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 하노이에서의 첫 날! 9박10일간 베트남 배낭여행 |베트남|하노이|


12월 3일. 유난히 추운 겨울 아침. 소풍을 앞 둔 어린아이처럼 여행에 대한 기대감을 이기지 못하고 잠을 설쳤다. 피곤할법도 한데 집을 나서려고 준비하는 내내 하품한번 하지 않을정도로 아드레날린이 온몸을 일깨워 놓았다. 혹시라도 까먹고 챙기지 않은게 있나싶어 방을 두세번 스캐닝 했다. 배낭을 어깨 한쪽에 짊어지고 혹시라도 매형이 잠에서 꺨까 싶어 고양이 걸음으로 현관문을 나선다. 새벽 공기가 생각보다 더 차다. 몸을 한번 부르르 떨고선 외투의 지퍼를 턱 밑까지 올려 잠궈본다.

주말 아침이라 그런지 인적이 드문 길 거리를 가로질러 지하철 역으로 향했다. 큰 배낭을 멘 내 모습이 눈에 띌 법도 한데 어찌하다보니 주말 산행을 가는 등산객들과 섞여 자연스레 묻혀갔다. 약속한대로 약수역에서 윗니를 만났다. 이른 아침인데도 어디선가 커피를 사왔다. 생각지도 못한 배려에 시렸던 손도, 그리고 얼었붙었던 볼도 녹여본다.

공덕에서 공항철도로 갈아탄 후 열차안에서 이번 여행에 대해 끝없는 대화를 나누었다. 그저 나와의 시간이 좋다는 윗니. 이번 여행에 대한 기대감은 그저 나와 함께하는 시간에 대한 것이란다. 반대로, 난 걱정이 많았다. 너무나 즉흥적으로 오르게 된 단기 배낭여행이기에 누군가 한명은 치밀해야 한다며 몇일밤을 밤을 지새며 베트남 역사에 대한 다큐도 돌려보고, 배낭여행에 오르기 전 한번도 해본적 없는 일정표도 짜 놓았다. (사실 윗니에게 잘 보이고 싶은 마음도 없지 않아 있었다.)

예상했던것 보다 인천공항에 늦게 도착하게 되어 지하철에서 내려 바쁘게 이동하였다. 한국인들의 문화라면 문화일까? 공항에서 면세점을 필히 들려야 한다는 것. 아쉽지만 다음 여행을 기약하고 탑승구로 달렸다. 정말 부리나케 이동해서 마지막 승객으로 비행기에 탑승. 



기내에서도 공부는 계속되었다. 9박10일간 하고 싶은 것도, 보고 싶은 것도 그리고 제일 중요한 먹고 싶은 것도 많았기에 베트남 가이드북을 달달 외울 정도로 열심히 공부했다. 조금 피곤하다는 윗니에게 역사 공부를 강요해 본다,

"윗니야 베트남은 어쩌면 한국과 비슷한 역사와 사상을 가지고 있는 나라야. 수많은 전쟁과 분단의 고통을 뼈저리게 겪은 나라라고 할 수 있지. 1887년도에 처음 프랑스의 식민주의 정책의 억압에 시달리다 수많은 혁명을 겪게 되었어. 그 이후 외교적 그리고 정치적인 난항을 치루다 조금 잘못된 좌익 국민주의 사상에 빠져 공산주의로 빠져들었지. 여기서 공산당을 이끈자가 바로 호치민이야. 프랑스로 부터 베트남을 해방시킨 영웅으로 기억되고 있지. 근데 알다싶히 공산주의는 이데올로기에 그치지 못해. 그래서 보수로 둔갑한 독재가 시작되지. 보수는 libération, 즉 해방을 위해 억압에대한 반사적 반응이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러시아를 우상으로 받들인 베트남의 보수단체는 분명 잘못된 길로 들어서고 있었던거야. 공산주의를 끔직히도 싫어하는 미국이 이때 베트남의 정치에 관여를 하기 시작해. 근데 베트남은 이미 프랑스 전부터 중국에게 억압을 받으며 해방을 꿈꿔오던 나라였기에, 프랑스가 물러가고 바로 미국이 압박을 해오는게 못마땅했지. 그래서 바로 1945년도 부터 1976년까지 결국 공산당 북, 자본주의 남은 "베트남 전쟁" 이라는 피터지는 전쟁을 치루게 되지. 결국 베트남은 승리를 이루고 미국은 물러나지만 시대와 흐름에 따라 베트남도 지금은 자본주의적인 정치와 외교적으로 민주화 되가고 있지."



고개만 끄덕이던 윗니가 피곤하다며 눈을 감는다. 내 어깨를 마지막으로 빌려줬던게 언제였지?

 아마 마드리드로 향한 기차 안 이었던 거 같다. 순례길을 마치고 이별을 향해 끊임없이 달리던 기차. 울다 지쳐 잠든 윗니에게 빌려 주었던 내 어깨가 다시 한번 그녀의 것이 되었다. 5개월동안 오늘 같은 날은 날이 오길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다. 이별에 대한 슬픔 젖은 어깨가 아닌 휴식의 침이 젖은 어깨가 되어주는 날.   



잠깐 졸더니 잠에서 깬 윗니는 기내식을 찾는다. 아침부터 공복으로 돌아다니느라 허기지다며 승무원에게서 메뉴판을 받아 들었다. 저가 항공이라 모든 추가사항은 따로 요금을 지불해야 한단다.



메뉴를 법서읽듯 한참을 정독하더니 결국 원했던 메뉴는 매진되어 라면을 선택했다. 동남아에서의 라면은 정말 호불호가 갈릴 수 있기에 신중했지만 똠양꿍같은 맛이 난다며 면만 건져먹고 국물은 먹지 않겠다는 윗니. 그래도 허기는 달랬다며 웃어보이는 그녀에게 맛있는 저녁을 약속했다.

다섯시간의 짧지도 그리고 길지도 않은 비행이 끝나고 하노이 노이바이 공항에 착륙했다.



캐나다 국적을 가진 난 따로 베트남 여행 비자를 발급 받아야 했기에 출국장 앞에 있는 외교 사무실에서 잠시 대기해야 했다.





사전에 E-Visa를 신청했기에 별다른 절차없이 25달러(미국)만 지불하고 비자를 발급 받을 수 있었다. 출국장을 빠져나와 베트남에 있는동안 사용 할 심카드부터 알아보기로 했다. 인터넷으로 사전에 알아보았던 비나폰 (Vinafone)을 찾아갔지만 예상했던 가격 보다 비싸서 하노이 도심에서 알아보기로 한다.   




노이바이 공항에서 하노이 도심으로 이동하는 저렴한 루트를 알아보다 로컬 버스를 이용한 방법을 찾았다. 국제선 청사에서 무료 공항 셔틀 버스를 타고 국내선 청사로 이동한 뒤 국내선 청사 건물 앞 주차장에서 버스 17번을 타고 롱비엔(Long Bien) 역에서 하차하여 도보로 숙소까지 이동하는 방법이었다.




물어 물어 찾은 17번 버스는 주차장 끝자락에서 찾을 수 있었다. 이렇다 할 안내 표지판도 없었을 뿐더러 버스가 정차 해 있는 위치엔 버스정류장 사인도 없어서 처음엔 긴가 민가 했다. 운전 기사도 없는 버스를 승차하니 로컬 스멜이 물씬 나는 승객들이 하나 둘 우리를 뒤따라 탑승한다. 버스가 승객들로 어느정도 차니 기사 아재와 검표원이 버스에 올랐고 버스는 낡은 엔진 소리를 내며 하노이 시내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앞문은 열린채로)

달리는 버스 내부를 돌아다니며 검표원이 버스티켓을 발급해준다. 1인당 9천동. 500원도 되지않는 돈이다. 공항에서 택시를 탔더라면 2만원은 나왔을 걸 생각하니 엄청 이득인 셈이다. 17번 버스는 시골길을 조금 돌아 하노이 도심으로 향한다고 한다. 덕분에 창 밖으로 보이는 고즈넉한 시골 풍경을 감상하며 베트남과 첫 인사를 나눈다.

흙길을 달리던 버스가 아스팔트 길을 달리며 창 밖의 모습은 농가에서 상가로 탈바꿈 하였다. 동시에 나타난 수많은 오토바이들. 베트남의 상징적인 모습이라지만 조금 징그러울 정도로 많았다. 어쩔 수 없는 형상이겠지만 도심으로 근접할수록 마치 연기속으로 들어 온 것 같이 대기가 뿌옇다. 먼지 알레르기가 심한 나에겐 지옥같은 모습이지만 이럴 걸 대비해 한국에서 황사 마스크를 챙겨왔다. 



1시간 30분가량 달려 롱비엔 역에 도착하였다. 이동시간이 길어 피곤할 만도 한데 여행지에서의 첫날엔 아드레날린이 넘쳐 흘러 보통 무한체력을 유지한다. 버스에 내려 구글지도 앱을 켜고 숙소를 향해 걷기 시작한다. 버스안에선 오토바이가 그냥 징그럽기만 했는데 보행자 신호가 없는 베트남 길을 건너려니 이젠 무섭기까지 한다. 베트남을 처음 여행하는 여행객들에게 길 건너는게 최대의 위기라는 말이 실감되는 순간이었다. 걱정도 잠시, 가이드 북에서 알려줬던것 처럼 일정한 속도를 유지한채 멈추지 않고 길을 건너니 모세의 기적처럼 오토바이도, 차도 알아서 비켜간다.


길눈이 밝은 덕에 어려움없이 숙소를 찾을 수 있었다. 롱비엔 역에서 도보로 10분도 걸리지 않은 위치에 있어 일부러 선택 한 곳이었다. 직원들의 친절한 환영을 받으며 체크인을 마치고 곧장 분짜를 먹으러 숙소를 나섰다. 가이드북에 소개되어 있는 분짜닥킴이 하노이에서 넘버원이란다. 내가 워낙 믿고 사용하는 프렌즈 사의 가이드 북 이기에 믿고 하노이에서의 첫 끼니는 분짜닥킴에서 해결하기로 한다. 




날씨가 더운건지 스모그 때문에 생긴 찜통 더윈지...아무튼 덥다. 한국에서 패딩만 입고 다니다 갑자기 반팔 반바지 차림으로 돌아다니니 벌거벗은 느낌이다.길눈이 밝다고 나만 믿으라 해놓고선 결국 헤매었다. 한참을 돌고 돌다 어떤 아재의 손짓에 찾게 된 분짜닥킴. 베트남엔 워낙 동명가게들이 많으니 가짜를 주의해야 한다고 적혀있어 의심하다가 주소를 매치해 보니 분짜닥킴이 맞아서 아저씨에게 조금 미안했다. 




1층엔 자리가 없고 2층으로 안내되어 올라갔더니 마찬가지로 모든 테이블이 이미 차지되어 있다. 아무데나 앉으라는 손짓에 어느 외국 커플들과 합석을 하게 되었다. 고민할 것도 없이 분짜 두개를 시키고 스프링롤을 하나 주문.




사진으로만 보았던 분짜가 눈앞에 세팅되어었다. 엄청난 비쥬얼에 득달같이 달려들어 게걸스럽게 먹어치웠다. 훈제된 돼지 어깨살과 삼겹살을 곁들인 쌀국수를 시큼한 피시소스에 찍어 베트남 밤, 민트, 상추 그리고 랑바질에 싸서 먹는 분짜는 해외에서 먹었던 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맛있었다. 소스와 따로 나온 파파야와 꼴라비 피클도 한국의 양념치킨과 먹는 절인무처럼 상큼하고 무엇보다 눈물나올 만큼 매콤한 베트남 홍고추는 베트남의 더위를 한방에 무찔러 버렸다.




8시 55분, 끝무렵에 가게를 찾았지만 종업원들의 배려에 서두르지 않고 여유로운 식사를 마칠 수 있었다. 분짜닥킴은 사실 많은 블로거들이 위생상태에 대해 언급을 했을 정도로 논란에 휩쌓여 있다. 마감을 지켜본 결과, 그날 장사하고 남은 모든 음식물은 쓰레기통으로 버려진다. 동남아에선 음식 갖고 장난치지 않는다는 말이 다시 한번 검증되는 순간이다.



남은 국수 한가닥까지 싹싹 긁어 먹은 후 산책을 할 겸 호안끼엠으로 향했다. 주말이라 그런지 호안끼엠 주변엔 바리케이트가 쳐져있고 도로엔 우리같은 여행객들 그리고 저녁산책을 나온 가족들로 가득했다.



화려하거나 유별난 볼거리가 있어서 호안끼엠이 여행자의 거리로 자리잡은게 아닌거 같다. 그저 수많은 인파들이 지나치는 길가에서 목욕탕 의자에 앉아 사람 구경을 하며 마시는 시원한 맥주, 그 맥주 한잔 사이로 이뤄지는 사람들과의 만남, 그리고 낮이되면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 처럼 일상으로 가득한 거리가 일탈을 꿈 꿔 왔던 여행객들의 화려한 겟어웨이가 되는 장소이기 때문이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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