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mino de Santiago|| D3. Ep.10 팜플로나에서 장렬히 전사.

5/31 -7/13 프랑스-스페인 순례자의 길[Camino de Santiago] 여행기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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팜플로나 도시는 지난 삼일갈 봐왔던 순례자의 길과는 확실히 다른 분위기였다.

도시 중심부에는 특히나 사람이 많았는데,

여유로운 발걸음의 여행자들이 한손에는 아이스크림을

그리고 다른 한손에는 카메라를 쥐고서 유유히 인간파도에 휩쓸려 다니고 있었다.



꼬질꼬질 내 모습이 그들사이에서 눈에 띄는지 다들 시선이 내게로 쏠린다.

갑자기 그들의 시선이 따가워져 탁!탁! 거리며 집고 다니던 나무를 한 손에 들고 최대한 구석진 길로 걸었다.



Arre에서 만났던 한국분들이 공영 알베르게(Albergue Municipal)에 묵을거라 했다.

길을 물어 물어 헤메다가, 성당 근처에서 발견했다.

그들과 재회할 생각에 서둘러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줄이 길게 늘어선걸 봐선 순례객들을 받기 시작한지 얼마 안되었나보다. (보통 알베르게는 빠르면 12시, 늦으면 오후 두시즘에 순례객들을 맞이한다.)

순서를 기다리고 있는데,

뒤에서 한국말이 들려온다.

그들이다.

잠깐 말을 나누어 보니 다들 짐만 풀고 점심을 먹으러 버거킹으로 향하는 길이라고 했다.

'버거킹이라...'

얼른 합류하고싶어서 잠시만 기다려 달라하고

나도 어쩔수없이 땀에 찌든 모습으로 그들과 함께 버거킹으로 향했다.

일상에서도 잘 먹지않는 버거킹을 여기서 먹게 되다니...

게다가 여행중에 로컬음식만 먹으려는 나의 신념을 비상사태가 아닌 지금 깨버려야 하나.

누군가와 동행을 할때 어느정도 타협이 있어야 한다는건 나도 잘 알고있다. 그래서 신념따윈 버리기로.

게다가, 버거세트의 음료로 맥주를 선택할수있다.

맥주맛도 나쁘지 않다.

역시 유럽이다.

급작스럽게 합류에 같이 밥을먹는 자리인데 어색함이 하나도 없다.

간단하게 자기소개를 하고 잠시 담소를 나누었다.

한국커플은 알고보니 커플이 아니란다, 그리고 주비리에서 합류했다는 남자분은 야구복을 입고있어서 그쪽에서 일하시는분인줄 알았는데

아니란다.

머리속으로 별명을 지어본다.

휘트니 휴스턴이 우상이라는 윗니,

위스키가 좋다는 노랑머리의 사나이 발렌타인,

롯데 유니폼을 순례복으로 선택하신 롯데형.


내일 아침에 팜플로나에서 해야할  일이 있는  나,

어쩌면 내일부터 볼 수 없을수도 있지만

유쾌하고 에너지 넘치는 그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즐거울거 같다.

알베르게에 돌아가기전 동양마트에 들려 라면과, 술, 그리고 내일 아침 먹을거리를 사서 돌아왔다.



밥을 먹고나서 숙소로 돌아와 깨끗히 씻고 알베르게 건물 중간에 있는 마당에 앉아 피에 떡진 데일밴드를 교체해줬다.

멍때리며 앉아서 간간히 불어오는 바람을 즐기고있는데 나랑 동갑인 윗니가 옆에 다가와서 앉는다.

초토화된 나의 발을 보더니 마치 내 고통을 아는지 미간을 찌뿌리며 아프냐고 물어온다.

"아니요.. 괜찮아요"

아니 괜찮지 않다.

사실 Arre에서 팜플로나에 오는길에 부츠와 운동화를 세번이나 바꿔 신어보기도 하고

허허벌판에 혼자 죽치고 앉아 포기할까라는 생각을 백번도 넘게했었다.

잠깐 대화를 나누는 사이에 서로에 대한 많은 걸 공개했다.

"숙소에 있기 심심한데. 팜플로나 구경하러 나갈래요?"



발 상태가 좋지않다며 숙소에서 쉬겠다는 발렌타인씨를 두고

숙소 마당에서 통성명을 하게된 트루디누나와 윗니 그리고 롯데형하고 넷이서 알베르게를 나섰다.

높은 건물사이로 내리쬐는 햇빛이 따갑다. 역시나 씨에스타 시간이다.

스페인에는 씨에스타라는 독특한 문화가 있다.

하루중, 제일 더운 낮 1시부터 6시 사이에 도시전체가 낮잠을 잔다.

대형마트도, 정부기관도, 그리고 약국과 일부 병원마저도 씨에스타를 준수한다.

처음 스페인에 왔을때는 "이래서 나라가 돌아가나?" 라고 걱정했지만

새벽 6시부터 저녁 10시까지 대낮마냥 밝은 백야현상이 일어나는 나라인 스페인

모두들 태양으로부터 대피시간이 필요할거같기도 하다.



넷이서 느긋하게 걷다가 쉬다가 대화도 나누고, 아주 여유로운 시간을 갖는다.

카미노 길 위에서 혼자 느꼇던 여유와는 또 사뭇 다른 느낌의 여유.



팜플로나가 유명한 이유는 7월 첫재주에 열리는 산 페르민 (San Fermin ) 축제 때문이라고 한다.

비좁은 거리에 날카로운 뿔이 달린 소를 풀어놓고 투우사 경기장까지 소와 함께 달려가는 축제.

1910년부터 2016년까지 15명의 참가자가 목숨을 잃었단다.

인터넷에 올라온 영상으로만 봐도 얼마나 위험한지 짐작 할 수 있다.

또 최근에는 동물권리를 주장하는 단체의 반대가 거세지면서

미디아 쪽에서 산 페르민의 문화적 가치를 보호해야 한다는 주장과 비 인간적인 풍습이라는 주장이 대치대고 있는 상황이다.

실제로 산 페르민이나 투우경기를 본 사람들의 대부분이 심적인 불편함을 표한다고 한다.

이런 판국에 산 페르민에 대한 내 생각은 어떨가?

"나 하나만은 괜찮겠지" 라는 생각이 잘못된 사고방식을 정규화시킨다고 한다.

사회정치학을 복수전공하면서 수천번 들었던 말이다. 잘 알고있다.

하지만 인간의 욕심이란...

멀지않아 '과거'에만 그리고 '역사'에만 존재하게 될거라면, 난 산 페르민의 열기를 느끼고싶다.

유럽의 제 5대 축제라 여겨지는 산 페르민을!

그래서 카미노 일정을 마치고 산 페르민에 참가하려고 집에 돌아가는 항공편도 7월 둘재주에 예매해뒀다.



이런 좁은 골목들을 육중하고 무시무시한 소들과 함께 달린다고 생각하니 벌써부터 가슴이 벅차다.



날이 덥고해서 젤라또를 사먹고

숙소 주위를 어슬렁 거리다 저녁 먹기전에 잠시 쉬자며 알베르게로 돌아갔다.

일상에서 절대로 낮잠을 자지  않는게 철칙인 나는 (낮잠을 자면 저녁에 잠을 잘 못잔다) 일기장을 들고 알베르게 입구에 있는 벤치로 향했다.

순례자들이 다들 씨에스타를 빌미로 낮잠을 자고 있는지 숙소 주변이 조용하다.

한참을 앉아 멍도 때리고 일기도 끄적이다가 시간을 잊고 있는데

윗니가 불쑥 나타나더니 저녁 먹으러 오란다.

안그래도 알베르게 규모가 엄청 큰데, 날 한참 동안 찾았겠지...

"뭐하고 있었어?" 손에들린 일기장을 보며 물어온다.

"그냥...일기.."

"그래? 부지런하네" 활짝 웃어보이는 윗니,

그녀의 입가엔 미소가  항상 걸려있다.

엄청나게 긍정적인 사람이다.

잠시 나를 돌아본다.

항상 인상쓰고 다니며 힘들다, 아프다, 외롭다는

부정적인 생각만 머리에 가득 채워놓고 우울한 나날들만 보내왔었다.

카미노 길에 오르면서 바뀌려 하지만,

다리에 문제가 생긴 이후로, 혼자 걸으면서, 또다시 우울해지려 하고있었다.

곁에 있으면 그녀의 긍정이 나에게도 뭍어날까?



알베르게 제일 꼭대기 층에있는 주방으로 가니 라면을 먹겠다고 준비가 항창이다.

제일 구석진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라면 개봉!

다들 카미노 길에 오르기 전부터 유럽여행을 하고와서 그런지

매운게 땡겼다고.

점심으로 햄버거에 잘 못먹는 매운 라면까지...

위가 민감한 나는 마음의 준비를 조금 해야했다.

게다가 위스키에 맥주까지 겸상하니 걱정이 되었다.



한참을 떠들고 마시는데 발렌타인씨와 날 제외하고는 다들 술을 잘 하지 않는다.

결국 둘이서 마셔라 마셔라~

금세 한병을 끝내고 입맛을 다시며 서로의 눈치를 본다.

조용히 지갑을 꺼내서 20유로를 내밀며 발렌타인씨에게 "한병더?"라 했더니

"형..." 이란 짤막한 말과함께 바로 슈퍼로 달려가는 그.

그렇게 전설이 시작되었다.

발렌타인씨는 나보다 세살 어린 동생.

둘이서 신이나서 저녁 11시까지 마시고, 의형제를 맺고선 장렬히 전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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