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아시아|EP.3.2 섭씨 42도를 이겨내라

소아시아|EP.3.2 섭씨 42도를 이겨내라

아테네 중앙시장에서 갖가지 향신료를 구매한 뒤 (기념품은 사지 않아도, 현지 향신료는 포기할 수 없다) 트립어드바이저 그리스 포럼에서 만렙형님에게 추천받은 현지 맛집으로 향했다. 

허름 한 골목길에 위치해 있어 아직까지 관광객들에게 발걸음이 닿지 않아보였다. 

차지키 소스 정말 아낌 없이 퍼준다. 최고.

화려하지 않은 플레이팅 이지만 기본에 충실했다. 무엇보다 시장에 근접해 있어 재료가 신선한게 느껴졌다. 차지키는 첫 날 먹었던 곳이 3배는 더 맛있었지만, 음식 가격이 5배나 이상 차이가 난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난 이곳을 조금 더 추천해보고 싶다. 

물론 언어 소통이 어려운 점과, 로컬맛집인 만큼 여행객들에대한 안좋은 시선과 태도는 조금 감수해야 한다. 그래도 윗니와 난 항상 서비스직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 고객인 우리가 조금 더 친절하고 매너있게 행동하기 때문에 대부분 기분나쁜 경험은 겪어 보지 못했다. (예외는 있었다. 예고:산토리니에서 아주 기분 나쁜 경험을 하게 된다)

 

예전에는 별 생각없이 하던 맛집 추천이 요즘들어 꺼려지는 이유가 있다.

서울내에서 잘 알려지지 않은 노포나 나만의 맛집들이 방송을 타면서 변질되거나, 또는 너무 붐비기 시작하여 다시 찾아가기 어려워지는 일이 종종 생기는게 그 이유다. 아무거나 입에 집어넣지 않는 까다로운 나로썬 검증 된 맛집들의 선택지가 점점 줄어드는 요즘, 외식에 대한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아테네에 내가 또 언제 다시 오겠냐만은 여행객들의 저지능적인 언행과 행동으로 그리스인들의 로컬 맛집들이 폄하되는 불미스러운 일이 없길 바라며(제발) 조심스레 공유해 본다.

배불리 식사를 하고 아테네 도심의 높게 솟은 건물들이 드리우는 그늘을 따라 아테네 국립 고고학 박물관으로 향했다. 로컬 냄새가 물씬 나던 거리는 점점 노숙자와 주사기가 널브러져 있었고 뭔가 잘못 됬음을 깨달은 난 지도를 열어 보았다.

식사한 음식점도 워낙 허름한 골목에 있어 금세 알아차리지 못했지만, 구글 지도에서 권장하는 최단 거리 경로를 따라가던 우리는 최근들어 우범지역으로 지정되어 출입을 제한하는 바티 지구 한복판을 가로지르고 있던 것이었다.

다행이도 대낮이라 마약에 쩔어있는 노숙자들은 대부분 볕 좋은 구석에 앉아 졸음과 환각의 중간즈음에서 사투를 벌이고 있어 윗니와 나에게 큰 관심을 갖지 않아 보였다.

여행자로서 우려가 되었던건 국립 고고학 박물관 바로 앞 큰 길가에 까지 마약에 찌든 노숙자들이 길가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여행이 처음이었다면, 해외에서 경험해보지 못했더라면 박물관 주변에 분위기에 신변에 위협을 느끼기에 충분할 정도였다. 

내가 14년 전 그랬던 것처럼 윗니는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예수보다 나이가 6천살이나 더 많은 기원전 68세기 고대 문명의 유물과 공예품들을 보며 감탄사를 연발하였다. 해외에 약탈되어 반환을 거부 당하고 있는 유물만 14만 점이 넘는 한국과 달리, 앞서 말했듯이, 80개가 넘는 박물관을 가득메운 그리스의 유물들을 보고 있자하니 마음이 씁쓸하였다. 

년대 별로 나뉘어 전시되어 있는 유물들 중에 미케네 시대(금 가공 기술이 정말 말도 안된다)와 기원전 5세기 이후 그리스의 예술문화를 장식하였던 클래식(고전)&헬레닉(그리스 고전~로마 정복) 시대의 것들을 특히나 흥미롭게 관람하였다.

여행에 오르기 전, '그들'과 같은 모습이여야 한다며 사진 한장을 내밀며 "원장님을 믿습니다!" 외쳤던 나. 동족을 찾았다며 셀카를 찍는 내 모습에 고개를 젓던 윗니에게 말했다, 

"디스이즈 마이 파더, 힘 마이 부라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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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장님 믿습니다

마이 파더

 

두시간 넘게 장난과 진지함의 애매한 경계선을 오가며 관람을 마친 우린 발바닥에 불나겠다며 지하에 위치한 카페로 향했다. 중앙부를 트여 숨겨진 정원을 빙 둘러 만든 박물관의 카페는 살인적인 음료 요금만 빼면 완벽했다. (박물관에 입장하기 전 길 건너에 있는 구멍가게에서 갈증을 해소할것을 추천.) 

배낭여행을 하며 느낀거지만, 여행중에 음료값만 아껴도 꽤나 근사한 음식점에서 식사를 할 수 있다. 선택과 집중의 기로에서 많은 사람들이 타협을 하지 않지만, 가치관이 비슷한 윗니와 난 여행내내 편의점에서 휴식을 취하였다.

 

박물관 관람을 마치고 우범지역을 피해 지하철을 이용하기로. 가까운 지하철 역이 도보로 꽤 이동을 해야 했기에 현지인들의 모습도 들여다 볼 수 있었다. 재밌는건 부촌과 빈민촌의 경계가 굉장히 애매하단 거였다. 거리 하나를 두고 부와 빈을 오가는 아테네의 모습이 신기할 정도.

우범지역과 부촌이 퐁당퐁당

교과서에 기록된 시대의 이야기도 재밌지만, 현사회의 모습을 하기까지 있었던 근현대 이후의 사회정치적인 이야기에 관심이 조금 더 많은 난 거리의 온도와 사람들 표정에 조금 더 집중하게 된다: 20대 때 혼자 배낭메고 여행할 때는 눈 마주치는 모든 사람과 안부를 묻곤 하였다. 많은 사람들의 목소리를 취합하여 여행기를 써내려 가던 그 때와 달리, 30대 때의 난 남의 목소리만 빌려 팩트만 전달하는 앵무새가 되어있었다. 무엇보다 내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윗니에게 조금 더 심도있는 소개를 해주지 못해 미안한 마음이다.

또, 나이가 들어 눈치가 조금 더 생겨서 그런가 누구에게 말 걸기가 쉽지 않다...

무엇보다 현장감 넘치는 여행기를 써내려 가기를 원했던 과거의 난 이제 여느 '관광객'과 별반 다르지 않은 여행을 마치고 온 지금 이 시점에서 외부인의 제한적인 관찰과 얇팍한 지식으로 한 나라를 묘사하기엔 무리가 있어 보인다.

배낭여행자의 신분이 벼슬이라고 말하는게 아니다. 어떠한 형태의 여행도 본인이 만족하면 그만이겠다만, 조금 더 현지인의 이야기에 몰입할 수 있던 여행을 했던 그 시절의 내 자신이 조금 부럽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

 

소비엣 연방 시대를 연상케 하는 지하철을 이용해 이제는 익숙해진 플라카 지구로 이동했다. 

아크로폴리 역에 내려서 디저트를 찾는 윗니를 위해 모나스티라키 지구에 있는 보갓사(Bougatsa) 맛집으로.

 

실내에도 에어컨이 없어 정말 한증막 사우나 같이 더웠지만 직원들의 세상 친절함에 더위도 잊을 수 있었다. 넷플릭스 그리고 BTS덕에 타지에서도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를 들을 수 있다니. 90년도 이전부터 이미 헬로키티와 건담따위를 통해 경성권력과 양극화 된 소프트 파워 정책으로 전범국가의 이미지 마져 삭제해 버린 일본의 전략이 얼마나 영향력이 큰지 최근에 여행을 통해서 느낄 수 있었다. 

이제는 "곤니찌와"와 "니하오마" 보다는 "안녕"이 더 빈번하길 기대해 본다.

체력도 좋고 발걸음도 빠른 윗니와 난 하루에 계획하였던 모든 일정을 소화 했음에도 해가 중천에 떠 있었다. 숙소에서 잠깐 쉬고 나오자는 내 제안에도 아직 체력이 괜찮다는 윗니에게 올림픽 경기장을 추천해 보았다.

"정말 볼거는 없어.."라며 자신감 없는 내 손을 이끌고 앞장서는 윗니.

2009년도에 방문했을때는 입장료가 없었던 것 같은데 문 앞을 지키는 매표소 때문에 외부만 잠깐 구경하기로 하였다.

최근에 보았던 유튜버 체코제는 경기장 위에 올라 현지 대학생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던데, 섭씨 40도가 넘는 날씨엔 
"빨리 사진 한장 찍고 숙소로 가자"가 더 조금 더 현실적인 선택이었다.

숙소에 복귀하여 저녁에 야경이나 보러 나가자는 계획은 긴 낮잠과 함께 무산이 되었다. 사실 낮에 보았던 우범지역의 민낯이 우릴 조금 더 소극적으로 만들지 않았나 생각 해 본다. 오전 내내 견뎌야했던 내 찜통더위를 씻겨내기 위해 에어컨 아래에 꼭 붙어 있다가 저녁 식사는 전 날 포장해왔던 남은 음식으로 해결하였다.

내일이면 내가 두번째로 사랑하는 섬으로 향한다. 짧은 일정과 제한된 경비에도 2박3일을 투자하여 윗니와 꼭 함께 하고 싶은 여행지. 산토리니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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