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mino de Madrid|| Ep.4 물지옥, 불지옥의 마드리드 길.

Camino de Madrid

Episode Four.


0 7. 0 7. 2 0 1 6



카미노 de    

        Madrid






배를 빵빵하게 채웠더니 세상이 아름다워 보인다.

마침 비도 그치고, 따사로운 해가 길을 밝혀준다.

다음 마을인 만자나레스 엘 레알로 향한다.


한낮이라 그런지 다들 일과에 열중하고 있나보다, 거리가 텅텅 비어있다. 마드리드 길을 걷다 보니 사람이 그립다. 궂이 관심은 아니더라고, 호기심의 눈길이라도 받고 싶었지만 인기척이라곤 길게 드리워진 내 그림자뿐. 콜메나르 마을의 북서쪽 끝자락에 다다랐을 즈음에서야 사람을 만났다. 연세가 꽤 있어 보이는 할아버지 그룹이었는데, 복장을 보아하니 트렉킹을 하거나 등산을 다녀오신듯 했다. "올라"로 말을 꺼내고 "카미노"로 대화를 이어간다. 그리고 "부엔 카미노"란 응원을 받는다.


짧은 만남이었지만 나는 그들을 그들은 나를, 서로를 존경과 부러움으로 바라보았다.

내 열정과, 젋음, 그리고 패기를 부러워 하던 그들은 시간이 빼앗아간 시절을 그리워했고

그들의 여유와, 기품을 부러워 하는 나는 세월을 견뎌낸 그들의 우정을 존경했다.


웃음 소리로 가득한 그들의 길이 부럽다. N세대의 선두주자로서 살면서 진정한 우정을 갈구하는 90년생인 나. 나로선 평생 저렇게 함께 할 친구를 찾는다는게 쉬운일이 아니다. 기회의 폭이 넓어지면서 해외로 뿔뿔이 흩어지는 세대이기 때문에 부랄친구라 여기는 친구 녀석들과 일년에 한두번 만나기가 쉽지 않다. N세대들은 지금 미친듯이 쫒아야 문전에라도 도달할 있는 "꿈", X세대에겐 노력과 도전심만 있었다면 가능했던 "기회" 였다. 물론 이렇게 단면적으로 세대적인 차이점을 내 기준의 잣대로 비판하면 안되는 걸 알고있다. 우리 세대가 누리고 있는 교육환경과 생활환경이 아버지 세대의 것보다 나은 걸 알기에... 그래도 취업률이 낮은건 팩트다!


그래서 난 여행에 미쳐있나 보다. 시작과 끝이 있고, (아무리 해도 성과가 없으면 부족했다는) 노력과 결과를 우선으로 하는 사회와는 대조되는 과정에 대한 만족과 순간을 즐길 수 있는 여유가 있는 여행에서 난 대리만족을 하고 있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걷는데 비가와서 그런지 진흙탕한 길이 자꾸 내 발목을 잡는다. 열심히 걸어도 저녁 4시즈음 도착할 수 있을것 같은 일정인데, 속도가 나질 않아 불안하다.


구글이 찍어준 직선 거리는 31km정도. 지도에도 표시되어 있지 않는 카미노 길의 실질적 거리는 40km정도 되는 것 같다.


해가 중천으로 자리잡더니 젖었던 땅이 마르면서 이번엔 작은 모래알들이 날 괴롭힌다. 지면의 물이 마르면서 흩날리게 된 작은 모래알들이 부츠에 튀어들어가 신발안에 반상회를 열었다. 고집있는 녀석들은 어떻게 해서든 양말 안에 들어가 맨살에 강제 지압을 해댄다.





두어시간 참다 안되겠다 싶어 잠시 멈추기로 한다. 아픈거 참는건 세계 1위라고 자부심을 갖을 정도로 미련한 나인데... (이게 왜 자랑인건데...) 부츠에 가득 찬 모래를 비워내다가 머리속에 갑자기 떠오른게 있다. 순례자들이 카미노를 걸으면서 입었던 옷과, 길을 함께했던 워킹스틱을 불태우는 문화. 자신의 모든 죄를 사죄받은 순례자들은, 모든것을 비워낸다는 뜻으로 카미노의 끝지점인 0km 에서 카미노와 함께했던 자신의 사물들을 태워버린단다. 하지만, 무질서한 이 관례가 위험한 상태를 불러올 수 있기 때문에 피스테라 절벽에는 이를 금하는 표지판이 세워져 있다. 




개미 한마리도 보이지 않는 황량한 이 마드리드 길 위에선 아무도 내게 뭐라 할 사람이 없기에 일기장에 끄적였던 글들을 상징적으로 태워 보기로 한다. 코끼리똥으로 만들었다는 일기장 종이는 영양가가 풍부한지 시뻘건 불길을 뿜으며 타들어갔다. 순례자의 문화에 참여하기 위한 행위였다고 말하고 싶지만, 사실 심심해서 했던거 같다.


이게 뭐라고 괜히 뿌듯하다.


아무도 없는 외딴 길 위에서 종이쪼가리를 태우고선 뭔가 해냈다고 뿌듯해 하는 내 모습이 우습다. 다 타들어간 종이가 검은 숯이 되어 바람에 흩날린다. 혹시나 누가 내 범행(?)을 신고할까 겁이난다. 나도 어서 이 자리에서 사라져야 겠다며 빠릿하게 다시걸을 준비를 마치고 만자나레스를 향해 다시금 느릿한 행군을 시작했다.




한참을 걷다가 잠시 멈춰선 곳에 의도적으로 놓인 것같은 종이 조각이 눈에 들어왔다. 글이 적혀있는 것 같아 가까이 다가가서 눈여겨 보았다.





"Si no tienes donde dormie en manzanares el real te podemos ayudar...do you have accomodation in manzanares el real? we stayed pilgrims"


[만약에 만자나레스에서 잘 곳이 없으면 우리가 당신을 도와줄 수 있다. 우린 순례객들에게 잘 곳을 제공한다]


쪽지를 보고 잠깐 생각에 빠졌다, 그리고 세가지 추측이 추려졌다.


첫째, 종이가 비에 젖지 않은걸로 보아 이 쪽지는 불과 몇시간 전에 여기에 놓여졌다.

둘째, 영어 문법이 엉망인걸로 보아 로컬이다.

셋째, 내가 했던 걱정이 증명되었다.





트레스 칸토스에 이어 순례자를 위한 숙소가 없다는 만자나레스. 아까 콜메나르에서 만났던 큐레이터 누님도 사전예약도 없이 만자나레스로 향하는 내가 걱정된다며 민박집 몇군데에 전화해 주셨지만, 다들 오늘은 방이 꽉찼다고 했다. 난 성격이 낙천적인건지 좀 무모한건지 별 걱정이 되진 않는다. 카미노를 시작하기 전 프랑스의 외딴 숲에서 비늴봉지 깔고 잔 경험이 있는 나였기에, '될대로 되겠지'라고 단정지어 버렸다.. 무엇보다 진짜로 걱정되었던 건 남은 물, 식수의 양이었다. 어제처럼 탈진증세가 올 정도로 장시간동안 햇볕에 노출되어 (다음 마을까지의) 기약없는 발걸음을 계속해야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는 두려움에 휩쌓여 쉬지 않고 걸었다.





표지판도, 카미노 표식도 없는 길을 하염없이 걷는다.

중천의 자리를 대여섯 시간째 지키던 스페인의 태양은 지칠줄 모르는 동양놈 하나 이겨보겠다고 내 정수리에 햇빛을 하염없이 꽂아댔다. 물을 퍼붇다가 "무적이란" 단어로 내 자신을 형용하는 게 아니꼬았나보다.


낮에는 물지옥, 지금은 불지옥.

자꾸만 줄어가는 물병, 자꾸만 늘어나는 땀방울.

결국 물병이 비었고, 마음이 조급해진다.


5분에 한번씩 아이폰의 GPS를 켜서 위치를 확인한 후 맞는 방향으로 향하고 있는지 확인했다. 길도 아닌 허허벌판에 찍혀있는 외로운 점 하나. 바로 내가 10분마다 눈꼽만큼 만자나레스를 향해 이동하고 있었다.





이쯤이면 보이겠지 하던 만자나레스는 다섯시 반이 되어서야 모습을 나타냈다. 울창한 나무숲은 아니였지만, 언덕 넘어에 자리잡고있어 쉽게 나타나지 않았었던 거였다. 마을이 나타나니 숙소에 대한 걱정이 엄습해온다. 레포츠의 도시이자, '휴양지라는 수식어가 붙어있으니 호텔이라도 있겠지' 하는 막연한 바램으로 발길으 서둘러 본다.





고개를 넘어 내리막길로 들어서니 길 오른편에 숨어있던 호수가 눈에 들어왔다. 호수 위에 놓인 다리가 프랑스길에서 마주했던 포르토마린의 첫 모습을 연상시켰다. 윗니와 저녁을 배불리 먹고, 한가로이 호수가 보이는 벼랑길을 나란히 걸었던 그날. 정처없이 떠돌다 나타난 한적한 공원에서 나눴던 이야기, 그리고 행복에 젖어 한 옥타브 올라간 그녀의 웃음소리가 귓가를 떠돈다. 조금 이쁜것만 나타나면, 좋은것만 먹으면 앞으로도 자주 자주 이렇게 그녀가 생각날까?




마을 중심부엔 성당이 아닌 성이 자리잡고 있다. 15세기에 지워졌다는 멘도자 성. 마드리드주에서 보존이 가장 잘 되어 있는 성이란걸 큐레이터 누나가 일러주었다. 입장료 있으면 안갈거라는 내 말에 순례자 여권을 보여주면 공짜로 들어갈 수도 있을거란 팁을 주었다. (결국엔 2유로 받더만...)





반가운 마음에 셀카를 한장 남기고 내리막길을 뛰어가듯 내려갔다.





윗니랑 있을때 이정도로 말이 많지는 않았는데.. 혼자가 되다보니 수다쟁이가 되었다 (가 아니라 원래 말이 많다). 윗니의 없는 자리가 허전하기에 수다쟁이가 되어 그녀에게 하고싶은 말을 영상에라도 담아본다.





새 마을에 도착할때마다 설레는 마음을 주체할 수 없다. 제일 궁금한건 그 도시의 맛집이 어디에 있을까, 그리고 그 맛집의 존맛탱 메뉴는 무엇일까 하는 설렘. 원초적으로 인간은 푸드 파이터의 기질이 잠재되어 있는 동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아침, 점심, 저녁이란 시간적인 개념은 밥을 먹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이게 한글만 봐도 알 수 있다. 아침에 먹는 아침밥을 "아침"이라, 점심에 먹는 밥을 "점심"이라 그리고 저녁밥을 저녁이라 부르는 언어를 가진 한국인들에겐 하루가 그냥 밥먹는 시간이니 말이다. 소프트웨어는 캐나다 버젼이지만, 하드웨어는 국산이라 나도 밥이 중요한 조선놈인건 어쩔 수 없는 현실인가 보다. 하지만,




숙소를 후딱 잡고 밥먹으러 가야겠다는 생각으로 마을을 열심히 돌아다녔지만, 찾아간 곳마다 모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남는 방이 없단다. 그나마 기대를 걸었던 호텔은 (동네 편의점아재에 의하면) 손님이 없어 유지가 되지않아 문 닫았다고 한다. 벌씨 여섯시가 훌쩍넘은 시점이라 다음 마을까지 걷는건 시간적으로 불가능하고, 체력적으로도 무리. 



길가에 놓여진 지도를 보며 '이 큰 마을에 잘곳하나 없겠어?' 하는 긍정적인 생각을 갖고 걸어보지만, 현실은 혹독하리만큼 냉정했다. 혹시나 지도에 기재되어 있지 않거나, 인터넷에 소개되어 있지 않은 숙소가 있을까 하여 마을 입구인 남쪽끝에서 북쪽끝까지 샅샅히 뒤졌고 동쪽끝에서 서쪽끝까지 방황했지만 성처럼 거대한 맨션뿐... 길가에 주저앉아 하루종일 거치장 스러웠던 무거운 부츠를 벗고 크록스로 갈아신었다. 발은 편하지만 장시간 신고 걸으면 물집이 생기는 크록스. 그래도 새벽 6시부터 12시간이 넘게 신고 있었던 등산부츠를 벗으니 마음만은 날아갈 것 같았다.



 마을을 누비다 보니 "캐나다 길"이란 이름을 가진 골목이 보인다 (라지만 카냐다라고 읽는다). 오늘 노숙하게 되면 이 골목에서 하리라 마음먹고 셀카한장... 기대는 하지않되 포기는 하지말자며 마트에 들려 혹.시.나.를 대비하는 마음으로 음료수 3L정도로 구매하고 정말 한곳만 더 가보자는 마음으로 다음 마을로 향하는 길목에 있다는 이름모를 팬션을 찾아나섰다.





먹을것도 많고 쉴곳도 많았던 프랑스길이 그리워진다. 정신없이 걷다보니 손이 허전함을 느꼈다. 윗니와 항상 깍지끼고 다녔던 손이 그녀를 그리워하는 허전함이 아니였다. '뭐지?' 하고 잠시 생각하다 마틸다가 떠올랐다. 급하게 배낭을 더듬어 보지만 마틸다는 나를 떠나갔다. 마트에서 들고다니면 흉기로 오해받을까봐 입구에 세워뒀던 내 워킹스틱 마틸다 (AKA 빗자루 손잡이)를 잊고 출발한 것이다. 분신같이 다루던 마틸다. 참담하고, 혹시나 누군가 쓰레기 취급하여 어디에 버리진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들지만 10분을 되돌아가야 한다는 사실에 내 발걸음은 멈추지 않았다. 마틸다의 가치는 고작 20분이 채 되지 않았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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