 바텐더 앞에 자리잡으니

반리터의 생맥과 알프레도 소스 범벅이된 감자가 타파스를 서빙해 준다.


온종일 수분 부족에 탈진증세까지 시달렸던 난 생맥을 먼저 들이켰다.

식도를 강제로 열어두고 미친듯이 퍼마시고 싶을 정도로


시원하고. 청량하고. 달콤했다.


타파스로 널리 알려진 스페인식 감자요리 브라바스 (Bravas)의 사촌이라도 되는걸까?

이건 마치 한식집에 갔을때, 음식에 대한 기대감을 한껏 품고 맛보는 밑반찬 감자조림의 맛보다 100배는 맛있다.


감자만 먹으면 느끼할수도 있었지만, 지역 생맥인 마후(Mahou)의 쌉살함과 어우러져 내 입속에서 미친존재감을 알리고 있었다.


게눈감추듯 마셔버린 맥주잔을 발견한 바텐더는


"Otra" [하나 더?] 를 물었고


난 "Por favor!" [제발!]을 외쳤다.


스페인의 와인만큼 다양하다는 타파스는 내가 그릇을 비워내는 족족 리필 되었고

반리터 맥주 네잔과 타파스 8그릇을 흡입한 후 술에 취해 펍을 빠져나왔다.




6시반까지는 30분이 남아서 음식점 앞에있는 벤치에 앉아 와이파이 타임을 갖고 있는데 경비아저씨가 다가와서는 여기 앉아 있으면 안된다며 주의를 준다.

의아한 표정으로 그를 쳐다보자 고객만을 위한 자리라며 어서 일어나란다.


설마, 과연, 내가


'거지라도 되는 줄 아는건가?'

'요즘은 아이폰 쓰는 거지도 있나?'




하지만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 있었다.

옷에 뭍은 소금기.

믿기 힘들겠지만 땀이 마르고 말라 생성된 人염분이었다...


꼴은 확실히 거지가 맞고.

술을 퍼마셨으니 술냄새가 날테고.

아직 씨지를 못했으니 악취가 나는건 당연할테고...

밥을 못먹어서 배가 고프니...


거지가 맞구나.


그에게 석연하게 설득하기 위해 동원된 내 부족한 스페인어와 손짓과 발짓은 무용지물이었지만.

계속 날카로운 눈초리로 날 쫒아내려는 경비아저씨에게 최후의 발언으로 내뱉은 "peregrino" [순례자]란 단어는 엄청난 효과가 있었다.


내 주위를 맴돌던 경비아저씨는 6시반이 되자 일식 가게문을 두드려 점원을 불러낸 후 날 테이블로 안내할 것을 지령하였다.


'모...몸둘바를..'


괜히 내가 뭔가 대단한거를 하고있는 사람 같아 뿌듯했다.




오늘은 미친듯이 질러주겠어!! 하던 내 다짐은 일식집 메뉴앞에서 처참이 무너졌고

결국 11유로짜리 라멘 정식으로 스시에대한 꿈을 접었다.


정말 걸신들린 사람처럼

환장하고 먹었다.


30분전에 흡입한 맥주 2리터와 타파스 8그릇은 도대체 어디로 증발해 버린걸까...

일상에서도 이렇게 대사가 빠르면 하루에 10끼도 먹을수 있겠다라는 행복한 상상을 하며 음식점을 빠져나왔다.


체크인 시간까지 한시간이 남았다.

도저히 내 복장으로 몰을 배회하기엔 무리가 있다싶어 화장실에서 웃옷을 물로 대충 닦은 후 까르푸 마트로 향했다.


눈에 제일 잘 띄는 육류 코너에가서 재료를 구경하며 '이건 이렇게 조리해서 먹으면 맛있겠다'라는 배에 거지들은 상상을 맘껏 한 후 내일 아침으로 먹을 과일과 물 1L 한병 그리고 레드불 1L를 주머니에 있는 동전을 탁탁 털어 구입하였다.





워낙에 순례자가 없어서 그럴리 없겠지 했지만,

혹시라도 다른 순례객이 체크인을 같이할까 하는 마음에 설레는 마음으로 시청건물에 도착했다.


역시나 순례객은 나 혼자 뿐이었고 씻으려고 들어간 화장실에서 카미노 마드리드의 현실을 몸소 느낄 수 있었다.

인적이 얼마나 드물었으면... 거미가 주인인듯 거미줄로 데코레이션을 한 샤워실.







침대위에 오랜만에 카미노의 일과인 발검사를 해 본다.

주인을 잘못 만나서 고생하는 녀석들에게 난 감사하다.

산티아고까지 날 무사하게 데려다 주고 피스테라를 거쳐 이젠 내 마드리드 루트의 종착지인 세고비아까지 내딛고 있는 녀석들에게 말이다.


정말 아팠던 날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괜찮기 때문인지 내일 일정에 대한 걱정은 없다.

다만 조금 외롭다.


그래,


내가 생각했던 이상적인 카미노는 이렇게 외롭고, 고되고 (기본적인 욕구를 해결하지 못한채 생존을 위해) 치열한 곳이었다.

계속 혼자였더라면 마드리드 길을 걷는 난 (지금은 알 수 없는 다른 의미로) 행복했을 수도 있었겠다.

하지만, 윗니와 함께 걸었던 길이 너무나 아름다운 꽃길이었기에,

다시금 혼자가 된 이 길은 처음 혼자 올랐던 카미노 길 보다 더 쓸쓸하다.


이런저런 잡다한 생각이 교차하며 샤워실의 거미줄보다 복잡한 생각의 미로에 빠지게 되었다.

갑자기 가슴이 답답해서

지하방인 이곳을 빠져나가고 싶었다.





저녁이라 비상구 불을 제외한 모든 불이 소등되어 있는 시청건물을 헤메었다.


글을 쓰고있는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바보같은 행동이었다.


이유인즉슨,


당연히 시에서 중요한 일을 하는 곳이기에 경비원이 있겠거늘,

경찰이 있을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어두운 복도를 걷던 나를 발견한건 다름아닌 새벽보초를 서고있던 젊은 경찰.

날 발견한 순간 "악!!!"하고 소리를 지르는 바람에 나도 외마디 비명을 지르고선 가던길을 멈추고 얼어버렸다.

허리춤에 손을 가져다가 멈춰서라는 명령을 하는 그에게 난 뭐라 답할지 심각한 고민을 해야했다.

어둠 속에서도 어렴풋이 보이던 그것. 그의 손이 머물고 있던 허리춤엔 권총이 매져 있었다.


낮에 있던 일이 생각나서

"PEREGRINO!!" 라고 소리질렀다.

다행히 경계심이 한꺼풀 풀린 젊은 경찰은 나에게 천천히 다가오더니 증명해보이라는 식의 말투로 질문을 해댔다.

발바닥을 보여주자 바로 믿는 눈치다.


그는 놀라서 소리 지른게 멎적었는지 "조심해" 라는 간략한 말과함께 어둠속으로 사라졌다.


놀란 가슴을 부여잡고 방으로 돌아가려는 찰나 자판기가 있는 직원 휴게실을 발견했다.




트레스 칸토스(세개의 노래)라는 외딴곳에서 외마디 두번과 함께 저세상으로 갈뻔했다...

탄산이나 이온음료로는 현재 내 마음이 달래질 것 같지 않아 자판기 속을 두리번 거리다가 수박쥬스를 발견.


카미노 패밀리들과 주고받던 말장난에 자주 언급되었던 "이비자"란 이름을 가진 수박쥬스를 선택.

별생각 없이 맛을 봤는데, 도대체 왜 수박쥬스에 이비자란 이름을 갖다 붙였는지 이해가 될 정도로 맛있었다.


세상의 모든 수박쥬스를 다 먹어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정도로 수박을 좋아하는 난 태국에선 맛 보았던 땡모반이 당연히 끝판왕일거라 단정짓고 살아왔었 더랬다. 하지만, 스페인의 이비자는 아마 평생 살아가면서 한가지의 음료만 먹으라면 한치의 고민도 없이 선택 할.

그런 판타스틱한 맛이었다.




하나로는 안되서 두개를 더 뽑아 마셨다.


그리고선 윗니에게 문자를 보냈다.


"윗니야 난 여태 잘못된 이비자를 알고 살았나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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