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mino de Santiago|| D3. Ep.9 혼자 걷는 카미노

5/31 -7/13 프랑스-스페인 순례자의 길[Camino de Santiago] 여행기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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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라소아냐-[아레]-팜플로나    거리:16.5km.



새벽 3시.


새벽의 공기가 차고 거칠다.


오늘도 코골이들이 웅장한 오케스트라를 이루는 알베르게.


한참을 뒤척이다 안되겠다싶어 일기장만 챙겨 밖으로 나왔다.


집 잃은 고양이님들은 잠도 없으신지 길거리를 어슬렁 거리고 있었다.


"야옹이들 안녕?"


아침 인사를 건네자 녀석들 날 경계하는 듯 벽에 딱 달라붙어 꼬리를 한껏 치켜세우고 그 자리에 얼어붙어 버렸다.


"미...미안..."


가로수빛에 희미하게 비춰진 골목길을 따라 휴게실이 있는 본관 건물로 향했다.


저녁에는 더웠는지 누군가가 모든 창문과 문을 제삿날처럼 활짝 열어두어서 휴게실이 바깥 온도와 비슷하다.


구석에 한껏 웅크려 앉아 어제밤 머리에 담아두었던 일기를 천천히 써내려갔다.


두시간즘 지났을까.


본관에 붙어있는 침실 이곳저곳에서 알람소리가 울린다.


순례자들의 피곤을 알리듯, 알람소리마저 힘겹게 들렸다.


알람소리가 하나 둘 사라지고 머지않아 인상을 찌푸리며 슬금슬금 휴게실에 모이는 순례자들.


"Buenos Dias"


눈 마주치는 사람마다 "좋은아침이에요" 라고 인사해주니 금세 미소를 짓는다.


그리고선 그들은 묵묵히 가방을 싸고 분주히 떠날채비를 한다.


다들 약속이라도 한듯 휴게실을 나서기 전


깊은 한숨을 한번 몰아쉰다, 그리고 하나 둘 배낭을 짊어메고 뒤뚱거리며 동녘의 푸르른 빛 속으로 유유히 사라진다.


부지런한 새벽팀. 그들이 다 나가고 다시한번 정적이 흐르는 휴게실.


아차 싶어 시계를 보니 다섯시 반이 되어있었다. 급히 일기장을 챙겨 침대로 돌아갔다.


어제밤 저녁을 함께했던 한국분들하고 동행을 하기로 되어있었다.


새벽에 일어나 잠깐 걸어본결과 '오늘은 그냥 혼자 걸을까?'라고 고민했지만


준이를 포함한 한국분들은 내가 같이가길 바라는 눈치였다.


서둘러 짐을싸고 그들과 함께 출발을 외쳐본다.





걸은지 삼십분도 되지않아 발이 아파온다.


도저히 속도가 나지않자 같이걷던 한국분은 답답한지 내 눈치를 자꾸 보신다.


"먼저 가세요"


최대한 웃어보이며 마음 편하게 보내드리고 싶었다.


저만치 앞서가던 준이를 불러세워 아쉬운 작별인사를 나눈다.


"준아 우리 했던 말 기억하지? 어짜피 같은 길을 걸으니까, 또 만나게 될거야. 너도 이제 너 페이스대로 가고 시간날때마다 지금 어디있다고 알려줘. 형도 발 상태가 괜찮아지면 페이스좀 높여서 따라갈게."


뭔가 마음이 홀가분 하다.


"그래요 형, 또 뵐게요"


뒤도 안돌아 보고 사라지는 준이.


내가 짐이었구나.






어제까지만해도 발을 맞춰왔던 사람이 자신의 카미노를 찾기위해 떠났다.


묵묵했던 준이의 빈 자리가 이상하리 만큼 크다.


나 역시 다른 사람이 나에게 짐이 될 때의 답답함과 짜증을 알기에 준이에게 쿨해지자며 각자의 길을 가볼것을 권유했지만


어쩌면 준이가 다음 마을에서 기다리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떨쳐버릴수 없었다.


잠시, 지난 이틀간 나의 모습을 되돌아 본다.


거북이 마냥 느릿하며 참새처럼 짜증과 불평을 시도때도없이 지저귀었다.


그리고 나도 모르는사이 (나이에 맞지않게) 듬직했던 준이에게 기대고 있었다.


난 징징이가 되어있었다. 그런 내가 싫다.


혼자가 되니 내 발걸음 소리가 숲길을 가득 메운다.


적적한 마음에 괜히 주위를 유심히 둘러본다.


누구 보라고 핀건지 화사한 자태를 뽐내며 지나가는 이들의 시선을 끄는 야생화들,


이슬이 내렸는지 간간히 나뭇잎을 타고 흘러 얼굴을 적셔주는 물방울,


저 멀리 산등성이를 감싸안은 안개,


그리고 아침해가 멋드러지게 물들인 붉은 하늘.


이렇게 아름다웠던가.


보이지 않았던, 느끼지 못했던 것들이 내 오감을 마구 자극하기 시작했다.





한참을 걷다가 허기가 져서 생장에서부터 메달고 다니던 바게트와 하몽을 꺼내집었다.


말라 비틀어진 하몽과, 돌처럼 딱딱해진 바게트.


한입 베어 물었는데 맛이 나쁘지 않다.


배고프면 뭘 먹어도 맛있다더니...





전날에 다들 [주비리]에 멈춰서일까?


준이와 한국분들을 보내고 한참동안 다른 순례객들과 마주치지 않았다.


내가 혼자서 반나절동안 숲속을 걸어본적이 있던가?


단지 혼자라는 이유로 여유라는게 생겼고.


나의 공간에 공존하는 것들에 대한 감사함도 생겼다.





다리를 건널때마다 물에 젖지않게 해줘서 감사하고,


언덕을 힘겹게 넘을때마다 길을 놓아준 사람들에게 감사하고,


무엇보다


팬티에 똥싸기 일보직전에 나타나준 화장실에게


그리고  6칸정도 남아있는 두루마기 휴지가 너무나도 감사했다.


(하마터면 인도에서 터득한, 손과 물로 뒷일을 처리하는 스킬을 시전할뻔했다)


할렐루야 아멘.





아침 9시 20분.


아레("Arre")에 도착했다.


11.8km를 걷는게 무려 세시간이 넘게 걸렸다...


뒷굼치가 쓸리는 부츠가 싫어서 운동화를 신고 걸었더니 역시나 발바닥에 불이 붙을 지경이다.


다리를 건너 그늘을 찾을 기운도 없이 뙤양볕아래에 널브러져버렸다.






"웅성웅성"


분명히 한국말이다.


다리 건너편에 익숙한 얼굴이 보인다.


다리위에서 포즈를 잡으며 사진도 찍고 서로 장난도 치며 즐거워 보이는 그들.


생장에서, 그리고 론세스바예스에서 만났던 한국커플이었다.


"안녕하세요!!!!"


아침내내 혼자여서 외로웠던걸까?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지르듯 인사를 했다.


그런내가 이상해 보였던지 경계를 하는 그들의 눈빛.


햇빛 아래에 앉아있는 내가 이상해 보였던지 "거기서 뭐하세요...?" 라고 물어오는 그들.


힘들어서 쉬고 있었다구... 몇걸음 더 갈 기운조차 없어서....


그 모습이 측은했는지 여성분이 직접 내 배낭을 들어서 그늘로 옮겨줬다.


그리고 그늘밑으로 오라고 손짓한다.


얼른 일어나 옆에가서 앉아 최대한 쿨한척,


먼 산을 바라보았다.


마치 난 당신들을 다시 만난게 전혀 반갑지 않다는것처럼...


한국커플외에 다른 남성분도 있으셔서 통성명을 해 보니, 주비리에서 만나서 오늘하루 같이 걷게 되었단다.


10분간 쉬던 그들은 금세 일어나 다시 걷자며 날 재촉한다.


아려오는 발바닥을 즈려 밟으며 그들의 발걸음 속도에 맞춰보려 하지만 역시나 무리다.


결국 팜플로나에서 다시 만나자며 그들을 먼저 보내고 다시 혼자 걷기 시작했다.


장난을 치며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 그들의 뒷 모습을 바라보며 부러움을 느꼈다.


그리고선 목표가 생겼다.


오늘은 그들과 함께하기로.






나름 열심히 걷는다고 속도를 내보지만.


4.7km를 두시간이 걸려 팜플로나 입구에 도착했다.


마을 입구에 도착해 종소리가 들려오자 하루종일 쥐어짜도 나오지 않던 힘이 난다, 갑자기 발걸음이 가볍고 숨도 덜 차다.


팜플로나다.


꿈에 그리던 팜플로나.


성 안에 형성된 마을이 그 어디보다 멋드러진, 역사와 사람이 공존하는곳!





팜플로나 중심가에 들어서자


이멋 저멋 다 내고 온 관광객들로 한산하다.


입이 쩍 벌어질 정도로 멋진 건축물들을 지나칠때마다 사진을 찍고 싶었지만,


Arre에서 마주친 그들을 찾기위해 무조건 알베르게로 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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