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mino de Santiago|| D12. Ep.27 버리는 길 카미노


밤비



Camino de Santiago
Day Twelve
Episode Twenty Seven
2 0 1 6. 0 6. 1 4


Unburden




숙연한 아침이다.


간단히 아침을 먹으면서도 다들 말을 아낀다.


짙은 표정으로 서로의 눈치만 보았다.


조용히 준비를 마치고 카미노 길 위에 오른다.




모두들 카미노 길에 오르면서 이루고 싶은게 있다고했다. 


제각각 다른 목표를 가지고 있지만, 무언가를 버리려 하는 공통점이 있었다.


누구는 옛사람을, 누구는 습관을, 누구는 미련...그리고 나는 나약했던 과거의 나를 버리고자 했다.


걷고 걷고 또 걷고, 미친듯이 걸으면서 카미노 길 위에서 과거의 나를 버리고, 새로운 나를 찾고자 했다.


하지만, 너무 좋은사람들을 만나 잠시 목표를 잊고 지냈다.


어쩌면 굉장히 심() 해야 했던 시간을 현실도피하듯 보내고 있었던게 아닐까. 어리석었다.


현실을 떠나 또다시 현실을 도피하려는 나. 이제는 맞닥드려야 했다.





어제 저녁에 이어, 아침공기가 차다.


새로운 지형으로 들어와서 그런가...


구름도 많고 바람도 잦다.


덕분에 상쾌한 마음으로 부르고스(Burgo)를 향해 나아간다.





부르고스는 우리가 카미노 길에서 처음으로 맞닥드릴 대규모 도시이다.


팜플로나보다 인구수는 적지만 면적으로는 4배나 크다고 하다.


'한식 음식점이 하나 정도는 있겠지?'


라라소아냐에서 부터 노래를 부르던 냉면을 먹을수있을까...?





오늘은 함께하는 그림자가 하나 늘어났다.


하지만 길 위에서 만나는 순례자들의 숫자가 급격히 줄었다.


살짝 경쟁심을 느끼던 보스턴 여학생도,


론세스바예스 이후로 매일저녁 스테이크를 구워먹던 멕시코인 미켈란젤로 녀석도,


그리고 심지어 마을마다 술자리의 중심이 되었던 프랑스인 대니도 보이지 않는다.


모두들 카미노 어딘가에서 자신과의 싸움을 하며 열심히 걷고 있겠단 생각에 마음속으로 그들에게 부엔 까미노를 외쳐주었다.






아타푸에르카(Atapuerca) 마을을 지나 '아타푸에르카 산맥'을 오른다.


피레네 산맥을 정복한 경험이 있어서 그런지 작은 언덕같이 느껴진다.


단숨에 가파른 산길을 오르니 산 정상과 어울리지 않게, 반반한 평지가 눈앞에 펼쳐졌다.


정상에 부는 바람이 제법 시원하다.


땀을 식히고 걷고 있는데, 지평선 너머로 부르고스가 보인다.


"형, 저거 설마 부르고스는 아니겠죠?"


너무 가까워 보인다며 지평선에 걸쳐있는 도시가 부르고스가 아닐꺼라 하는 발렌타인.


"아니야, 지평선에 걸쳐있는거면 아무리 가까워도 5km는 넘어."


"아직 15km나 남았는데요?"


육안으로 보이는 시야가 평균 50km가 넘는 캐나다에 비하면 별로 대수롭지 않지만 아마 한국에서 살다보면 공기오염과, 한반도 특성인 산악지형 때문에 한국사람들에게는 익숙치 않은 광경일 것이라 생각해 본다.







아타푸에르카 산맥을 아무 탈 없이 잘 내려왔더니 탁 트인 평지가 부르고스까지 펼쳐져 있다.


높고 낮은 언덕과 산들로 가득했던 어제에 비하면 길 상태가 너무나 좋다.


아침의 무게감은 온데간데 없고 금세 셋이서 말장난을 치며 "카르데뉴엘라 리오피코"(Cardeñuela Riopico)를 향해 걸었다.


카르데뉴엘라 마을 초입에 "산 미겔" 이라는 아주 친근한 이름의 알베르게가 있는데


많은 순례객들이 아침을 먹고 있었다.


음식이 맛있는지 물어보니 하나같이 침을 튀어가며 최고란다...






알베르게 건물로 들어서니, 후각을 미친듯이 자극하는 음식 냄새로 가득하다.


진열대에 보이는 음식들을 하나씩 자세히 보면서 "어머 이건 먹어야돼"를 외칠만큼 비쥬얼도 엄청나다.


스페인에서 하도 빵조각에 치즈나 하몽 한조각만 덩그러니 얹혀진 샌드위치를 많이 봐 왔기에, 산미겔의 음식들은 비쥬얼 쇼크였다.


결국 진열대에 있는걸 하나씩 다 주문해서 테이블에 나름 뷔페를 차렸다.


음식을 하나하나 곱씹으며 맛을 음미하는데...


내가 현재까지 가져왔던 스페인 음식 문화에 대한 편견을 와구장창 깨뜨릴 정도로 맛있다.


아직 남은 여정이 많지만, 진정 카미노 길 위의 TOP5안에 들 만한 음식이었다.







발렌타인과 윗니와는 정말 오래동안 함께한 동반자처럼 가치관이며, 성격이 잘 맞는듯하다.


셋 중 한명이 무언가를 하자며 의견을 내면, 이견없이 오케이를 외친다.


평생을 함께한 가족들과도 이런 단합심을 느껴본적이 없었는데...



뜬금없는 공룡뼈가 나와서,


"가서 입벌리고 서 있서!" 하고 말하니 윗니와 발렌타인이 군말없이 가서 하란대로 포즈를 취한다.


그런 그들이 너무 귀여워서 아버지 미소가 한동안 내 입가를 떠나지 않았다.







부르고스 공항으로 보이는 곳에 도착했을 즈음 발렌타인이 스탑을 외친다.


토레스 델 리오 이후로 계속해서 발가락 하나가 말썽을 부리며 그의 발목을 잡고 놓아주지 않는다.


심각한 표정으로 수술에 들어가는 그에게 숨죽여 화이팅을 외쳐준다.


도움을 주고 싶지만 자신의 방식을 고수하는 그를 지켜 볼 수 밖에 없다.





로그로뇨, 그리고 어제 너무 무리를해서일까.


휴식이 필요했던 발렌타인은 몸도, 그리고 마음도 지쳐있는거 같다.


처음 팜플로나에서 느꼈던 그의 생기가 많이 쇠퇴되었다는걸 느낄 수 있다.






누군가 말했었다.


부르고스까지 가는길은 너무나 멀고 지루하다고.


끝없이 펼쳐진 도로 양 옆으로 낡은 공장들이 끝없이 펼쳐져 있다.


카미노 길에 오르고 처음으로 매연냄새를 맡으며, 아스팔트의 열기를 온몸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길을 걸어서 그런지 너무나 힘들다.


공장지대를 지나 도심에 들어서니 윗니가 발을 절기 시작한다.


괜찮냐고 물어보면 "괜찮다"고 말 할게 뻔하기에 말없이 그녀의 배낭을 뺐어서 앞뒤로 맸다.


또, 미안해 할께 뻔하기에 배낭에서 워킹스틱만 빼서 그녀의 손에 쥐어주었다. 


"너의 몫이야"


그리고 매번 도움 받을때 미안해 하는 그녀에게 해주는 말을 반복한다.


"이럴땐? 고맙다고 말하는거야!"


장난스럽게 웃어보인다.


그녀도 따라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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