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mino de Madrid||Ep.6 마드리드 길에서 길을 잃다.

Camino de Madrid

Episode 6


0 7. 0 8. 2 0 1 6










카미노 de     

       마드리드





근래에 제 블로그에 사용할 새로운 스킨 작업을 하느라 카미노 연재가 늦어지고 있습니다. 매일매일 방문해주시는 분들이 계신데 새로운 컨텐츠를 제공해 드리지 못한점 대단히 죄송합니다. 그리고 오타도 많고 실수도 많은 제글을 찾아주시는 모든 분들께 감사하다는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어제밤 분명 욕조에서 잠들었는데 깨어보니 침대위 자유낙하 자세로 뻗어있다. 나체로 이불도 덮지 않고 잠들었지만 스페인의 뜨거운 태양을 안고 잤는지 방이 훈훈할 정도다. 관에서 십년만에 나온 드라큘라마냥 있는힘껏 기지개를 켜고 창문을 열었다. 연인의 방도 아닌 남정네의 방을 달궈놓은 주범인 태양이 이른 시간에도 불구하고 작렬하다. 나체인 내 모습이 부끄러운지 얼굴 붉힌 태양. 저 녀석이 오늘 나의 길을 밝힐, 그리고 나와 함께할 유일한 마드리드길 동반자다.   


웃옷만 대충 걸치고 부엌으로 느긋한 걸음을 옮겼다. 다른 투숙객들은 아직 한밤인지 건물 전체에 적막이 흐른다. 내집인것마냥 자연스레 발걸음이 냉장고 앞에 멈춰섰다. 냉장칸에 대가리를 쳐박고 스캐닝을 마친 후 우유와 오렌지쥬스 그리고 잼을, 주방 카운터에 놓여진 사과, 시리얼 그리고 식빵과 접시까지 모두 품에 끌어안았다. 욕심이 많은거고, 머리가 둔한가보다. 어정쩡한 고양이 걸음으로 간신히 식탁에 안착. 



문과생의 감성으로 빛의 굴절과 각도를 고려한 세팅을 마쳤다. 푸엔테 라 레이나 이후로 숙소에서 이렇게 호화로운 아침을 먹어본적이 있던가... 혼자가 되면 밥도 잘 챙겨먹지 않을거라며 걱정하던 윗니. 그녀에게 보란듯이 '나 이렇게 잘 먹고있다' 며 인증샷을 보내본다.



때마침 윗니에게서 답장이 온다. 음식사진말고 얼굴을 보고싶다하여 후광을 45도 각도로 잡고 셀카한장. 잘생겼다는 말에 손사래를 치지만 고개는 끄덕였다. 잘잤냐는 물음에 잠보다는 한구의 송장마냥 나체로 기절했었다며 너스레를 떨어본다. 웃픈 표정으로 걱정하고있을 윗니에게 안부를 전한다, "나 오늘 컨디션 좋아! 아주 잘 걸을거 같아."



운영이 상당히 후리한 프리자 숙소. 카운터에서 아무리 헛기침을 해대도 나타나는 사람이 없어 방 열쇠만 카운터에 놓고 체크아웃도, 그리고 (루마니아 누나에게) 작별인사도 하지 못하고 떠나야했다. 변을 보고 뒤를 닦지 않은 기분이다. 주춤이는 발걸음이 분명 새로운 인연을 향해 걷고있지만 설렘보단, 익숙한 것을 떠나야하는 아쉬움이 묻어있는 발자국을 남기고있었다. 


오늘은 비교적으로 짧고 쉬운 일정. 길 상태도 좋고 발 상태도 좋다. 단숨에 만자나레스 마을을 벗어나 만자나레스 국립공원 사무소 앞에 도착했다. 캐나다에서 자주 보았던 익숙한 모습의 통나무 집. 그 안에 둥지를 튼 국립공원 사무소는 이른아침에도 불구하고 방문객들로 붐비었다.  안내 카운터 앞에 서성이고 있는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나에게 쏟아진다. 그들의 관심을 레드카펫삼아 안내원 앞까지 직진하게되었다. "Cellos?" 라는 내 물음에 서랍을 뒤척이는 직원. 깊숙히서 꺼낸 도장을 자랑하듯 흔들어 보인다.


"두번 찍어주세요."

"왜?"

"어제 숙소에서 못받았어요."

'꽝! 꽝!'

사무소 벽에 즐비하게 걸려있는 풍경 사진들과 지도에 눈이 갔지만 카미노를 걸어야 하는 난 발이 급하고 마음이 급하다. 곁눈으로 스캐닝만하고 사무소를 빠져나왔다.



사무소 앞에 놓여진 큰길을 따라 무작정 북서쪽 길로 걷는다. 카미노길인지 아니면 그냥 산책로인지 구분이 되지 않지만, 다음 마을인 매탈피노까지 연결된다니 굳이 다른길을 찾을 필요가 없다. 만자나레스 국립공원을 가로지르는 길 위에서 두 발로, 그리고 두 바퀴로 나타난 스페인 사람들과 인사를 나눈다. 내 모습을 흥미롭게 구경하듯 쳐다보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지만 "부엔 카미노"란 인사를 먼저 건네오는 이들도 간간히 있다. 산티아고까지 가냐는 물음에 벌써 프랑스 루트를 마쳤다는 사실을 젠체하고 뽐내본다.





부엔 카미노란 격려보다, "Buenos Dias," 좋은 아침이란 인사를 더 많이 받으며 매탈피노에 도착했다. 미끄럼틀처럼 매끄럽게 뻗은 길을 따라 산에 가까워진다. 그리고 마중나온 산바람이 땀을 닦아준다. 산뜻한 마음으로 좁은 골목길을 지나 매탈피노 마을 광장에 들어섰다. 산의 굴곡을 그대로 받아들여 둘쭉날쭉한 집들. 산비탈에 지어져 평평한 지형이 부족했는지 소싯적 내 초등학교 운동장의 반의반도 안되는 면적의 마을 광장이 아담하다.   


▲사진출처: 구글



배에 거지가 들었는지 음식점앞에서 발이 떨어지지 않는다. 한시간 전에 먹었던 아침은 기억속에서 그리고 뱃속에서 잊혀진지 오래다. 지역의 음식은 필수로 먹어봐야하는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Aqui!" 여기에 있다는 현수막에 현혹되어 광장 바로옆에있는 음식점에 발을 들였다.




불쑥 나타난 나에게 인사도 잊고 무슨일이냐고 물어오는 주인 아저씨. 밖에 있는 현수막을 가리키며 카요스(Callos, 피순대, 돼지내장, 병아리콩 그리고 피망이 들어간 마드리드식 스튜)를 먹고 싶다고 하니 미안하지만 아직 영업전이란다. 먹을만한건 간단한 타파스밖에 없다는 아저씨 말에 콜라만 한잔 시켜놓고 볕이좋은 테라스 테이블에 자리잡았다. 잠시후 얼음과 레몬이 담긴 잔과 함께 병콜라와 감자칩을 가져다 주시는 아저씨. 콜라를 벌컥벌컥 들이키는 내 모습을 벽에 기대어 흐뭇하게 지켜보던 아저씨가 말을 걸어오신다, "순례자니?"


"넵"

"가족이랑 점심으로 먹을 빠에야 만들고 있는데, 한그릇 할래?"

"넵!"





잠시만 기다리라는 말과 함께 건물안으로 사라진 아저씨가 다시 나타났을때는 함박 미소를 귀에 걸치고 계셨다. 테이블 위에 올려놓은 접시를 가리키며 "빠에야 한그릇!"을 외치시는 아저씨. 리액션 부자인 내 반응에 더욱더 흐뭇해 하시며 본인도 점심을 먹어야 한다며 건물안으로 사라지셨다. 바다마을도 아닌 매탈피노에서 랍스터가 들어간 빠에야를 먹게 되다니... 게다가 플레이팅도 신경쓰신듯 비네그렛 리덕션과 파슬리 가루가 그릇 끝자락에 멋드러지게 흩뿌려져있었다. 한입 먹어보니 주인 아저씨가 걸쳤던 미소가 내 귀에도 걸렸다. 비리지 않게 적당히 바다향이 풍부하다. 국물이 걸죽하고 보통 씹히는 질감이 강한 리조또와는 달리 밥알이 무른걸 보아 장시간 약불에 조리한거 같았다. 예상치도 못한 '요리'에 감탄사를 아낌없이 날리며 우아한 점심식사를 했다.


느긋한 점심식사를 갖고 다시금 나타나신 아저씨는 음식이 어땠냐고 물어오신다. 스페인의 태양을 닮았다고 비유하자 껄껄껄 웃으신다. 얼마냐는 물음에 10유로만 달라신다. 팁으로 2유로를 포함해 12유로를 지불하고 작별인사를 나눴다. 




지방자치정부를 갖고있는 매탈피노. 시청역할을 하고있는 Ayuntamiento 사무실에서 도장을 받을까하고 들려보지만 근무시간임에도 불구하고 문이 굳게 잠겨있다. 씨에스타 시간이기에는 조금 이른데... 앞집 김서방이 옆집 정사장을 알고 정사장이 뒷집 황여사를 알것같이 조그마한 동네이기에 점심먹었던 음식점으로 돌아가 주인아저씨께 까닭을 물어보았다. 아저씨 말로는 일하는 여직원 한명이 있는데 업무시간을 무시하고 차 한잔하러, 밥먹으러 자유롭게 자리를 비운단다. 어딜가나 공무원은 꿀직이다. 도장에 대한 욕심이 별로 없어 가차없이 돌아섰다.




아침에 예상했던 폭염이 찾아오고. 호흡이 곤란할 정도로 공기가 뜨거웠다. 수영하듯 짤막한 호흡으로 폐에 밀려들어오는 불쾌한 공기를 저항해 보지만 소용없다. 등산을 타고 넘어와야할 산바람은 매탈피노의 여직원처럼 마실나갔나보다. 




쉬어가라며 그늘의 내놓은 고마운 나무앞 흙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버렸다. 지금 심정을 형용하는 수많은 단어들이 혀 끝에서 춤을추다 "혹독"이란 단어를 내뱉어 버렸다. 이 길을, 이 시간을 즐겨야겠다는 생각은 마드리드길의 현실과는 부적합한듯 이미 머리속엔 오늘 일정을 서둘러 마쳐야겠다는 생각으로만 가득하다.





다리가 풀릴까 두려워 땀만 닦고 두 다리에 시동을 걸어본다. 걸을땐 혼자란 생각이 별로 들지 않다가도 카메라만 켜면 "혼자"란 단어가 습관적으로 튀어나온다. 지금 내 상황을 강조하려는 모습도 우습지만, 그 과장된 현실을 이미 가슴으로 믿어버린 내 자신도 우습다. 무슨 말을 하고싶었던 걸까? 외롭다고 말하려는 것이었을까? 아니면 하루종일 머리속에 맴도는 윗니가 그립다는 말을 하고 싶었던 걸까? 




혼자만의 대화가 두서없는 토론이 되어갈즈음 나바세라다라는 마을이 눈 앞에 나타났다. 전혀 인지하고 있지 못했던 마을이라 이름도 생소했을 뿐더러 마을이 활력이 넘쳐 산속마을이 맞나 싶다. 거리에 뛰어노는 아이들도 보이고, 데이트 중인지 찰떡같이 딱 달라붙어 다니는 커플들도 몇 보였다. 지나치며 들여다 본 펍 안에는 배불뚝이 아재들이 흰소매만 입은채 물놀이를 하고 계셨고 (와서 한잔하라는 아재의 유혹에 넘어갈뻔 하기도..), 잔뜩 치장한 여학생들은 내 허름한 몰골을 훑어 보고선 간드러지는 웃음 소리로 골목을 가득메웠다.


시청같이 보이는 건물을 그냥 지나치려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잠시 들리기로 한다. 온갖 문양으로 치장한 거대한 나무문을 열고 건물 내부로 들어서니 온몸이 부르르 떨릴정도로 찬 공기가 맴돌고 있다. 평범한 복장이 아니기에 여직원이 먼저 말을 걸어온다. 어떻게 왔냐는 물음에 순례자 여권에 도장 받으러 왔다하니 잠시만 기다리란다. 여직원에게 귓속말을 전달받은 김과장 같은 아재가 박과장같은 아재에게 말을 옮기더니 정부장같은 아재가 날 한번 훑어본다. 이내 사무실 안으로 들어오라는 손짓을 해댄다. 처음 말을 건넸던 여직원이 시원한 물을 한잔 내 온다. 뭔가 일이 커진 느낌이다. 원래 업무량이 없는건지, 아니면 스페인의 자율적인 업무태도 때문인지 사무실 안에 있던 전 직원이 내게 관심을 갖기 시작한다. 그들의 관심에 들뜬 난 어디서 왔냐는 질문부터 여자친구는 있냐는 물음까지 나도 모르는사이 성심껏 대답해 버렸다. 물 한잔이 음료 한잔을 거쳐 티 한잔까지 이어지고 끝이 없을것 같던 그들의 질문은, 정말 끝이 없었다. 탈출방법을 고민하던 중 배가 살살 아파온다. 찬바람을 갑자기 쐬서 그런지 급똥이 마려운 난 화장실을 핑계로 간신히 그들의 질문세례를 피할 수 있었다. 화장실에서 중요한(?) 업무를 마치고 나온 날 건물 밖까지 배웅해주는 여직원. 감사함보단 웃픈 이 상황에대한 부끄러움이 커 (똥 잘 쌌냐고 물어봤으면 수치심에 그 자리에 목메고 죽어버릴거...) 발걸음을 서둘러 본다.



스키장 최고난이도 코스보다 경사가 심한 마을 언덕을 넘어 길같지 않은 길로 들어섰다. 분명 다른길이 있겠지만 여직원이 카미노 길이라고 알려준 루트는 사람의 발길이 뜸했는지 수풀이 무성하게 덮혀 있었다.  




끝나지 않을 것 같던 언덕이 끝나고 마을이 한눈에 담기는 정상에 다다랐다. 마을안에선 호수의 존재를 미쳐 알지 못했는데 바라세라다는 알고보니 만자나레스 같이 호수가에 위치한 마을이었다. 언덕 너머로는 지형이 바뀐건지 전봇대만한 커다란 나무들이 가득하다. 나무들이 손뻗어 만들어준 시원한 그늘 길을 총총 걸음으로 나아간다. 불지옥을 벗어나니 마음에 여유까지 생긴다. 방금전 오르막길을 40분정도 오른후 계속해서 완만한 내리막길이라 발걸음도 가볍다. 이렇게만 가면 오늘 일정은 너무나 수월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카미노는 호락호락하지 않기에 또 다른 난관에 봉착하게 된다. 카미노 길 사인이 너무나 궁한 마드리드길. 내가 종종 따라갔던 하얗고 빨간 스트라이프 표식 (스페인에선 이 표식이 큰 길이나 트레킹 트레일을 표하는 표식으로 사용된다고 한다.) 조차도 보이지 않아 하얀 화살표를 따라 걷다보니 길을 잃게 되었다. 


▲프랑스 루트에서도 조개 모양과 함께 종종 볼 수 있다.




불안한 마음에 아이폰에 탑재되어있는 GPS를 사용해 내 동선을 확인해 본다. 오프라인으로도 사용할 수 있는 구글맵의 기능을 사용하여 움직임을 관찰해본다. 또, 아이폰 앱중 하나인 나침판을 사용하여 현재 위치와 오늘 목적지인 세르세디야의 위치를 대조하여 보니 잘못된 방향은 아닌것 같다. PNR을 정하고 무작정 걷기로 한다. 길도 조금 으슥해 지고, 나무숲 길이라 시야도 확보가 되지않아 불안한 마음이 엄습해 온다. 상황 파악을 잘 못하는 내 가늘디 가는 멘탈줄은 베토벤 교향곡 5번 1악장을 연주를 해대며 아주 저급의 호러 영화 한 장면을 연출해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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