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mino de Santiago|| D5. Ep.14 소심한 복수극



밤비



Camino de Santiago
Day Five
Episode Fourteen
2 0 1 6. 0 6. 0 7
Revenge








Day5. Route: 푸엔테 라 레이나-[마네루]-[씨라우키]-[로르카]-[비야투에르따]-에스테야. 거리: 21.7km.




추워서 웅크리고 잤더니 허리가 아프다.


벙크베드에서 폴짝 뛰어내려 세면대로 곧장 향했다.


벗은건지 입은건지 알수없는 차림새의 여성이 아무 부끄럼없이 아침인사를 건네온다.


시선처리가 중요한 상황!


눈만보고 인사를하고 세면대만 뚫어져라 처다보며 이를 닦았다.


식당에 들어서니 부지런한 순례객들은 준비가 한창이다.


트루디 누나가 어서와서 앉으라며 손짓한다. 테이블에는 음식이 한 상 차려져있다.


아침을 잘 안먹는 나는 구경만하며 망연스러운 상실감에 젖어, 바닥 모를 절망감만 짓씹고 있었다.


어제 오바노스에서 의지의 불씨를 꺼트렸다.


오늘아침 다시 일어설것을 다짐했지만 무릎의 상태가 여전히 좋지않다.


알베르게 2층에서 1층까지 내려오는데도 엄청난 고통을 느껴, 난간을 부여잡고 내려와야했다.


"걸어 갈 수 있을까?" 하는 고민조차 옵션이 아닌지금.


급하게 체념하고 모두들에게 내 결정을 알린다.


"저는 오늘 히치하이크를 해야할것 같아요. 에스테야에서 뵐게요..."


시무룩한 나를 달래주려는 건지 트루디누나가 위로를 해 온다,


"히치하이크라니! 그거 재밌겠다! 멋있어!!"





씁슬한 미소로 또다시 카미노 길 시작점에서 그들에게 손을 흔들어 보인다.


조심히 가세요, 조심히 와, 이따뵈요, 이따보자.


순서없는 인사말을 등지고 쓸쓸히 알베르게로 돌아갔다.


문 앞에 앉아 하나, 둘 당찬 발걸음으로 카미노길로 떠나는 순례객들을 부러운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그리고 혼자 남겨진 알베르게 휴게실에서 천천히 가방을 꾸렸다.


베낭을 메고 출발하려는데 이제 막 청소를 시작한 직원이 "부엔 까미노" 라고 작별인사를 해 준다.


"Buen Camino" 좋은 카미노 길이 되라는 인사말.


순례객들이 눈만마주쳐도 서로에게 하는 인사말이다.


머리가 잠시 멍해졌다.


다들 같은길을 걷고 있다. 나또한 지금 그 길 위에 서 있다.


모든 순례객들이 나만큼 힘들고, 나만큼 아플것이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간다.


한참을 생각을 하며 걸었...?


그렇다 난 생각에 빠져 걷고 있었다. 발은 절뚝거리고 있는데 무릎은 아프지 않다.


큰길로 향하던 발길을 돌려 카미노 길 방향으로 향했다.




몸이 걷는걸 허락했다.


걷기로 한다.






마을 끝에 다다랐을때 누군가 뒤에서 날 불러세운다.


"Chico!" [젊은친구!] "Mira!" [여기 보게나!]


백발의 노인이 잡화점 앞에서서 나에게 손짓을 한다.


'흐엉...뭐지...?'


허벌나게 드라마틱한 표정으로 마음가짐을 하며 걷고있었는데 맥을 끊어버리시다니...


손을 살랑살랑 흔들며 이곳으로 오라며 손짓하는 할아버지를 그냥 지나칠수는 없었다.


'사탕이라도 주려나...?'


"Hola! Que tal?" [안녕하세요, 무슨일이죠?]


항상 의심이 많은 나는, 잡화점 안으로 들어가는 할아버지를 따라 들어가지 않고 문 밖에 서서 경계를 낮추지 않았다.


"Tengo un regalo para ti" [자네에게 줄 선물이 있네]


눈웃음을 지으며 주름진 손으로 다시한번 이리로 오라며 손짓하신다.


나한테 뭘 팔려는 수작인거 같아서 뒷걸음 치며 나가려는데 그제서야 나를 부른 이유를 밝힌다.


"Pero primeramente, que es eso? [근데 중요한건, (자네 손에있는) 그게 뭔가?]


내가 들고다니던 빗자루 핸들이 신기해서 날 부른듯 했다.


스페인어로 빗자루가 뭔지 몰라 막대기를 들고 빗자루질 하는 시늉을 했더니


할아버지는 콧털을 휘날리며 웃어제끼신다.


그래! 어제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 빗자루라고 말했을때 이런 반응을 기대했는데...


순례객들은 마음의 여유가 없는지 그냥 한번 피식 웃는게 다였다.


왠지 뿌듯함에 나도 같이 웃어제꼈다.


어금니까지 보이며 호탕하게 한참을 웃으시더니 다시한번 계산대 쪽으로 오라며 손짓한다.


'흐엉 귀찮아... 나 상당히 바쁘신 몸인데...'


에라 모르겠다 싶어 배낭을 내려놓고 할아버지 앞으로 가서 마주보고 섰다.


약간의 경계심을 보이는 나를 쓱~ 한번 훑어 보시더니 워킹스틱을 어디선가 꺼내들고와 신중하게 길이를 맞추시더니 내게 건네셨다.


'그래 뭐 이왕 필요했던거 하나 사드리지' 하는 맘으로 스틱을 바닥으로 탁탁 한번 쳐 보고선 엄지 손가락을 치켜세워드렸다.


얼마냐고 물어보자 손사래를 치신다.


"응...?"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서 있자


"Para ti!" [너 거야!] 라며 악수를 건네신다.


힘을 가득실어 악수를 하고선 가게앞까지 나오셔서 배웅해주시는 할아버지에게 손을 흔들어 보였다.


푸엔테 라 레이나에서 잡화점하시는 할아버지! 성명도 모르고 사진도 하나 못찍어둬서 얼굴도 잘 기억이나지 않지만 덕분에 산티아고까지, 그리고 마드리드 길을 무사히 잘 마쳤습니다.  할아버지를 만나고 베푸는 법을 배웠습니다. 저처럼 다리를 절고 풀이죽어있는 순례객들을 볼때마다 치료도 해주고 격려도 해주게 되었습니다. 5년안에 꼭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부디 건강하시고 그 호탕하던 웃음 잃지않는 날들이 가득하시길 기도하겠습니다.






푸엔테 라 레이나를 등지고 다리를 건너 카미노 길 위에 올랐다.


21km라면 만만한 거리지만 어제처럼 오래걷다보면 더 힘들수도 있다.


속도를 내 본다.






미친듯이 걸었다.


한번도 쉬지않고 마네루(Maneru)와 시라우키(Cirauqui)를 지나 로르카(Lorca)까지 앞만보고.


50, 60명이 되는 순례객들을 지나쳤다.


어제 내가 히치하이크를 했다는 말을듣고, 언짢은 표정으로 "그거 반칙아니야?" 라고 물어온 순례객이 있었다.


녀석을 지날때 일부러 더 큰 소리로 '부엔 까미노'를 외쳤다.


그리고 지나칠때 썩소를 지으며 "오늘 느리네?" 라는 말을 남기고 도망쳤다.


유치하지만 너무나 호탕해서 한참을 혼자서 실실쪼개며 걸었다.


분명히 너도 "반칙"을 하게 될 상황이 올거다. 그때 넌 내 심정을 이해하겠지.


난 일찍 호되게 거사를 치뤄서 더 강해질거다.




세시간즘 걸었을까?


왠지 아침에 먼저 출발한 한국 순례자들을 따라잡을수 있을거 같았다.


지나는 순례객들마다 한국사람들 봤냐고 물어봤더니


얼마전에 지나갔단다.


희망이 보인다.


결국 에스테야 2km를 남기고 그들을 따라잡았다.


처음엔 트루디 누나를 지나치며 인사만 하고 지나쳤다.


다음엔 롯데형을 지나치며 "형! 저 그냥 걸었어요!" 라는 말만 남기고 지나쳤다.


발렌타인과 윗니를 지나칠때즘엔 너무 힘들어서 노래를 크게 부르고 있다가,


"나 지금 멈추면 다시 못걸을거 같아" 라는 말만 남기고 지나쳤다.


그리고 세시간 반 만에 21.7km를 완주했다.





2016. 5/31 -7/13 프랑스-스페인 순례자의 길[Camino de Santiago] 여행기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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