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4 설레임 가득한 사파 자유여행|9박10일간 베트남 배낭여행|베트남|사파|



산을 베개삼아 깊은잠에 빠졌던 윗니와 나. 인도차이나 반도를 품은 햇살이 커튼 사이로 비집고 들어올 즈음, 꿈없이 별만 가득했던 잠에서 깨어났다. 산등을 쓰다듬던 산바람의 고요한 숨소리처럼 쉴새없이 새근거리는 윗니. 가만히 누워 그녀의 숨소리에 맞추어 뛰는 내 심장박동속에서 마음의 평화를 찾았다. 그런 마음을 질투했는지 복잡해진 생각. 앞으로의 일정에대한 고민, 그리고 늘 하고있던 윗니와 내가 맞이할 미래에 대한 걱정. 백짓장같던 머리속에 쓰여지려는 잡생각을 수십번이나 쓰고 지우기를 반복했다. 완성되지 않은 글자들이 지워질때마다 알 수 없는 희열을 느끼며...

타일바닥에서 노늴던 햇볕이 침대모서리를 타고 오르더니 이내 윗니의 콧등을 갑지럽힌다. 아직 꿈속에서 치마폭을 잡혔는지 잠에서 깨어나지 못한채 칭얼대는 그녀. 손등을 펴 한뼘의 작은 그늘을 만들어 주었다. 이내 다시 새근대기 시작하는 그녀.

윗니와의 시간은 작은 양에도 넘쳐흐르는 소주 한 잔 처럼 달다. 장거리 연애를 유지해야하는 우린 한모금 만큼만. 딱 그 만큼의 행복에도 감사를 느끼며, 어김없이 찾아오는 쓰디 쓴 이별의 맛을 달게 맞이한다. 이렇게 우리의 소중한 시간들이 영원히 멈췄으면 하지만, 꿈틀거리며 벽을 타고 오르는 햇살처럼 시간은 쉼이 없다. 톱니바퀴같은 사회의 굴레에서 절대적이었던 시간. 남을 위해 가리켰던 시계 바늘이 오롯이 나를 위해 움직이는 이곳에서 난. 그리고 우린. 비로소 자유를 느낀다.






손목시계가 여덟 시를 가리킨다. 아직 이른시간인데 몸이 개운한 걸 보니, 잠자리가 편했나보다. 윗니를 깨워야겠다는 마음과, 버선발로 마중나온 햇살을 늦게나마 맞이해보려는 마음에 커튼을 힘껏 젖혀본다. 창안에 갖힌 사파. 사람사는 소리도, (고산이라 그런지) 새소리도 없는 사파의 아침이 창 모서리까지 한가득 고요하다. 한없이 기울어진 마을 골목골목에 숨어있던 밤기운이 아지랭이를 피우고, 그 위로 볕에 달궈진 지붕위에 집없는 고양이들이 한껏 웅크리고 있다. 갑자기 들어닥친 빛을 피하려고 돌아눕는 윗니. 햇살에 비춰진 하얀 솜털이 이슬같이 맺힌 그녀의 콧등에 시선이 멈춰서 있다가 갑자기 행복이란 녀석이 내 마음속에 들이닥쳤다. 로그로뇨에서 있던 코피 사건이 떠올라 미소로 그 행복을 가둬본다.


따스한 햇살임이 분명했지만, 고산지대는 역시나 살을 에이듯이 춥다. 하늘거리는 원피스를 입겠다는 윗니에게 핀잔을 주며 외투를 입히고 그녀의 귀에 장난스레 속삭여본다,

"춥다고 징징거리면 길가에 버리고 갈거야."



숙소에서 조식을 제공한다기에 나갈채비를 서둘렀다. 숙소 1층 로비에 붙어있는 작은 식당은 들떠있는 여행객들의 목소리로 가득했다. 식당 한켠에 있는 볕이 잘드는 창가에 자리를 잡고 다른 손님들의 식탁을 염탐해 본다. 쌀국수가 빠지면 베트남이 아니라는 말이 있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쌀국수 한그릇에 얼굴을 파묻고선 사파의 쌀쌀한 아침을 이겨보려 하고 있었다. 면발이 목청을 때릴때마다 탄식을 내뱉는 그들. 바뻐 보이는 직원을 붙잡고 쌀국수 한그릇과 오믈렛을 주문해 본다.

어딜가나 여행중엔 신선한 채소와 과일을 먹기가 힘들지만, 야채먹는 식문화가 발달된 베트남에선 그런 고충을 찾아볼 수 없다. 토마토와 오이 두 조각에 행복해 하는 내 모습을 보고선 "역시 외국사람이야" 라고 놀리는 윗니. 조리되지 않은 야채가 생소한 한국인에겐 당근과 샐러리 스틱을 주머니에 넣고 다니며 간식으로 먹을 정도로 야채에 대한 사랑이 넘치는 외국인을 이해할리 만무하다.



오토바이가 있어 어디든 갈 수 있겠다는 마음에 엑셀을 힘껏 당겨본다. 사파 마을 근교에 있는 소수민족 마을 중 가장 먼곳에 있다는 따반마을과, 같은 방향에 있는 라오짜이 마을을 둘러보기로 하고 남동쪽으로 뻗어있는 비탈길에 올랐다. 길 오른편으로 펼쳐진 그림같은 풍경에 잠시 넋을 잃고 달리는데 얼마가지 못해 검문소 같은 곳에 멈춰섰다. 어제밤 길을 잃어 이곳을 지나칠때는 몰랐지만 낮에는 표를 구매한 사람만 지나갈 수 있는 톨게이트가 있었다. (짱구를 굴려보니, 숙소가 따반에 있다고 우겼으면 무료로 통과했을수도 있었을듯...)



성인 한명당 7만5천동이라는 거금을 받는다. 소수민족을 위해 쓰여진다는 표값이지만 베트남의 하루 숙박비와 비등한 살인적인 가격에 잠시, 아주 잠시 망설여진다. 하지만, 베트남의 수많은 여행지중 사파를 선택한 이유의 큰 비중을 차지하는 따반과 라오짜이를 건너 뛸 순 없었다. 몽족의 삶이 궁금했기 때문. 태국에서 봤던 몽족의 모습은 너무나 인위적이었다. 쇼윈도우처럼 퍼포먼스식의 마을은 관광객의 궁금중만 충만시켜주기만 바빴지 그들의 문화를 옅보려는 내겐 한없이 부족했다. 난 따반과 라오짜이를 통해 조금더 현실과 가까운 그들의 생활 모습을 훔쳐보고 싶었다.





길 상태만 좋아더라면 아주 판타스틱한 드라이브 코스가 될 수도 있을법한 산비탈길. 렌트한 스쿠터로 도전할 만한 길이 아니었지만, 욕심은 무모함을 그리고 무모함은 여행자에게 용기를 심어준다. 집채만한 바위가 길을 막았고 범람한건지 아니면 초기에 계획이 없던건지, 폭포수가 흐르고 있는 위험한 길을 지나야했다. 비포장 길을 10년도 더 되어보이는 스쿠터에 짐짝처럼 실려 달렸더니 골반이 다 헐어 버릴것 같았다. 뒤에서 환호성과 괴성을 지르는 윗니에게 꽉 잡으라는 말만 대여섯번 하며 길 끝 어딘가에 있을 따반을 향해 달리고 또 달려야했다.




하두 신경을 썼더니 손에 쥐가나겠다며 잠깐 세운 곳에서 판시판 산의 끝자락을 마주할 수 있었다. 끝나지 않을 것 같던 구부정한 산 비탈길이, 굽어있는 강줄기와 어깨를 맞대어 있는 곳에 따반이 자리잡고 있었다.    



고도가 한참 낮은건지 추위에 떨고있던 살갖을 보듬듯 따스한 기운이 맴도는 따반. 므엉호아강의 물줄기가 잔잔하게 흐르고 있는 따반에는 "자이"족이라는 이름을 가진 소수민족이 거주하고 있단다. 몽족의 화려한 전통복과는 달리 소소한 모습으로 살아가는 자이족의 따반. 원시 문명의 모습을 바란건 아니지만, 그들 역시도 현대화의 굴레에 갇혀 전통을 많이 잃어가는 듯 했다.


화려한 생일케이크에 난잡하게 꽂혀진 초 같이 전봇대와 가로등으로 수놓여진 가다랑이 논. 멀리서 보이지 않았던 것들에, 가까이서 볼 수 없는 것들에 아쉬움만 남는다.어쩔 수 없는 시대의 변화리라.






이렇게 외진 마을에도 내 키를 훌쩍 뛰어넘는 높은 돌벽과 담장으로 당신들의 공간을 줄 그어 놓았다. 외부인들의 오고감이 불쾌했던 걸까 반성해 보지만, 어쩌면 저들의 허락없이 한 나라로 통일이 되어버린 것에대한 분노와 불만이 그들의 외벽을 더 높게 쌓아 올리지 않았나 생각해 본다.


구글이 알려준 길을 무시하고, 고즈넉한 시골길을 따라 다음 행선지인 "라오짜이" 마을을 향해 헤메어 보기로 한다. 큰길을 벗어나니 여행객들을 겨냥한 크고작은 음식점들과 기념품 가게들이 등 뒤로 모습을 감추었고, 담장조차 갖추지 않은 전통집들만이 외로운 시골길을 지키고 있었다. 높고 낮은 논 뒤로 모습을 감추는 좁은 길로 빨려들어가듯 달렸다. 말 한마디 오가지 않았고, 뒤돌아 보지 않았지만 난 윗니의 행복함을 마음으로 느낄 수 있었다. 내가, 그리고 윗니가 여행자로서 추구하는 행복은 맛있는 음식도, 멋진 경관도, 즐거운 만남도 아니다. 일상을 괴롭히던 모든 생각이 멈추었을때 그저 이유없는 행복에 젖어 알 수 없는 설렘에 심장이 미친듯이 뛰어대고; 눈 앞에 지나가는 모든 사소함의 아름다움을 마음으로 느끼는 순간. 이 순간을 위해 난 스물 한살때 인도로 떠났고, 작년 여름 우린 스페인의 1000km를 걸었다. 설레임. 나이를 한두살 더 먹으며 일상에서 설레는 순간을 찾아보기 힘들어진 것 같다. 아홉살때 3주에 한번 대여했던 게임보이 게임팩 하나에 온몸이 요동치는 설레임을 느꼈더랬다. 이제는 크고 작은 일들에도 쉽게 동요되지 않을만큼 삶에 무뎌져 버렸다.

같이 있지만, 나에게만 집중된 시간이 계속되었다. 간간히 찌르륵 대는 풀벌레의 소리만이 정적을 깰 만큼 고요했지만, 난 쿵쾅대는 내 심장소리에 귀가 멀어버릴 것 같았다.

 




따반에서 싸파마을 방향으로 3km 정도를 달렸더니 라오짜이 마을이라는 표지판이 길 앞에 나타났다. 따반과 별반 다를게 없어 보이는 풍경이지만, 언덕이 시작되는 지점에 자리잡아서 그런지 경사면에서 아래로 바라보는 다랑이논의 모습은 또다른 매력이 있었다. 반복되지만, 반복되도록 아름다운 모습에 매료되어 자꾸만 오토바이 시동을 꺼트리고 카메라를 꺼내들게 되었다..



마을을 빠져나오는 길에 언덕을 힘겹게 오르는 소수민족 여인들을 종종 볼 수 있었는데. 이들은 싸파 마을에서 기념품을 팔기위해 도보로 3시간이 넘는 거리를 매일 걸어 올라가야 한단다. 타 여행 블로그에서도 이들의 끈질긴 호객행위에대해 거론된걸 읽은적이 있었는데, 싸파까지의 길은 그들이 왜 그렇게 필사적인지 이해가 될법한 거리였다. 



예상했던 일정과 달리 시간이 조금 남아 싸파 마을 초입에 위치한 깟깟 마을을 둘러보기로 했다. 싸파를 방문한 여행객들이 가장 많이 찾는 마을답게 호갱을 노리는 상술이 즐비했지만, 여행 고수라 자부심 갖는 난 우리의 주머니를 향한 그들의 손놀림을 가볍게 차단하였다. (마을 입구에는 유로 주차장이라며 돈을 받으려는 경우가 있었는데, 매표소 근처에 보이는 공터에는 주차가 무료였다.)



혹시나 역시나, 깟깟 마을은 따반과 라오짜이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규모가 작았고, 싸파에서 방문객이 가장 많은 여행지라 부르기엔 인프라가 너무나 낙후되어 있었다. 




윗니와 내가 깟깟 마을을 방문한 가장 큰 이유는 어짜피 식사를 위함이었고, 깟깟마을 매표소를 지나 절벽위에 아슬아슬하게 세워진 음식점에서 그 목적을 달성하게 되었다.


고등학생정도 되어보이는 어린 친구가 음식점을 운영하는건지 홀과 주방을 분주히 오간다. 아직 미숙한건지 주문한 음식이 나오기까지 꽤 긴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하지만 인내심이 부처인 윗니와 난 영양가 없는 대화를 나누며 시간가는 줄 몰랐다.



얼마나 대단한 음식을 내오길래 이렇게 오래 걸리냐며 핀잔을 꺼낼때 즈음 주문한 쌀국수 두그릇을 내왔다. 국물을 한숟가락 떠 먹은 난 말문이 막혀 윗니에게 서둘러 맛 보라며 재촉였다. 기존에 먹어보았던 쌀국수와는 달리 시큼한 맛이 강한 육수와 너무나 친숙한 표고버섯의 맛이 어우러져 먹고 있으면서도 침샘을 마구마구 자극하였다. 기름에 살짝 익힌것같은 토마토와 쫄깃한 식감이 강한 굵은 쌀국수 면을 사용해 식감을 최대화 한 듯 하였다.

"쟤 뭐야" 라는 말이 나올정도로 어린 나이에 비해 대단한 요리실력이었다. 식사 후 윗니와 난 입을 모았다,

깟깟은 밥 먹으러 가는 곳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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