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mino de Santiago|| D11. Ep.25 행복의 길 카미노


밤비



Camino de Santiago
Day Eleven
Episode Twenty F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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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urney forward




정말 오랜만에 한번도 뒤척이지 않고 꿀잠을 잘 수 있었다.


덕분에 첫번째로 일어나 제일먼저 떠날준비를 마치고 패밀리를 위해 아침을 만들기로 한다.


어제 빵집에서 사온 샌드위치거리를 도마위에 펼쳐놓고 손을 씻는데 뒤에서 누군가 아침인사를 건네온다.


"어제 그렇게 마시더니, 일찍도 일어났네?"


뒤돌아보니 발렌타인이 "Grandma", [할머니]라고 부르는 중년의 스페인 아주머니가 익살스런 표정을 짓고있다.


"별로 마시지도 않았는데요?!?!"


똑같이 익살스런 표정을 지으니, 할머니의 걸걸한 웃음소리가 주방을 가득메운다.


할머니와는 에스텔라에서부터 술자리를 같이해서 그런지 정말 친해져 버렸다.


정말 흥도 많고 정도 많은 분.


내가 샌드위치를 다 만들때까지 주위를 서성이며 말동무를 해주셨다.



패밀리가 거실에 모여 아침부터 심각한 의논에 빠졌다.


롯데형과 발렌타인이 오늘은 도저히 못걷겠다고 단정짓고 버스를 타자는 쪽으로 의견을 모으기 시작한다.


동요되고 싶지않아 귀를닫고 조용히 나갈채비를 마쳤다.


"그럼 저는 그냥 혼자 걸어갈게요"


돌아오는 패밀리의 눈빛에 너무나 많은 감정이 섞여있어 시선을 회피했다.


푸엔타 라 레이나 이후로 더 이상의 도움음 받지 않을거라 굳게 결심했던나.


분명 그런 내 결심에는, 자존심말고 더욱더 강한 무언가가 작용하고 있는듯했다.


두 남자에게 동요되고 있던 윗니도 너무나 단호하게 나오는 나 때문에 정신을 차렸는지


잠시동안 고민하더니 결국 같이 걷기로 한다.


미련이 남을것 같아서 서둘러서 알베르게를 떠나려는데 마음이 편치가 않다.


"조심히 가요"라고 말하는 발렌타인과 손을 흔들어주는 롯데형을 뒤로하고 카미노 길 위에 올랐다.





낮게 뜬 아침해를 받아 길게 뻗은 그림자 처럼,


길게 늘어선 카미노 길 위에 오늘 처음으로 윗니와 단 둘이서 걷게 되었다.


처음에 다들 혼자서 시작 한 길이지만,


인연이 맞닿아 둘이 되고, 셋이 되고 마지막엔 정말 대가족처럼 여섯명이서 패밀리가 되었다.


아침에 항상 함께하던 그들의 발소리와 웃음소리가 없어지자 조금 허전하다.





정말 가족을 잃은사람처럼 우울해 보이는 윗니를 위해 긍정적인 생각들을 나누며 허전한 마음을 달래본다.


"부르고스에서 다시 만날거야"


카미노의 특성상 모두다 같은 길 위에서 앞서다, 뒤쳐지다가도 다시금 만나게 된다.


정이 많은 윗니는 한참을 우울해 하더니


눈앞에 펼쳐진 카미노의 아름다움에 금세 미소를 되찾았다.





바람이 유난히 많은 아침이다.


풀들이 바람의 지휘아래 춤을춘다.


앞만보며 걷다가 조금만 고개를 돌리면 이런 아름다운것들이 눈에 들어오는 카미노.


난 그런 카미노가 너무 좋다.




벨로라도를 떠나 처음 맞닥드리는 토산토스(Tosantos)에서 잠시 쉬었다가,


그 다음 마을인 비얌비스티아(Villambistia)에서 작은 구멍가게에 들려 윗니의 발 치료를 위한 바늘을 구입했다.


(소독은 잘 하지만, 너무 많은 사람들과 같은 바늘을 쉐어하는거 같아서...)






비현실적인 현실이 펼쳐질때면 잠시 서서 넋을 잃고 바라본다.


누구보라고 피었는지 이름모를 꽃들이 줄을서서 지친 순례자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오늘 걷길 잘한거 같아!" 라고 말하며 웃는 윗니. 어제에 비해 그녀의 상태가 좋아보여 나도 기분이 좋다.





미소천사 윗니는 오늘도 많은 아재들의 마음을 훔치나 보다.


자신의 "뮤즈"라며 사진을 부탁하는 스페인 할아버지.


사진 한장에 입이 귀에 걸리셨다.


덕분에 잠시 쉬며 할머니와 할아버지들 사이에서 귀여움을 받았다.


사진을 부탁한 할아버지와는 사실 구면이다.


그에게서 아침에 소염진통제인 이부프로펜을 얻었다.


캐나다에선 처방전없으면 구할수도 없는 600mg. 아주 독한 약이라서 위에 무리가 갈수도 있지만, 고통없이 걸을수만 있다면...






산 후안 데오르테가(San Juan de Ortega)에 다다랐을 즈음 뭔가에 홀려 뒤를 돌아봤다.


먼지가 흩날리는 길 끝에서 발렌타인이 걸어오고있다.


'설마..말도안되...'


그가 또다시 신기루처럼 카미노 길 위에 나타난것이다.


믿기 힘들지만 분명히 그가 우릴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물었더니,


우리가 떠나고 곧장 걷기로 결심했다는 그.


롯데형은 버스를 타겠다고 결심했다며 결국 자기 혼자 걷게 되었다고 한다.


셋이서 걷는데 내리막길이 나와서 곡소리로 3중주 관악기(已) 연주를 했다.





산 후안에 도착해서 셋다 시멘트 바닥에 주저 앉아버렸다.


발렌타인은 길바닥이 안방인 마냥 양말까지 벗고 그대로 드러누워버린다.


그를 지켜보는 모든 이들이 미소를 짓는다.


(어김없이 어디선가 나타나신 텐트형은 한국 여성분과 대화를 나누고 계셨고, 오늘 부르고스까지 함께 버스를 타고 이동하신다고 하셨다. 항상 동행을 찾으시던 그가 누군가와 함께 있는걸 보니 내가 다 기분이 좋다. 산토 도밍고에서 나한테 마음 상했을수도 있는데 반갑게 인사를 해주시니 마음이 놓인다.)


한낮의 뜨거운 태양도 무시한채 한참을 뙤양볕 아래에 앉아 휴식을 취했다.



마을의 규모와는 달리 꽤 많은 순례자들이 산 후안에 모였다.


다들 오늘 여기서 스탑을 하는지 알베르게 앞에 모여 체크인 시간을 기다리는듯 했다.


우리의 목표 마을인 아헤스(Ages) 까지는 3.5km밖에 남지 않았지만 발 상태도 좋지않고


아침에 먹은 샌드위치 이후로 오후 1시인 지금까지 아무것도 먹은게 없어서 모두들 허기진 상태였다.


그래서 카미노 길 위에서 처음으로 점심을 사먹기로 한다.





음식을 주문하고 뭔가 느낌이 이상해서 음식점 밖을 나가봤는데.


말도 안되는 일이 또 벌어졌다.


롯데형이 나타나신거다...


"형!!" 하고 손을 흔들어 보이니 내게 웃으며 다가오는 그.


(이쯤되면 무당집을 차려야하나...)


넷이서 옹기종기 앉아 어떻게 된건지 이야기를 듣는데.


롯데형도 버스를 타러 갔다가 홧김에 걷게 되었다고 한다.


이야기를 하는 내내 그의 표정이 굳어있다.


콜라를 한잔 벌컥 들이키더니 비장한 표정으로 말을 이어간다.


혼자 떠나겠다는 그.


워낙 확고한 표정이어서 뭐라고 할말이 없었다.


그리고선 곧장 일어서서 우리곁을 떠나가셨다.






모두 어안이 벙 벙해서 침묵을 지키고 있는데 주문한 음식이 나왔다.


그야말로 비주얼 깡패.


후각을 미친듯이 자극해서 들뜬 마음을 숨길수가 없었다.


부르고스하면 빼 놓을수없다는 Blood sausage [피 소세지].


맛이 꼭 피순대와 흡사한데, 스페인의 향신료가 들어가 마치 고급진 음식을 먹는듯한 맛이었다.


음식을 먹는동안 만큼은 롯데형이 잊혀질 만큼( 죄송합니다 형...) 맛있었다.


순대로 순대를 가득채우고선 아헤스를 향해 힘차게 출발했다.





밥을 먹어서 인지 흥이돋은 우린 노래를 부르고 경치를 감상하며 나름 우리만의 즐거운 카미노를 만들어 나갔다.


아헤스 마을에 도착하기전 마지막 언덕에서


자연의 바람이 선사하는 달콤함을 맛 보았다.







어쩌면 당연하게 생각했던 패밀리의 존재를


다시 생각하게 해준 오늘 하루.


직접적인 도움이 아니여도,


심적으로 그들에게 많은 도움을 받고 있는 나.






이렇게 멋지고 사랑스러운 그들과 함께하는 카미노는


내게 정말 "행복의 길" 이 되고있다.




아헤스에선 또 어떤 재미난 일들이 일어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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