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아시아|EP.4 산토리니, 첫 스타트가 아주 좋다!

소아시아|EP.4 산토리니, 첫 스타트가 아주 좋다!

혼자여서 좋았던 곳도 있었지만, 꼭 함께하고 싶었던 곳도 있었다.
사랑하는 사람과 내가 가장 사랑했던 거리를 함께 걷는 행위.
너도 그곳을 나처럼 아름다운 곳으로 기억해줬으면 하는 바램으로, 산토리니로 떠났다.

어무이, 저 염색한게 아니라 하두 자전거를 타면서 해를 쬣더니 머리가 샜어요.

산토리니 섬에 랜딩하기 까지 우여곡절이 많았다,
시간 계산을 잘못한 내 탓에 숙소에서 지하철 역까지 배낭을 멘 채 미친듯이 뛰게 되었다. 한참을 뛰고 있는데 머리를 스쳐가는 생각이 있었다; 마라톤의 본고장에서 새벽부터 배낭 메고 뛰어본 사람은 카미노 커플이 처음이 아닐까...
어찌저찌 시간이 딱 맞게 공항까지 도착했지만, 체크인 카운터 직원이 무게잡힌 중저음으로 "서두르는게 좋을거야" 라는 일침을 하길래 게이트 까지 또 냅다 뛰었다(거짓말 1도 안하고 아테네 공항에서 제일 멀리 떨어진 게이트 였다). 
게이트 앞에 도착하여 탑승수속이 조금 늦춰진 걸 안 순간 안도의 한숨과 함께 벤치에 그대로 주저 앉았다. 

산토리니 공항에서 피라 마을까지는 공항버스를 이용, 아침부터 마라톤 뛰느라 굶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미리 알아두었던 채식 음식점으로 곧장 향했다.

보상의 의미로 우리의 현재 경제상황에선 제법 부담될법한 메뉴들을 여러개 시켜놓고, 온통 하얀 창 밖을 바라보니 산토리니에 다시 왔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그때도 가난한 여행자였다, 얼마나 가난한 여행을 했냐면; 호스텔에서 주는 조식에선 바나나와, 요플레, 그리고 모닝빵까지 주머니에 챙겨나와 허기를 달랬고, 유럽 여행중 먹었던 음식의 99% 비중을 차지하는 건 맥도날의 1유로(라떼가격)짜리 치즈버거 였다. 또, 버스요금을 아끼겠다며 네, 다섯시간을 도보로 걸어다니며 유럽을 여행하였고, 융프라우에서는 누나의 버킷리스트를 이루어 주기 위해 누나만 기차를 태워 정상에 보냈고, 난 인터라켄 여행자센터에서 무료로 빌려주는 낡은 자전거를 타고 누나가 산에서 내려올 때 까지 마을을 수차례 빙글빙글 돌았다(그래도 난 행복했다). 그때 내 나이는 열아홉살, 무려 14년이 지난 지금이지만, 아직도 근사한 여행을 꿈꾸기엔 내 주머니 사정이 넉넉치 않다. 그래도 그때와는 달리, 이제는 평생 함께 이런 '고생도 추억으로 기억할 줄 아는' 윗니와 함께라는 생각이 들어, 새어나오는 미소를 숨길 수 없었다.
어렸을 적 이런 생각도 수도없이 많이 했었다, 
"나처럼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기 힘들 뿐더러, 이렇게 극한으로 몰아가는 고생을 즐길 줄 아는 사람은 더더욱이 없을거야"
하지만 윗니는 달랐다.
카미노에 사서고생하러 온 여러 순례객들의 이유는 다양했지만, 가장 행복한 순간에 고행길에 올랐던 윗니는 그 누구보다 긍정적인 에너지로 가득했었다. 그와 달리 그 누구보다 슬픔에 젖어있는 내 주위를 서성이던 윗니는 결국 나를 더 행복한 길로 인도 하였고. 주위 그 누구도 달가운 시선으로 보지않던( 추후에 들은 얘기론 윗니의 외삼촌의 반대가 굉장히 심했다고 한다. 그랬던 그와 나는 지금은 둘도 없는 친구가 되어있다.) 장거리 연애도 3년이나 견뎌내었다. 한국에 정착하고 4평 그리고 10평이라는 작은 공간에서 함께하며 결혼을 결심하는 순간에도 윗니는 "행복하단"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신기하게 지금도 가끔 과거를 회상하는 침묵이 찾아오면, 성북구 원룸에서의 시간이 가장 행복했다는 말을 입모아 한다. 풍족하고, 여유있고, 가득채운 삶을 사는 것도 행복에 가까울 수 있겠지만, 작은 것에 감사할 줄 아는 삶이 조금 더 행복한 삶을 닮아 있다는 걸 우리는 이제 그 누구보다 잘 안다.

 
그랬던 그녀는 결혼과 함께 찾아 온 수 많은 고난 중 "일상"의 그 무미건조함의 늪에 빠진 순간; 밥통에 눌어붙은 밥풀데기 처럼 단단히 메말라 버렸다. 아무리 활력을 불어넣어도, 굳어버린 그녀의 얼굴에선 행복이라곤 찾아 볼 수 있었다. 앞서 말했듯이 난 잘 알고있었다, 윗니와 난 넘지 못할 허들이 가득한 하루가 가장 행복한 하루가 된다는 걸. 여행에서 마주하는 수 많은 미지의 수와 어려움들을 극복한 순간에서야 '작고 소중한 행복들의 가치와 의미'를 깨닫게 된다는 걸. 그런면에서 우린 서로를 많이 닮았고, 삶에 대한 가치관도 20대, 30대를 겪으며 함께 다져가고 있다.

우리의 첫 식사를 추억에 남게 해준 이곳은 '5SENSES' 라는 비건 레스토랑이었는데, 정말 오랜만에 료리다운 료리를 맛볼 수 있었다. 아침부터 냅다뛰어 꼬질꼬질하고, 집채만한 배낭을 메고 방문한 우리의 모습에도 정말 평견 하나 없는 깍듯한 환영과 웬만한 호텔에서도 받기 힘든 서비스로 우리를 감동시켰다. 

식사를 배불리 마친 우린 소화도 할겸 피라 마을 맛보기에 나섰다. 아테네와 같이 피라도 내 기억속의 모습처럼 그대로 멈춰있었다. 다행이다.

2009년 7월. 누나미안.

낡은 쇠문과, 녹이 슨 자물쇠 마저 그 당시 본연의 모습으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2023년 7월

 

색이 바랜 오래된 사진처럼 내 기억속에서도 이제 잊혀져 가는 장소들에 윗니가 들어가 있다는게 정말 신기하기도 하고, 매년 하얗게 칠해진다는 산토리니의 모습처럼 이곳에 홀로 서 있었던 내 옆에는 이제 윗니가 채워넣어진다는 것에 감사했다.
산토리니, 첫 스타트가 아주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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