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mino de Santiago|| D12. Ep.28 약속
밤비
Camino de Santiago
Day Twelve
Episode Twenty E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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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mise
부르고스 마을에 진입해서 알베르게까지 찾아가는 길이 생각보다 길다.
몸은 지칠대로 지쳐있지만, 매번 목적지 도시에 도착하면 생기는 아드레날린 덕분에 속도를 늦추지 않고 계속해서 걷는다.
이제것 지나쳐왔던 도시들과는 확실히 다른 느낌의 부르고스.
스페인 북쪽지방 특유의 중세분위기보다는, 광역 도시권의 느낌이랄까?
걷는도중, 안경점에들려 부러졌던 발렌타인의 선글라스를 고치고
약국에 들려 빈곤해져가는 구급상자를 새로운 물품들로 보급 해줬다.
끝없이 펼쳐진 아스팔트길을 걷다보니 도시 분위기가 갑자기 변한다.
중세분위기로...
스페인의 마을들은 올드타운(Old town)과 뉴타운(New town)으로 나뉘어져 있다는걸 깜박했었다.
익숙한 (로마인들의) 돌길을 따라 좁은 골목을 걷다보니,부르고스의 자랑인 부르고스 성당이 눈앞에 나타났다.
1221년도에 지어진 고딕 스타일의 부르고스 성당은 세비예의 성당과, 바르셀로나의 사르라다 파밀리아 성당에 이어 스페인에서 세번째로 크단다.
알베르게 체크인이 급선무이기 때문에,
성당 근처에 위치한 공영 알베르게로 향했다.
이곳도 신축공사를 마쳤는지 내부의 디자인이 엄청나게 세련되고 모던하다.
부츠를 넣는 수납장도 벽에서 튀어나오는 형식이라 로비에 꼬랑내의 감도도 덜 하다.
5층에 침대 배정을 받고 씻을 힘도 없어서 바닥에 주저앉았다.
넋나간 사람처럼 앉아있다가 순례객들이 몰리길래 서둘러 샤워를 마치고 부르고스 탐방을위해 알베르게를 나섰다.
발은 너무나 힘들어하지만, 부르고스의 올드타운의 규모를 보아 볼것도 그리고 할것도 많아보여 알베르게에 가만히 있기에는 너무 아까웠다.
잠시 순례자의 신분을 내려놓고, 관광객 코스프레에 나선다.
이쁜곳마다 잠깐 멈춰서서 사진에 담고, 또다시 어슬렁 거리며 걸어다녔다.
여행자 사무실이 보이길래 들어가본다.
멀끔히 차려입은 직원들이 우리를 훑어 보더니 순례자냐머 먼저 인사를 해 온다.
그렇다고 하자 도장을 받아가란다.
순례자 여권에 도장을 쾅! 찍어받고 부르고스 투어맵을 받아들고 직원에게 관광명소 추천을 받았다.
셋다 발 상태가 좋지 않다고 알짜배기만 알려달라 했더니 성당은 당연한거고 성당뒤로 조그마한 뒷산이 있으니 올라가서 경치를 감상하란다.
그렇게되서 시작된 산행.
산행이라 부르기 조금 부끄러운 뒷산이었지만,
12일째 259km를 걸어온 우리에겐 충분히 "그냥 가지 말까?" 하고 고민을 하게 되는 높이였다.
잘 갖춰진 산길을 따라 15분정도 오르니 코털까지 휘날려 버리는 시원한 바람이 부는 언덕위에 도달했다.
포토존임에 확실한 전망대에 서서 부르고스 올드타운의 경치를 감상하는데,
'오길 잘 했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도시의 아름다움에 취해, 그리고 시원한 바람에 취해 있는데 발렌타인이 중대한 발표를 한다.
내일 버스를 타고 레옹까지 이동하겠다는 그.
같이 갈 수 있는데 까지 함께하다가 떠난다고 했던 그가 갑작스러운 혼자만의 길을 선택해버렸다.
웬지 그 이유를 알것같아 묻지 않았다.
버스티켓을 구매해야 한다는 그를 위해 하산해서 곧장 버스터미널로 향했다.
자동 매표기에서 표를 받아들고 씁슬한 미소를 짓는 그에게 "다시 만날거야" 라는 말을 조심스레 건네본다.
"그럼요 형, 산티아고에선 발렌타인 위스키 4병 마셔야죠!"
분위기를 바꿔보려는 그의 마음이 고맙지만, 씁슬한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하나, 둘 떠나간 패밀리 멤버들.
다들 개인적인 이유도 있었겠지만 어쩌면 카미노가 이미 써 놓은 각본의 플롯대로 연이 맺어지고, 끊어지는게 아닐까 생각 해 본다.
그저 카미노가 허락하는 만남과 이별에 순응할수밖에 없다.
그래서 어쩌면 내가 푸엔타 라 레이나까지, 그리고 에스텔라까지 살면서 최악이었던 컨디션을 견뎌내고
계속해서 패밀리와 함께 할 수 있었던게 아닐까.
머리가 복잡하다.
유유자적 발길이 닿는데로 걷다가 배를 좀 채울까해서 타파스 가게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아무래도 씨에스타 시간인지라 선택의 폭이 좁았지만, 우연히 발견한 음식점 치고는 나쁘지 않았다.
셋이서 맥주도 한잔 하며 여유로운 시간을 갖다가 낮에 알베르게 앞에있는 펍으로 모이라고 했던 바이런("byron") 아저씨의 말이 기억났다.
저녁 7시까지 모이라는 말에 모두들 펍에모여 맥주한잔을 손에쥐고 수다를 나누고 있었다.
이제는 못 만나겠지 했던 6월2일 생장팀이 한데 모였다.
너무 반가워서 안부를 물으며 인사를 나눴다.
조금 늦는 사람이 있을거라 믿어 20분정도를 더 기다렸더니
낮잠을 자다말고 나온 미켈란젤로와
성당에서 넘어져서 발을 다쳤다는 엘리스("Ellis") 할머니가 합류를 했다.
붕대를 감고 발을 절뚝이며 걷는 엘리스 할머니를 본 순례객들은 마치 자신이 불의를 겪은것 마냥 표정이 좋지 않다.
다들 그녀의 고통을 마음으로 느끼며 자신의 일인것 마냥 위로해주고 응원해줬다.
너무나 안타깝다,
이렇게 힘들게 여기까지 왔는데 사고라니...
과연 그녀는 산티아고까지 걸을 수 있을까?
그룹 사진을 찍기위해 다들 모일것을 제안한 바이런 아저씨.
덕분에 마주치지 못할뻔 했던 이들과도 인사를 나눌수 있는 자리가 되었다.
이제는 서로의 국적, 이름, 그리고 직업만이 아닌
서로의 성격, 취향 그리고 숨겨진 술 버릇까지 알게된 그런 각별한 이들이다.
고통을 함께 나눠서 일까?
정말 아무 경계심없이 마음을 열고
친구처럼 그리고 가족처럼 다가온 그들을 평생동안 잊지 못할것이다.
길 위에서 다시 보자며 작별 인사를 나누고 저녁을 먹으러 다시금 부르고스를 헤매기로 한다.
구글님에게 물어보니 꽤 많은 맛집들을 추천해주셨다.
그중 미슐랭쪽에서 추천한곳으로 가보지만, 다들 저녁보다는 타파스를 판매하고 있어서 직접 발품을 팔며 거리를 배회했다.
갑자기 발렌타인 눈에 들어온 바가 있었는데 "Morito" 라는 곳이었다.
입구부터 사람들로 붐비고 지붕과 벽이 한껏 내려앉을걸 보니, 분명히 역사가 깊은 맛집같아 보였다.
2층에 자리를 배정받고 메뉴를 둘러보는데,
모리또란 이름이 너무나 낯이 익다.
혹시나 해서 핸드폰에 기록해 두었던 노트장을 열어보니, 이게 웬걸...
모리또 레스토랑은 발렌타인이 할머니라 부르는 분이 3일전에 추천해주셨던 곳 이었다.
부르고스에 가면 다른데 가지말고, 이곳에 꼭 가보라는 할머니말을 흘려 들었지만 그래도 혹시나해서 노트장에 적어 두었는데
우연찮게 우리가 그곳에 와버린 것이다.
자리를 잡고 앉아 맥주와 상그리아를 시킨다.
발렌타인과 "마지막"이 될수도있는 잔을 들어올려 힘껏 부딪혀 본다.
주문을 받으러 온 직워누나에게 음식을 추천받아본다, 뭐라 설명하는데... 스페인어를 배울때 요리에 관련된 단어들을 배운적이 없어서
음식점에 올때마다 완전 바보가 된다...
따발총같이 설명하는 누나를 멍 하게 보다가,
"그걸로 주세요..." 라고 주문을 해버렸다.
곧 음식이 나오고 한 숟가락 떠서 급하게 입으로 가져갔다.
잠시 음미하고서 평가를 하려는데
"우오오오!" 믿을수가 없는 조합이다.
스페인 특유의 오믈렛과 부르고스의 블러드 소세지 를 풀어서 얹고,
그 위에 버섯같은 식감의 이름모를 식재료와 피클된 파프리카를 고명으로 올린 음식인데.
(차후에 안 사실인데... 저 버섯같이 생긴 길죽한 것들은 앵귤라("Angula")라고 불리우는 새끼 장어를 숙성시킨 것이다. 바스크 지역의 특산물이라는데, 2,3년동안 자란녀석들이 저렇게 10센치도 안 된다고 한다. 무엇보다, 비린내도 없고 씹히는 촉감이 꼭 버섯같아서 먹었을 당시에는 당최 버섯말고는 다른 식재료라 상상도 하지 못했다)
원래 유명했던 음식들을 풀어서 재 해석한 독특함도 있지만, 말도 안되게 조합이 너무나 잘 어울린다.
맛이 따로놀지 않고, 마치 오믈레과 블러드 소세지는 언제나 함께 한 요리인것마냥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맛이었다.
음식을 먹는 내내 신음소리와 감탄사를 자꾸 날리자 그 모습이 신기한지 윗니는 내가 못 말리겠다는 표정이다.
내가 살면서 "여긴 꼭 다시한번 와야겠다" 라고 생각하는 음식점이 다섯군데 정도 있는데,
그 리스트에 당연히 올라야 할 정도로 맛있다.
저녁을 맛나게 먹고서 알베르게 근처에 있는 펍에 들어갔다.
에스텔라 이후로 내 입맛을 사로잡은 쿠바 리브레 (바카디 와 콜라를 섞은 술)를 두잔 시켜 윗니와 마시고
발렌타인은 마지막 우리와의 마지막 날이 아쉬운듯 연신 데낄라 샷을 들이켜댔다.
내일이면 버스를 타고 레온으로 향하는 그에게 건강과 행복이 가득하길.
그리고 좋은 사람들과 함께하며, 그도 산티아고까지 함께할수있는 동행을 찾기를 기원했다.
숙소에 돌아와 윗니와 잠시 대화를 나누기로 한다.
어두운 계단에 나란히 앉아 앞으로의 일정에 대해, 그리고 동행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좋은사람이 나타나면 물론 동행을 늘려 새로운 패밀리를 형성하겠지만,
둘이서만 산티아고까지 가게 될 수도 있다라고 그녀에게 말하니 자신도 그런 생각을 해봤단다.
내가 배푸는 도움이 어쩌면 이제는 자연스레 그녀의 카미노의 일부가 되어버렸을 수도 있다.
덜컥 나 마저도 떠나버리면 그녀에게 어떤 영향을 주게될지 걱정이 된다.
서로 생각에 잠겨 잠시 정적이 흘렀다.
내 눈치를 보더니 조심스레 얘기를 이어가는 그녀,
"사실 내가 산토 도밍고에서 눈물을 보였던건, [발렌타인]이 했던 장난 때문이 아니라 너희들이 그날 진지하게 하는 말 들 때문이었어."
그 날, 발 상태가 좋지 않았던 발렌타인과 나는 "이제 그만 됐다"며 포기하고 이비자로 떠나자고 진지한 표정으로 말 장난을 했었다.
장난으로 했던 우리의 말에 그녀는 진짜로 홀로 남겨지게 될 까봐 조금은 두려웠던 거란다.
격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미안하다고 사과부터 해 본다.
잠시 생각을 하다가 "산티아고까지 끝까지 함께할게" 라고 그녀에게 말해버렸다.
엄청나게 신중하게 생각하고 해야 할 말을. 그녀의 눈을 바라보며, 말 해 버렸다.
그녀의 동공이 잠시 흔들리더니 이내 수줍게 웃는다.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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