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mino de Santiago|| D14. Ep.31 문과생의 카미노


밤비



Camino de Santiago
Day Fourteen
Episode Thirty 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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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esthetic




혼타나스의 새벽이 밝아왔다.


침대에서 폴짝 뛰어내려와 주위를 둘러보니 다른 순례객들은 아직 모두 한밤중이다.


졸린눈을 비비며 빨래를 걷으러 뒷뜰로 나갔다.


문밖을 나서자, 상장에서 맞이하는 아침처럼 한기가 온몸을 감싸안는다.


있는힘껏 몸을 한번 떨어주고 아재마냥 "어으~ 시원~하다" 를 크게 외쳤다.



빨래거리를 품에안고 침실로 돌아오니 배낭을 꾸리고 있는 윗니.


어두컴컴한 방에서 더듬거리며 배낭을 꾸리고 있는게 귀엽기도 하고 미련하기도 해 보인다.


핸드폰으로 플래시를 켜서 바닥을 비춰주니 미소짓는 그녀.


소곤대며 아침인사를 나눈다.


한참동안 부스럭 거리며 배낭을 꾸리는데 다른 순례객들을 일어날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아무래도 그들도 어제의 30km가 고단했나보다.


생장에서부터 걷기 시작한지 2주째.


어렸을적부터 운동을 꾸준히 해 왔던 나도 힘든데 그렇지 않은 일반인들은 어떠하리...





주방에 잠시 자리잡고 앉아 윗니에게 발 마사지를 해 준다.


물집이 나기 시작한 시점에서 걷는 자세가 중요하다, 아침에는 발을 풀어준다 생각하며 너무 힘주고 걷지 말라는등,


장황한 연설을 늘여놓으며 그녀에게 주의할것을 당부 해 본다.


물집이 나기 시작하면, 물집난 부분을 피하려고 걷는 자세가 뒤틀린다.


그러다 보면 괜찮았던 종아리(비복근), 허벅지(대퇴근, 내전근), 엉덩이(둔근) 그리고 인대에 문제가 하나씩 발생하면서 결국 카미노 길 위에서 작렬히 전사하게 된다.


며친절 부터 비복근에 무리가 왔던 (발가락을 피하려니 종아리에 힘이 많이 들어갔나보다) 윗니를 위해 집중적인 마사지를 해 주고


무릎이 고장나버린 내 자신에게는 '힘내라 얍' 이란 주문을 외워주었다.







"뭐 좀 버릴까?"


하는 윗니의 말에 눈이 초롱해진 나.


"그래 그래 필요없는건 과감히 버려야해!"


라며 그녀가 배낭에서 꺼내보인 셀카봉을 고대로 내 배낭에 넣었다... (하... 인간의 욕심이란...)


"언젠가 유용하게 쓰게 될 일이 있을거야" 라며 사물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못하는 나.


안그래도 고프로 셀카봉도 안써본지 며칠째...


내 배낭에 셀카봉 2개와 워킹스틱 4개를 꽂았더니 꼴이 꼭 무전병 같다.





어제의 실수를 반복하지 말자하여


알베르게에서 운영하는 선술집에서 아침을 해결하기로 한다.


빵 한조각과 커피가 1.5유로.


아침식사로 삼기엔 조금 부족 하지만 걷다가 배고프면 또 사먹자는 재량으로 공복의 허기만 달래기로 한다.


카미노에 와서 처음 마시는 에스프레소.


매일 별다방에서 사먹던 싸구려 커피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만큼 향과 맛이 진하다.



혼타나스에서 이어지는 카미노길은 무수히 많은 들꽃과 풀들이 가로막고 있었다.


순례자들의 발길이 확실히 잦은 듯, 땅도 다져지지 않고 카미노 표식도 많이 없다.


길 위에서 만나는 순례객들의 수도 확연히 줄어들었다.


어제 부르고스를 떠나면서 윗니와 자주했던 말이 떠오른다.


"레온까지 길은 지루하고 볼것도 없다는데. 우리눈엔 왜 이렇게 아름답지?"


그녀와의 시간이 모든걸 미화시켜 버리는게 아닌가하고 생각해 봤지만,


메세타의 끝없는 들판을 가로지르다 보면, 들판을 휩쓰는 거센 바람에 동요되어 꽃들과, 그리고 풀들과 함께 춤 출수 있고.


시간의 무게에 짖눌려 무너져내린 성과 마을들; 한 때 빚을 발하던 문명의 도시를 자연이 다시금 보듬어 버린듯한 모습을 배경으로


셔터소리와 함께 한 폭의 그림에 담길수 있으며


저녁에 잠시 산책을 나가면, 골목을 가득메우는 순례자들의 웃음소리가 아닌, 마을 본연의 고요한 숨소리를 들을 수 있는거 같아 좋다.



출처: Camino Adventures



한시간 즈음 새소리 마저 잃은 한적한 시골길을 걷고 있는데 산 안톤 수녀원이 모습을 들어냈다.


14세기 지어졌다는 산 안톤 수녀원은 순례자들을 위한 병원으로도 사용되었다고 한다.


세월에 의해 건물의 일부가 파손되었지만, 아치형 문 두개는 아직도 꿋꿋하게 서 있어 꼭 판타지 소설에 나올것같은 폐허의 모습이다.


아치 밑을 지나가려는데 길 가에 세워져있던 봉고차에서 어떤 할아버지가 내리시더니 도장을 받아가란다.


눈치를 보니 뭔가를 판매 하시는것 같아 괜찮다고 손사래를 쳤지만 안 받아가면 한 대 맞을거 같은 기세로 몰아 붙이셔서 어쩔수 없이 순례자 여권을 내민다.


도장을 찍어 주시는데 잉크가 번질세라 (연로하셔서) 떨리는 손에 힘을 꽉 주시는 느낌이다.


고맙다고 인사를 하고 배낭을 다시 짊어메는데 예상했던데로 차에서 나무로 만든 산티아고 심벌을 가져오시더니 2유로에 하나 사주면 안되겠냐고 물어 오신다.


(글쓰는 지금 생각해보면 사드릴걸 그랬다... 너무나 후회된다.)


돈을 여유롭게 들고왔다면 한치의 고민도 없이 10개정도는 사드렸을텐데...


순례자의 신분이고 주머니 사정이 넉넉치 않아 죄송하다며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



한적한 시골길이 계속된다.


아스팔트 찻길을 걷는데도 워낙에 차가 없어서 이게 순례자를 위해 만든 길인가 헷갈리기까지 하다.


오랜만에 돌이 발에 베기지않아 꾸준한 페이스를 유지하게 되었다.





한시간 즈음 더 걸으니 어느 유능한 유럽의 화가가 그려넣은 것 같이 아름다운 자태를 가진 마을이 눈 앞에 나타났다.


카스트로 해리스(Castrojeriz)라는 이름을 가진 마을.


루브르에 걸려있는 캔버스 안에서만 존재할 것 같은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가졌다.


그 분위기에 매료되어 몽환적인 걸음걸이를 옮기는데 누군가가 인사를 건네온다.


그는 바로, 텐트 형!


이정도되면 필연이 아닐까 생각 해 본다.


진정 만나고 싶은 사람들은 한번 만나기도 힘든데,


텐트형은 매일매일 어디선가 불쑥 나타나서 항상 해맑은 얼굴로 인사를 건네오신다.


혹시나 내일 또 마주칠까해서 그의 일정을 물어본다,


"오늘은 어디까지 가세요?"


"저야 뭐 항상 가는데 까지 가는거죠"


텐트를 짊어메고 다니면서 걷다가 쉬고 싶을때 쉬고, 자고 싶을때 자는 자유로운 영혼인 그.


'나도 언젠가 저런 여행을 하게 될까?' 하고 "생각만" 해 본다.


아직까지는 사람들과 부대끼는게 좋기에... 너무나 홀로인 여정은 엄두도 나지 않는다.





마을이 아름다워서인가?


보이는 집들마다 꽃으로 치장을 해 놓고, 멋드러진 정원도 갖춘 내면도 이쁜 마을이었다.


이렇게 아름다운 곳에 터를 잡은 사람들도 이쁜가 싶어 둘러 보지만,


이른시간이라 그런지 사람사는 소리 없이 마을이 고요하다.





언덕위에 자리잡은 카스트로해리스 성을 빙 둘러 마을이 형성 되어있다.


10세기에 카스틸("Castille") 왕국에 의해 성벽이 세워지면서 무역의 중심으로 400년 동안 번창 하였다고 한다.


이후 정치적으로 잘못 연류되는 바람에 상인들의 발걸음이 줄어들며 현재는 전체 인구가 900명도 안되는 소규모 도시로 축소 되었다고 한다.


이곳도 언덕 위에 형성 된 마을이라 거리가 상당히 비좁고 경사졌는데


식료품을 배달하는듯 한 트럭들이 분명히 통과하지 못할것 같은 비좁은 골목을 능숙하게 빠져나가는 걸 보며 신기해 했다.





혼타나스에서 11km정도를 쉬지않고 걸었지만 둘다 발 상태가 좋아서 쉬지 않고 마을을 통과 했다.


마을의 돌 길이 끝나고 다시금 카미노와 어울리는 흙길을 만난다.


눈 앞에 나타난 거대한 바위산의 능선을 타고 직선으로 올라가는 카미노 길.


겁먹을 필요없다며 내 자신을 달래보지만,


내가 두려운건 오르막길이 아닌 그 다음에 나타날 내리막길이다.





오르는건 식은 죽 먹기라며


맞잡은 윗니의 손을 한번도 놓치않고 모스테라레스 언덕 ("Alto de Mostelares") 을 올랐다.


언덕 위에 부는 바람이 달콤하다.


내려가야 한다는 두려움도 잊고 잠시 서서 경치를 감상하며 흘린땀을 손등으로 훔쳣다.



언덕위에는 평야가 펼쳐지더니 이내 내리막길이 나타났다.


오랜만에 스틱을 꺼내들었다. 천천히 언덕을 내려간다.


피레네에서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스틱을 쥔 손에 최대한 무게 분배를 하여 하산을 하다보니


이번에는 네팔에서 교통사고로 고장났던 손목이 말썽이다...


괜찮냐고 물어오는 윗니에게는 괜찮다고 하고, 고통을 숨기며 걷는거에만 집중했다.



이어서 끝없이 펼쳐지는 논과 밭의 모습은 문과생 가슴의 불을 활활 타오르게 하였다.


발의 고통도 잊은채 눈앞에 펼쳐진 풍경을 묘사할 적절한 표현법을 고민해 본다.


초등학생 때 수채화를 그리며 저질렀던 실수가 떠올랐다.


물감이 묻은 붓을 제대로 헹구지 않고 다른 색의 물감을 붓에다 가져갔을때 변색이 되는것처럼


구름이 쓸고 지나갈때 변색되는 노랗고 초록색 논들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허접한 묘사법을 떠올려놓고선 혼자서 좋다고 감성에 젖어 저질스런 미소를 지었다.


그런 나의 모습도 멋있다는 윗니,


"너도 어쩔수 없는 문과생이구나..."





산티아고까지 계속될 것 같던 논/밭 길이 끝나는 지점에 식수대와 쉼터가 있다.


식수대 왼편에 순례자를 위해 간식과 음료를 제공하는 고마운 분이 자리잡고 계셨다.


소박한 삶을 사는 이들이다. 기부금을 받아야 이런 선행을 이어 갈 수 있단걸 알기에


주머니에 있던 동전을 털어 기부금 박스에 넣어 드리고 음료수 한캔과 바나나 두개를 가져왔다.


앉아서 부츠를 벗고 쉬고있는데 윗니가 "왜 이렇게 야위어 가냐" 며 걱정스런 표정으로 날 쳐다본다.


뭐라 반박 할 수가 없다.


카미노를 오른 후 아침에 거울을 보며 나도 깜짝깜짝 놀랄때가 있다.


적어도 5kg정도는 감량한 듯,


턱에 분포한 지방속에 쏙 들어가 절대 낯짝을 비추지 않던 턱선이 요새 양지로 나와 아주 날렵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게다가 복부 주변에 "프리허그!" 를 외치며 딱 달라붙어있던 지방 녀석도 언제 가출을 했는지 보이지 않는다.


당연히 예상한 변화였다.


걱정 할 만큼은 아니라며 윗니를 안심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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