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 해가 가득한 마을, 사파로! 9박10일간 베트남 배낭여행 |베트남|사파|



 어제밤 하노이의 늦은 밤 길을 나섰더랬다. 다음날, 즉 오늘 아침 사파로 가는 버스표를 구매하기 위함이었다. 저녁 11시에 연 곳이 있을리 만무했지만, 숙소 프론트에서 제의하는 가격이 썩 맘에 들지 않았기 때문에 쓸데없는 존심을 세우며 조금 더 저렴한 여행사를 찾기 위해 모험을 해보기로 했다. 호안끼엠 호수 주변에 등록된 여행사만해도 500개가 넘는다고 하니 늦은시간까지 영업을 하는곳이 한두군에는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분짜닥킴에서 저녁을 먹고 지도없이 숙소를 잘 찾아갔기에 이제 하노이는 내 도시라며 자신있게 다시한번 숙소를 나섰다. 하지만 짙은 저녁이 내려앉은 하노이의 골목들은 일제히 어둠속으로 얼굴을 숨기고 있었다. 수많은 뚜벅이 배낭여행에서 익혔던 길찾기 방법 (숙소 앞길로 시작하며 네모 모양으로 4개의 큰 길 이름 외우는 방법)이 무용지물이 되었다. 저녁먹기전에 심카드부터 알아봤으면 구글(맵)형님에게 의존했을텐데, 입에도 잘 붙지않는 거리의 이름들은 두시간을 헤메어도 나타나지 않았다. 결국 새벽 한시즈음 되어 간신히 숙소로 귀가하였고 눈물을 머금고 숙소 프론트에서 32달러나 하는 사파 익스프레스 여행사의 아침 7시 버스를 예약하였다.

결국 파김치가 되어 잠에 들었고, 조식 때문에 조금 더 비싼 숙소를 예약했던 우린 잠든지 다섯시간만에 다시 일어나 버스타기 전 밥을 꼭 먹겠다는 의지를 불태웠다.



뷔페식 조식에 주방에서 별도로 음식을 주문할 수 있단다! 배낭을 꾸려야했기에 준비가 늦어져 식사시간이 25분도 허락되지 않은 우리에겐 조식이 아침미션 같았다. 쌀국수 하나와 볶음밥을 시키며 10분만에 되겠냐고 종업원에게 물어보니 최선을 다해보겠단다. 부디 서둘러 달라 부탁을 한 후 초조한 마음으로 기다려본다.



어느새 빵 조가리를 가득 담아오는 윗니.



빵순이 윗니는 조식이 맛있다며 좋아라했지만 해외에서 오래 생활했지만 어메리칸 브뤡퍼스트를 끔직히도 싫어하는 난 쌀국수만을 기다렸다.



그리고 나온 쌀국수. 자태부터 아름답다. 베트남에서 처음 맛보는 쌀국수를 10분만에 먹어야한다니.

마음을 가다듬고 라임과 홍고추를 넣고 국물을 한번 휘저어 준 뒤 국물부터 한수저 떠 먹어 본다.

"으허~~"

아재소리가 절로 나오는 깊은 육수.

치킨스톡과 MSG가 잔뜩들어간 쌀국수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 깊은 맛이 났다.

마치 러시아인이 해주는 된장찌개만 먹다가 한국 시골 할머니가 끓여주신 된장찌개를 처음 맛 본 느낌이랄까.




볶음밥은 무난.

무난의 경계선에 위태롭게 걸쳐진 무난.

시간과의 싸움이었기에 서로의 눈치를 볼 겨를도 없이 눈앞에 펼쳐진 음식을 게걸스럽게 먹어치웠다. 후식으로 먹으려고 가져온 과일에 포크를 가져다 대는 순간 사파 익스프레스 가이드가 식당으로 들이닥쳤고 윗니는 바나나를 주머니에, 나는 남은 쌀국수를 입에 집어넣고 가이드를 따라 미니버스로 이동했다. 미니버스 안에는 이미 승객들로 가득했다. 버스에 오르자 승객들의 시선이 우리에게 집중되었다. 모두들 아침도 못먹고 탔는지 초췌한 모습. 미안한 마음에 기름진 입술을 앙 다문채 조용히 버스 뒤쪽으로 이동하였다. 



유창하진 않지만, 당당하게 자신의 억양을 뽐내며 영어로 하루 일정을 브리핑 해주는 가이드. 미니버스로 잠시 이동해서 큰 버스로 갈아탈거란다. 우리 숙소와 가까웠는지 정말 얼마 안가 사파 익스프레스 사무실 앞에 정차했다. 미니버스에서 내려 5분간 휴식 후 큰 버스로 갈아탄다. 동서울 터미널에서 봤을법한 현대사의 대형버스였다.



아니나 다를까. 한국에서 연식이 되어 베트남으로 팔려왔는지 한글로 "좌석"이란 표기와 함께 자석번호가 적혀있다. 괜시리 반갑다.



타 사와 다르게 평점이 높고, 비례하게 가격대도 높은 사파 익스프레스. 날로 장사하는건 아닌지 끼니대용으로 할 베트남 바게트와 간식, 그리고 물 한병이 들어있는 도시락을 나눠준다.



사파 여행의 1인자라는 자부심을 갖은 사파 익스프레스~

시간적 여유가 있었더라면 사실 하노이에서 기차를타고 사파를 가는 루트를 선택했겠지만, 9박10일동안 베트남 대륙 절반을 둘러보겠다는 욕심에 가장 빠르다는 버스를 선택했더랬다. 일단 첫 이동이 성공적으로 성사되어 마음이 아주 조금 놓였지만 내일 하노이로 돌아가서 다음날 바로 깟바섬으로 이동하는 교통편을 알아봐야한다는 압박감에 버스에 오르자 말자 가이드북을 코에 박았다.




반면에 도시락에서 이것저것 꺼내어 곰실곰실 주워먹는 윗니. 맨날 돼지라 놀린다며 나에게 뭐라 하지만, 원인제공은 당신이 하는게 아닐까요...



하노이 도심을 빠져나와 아침해가 가득담긴 "홍강"을 건넌다.



편하게 앉아서 가자며 1인승 자리를 선택했지만 금세 심심해진 난 계속해서 뒤를 돌아보며 잠에 드려는 윗니를 괴롭혔다. 좋아하니까 괴롭힌다는 말이 생각난다. 졸음이 찾아와 눈을 껌벅거리던 윗니는 온갖 방해공작을 피해 금세 꿈나라로 납치되었고 여전히 심심해하던 난 창가에 갖힌 베트남의 모습을 눈에, 그리고 기억에 담아보려 애를썼다.

19살 여행을 처음 시작했을때 부터 난 베트남 여행에 대한 기대가 엄청 컸었다. 작년, 태국과 캄보디아를 여행하면서 만난 여행객들에게 들은 베트남 이야기들은 그런 내 욕망을 더욱더 불태웠고, 결국 윗니에게까지 그 욕망을 물들여 이렇게 욕심으로 가득한 여행에 오르게 되었다. 항상 내 선택을 의심하나 없이 받아주는 윗니에게는 조금 미안한 얘기지만, 사실 나도 이번여행을 계획대로 잘 마칠 수 있다는 자신이 없다. 거의 매일같이 다른 도시로 이동해야하는 일정을, 사전예약 하나 없이 배낭여행자의 낙천적인 방식과 마인드로 마치려 하다니...

나 혼자 고생하는건 좋지만, 윗니까지 고생길에 끌여드리다니...

아무리 카미노 커플이라고 하지만, 이번 여행은 사실 나도 좀 버겁다.



버스기사의 거친 주행에도 한치의 미동도없이 잠을 자던 윗니는 버스가 휴게소의 주차장에 멈춰서자 입맛을 다시며 눈을 떴다. 같이 있는 시간이 1분 1초가 아까운데 잠 따위에게 너를 빼았겨 진심 슬펐다고 떼를 쓰자 백허그로 달래준다. 



버스에서 내려 소리로 흉내낼수 없는 이름을 가진 휴게소를 둘러보기로 한다.



정말 외딴곳에 덩그러니 지여진 휴게소임에도 불구하고 엊그제 시공을 마친 곳처럼 멀끔한 모습의 휴게소. 



요리를 좋아하는 나. 먹는 걸 좋아하는 윗니. 다른이유지만 음식에 관심이 많은 윗니와 난 육안으로는 당췌 뭔지 알 수 없는 지역 특산품들을 들춰보며 휴식시간을 보냈다.




대한민국 아주머니들은 내 앞에서 명함도 못 내밀만큼 오지랖이 넓은 난 버스에서 보았던 다른 승객들 중 베트남 마누라를 둔 미국 아저씨와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아까 상점에서 보았던 뻥튀기같은 과자를 너무나 맛있게 먹길래 관심을 보였더니 크게 한조각 떼어주는 아저씨. 깨가 들어가서 고소했지만, 맛이 너무 심심해서 손이가는 맛은 아니였다.

휴식 시간이 끝나고 닭장같은 버스에 오른 승객들은 다시금 하나 둘 꿈나라로 납치되었다. 물론, 윗니도 같은 운명을 맞이한다.  



버스가 다시한번 정차하고 우루루 해우소로 달려가 근심을 덜어내고, 간식 거리를 찾아 매점을 기웃거린다. 우리도 그 무리에 합세해 무료함을 덜어 줄 무언가를 찾기로 한다. 첫번째 들렸던 휴게소보다 규모가 많이 적어서 그런지 별로 눈에 들어오는게 없다. 반면에 윗니는 이것저것 손으로 가르키며 함박 미소를 지어보인다. 장보러 나온 엄마를 따라나와 과자 코너에 멈춰선 아이처럼. 결국 불량스러워 보이는 찐빵과 사탕 두개를 쥐어들고선 많이 절제한거라며 자신을 뿌듯해 하는 윗니. 나른함을 쫒겠다며 난 베트남 커피를 한잔 주문해 본다. 



익히들어 알고 있었지만, 연유가 들어간 베트남 커피는 넘~~~~~~~~나 달았다. 한모금만 마셔도 충치가 생길것 같은 맛이랄까.



모든걸 잘먹는 윗니는 찐빵이 입맛에 맛다며 싱글벙글이다. 보통 해외에 나와서 무언가를 사먹을때 실패를 많이 했단다. 이런 불량한걸 사먹으니 실패를 하는거라며 핍박을 줘도 싱글벙글이다.



부정적인 내 사고방식을 제멋대로 바꾸고 있는 윗니. 그런 그녀의 입가엔 항상 미소가 머물러 있다. 의도와 의미는 모르겠지만 그녀를 바라보고 있으면 내 입가에도 어느새 미소가 자리잡고 있다.




이번에는 조금더 적극적으로 구애를 해 본다.

"자면안되 나랑 놀아줘."

이번에는 내가 철부지 없는 아이가 되어 그녀를 괴롭힌다.

결국 잠을 포기한 윗니는, 글을쓰는 지금의 기억에는 남아있지도 않은 쓸데없는 내 잡담을 모두 다 들어주었다.



방향을 잃고 전력질주하던 내 잡담처럼, 굽어있는 산길을 미친듯이 달리는 버스. 고도가 높아졌는지 귀가 먹먹해지고 가파를 산 면에 아슬하게 걸쳐있는 계단식 논들이 모습을 나타냈다. 사파의 상징적인 모습 중 하나라는 계단식 논은 사파에 가까워 질수록 그 수가 배로 늘어났다.




사파 마을에 근접하자, 건물이 하나 둘 나타났고 이내 사파 익스프레스 간판이 걸린 건물앞에 버스가 멈춰섰다.

"내일 오후 세시 반까지 오세요."



부킹닷컴으로 알아두었던 숙소를 찾아 헤매어 본다. 길마다 담벼락에 자리잡은 소수민족 상인들의 모습이 이색적이다. 화려한 그들의 전통복이 특히나 눈에띈다. 기회되면 하나 사 입어야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집으로 가져가면 옷장속에 박아둘게 뻔하지만, 여행중에는 우스꽝스러워도 추억에 남을 사진을 찍을 수 있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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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 이름을 말하자, 동서남북 제각각 다른 방향을 가리키던 로컬들의 손가락을 따라 걷다가 결국 사파를 30분간 헤메었다. 안되겠다 싶어 안면몰수하고 다른 숙박업소를 찾아가 지도를 구걸하고 우리 숙소의 위치를 안내 받을 수 있었다.



길을 헤메어도 함께니까 행복하다는 윗니. 그녀의 긍정적인 마인드에 나도 모르게 이 순간을 즐기게 되었다.



가파를 산길을 내려와 결국 버스에서 내렸던 지점에서 5분도 채 걸리지 않는 곳에 위치한 우리 숙소를 찾을 수 있었다. 프론트에서 체크인을 하고 방을 배정받을 동안 로비에서 잠시 대기를 해야했다.




그러다 벽난로 아래에서 낑낑거는 소리를 내고있는 멍뭉이를 발견했다. 아직 걸음걸이도 떼지 않은 녀석의 재롱에 피로가 멀끔히 씻겨내려가는 듯 했다.



배다른 새끼인것마냥 어미개와 너무나 다른 색이여서 더욱더 신기했다.



카미노에서 그랬던것 처럼 서로에게 수고했다라는 말을 건네고 숙소에 짐을 풀었다. 비록 사파에서 주어진 시간은 많지 않지만 해가 가득한 이곳은 왠지 느낌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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