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mino de Santiago|| D5. Ep.15 카미노 가족.



밤비



Camino de Santiago
Day Five
Episode Fifteen
2 0 1 6. 0 6. 0 7
Familia









"도대체 어떻게 된거야?"


다들 의아한 표정이다.


분명히 새벽에 히치하이킹을 한다해서 알베르게 앞에서 작별인사를 나눴던 내가 카미노 길 위에 나타났다는게 믿겨지지 않는단다.


심지허 그들을 따라잡았다는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히치하이킹 했지?"


롯데형도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듯 물어온다.


"아니요, 그냥 아침에 걸어봤는데 안 아프길래 한번도 쉬지않고 미친듯이 걸었어요."


한동안 축 쳐저있던 어깨에 힘이들어간다. 내 자존심을 되찾아온 기분이다.


공영 알베르게에 자리를 잡고 아릴정도로 뜨거운 물로 한참동안 샤워를 했다.


얼굴을 타고 흐르는 때국물이 걸으면서 분비 되었던 소금이 함유되어 있는지 맛이 오지게 짜다.


옆 샤워실을 사용하고 있는 발렌타인에게 외쳐본다,


"오늘 아주 그냥 마시자!"


"네 형."





식구가 한명 늘었다.


덥수룩한 수염이 인상적인 남성 순례객. 그는 신앙심이 깊은듯 매일 미사를 드리러 성당에 꼭 다녀오는 독특한 사람이었다.


우리는 그를 자연스럽게 "신부님"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인자한 웃음에 차분한 말투. 그리고 항상 배낭 어디선가 나오는 멀끔한 옷가지들.


모두다 같이 마트로 향하는 길, 캐나다에서 잠시 생활했다는 신부님과 대화를 나누며 그에 대해 좀더 알아보기로 한다.



사실 난 그를 생장에서 부터 알고있었다.


준이와 저녁거리를 사러 마트로 가는길에 어떤 외국인이 "너 한국이이냐?" 라며 대화를 걸어왔었다.


그렇다고 하니, 자기가 현재 어떤 한국놈이랑 걷고 있는데 아주 독특하고 재밌는 사람이란다.


'초록색 반바지'를 입고있는 수염이 덥수룩한 동양인이 보이면 인사나누라고 일러줬었다.


그리고 다음날 피레네 산을 넘을때 그가 지나가며 인사를 해왔었고.


라라소아냐에선 불쑥 나타나, 합석을 해도 되냐고 물어와서 같이 저녁 식사를 했었다.


오늘도, 알베르게에 체크인을 했는데 바로 옆 침대라서 저녁을 함께하자했더니 고개를 격하게 끄덕였다.


결국, 독특한 놈 셋이 한자리에 모이게 되었다.


순례객들 사이에서 사실 우리의 이름이 자주 언급되고 있었다.


집을 등에 짊어다니고 다는 나,


팜플로나에서 "발렌타인" 위스키와 흑역사를 만든 발렌타인 (백인 순례객들도 그를 "발렌타인"이라 부르고 있었다),


그리고 외관상으로만 봐도 유별난 신부님.


셋이 같이있으니 윗니는 누가 더 독특한건지 판단이 안선다며 심각한 표정.


또 우리 셋은 윗니, "너가 제일 독특하다며" 반론했다.


이유인 즉슨, 윗니는 마른체구와 카미노같이 엄청난 피지컬을 요구로하는 경험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가족중 제일 걷는 속도가 빠르고 상태가 제일 멀쩡하다.


발바닥에 물집하나 없고, 어디 아픈데 한곳조차 없는 그녀를 우린 "괴물"이라 부르며 혀를 내둘렀다.





도보로 꽤 멀었던 대형마트에서 장을보고 알베르게로 돌아와 바로 조리에 몰입한다.


돼지고기 버터구이를 해주겠다며 주방에 선 롯데형,


스페인식 빠에야를 만들어주겠다며 주방에 선 나,


그리고 궂은일을 도맡으며 보조에 나선 발렌타인.


30도가 넘는 온도에, 주방에 서서 땀을 한바가지 흘리며 열정을 쏟아부었다.







주방에서 요리하고 있는 동양놈들이 신기한지 기웃거리던 스페인 아주머니,


마침 오랜만에 만들어보는 빠에야의 레시피가 잘 기억나지 않아 아주머니께 스페인 전통 빠에야 조리방법을 물어보니


손수 나서서 보조를 해주셨다.


"버터 노, 치즈 노, 초리조 노!"


내가 사온 재료를 보시고선 전통 스페인 빠에야는 해물의 신선함과 밥과, 닭육수의 고소함이 만나 깔끔한 맛이 나야한다며


스페인의 열정을 담아 성심것 가르쳐주셨다.


여행을 하며 버킷리스트를 항상 가지고 다니는 나.


이번 여행(여정)에서도 꼭 스페인 로컬음식을 로컬한테 배우고 싶었는데.


목적달성!


인도 바라나시, 일본 자마미섬, 그리고 태국 매홍쏜을 이어 스페인 에스테야에서 현지인에게 현지 음식 조리방법을 배우게 되다니!






두시간만에 조리가 끝나고 식당 끄트머리에 선 두 남자.


라라소아냐의 전통을 이어가고 싶어 쉪 들의 요리 설명시간을 가졌다.


"아, 네 안녕하십니까. 저는 오늘 스페인 전통 빠에야를 만들어봤는데요. 전통도 좋지만 한국인 입맛에 맞게 제 방식대로 재해석을 해 보았습니다. 먼저 롯데형이 돼지고기를 삶으실때 나왔던 고기육수에 스페인 쌀을 졸이고 해산물을 듬뿍넣어 걸죽할때까지 센불에 끓였구요. [스페인] 아주머니가 넣지말라던 버터와 치즈를 넣어 담백한 맛을 내 보았습니다. 그리고 두개만 넣어도 맵다는 스페인 쥐똥고추를 한 줌 넣었으니 한국인의 입맛에 잘 맞을겁니다"


다른 순계객들이 남았다며 건네준 스파게티로 구다(Gouda) 치즈가 듬뿍 들어간 콜드 파스타도 만들고 샐러드도 곁들여 한 상을 차렸다.





한참을 떠들고 웃고 먹고 마시다가 행복이 몰려와 눈가가 살짝 촉촉해졌다.


오늘 하루를 해냈다는 성취감도 컸지만,


이렇게 좋은사람들과 함께 할 수 있다는게 너무나도 감사했다.


조금은 이질감을 느낄 수 있는 외국인 신분의 나를 아무 거리낌 없이 받아 준 그들에게 감사를 표하며 술잔을 들어본다.


"짠!"






다른 순례객들은 우리가 신기하단다.


너희들은 어떻게 그렇게 "잘 해먹고, 잘 놀고, 잘 마시고 그리고 다음날 새벽같이 일어나 잘 걷느냐"고.


좋은 사람들과 함께있어 가능한게 아닐까?


혼자였다면 분명히 더 힘들고, 활동도 적었을 것이다.






"일루와 한잔사줄게!"


대머리에 짧은다리, 그리고 임산부를 능가하는 술배.


하루종일 취해있는 프랑스 순례객 대니얼이 나를보자 반갑다며 럼주 한잔을 사줬다.


아침에 푸엔테 라 레이나에서 걸을지 말지 고민하고 있던나에게 힘을 불어넣어 주었던 고마운 사람이다.


"오늘 별거없어, 완만하고 더우니까 긴팔만 잘 입으면 괜찮을거야!" 라고 일러주던 그에게 에스테야에서 만나면 한잔하자며 작별인사를 했었다.


발렌타인과, 대니얼 그리고 나 셋이서 길바닥에 앉아 럼주며, 위스키며, 와인이며, 맥주며 있는대로 다 때려붓고


취기가 올라 실실 웃으며 우리만의 씨에스타를 즐겼다.


팜플로나 이후로 발렌타인과 너무나 친해져서 둘이 꼭 붙어다니면서 하루를 보낸다.


두리뭉실하면서, 공소하고, 겸손하고, 배려심도 많다.


게다가 세상을 다 가진듯한 호탕한 웃음과 토토로에 나오는 고양이 버스와 닮은 이빨가득한 미소를 가진 그는 남자가 봐도 매력적이다.




한참을 마시고 있는데 숙소에서 쉬던 순례객들이 하나 둘 모이기 시작하더니,


본격적으로 술자리가 형성되었다.




같이하는 사람이 좋으니 술도 취하지 않고


술도 들어가니 조금더 깊은 대화도 오가고


다들이제 사회에서의 자신에게 채워둔 족쇄들을 풀었는지


속마음을 조심스레 꺼내보는 그들.


다들, "그냥좋다" 며 행복해한다.


가족같은 분위기가 너무 좋다.




이때다 싶었다.


"잠시만 기다리세요"라는 말을 남기고 알베르게로 뛰어들어가 배낭을 뒤졌다.


배낭 깊숙히 자리잡아, 내 두 어깨를 짓누르던 녀석을 끄집어내서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가족들 앞에 나타났다.


여러분, 지금입니다.


캐나다에서 가져온 육포 1.4kg을 개봉하여 우리 패밀리뿐만 아니라 주위에있던 모든 사람들과 나누어 먹었다.




한참을 떠드는데, 반가운 얼굴이 둘이나 더 모였다.


론세스바예스에서 아침에 인사만 했던 텐트형.


그리고 용서의 언덕에서 사진을 찍어드리며 잠시 대화를 나눴던 미국삼촌.


시간가는줄 모르고 떠들며 마시다가 하루종일 달구어진 에스테야에 살포시 덮혀진 어둠을 이불삼아 잠자리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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