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아시아| EP.2 섭씨 42도, 아테네 입성!

여행에 오르기 일주일 전, 여느날과 같이 트립어드바이저 포럼에서 시덥잖은 질문을 답해주던 난 호기심에 아테네 포럼으로 놀러갔다가 충격적인 기사를 맞닥드리게 되었다:

"아테네 폭염, WHO가이드 라인에 의거 아크로폴리스 및 야외 유적지 출입제한"

이상기온이 기승을 부리고 있는 곳은 한국뿐만이 아니었고, 그리스도 산불이며 고온현상에 시름시름 앓다가 결국 그리스의 주요 산업인 관광업에까지 억제기를 걸고 있었던 것이었다. 정말 웬만한 더위 아니면 끄덕 없는 나와는 달리 날씨에 의해 컨디션이 좌지우지하는 윗니에겐 충분히 걱정이 될 만한 뉴스였다. 

걱정과는 달리, 아테네 국제공항을 나와 체감했던 더위는 윗니에 의하면 

"견딜만 했다".

새로 구매한 Arc'teryx bora50 배낭을 가져올까 했지만, 나의 첫 배낭여행지였던 그리스에 옛친구(14년만)를 데려오는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아테네 공항에서 도심까지(신타그마 광장)의 이동은 지하철을 이용하였다, 가격-시간-편리 모두 고려했을 때 (앉아 갈 수 있었다는 점도 고려하면) 좋은 선택을 한 것 같다. 국제공항을 벗어나 황량해 보이는 메소지아(mesogeia) 벌판을 가로지르는 열차는 아티카의 열기를 이기지 못하고 금세 열차 안을 뜨겁게 달구었다. 가만히 앉아 가는데도 콧등에 땀이 송글송글 맺힐 정도. 

신타그마 광장에 도착해서 자동로밍 되어있는 핸드폰을 열어보니 현재기온은 41도란다. 나...쁘지 않다. 버스를 타고 예약해 둔 숙소까지 이동하는 와중에 전광판에 적혀있는 42도를 보고선 다시한번 긍정의 메세지를 되새겼다. 나...쁘지 않다.

33살 배낭여행의 숙소 선택에 대한 고찰
제목은 그럴싸하게 지어보았는데 그리 심오한 이야기는 아니다. 

20대 때 숙소를 고르는 기준: 가성비, 위치.끝

30대 때 숙소를 고르는 기준: 조용함(제일 중요, 잠 잘때 그 어느 소음도 듣고싶지 않다), 침대 2개*중요*, 분위기, 화장실 상태, 침실과 화장실의 거리(멀어야함), 에어컨 상태, 에어컨 위치(침대와 너무 멀어도, 너무 가까워도 안됨), 암막커튼&테이블&탁자&옷장&옷걸이&냉장고&스마트티비.

더 적어볼 수 있었지만, 더 하면 호텔 스위트 가라는 욕을 들을게 뻔하기에...(뭐 이미 욕하고 있을수도...)

 

1박에 7만3천원. 아크로폴리스에서 버스로(새벽부터 늦은밤까지 배차간격 5분) 3정거장.

숙소에 도착하여 꽤나 거만한 표정을 지어보이며 으쓱해 하던 나. 저녁에 소음만 없으면 완.벽. 그 자체 일거라며 으름장을 놓았다. 워낙 조용한 골목길에 있어 큰 걱정이 들지 않았지만, 지난 2년동안 매일 24시간동안 단 5분도 조용하지 않는 윗층 사람들의 층간소음 때문에 극심한 스트레스를 앓고 있는 우린 경계심을 늦출 수 없었다. 

가볍게 씻고 서둘러 외출에 올랐다. 버스를 이용해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웅장해지는 아크로폴리스로 향해본다. 걸어서 가도 될 거리였지만(2km 조금 넘는 거리) 낮 기온을 생각하면 당연한 선택이었다.

세정거장 넘짓 지나 아크로 폴리스로 향하는 골목길 앞에 내렸다. 사전에 야심차게 준비해 두었던 맛집 지도를 펼치고 고뇌 끝에 리온디라는 곳에 테이블을 잡아본다. 주문을 넣고 맥주를 홀짝이며 더위를 받아들여 보았다,

덥다.

여행 중 날씨에 대한 형용은 단순하게 해야 심신에 좋다는 철학을 인도 여행을 통해 배웠다.

더 좋은 상황을 만들 수 있는 태도, 그리고 모든게 그렇듯 마음가짐이 가장 중요하다.

 

일상에서 잘 기록되지 않는 모습도 여행에선 쉽게 사진에 담긴다. 음식점에 앉아 주문한 음식을 기다리는 모습도 여행의 모습이기에 윗니가 놀리는 셔터에 답하듯 포즈를 취해본다. 하지만 아무리 폼 잡아 보아도 사라진 턱선은 찾아볼 수 없었다. 코로나, 또 신혼이라는 적절한 변명거리를 안겨주었던 지난 4년간 난 67kg에서 84kg까지의 행복한 질주를 해왔고. 고삐풀린 망나니가 되어있는 거울속의 살찐자를 마주하며 살을 빼야겠다라는 다짐은 매일같이 하지만, 요즘엔 뱃살가리는 꼼수만 늘어가고 있다. 그마나 지난 2년간 열심히(?) 타고있는 로드바이크 덕분에 질타를 받을 정도는 아니라고 내 자신을 위로해 본다. 

그리스 전체에서 가장 맛있는 tzatziki 차지키(현지발음: 잣지키) 맛 볼 수 있는 LIONDI

나이가 들며 뱃살만 는게 아니였다. 그 무엇도 행복(먹는거)과 타협하지 말라는 육봉 강호동 선생님의 말을 받들어, 돈쓸 궁리를 만들어가는 스킬도 점점 늘어가고 있다. 가볍게 먹자며 들어왔던 레스토랑에서 제일 비싼 메뉴를 시켜놓고 반 이상은 남겨버렸다. (다음 날 저녁으로 요긴하게 먹어 밥값도 줄였고, 시간도 아껴 결국 이득을 보긴 했다). 

2023년
2009년 하드리아누스의 개선문

 

2023
2009

아크로폴리스를 올려다 볼 수 있는 골목골목을 누비며 내 기억속에 멈춰있던 2009년의 아테네를 떠올려 본다. 많은게 변해있으리라 예상했지만, 아테네는 시간에 굴하지 않고 가장 아테네 스러운 모습으로 날 기다리고 있었다. 맨들거리는 대리석 의 열기와 도심속임에도 코를 가득 메우는 흙내, 그리고 올리브 나무를 닮은 골목을 다시 한번 눈에, 마음에, 그리고 사진속에 세 번 담아본다.

이제는 적지 않은 나이를 바라 보고 있는 입장에서, 추억에 깊게 새겨진 장소를 다시 올 수 있을까 하는 의문과 불안함을 떨쳐버리기란 쉽지가 않다. 일생 살아가며 그 무엇보다 내 발로, 내 두 눈으로, 내 심장을 뛰게하는 사람, 음식, 문화를 만나 보고 싶다는 나의 꿈은 현실과 일상이란 족쇄에 묶여 가끔 멈춰있지만. 

내 마음은 항상 길 위에 있었다.

한국에서 윗니와 보낸 4년 동안의 시간은 그 무엇과도 바꾸고 싶지 않은 소중한 시간이었지만, 난 매 순간 한국 밖의 공간에 존재하는  나의 모습을 갈망하고 있었다. 윗니가 사랑한, 아니, 내가 사랑한 여행지의 나로 돌아가면 그때의 멋진 모습 말이다. 현재 30 그리고 3년을 더 업고 지내는 난 볼품없는 모습이기에, 잠시나마 도피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런 나를 구해내듯 우리의 경제상황에 어울리지않는 유럽여행을 제안했을 때 윗니는 단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동의해 주었다. 

 

정처없이 걷다 아레이오스파고스 언덕으로 향하였다. 등 뒤로 힘겹게 넘어가는 석양이 붉게 물들이는 아크로폴리스를바라보다보니 내가 그렇게도 원하던 여행, 그 시작점에 서 있다는 걸 드디어 실감하게 되었다. 가장 멋진 모습의 내가 존재하는 이 곳에서. 나와 마주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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