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mino de Santiago|| D6. Ep.16 "야전"폭풍 夜前暴風



밤비


Camino de Santiago
Day Six
Episode Sixteen
2 0 1 6. 0 6. 0 8


Storm before the calm








Day6. Route: 에스텔라(에스테야)-[아즈케타]-[비야마요로 데 몬하르딘]-[로스 아르코스]-토레스 델 리오 거리: 30.5km


※말을 잘못했습니다. 에스텔라(에스테야)에서 로스 아르코스(Los Arcos)까지 가는걸 추천한답니다.


같이 걸을 수 있다는 이유하나만으로 힘이난다.

팜플로나에서부터 매일 아침 배웅만 해주다가 오늘은 모두 다 같이 알베르게를 나섰다.

아침부터 높이 떠오른 해가 따스한 빛으로 카미노 길을 밝혀준다.

지난 이틀간 발을 심하게 절뚝이다가, 오늘아침 멀쩡하게 걷고있는 내가 신기한지 다들 괜찮냐며 물어온다.

"너무 좋아요!"

물론 배낭을 배달 시켜서 발걸음이 가벼운 이유도 있었다.

어젯밤 다 같이 논의한 후 내린 결정이었다.

30km가 넘는 일정을 소화하려면 당연한 선택이라며 입을 맞추고 아침에 알베르게에서 배낭과 작별을 하였다.

생장에서부터 벌써 100km가 넘게 내 등딱지에 딱 달라붙어, 나를 마구 짓눌러대던 녀석이 없으니 날아갈것만 같았다.

발렌타인은 무슨 오기인지 배낭을 짊어지고 가겠단다.

그의 용기와 의지에 물개박수를 쳐줬다. (그리고 그의 위용이 조금은 부러웠다)

사실 나도 에스텔라에서 아침에 배낭을 쥐었다 놓았다를 반복하며 한참을 고민하다 과감하게 놓아주었다.



카미노 길의 성지라는 와인 파운틴을 지나간다.

와인 농장 측에서 순례객들을 위해서 설치해둔 시설인데.

말리는 사람만 없다면 하루종일 서서 마셔도 아무도 뭐라고 안할 분위기다.


다들 어젯밤 과음을 했던지라 냄새도 맡기 싫다며 손사래를 쳤지만

그래도 한모금 해야겠어서 시음해봤다.

와인을 잘 알지 못하지만.

은 퀄리티는 아닌듯 하다.

하지만 공짜는 역시나 맛있다.



속도를 내며 걷다보니 윗니, 발렌타인과 셋이서 선두그룹을 형성하게 되었다.

같이 걸으면서 발렌타인은 우여곡절이 많다.

피레네를 넘으면서 생긴 물집은 곪아 터져서 고름을 뿜어내고 있었고,

열심히 걷겠다고 내리막길에서 한눈을 팔다가 발목을 삐끗해서 잠시동안 쉬어가야했다.


그와 대조되게 오늘의 나는 행복한 길을 걷고 있었다.

덕분에 망므에 여유가 있어서 윗니와 나란히 걸으며 숨겨두었던 속앓이도 털어내 보고

개인적인 고민들도 서로에게 공유하며 조언도 해주고 진심으로 격려도 해줬다.


이렇게 누군가에겐 고통의, 또 누군가에겐 축복의 길이 되는 카미노의 하루.

운이 좋다면 발 상태가 좋을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이빨이 갈리도록 악을 쓰며 고통을 참아야 하는 하루가 된다.

내가 걸을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며 자만하지 않고, 꾸준히 30km를 감사와 겸손으로 채워 나간다.



날이 너무 더워서 기진맥진 해 갈때 저만치서 하얀 트럭이 보인다.

피레네 산맥의 하얀트럭 이후로 또 다시 언제즘 볼까하고

그늘막 하나없는 에스텔라에서 로스 아르코스 길 중간지점에 떡하니 서 있었다.

잠시쉬며 수분을 재충전 해 주고

그늘아래서 땀도 훔쳐본다.


셋다 음악을 좋아하는 공통점이 있어서

노래를 같이 듣다가,

필이 꽂힌다 싶으면 다같이 못난이 화음도 넣어보고

시시껄렁한 말장난에도 박장대소를 하며 웃으며 즐거운 카미노 길을 만들어 나갔다.





카미노 길 위에 사람보다 더 힘들어 하는 녀석들이 있다.

주인을 잘 만난건지 못 만난건지, 카미노 길 위에서 지옥과 천국을 맛보고 있는 멍뭉이 녀석들.

시멘트 바닥에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낑낑 거리고 있는 녀석이 귀여워 쓰다듬어 줬더니

배까지 내밀고선 애교를 부린다.



어렷을적부터 애완견을 키우고 싶은 마음이 컸지만

항상 바쁘신 부모님과, 알레르기가 심하신 어머니 때문에 애완견샾의 유리창 너머로만 그들의 재롱을 볼 수 있었다.

영혼을 잃어버린듯한 녀석을 뒤로하고 로스 아르코스를 향해 다시한번 출발한다.




임산부 대니얼 아재를 로스 아르코스에서 만났다.

자신은 오늘 여기서 머무를 것이라며 우리에게도 그럴것을 권장한다.

마을이 이쁘지만 우리의 배낭은 벌써 토레스 델 리오에 보내졌다.

팜플로나의 산 페르민 축제처럼, 소몰이 축제를 한다는 로스 아르코스는 곧 축제가 열릴것인지 준비가 한창이었다.




날이 더욱더 더워지면서 발걸음이 조금 느려졌다.

모든걸 다 태워버릴 기세로 불타오르는 스페인의 강렬한 태양.

하지만 우리의 사기를 꺾어버리진 못하고 등 뒤에서 열심히 따라오고있다.

인기척이 느껴져 뒤를 돌아보니 롯데형이 묵묵히 걸어오고 계신다.



넷이서 발을 맞추며 걷고있는데 마을이 보이기 시작한다.

롯데형과는 친해질 계기가 별로 없던거 같아서 무리 뒤에서 형과 조심스레 대화를 시도해 본다.

항상 과묵할것 같지만 가끔 우리를 빵터지게 하는 매력이 있으신 롯데형.

사슴눈을 닮은 선한 눈매를 가진 형이 듬직하게 우리 카미노 가족의 아빠 역활을 해주시고 계시다.

형과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다보니 한참 뒤쳐져서, 발걸음이 빠른 윗니와 발렌타인은 산솔 (San Sol)로 먼저 향했고

금세 시야에서 사라졌다.

롯데형과 나는 산솔에서 길을 잃어버려 십분간 헤메다가 토레스 델 리오가 보이는 언덕에 도착했다.

안도의 한숨을 쉬고 발걸음을 옮긴다.



마을로 향하는 카미노길이 내리막길 이길래 롯데형을 먼저 보내고 천천히 걸었다.

셀카를 찍고있는데 용서의 언덕에서, 그리고 어제 술자리에서 만난 미쿡삼촌을 인사를 건네온다.

용서의 언덕에서 만났을 때는 분명 하루에 40km이상을 걷는다 했던 그가 나와 일정이 삼일째 같은걸 보니

그의 카미노 길도 호락호락 하지 않는가 보다.

다음을 기약하고 다시한번 작별인사를 나눈다.


마을 초입에 다다르니 롯데형이 기다리고 계신다.

표정이 심각하신 롯데형, 왜그러시냐고 물어보니

윗니와 발렌타인이 다른 마을로 갔다며 걱정을 하고 계셨다.

핸드폰 로밍을 하지않은 나와는 달리 그들은 데이터를 가진 능력자들이어서 별 걱정은 안하고 혼자서 근처에 있던 샘물로 향했다.



힘겹게 부츠와 양말을 벗고 얼음장같이 차가운 샘물에 발을 담가본다.

바로옆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프랑스 일가족은 내게 질문세례를 퍼 부었다.

어디서 왔니, 어디서 출발햇니, 할 만 하니, 등등...

캐나다에서 퀘백불어( 프랑스에서 쓰는 불어와는 발음이 많이 다름)를 배워 온 나에게 엄청난 시험에 들게 한 그들은

내가 말하는 매 단어마다, 자신들끼리 열변을 토하며 토론을 하고나서는 내게 프랑스식 발음을 가르켜 주셨다.

우여곡절끝에 기본적인 궁금증을 풀어드리고 일어서려는데 뒷꿈치에서 피가 주르륵 흐른다.

별로 대수롭지 않게 양말로 쓱 닦아내니 할머니가 잠깐만 기다리란다.



배낭 어디선가 구급상자를 꺼내시더니

소독약과, 솜뭉치, 약 같은것과 데일밴드를 꺼내셔서 내 발을 치료해 주셨다.

소싯적 간호사셨다며.

냄새나는 내 발을 아무 서스럼 없이 자신의 손수건으로 닦아,

밥 드시던 손으로 내 더러운 발을 치료해 주시는 모습을 보고

"역시 간호사는 다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캐나다에서 4키로 가까이 되는 구급상자를 꾸려와 남들에게 베풀것을 약속했지만

다들 발 치료를 해줘야하는 상황이라 선뜻 나서서 도와주지 못하고 있었다.

감사함을 표하며 인사를 하고 롯데형과 일단 알베르게에 가서 가방 먼저 찾자오자며 마을 안으로 들어갔다.



마을 중심가에 알베르게 겸, 구멍가게를 운영하는 곳이 있어서 잠시쉴겸, 목도 축일겸 음료를 사먹기로 한다.

계산을 하면서 직원에게 우리가 오늘 묵게 될 알베르게의 위치를 물어봤더니

그 알베르게는 2년전에 닫았단다.

"잉..?"

아침에 에스텔라에서 배낭을 벌써 그 알베르게로 배달시켰는데?

곤란한 표정을 짖자 내 마음을 읽었는지

걱정말라며, 너네 가방 저기 문 옆 창고에 있으니 가져가란다.

한국인들이 종종 블로그나 가이드북에 적혀있는 정보만 믿고 우리처럼 종종 실수를 한다면서.

그럴때마다 자기 가기에서 가방을 맡아준단다.

고마운 사람이다.


때마침 윗니와 발렌타인도 우리가 있는곳을 용케 찾아왔다.

가게앞에 다같이 앉아서 잠시 쉬고있는데 트루디 누나가 아이스크림을 사주셨다.

1유로의 행복에 젖어 불량스러운 맛의 아이스크림을 애무하며

길 잃었던 얘기를 해 본다.


카미노 화살표를 놓쳐서 산솔에서 해맸다는 그들.

우린 패밀리라 똑같이 어리버리해서 롯데형과 나도 산솔에서 해메었다며 다들 웃음 꽃을 피운다.

"숙소는 어디로 잡지?"라는 나의 물음에 다들 아마 마을 언덕의 초입에 있던 수영장을 떠올렸을거다.

다들 서로의 눈치를 보다가 "거기 갈까? 수영장?" 이란 롯데형의 말에 모두들 목청것 "콜!!" 을 외친다.



우리가 향한곳은 Hostal Rural San Andres.

무려 "호스텔"에서 운영하는 알베르게 였다.

카운터 옆 쪽방에 30개가 넘는 침대로 가득 찬 곳이지만 (3만원도 안되는)가격과 멀끔한 시설을 봐선 전혀 부족하지 않은 곳이였다.



다들 오늘 30km길을 걷느라 기진맥진 했지만,

눈앞에 있는 수영장을 두고 가만히 있을 순 없었다.

남자들이 비장한 모습으로 수영복을 주섬주섬 챙겨입는다.



그리고선 입수!

캐나다의 겨울바다 물 처럼 차가웠지만 (진짜 1분이상 견딜수 없는 차가운 물이었다. 도대체 왜!!!?)

덕분에 더위를 싹 다 날려 버릴 수 있었다.


신부님의 인자함이 부각된다며 전설로 남을 사진도 한방 남겨두고

물놀이를 즐기다 일광욕도 하고 씻고 나와선 발도 치료하였다.

어제 푸엔테 라 레이나에서 에스텔라까지 크록스 신발을 신고 걸어서 그런지 500원짜리 두개만한 물집이 발바닥에 떡 하니 자리잡고 앉아있으셨다.

카미노 길위에 오르기전에 배워왔던 물집 치료방법을 동원해 본다.

발렌타인과 볕이 잘드는데에 자리잡고 앉아 서로 자신만의 수술에 돌입한다.

온갖 인상을 쓰며 물집을 짜고 있는 우리가 신기한지 옆자리에앉아 구경을 하는 윗니.

"너도 봐줄까?"

"더러운데...."

잠시 머뭇거리더니 발을 조심스레 들어올린다.

혹시나 있을 물집을 찾아 발가락 사이사이마다 샅샅히 뒤졌지만 아기발처럼 깨끗하고, 견고하기까지 하다.

"아니... 넌 도대체..."

이해가 가질 않는다.

발렌타인과 내가 살이쪄서 그런가???

발렌타인과 자기 타협에 나선다, "쟤가 이상한걸꺼야..."




저녁시간이 되어 론세스바예스 이후로 오랜만에 순례자 메뉴를 먹게 되었다.

알베르게나 음식점에서 순례자들을 위해 구상한 메뉴가 "Pilgrim's menu", '순례자 메뉴'라고 불리우는데

보통 에페타이저와 메인, 빵과 와인을 함께 포함해 10유로가 안되는 돈을 받는다.


식사 중 작은 해프닝이 있었다.

우리 패밀리가 한 테이블에 앉아 먹게 되었는데 다른 테이블 들은 두명이서 와인 한병과 물 한병을 제공받았지만

우린 여섯이서 물한병과 와인 한병만 제공하겠다고 나오는 서버들.

식사를 성스럽게 여기는 나로선 도저히 용납이 안되는 시츄에이션이 었다.

그리고 해외에서 오래동안 살면서 동양인은 얕보는 상황이 생길때마다 내 마음속 깊히 잠 재워둔 악마를 꺼내어 반발하곤 했다.

얼굴이 울그락 불그락 해져서 폭발직전에 이르렀을때 신부님이 중재를 해주셨다.

천사와 같은 표정으로 공손하게 웨이터에게 부탁하니 물 한병을 더 가져다 줬다.


소심한 복수라며, 메뉴에 있는 메뉴를 하나씩 6개 다른것을 주문했다.

아마 주방에서 욕짓거리를 엄청 해댔겠지.




저녁식사를 마치고 숙소 앞에서 가진 작은 술자리.

그 자리에서 난 앞으로 카미노 길 위에서 술을 입에도 대지 않겠다고 패밀리에게 뜬금없는 선전포고를 했다.

에스텔라에서 과음했던 과거도 있었지만, 캐나다에서 스트레스를 술자리로 풀었던 습관을 버리기위해,

카미노를 시작하기 전에 했던 내 자신과의 약속도 있기 때문이었다.


이야기 만으로도 술자리가 충분히 즐겁다.

다들 오늘 일정을 소화하느라 힘들었는지 에너지가 많이 없어 보인다.

일찍이 침대로 향하는 패밀리,

윗니는 바텐더 아저씨가 독하게 타준 (자신이 체 게바라의 후손이라며) 쿠바 리브레에 취기가 올랐는지

조금 주춤거리더니 나에게 의도를 알 수 없는 말을한다,

"우리 친해지자!"


내가 어려웠던가? 아니면 아직도 내가 우울해 보이나?

하긴, 내 주위에만 비가 온다는 말을 자주 들었었다.

일상에서 맨날 혼자 심각한 표정으로 음지에서서 비에 젖어있다며 어두운 나의 모습을 비난받곤 했다.

카미노 길 위에 처음 오르면서 했던 다짐들과 생각들이 날 괴롭혀

침대위에서 한참을 뒤척이다가 밖에 나가서 바람을 쐬려고 침실을 나섰다.

밤 공기가 제법 차다.

난 제법 행복해진것 같았는데.

아직은 다른사람들에게 그렇게 비춰지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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