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mino de Santiago|| D4. Ep.12 지옥같은 천국
밤비
Camino de Santiago
Day Four
Episode Twelve
2 0 1 6. 0 6. 0 6
Juxtaposition
▲ 출처:Camino adventures.com
※Juxtaposition: 대조되는 두개의 무언가가 나란히 병렬(병치) 되어있는 상태.
걸어도 걸어도 혼자.
아무리 쉬어도 혼자.
그리고,
걸어도 걸어도 가까워지지 않는 용서의 언덕.
혼자서 미친듯이 노래도 불러보고
셀카봉을 붕붕 휘두르며 영상에 내 모습도 담아보며 여유롭게 걸었다.
대학교에서 길을 헤메느라 9시반이 넘어서야 카미노 길에 올랐고
해는 중천으로 떠 올라 내 정수리에 자외선을 내리꽂고 있었다.
한참을 혼자 걷는데 뒤에서 인기척이 들려온다.
"부엔까미노!"
반가워서 먼저 인사를 건네본다.
셋이서 나란히 걷는 그들과 잠시 대화를 나누어보니,
아침에 우체국을 다녀오느라 늦게 출발하게되었단다.
슬쩍 무리에 합류할까 생각도했지만 오늘 푸엔타 라 레이나까지 저녁 7시안에 도착하려면 부지런하게 걸어야한다.
한참을 또 혼자서 걷다가 그늘이 잘 드는 벤치가 보여서 잠시 쉬어가기로한다.
여기가 천국인가.
욕짓거리 섞인 무거운 숨을 내 쉬며 기어가고 있던 중, 하늘거리는 나무가 어서와서 쉬어가라며 손을 흔들어 댄다.
가방을 내려놓고 철푸덕 앉았는데 시원한 바람이 끊임없이 불어온다.
'할렐루야' '아멘'
없던 종교가 생길듯하다.
시주르 메노르에서 데려왔던 콜라캔 녀석을 따서 한모금 들이킨다.
반나절동안 가방안에서 가열되었는지
미지근하다 못해 뜨겁기까지 하다.
그래도 혼자 좋다고 한참동안 앉아서 뜨거운 커피인거 마냥 맛을 음미하며 들이켰다.
용서의 언덕을 오르기전 마지막 마을인 자리키기(zariquiegui)에서 마지막 정비를 하고 본격적인 언덕을 올랐다.
마을을 얼마 벗어나지 않아 카미노 비석에 푸엔테 라 레이나 이정표가 새겨져있다.
누가 나랑 비슷한 마음이었는지 남은거리를 알리는 숫자만 마구 긁어 지워버렸다.
그래... 얼마나 남은게 중요한가.
걷고 걷다보면 도착하게 된다.
그게 카미노의 순리다.
나무늘보 걸음으로 용서의 언덕을 올랐다.
영상으로 하도 많이봐서 눈감고 그리라면 그릴수도 있을거같은 구조물.
순례자들의 모습을 형상화했다고 한다.
"나도 데려가..."
말 동상의 발을 부여잡아본다.
Alto de Perdon, "용서의 언덕" 이라 불리는 산 정상에는 모자를 날려버릴것같은 거센 바람이 계속해서 불어온다.
한참을 앉아 쉬고있는데 순례자들이 하나 둘 올라오기 시작한다.
카미노를 걷고있기엔 늦은 시간임이 분명한데
모두들 비장한 표정으로 올라와선 바닥에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언덕의, 용서의 바람을 바람을 만끽한다.
난 도대체 누굴 용서해야할까?
일주일 전,
비행기표를 끊은 나란 녀석일거다.
용서의 언덕이 악명높은 이유는
생장에서 팜플로나까지 오면서 누적된 피로가 발바닥부터 시작해, 등줄기를 타고 올라와 머리안에 나약한 생각들로 변형되어있기 때문이지 않을까?
아니였다...
용서의 언덕이 악명높은 이유는 자갈로 형성된 내리막길 때문이었다.
시주르 메노르에서 주운 막대기에 의지한 채
간신히 하산을 마쳤다.
오늘 혼자 걸으며 머릿속에 복잡했던 감정들을 정리해 보았다.
'너무 힘든데 너무 좋고,
너무 좋은데 너무 아프고,
너무 아픈데 너무 행복하다.'
이렇게 대조되는 감정들이 하나가 되는 카미노.
우울했던 날들을 뒤로하고 행복을 찾으러 온 나에게
카미노는 일침을 가하고 있었다.
모든 아픔속엔 행복이 있다고.
잠시 행복에 젖어 또 그렇게 한참을 걸었다.
2016. 5/31 -7/13 프랑스-스페인 순례자의 길[Camino de Santiago] 여행기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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