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 Ep.12 삼겹살은 역시 캄보디아지!

실눈을 떠서 요란하게 울어대는 핸드폰을 찾아 차가운 침대위를 더듬었다.


알람을 꺼놓고 베게 아래에 손을 밀어넣었는데 시트가 너무나도 뽀송뽀송하다; 잠시 집에 돌아온게 아닌가 착각을 한다.


다시 눈을 감고 누웠다. 


끊임없이 차디찬 바람을 뿜어내는 에어컨의 바람이 싫어서 가슴팍에 있던 이불을 이마까지 끌어올리고선 몸을 잔뜩 움크렸다. 


내 체온으로 밤새 데워진 이불속이 집처럼 포근하다. 잠시나마 포근함이 주는 안정감에 휩쌓여 밍기거려본다.


"몇시야?"


인기척도없이 일어난 현진이가 물어온다.


"일어날시간!"



김이 펄펄나는 수돗물로 샤워를하고 로션까지 온몸 구석구석 잘 펴바른후 머리까지 정돈하는 여유를 가졌다.


일상 같았으면 늦장부리다가 밥을 화장실에서 변을 누면서 먹는 더러운 만행(?) 까지 저지렀을텐데 


여행에 오면 엄청나게 모범적으로 아침 활동시간이 길어진다... 


여유롭게 체크아웃을 하고 공항버스 픽업장소로 이동했다. 


어제 저녁에 길가에서 플라스틱 의자를 갖다놓고 버스티켓을 판매하는 아저씨가 사기꾼은 아닐까 걱정을 했었다. 


영수증까지 끊어주는 아저씨가 끝까지 못미더워서 눈을 부라리며 아저씨 눈동자의 움직임을 파악했다.


걱정과 달리 아저씨는 아침에 픽업장소에 우두커니 서있었다. 


썩어서 검게 변한 앞니를 들어내 보이면서 아침인사를 건네오는 아저씨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항상 조심해서 나쁠건 없으니까... 





수랏타니공항은 생각보다 규모가 컸다.


2층에서 체크인을 하고 1층 대기실로 내려갔더니 중국 단체관광팀이 옹기종기 모여앉아 가공할만한 데시벨의 소음 콘서트를 열고있었다.


공항 상황판을 보아하니 중국에서 직항으로오는 에어아시아 항공편이 바로 주범이었다. 


대학교 2학년때 들었던 동남아 역사학 과목을 들은 경험이있어서 중국 주요도시들의 이름들은 꿰차고 있었지만 상황판에 적혀있는 목적지의 이름들은 정말 생소했다.


두시간동안 소음 콘서트와 한마음이 되지못하고 잘 되지도 않는 와이파이를 잡고선 문화생활(?)을 두시간동안 만끽한 후에야 비행기에 탑승할수있었다.



수랏타니에서 씨엠립까지 직항으로 갔으면 세시간도 안걸리는 거리였지만 BKK(방콕)에 경유하는 항공권을 구입.


어쩔수없이(?) BKK에서 서브웨이(subway) 샌드위치를 하나씩 해치우고 다시 비행기에 올랐다.



캄보디아에 다다랐을때 행여나 앙코르제국의 유적군이 보일까해서 이마를 창문에 붙여놓고 캄보디아의 광활한 지형을 탐색했다.


아쉽지만 끝이 보이지않는 초원과 바다같은 메콩강밖에 보이지않았다. 


캄보디아 공항에 도착해서는 긴장을 많이했다.


여행가이드북에 의하면 공항에서 일하는 출입국사무소 공무원들 까지도 부정부패가 심해서 입국심사때 푼돈을 요구한단다.


아니나 다를까 내 앞에서있던 백인 여행자는 $1를 더 지불해야했고 직원과의 오묘한 눈빛이 오간후에 도장을 받을 수 있었다.


나도 혹시나 해서 현진이것까지 합쳐 $62를 준비해서 손에 들고있었는데 직원은 명당 $30씩 총 $60을 달라고 하면서 눈도 안마주치고 도장을 찍어줬다.


 의외로 쉽게 입국완료!


혹시나 몰라 공항안에있는 환전소에서 미국 달러 $60을 캄보디아 리엘 (riel)로 환전하고 공항을 빠져나왔다.




공항에서 돈을 뜯기지 않아서 긴장을 풀고있었는데 택시 회사가 사기를 치려한다.


공항 밖에있는 택시부스의 푯말에는 분명히 승용차 한대에 $7, 그리고 봉고차는 $10 라고 적혀있었다.


돈도 아낄겸 우리앞에 서 있던 여자 외국 여행객 한명과 통성명을 나누고 바로 승용차에 합승하기로 정하고 택시를 잡았지만 매표원은 갑자기 한명당 가격이라며 돈을 더 요구했다.


그래서 인도에서 배운 "시른데?" 스킬을 시전했지만 매표원은 나보고 옆으로 비키라며 다음 손님을 받는 황당한 시츄에이션으로 상환은 전개되었다.


뚜껑이 금세 열린 나는 매표원이 잘 보이는곳에 서서 눈에서 레이저를 발사하며 미친듯이 째려봤지만 날 개무시한채 태연하게 다른 여행객들을 상대하는 고수의 품위(?)를 유지했다.


'이제 어쩌지?' 라는 생각 할 겨를도 없이 아까 합승하기로 했던 외국 여행객이 내 팔을 잡아끌며 자기를 따라오란다.


미친척해서 따라갔더니 가냘프게 생긴 여성 여행객은 택시기사에게 다짜고짜 세명이라며 말을했고 


기사아저씨는 아무런 의심도없이 우리의 짐을 차에 실어주었다.


"추....출발...!!"


씨엠립 도심을 향해 달리는 택시안에서 우리의 구세주와 대화를 나눠보니, 역시나 프랑스에서 온 여행 베테랑이었다. 


혼자 여행하는데 뭐 별로 대수럽지 않은 일이라며 부끄럽게 웃음을 짓는 그'분'의 몸은 자체발광을 하며 내게 신적인 존재로 다가왔다.


그래, 법이 없는곳에선 아무리 목소리 크게 떠들어봤자 내 목만 아프게 되는것! 


무법은 무법으로 대응하며 지혜롭게 여행하는 외국애들을 보면 정말 자라온 환경이 중요하다는걸 매번 느낀다. 


동양인들은 타인과의 타협이 성사되지않을때 상대방이 제시하는 대안을 고려하려는 오지랖이 있지만 외국애들은 자신이 원하는게 아니면 단호하게 "NO"를 행동으로 보여주는 경향이 있다.


물론 우리와 달리 그들은 White supremacy, 즉 백인우월의 특권을 가지고 있다는건 직시해야한다. 


그저....부러울뿐이다. 난 내 외모만 봤을때는 일개 동양인이지만, 저들은 백인"님" 이시니까.





처음에는 친절했던 택시기사 아저씨는 우리가 앙코르왓 투어를 단호하게 거절하자 목적지는 한군데밖에 안된다며 우릴 길가에 매몰차게 버려둔채 사라졌다. 


어쩔수없이 가이드북에 코를박고서 또다시 방랑을 해야했다.


미친듯이 쪼아대는 캄보디아의 햇볕아래 몸뚱아리만한 배낭을 짊어지고 걸어다녀서인지 5분도 안되었는데 탈진증세가 나타났다.


"뒤지겠다" 며 현진이에게 갈증을 호소하자 일단 편의점으로 후퇴를 요구했다.


방콕에서 애용하였던 에어컨일레븐 (세븐일레븐)을 찾아보았지만 구멍가게밖에 보이지 않았다. 


어쩔수없이 미지근한 물을 사들고 가게 주인한테 길을 물어봤더니 자꾸만 엉뚱한 방향을 가르키는게 아닌가...


"망했다며" 며 현진이에게 절망을 표현했더니 일단 가게 아저씨가 알려주는곳으로 걸어보잖다.


아저씨가 가르킨 방향으로 걸어가 보자 여행자 인포메이션 센터가 보였다.


"할렐루야"


잽싸게 달려갔더니 정보센터안에는 삼성 휘센님이 이가 시릴정도의 휘센바람을 뿜어내고 계셨다.

 

고2정도 되보이는 학생에게 길을 물어보자 지도를 세개나 꺼내어 우리가 찾고있는 호텔의 위치를 정확히 알려주었다.


너무 고마워서 악수를 나누고 잠깐 담소를 나눴다.


알고보니 봉사활동으로 하는 일이란다, 영어회화도 공부하고 사람도 만나서 좋다는 흔한 얘기에 헐리웃 리액션을 취해주고 지도를 챙겨서 호텔로 향했다. 



우리가 묵게될 호텔의 이름은 Golden Temple Villa, 가이드북에 별표 4개를 받을만큼 저렴하고 좋은곳인만큼 기대도 컸다.


재밌는건 Golden Temple Villa 주변에는 비슷한 이름의 숙박시설들이 즐비했다...


Golden Temple hotel, Golden Temple hostel 등등...


한국처럼 장사 잘 되는 가게를 표절하는것과 비슷한 마인드가 아닐까 추측해본다...


다행이도 난 지도 3개와 대한민국 출판사 최강의 가이드북을  탑제한 무적의 여행객이었기에 짝퉁을 피할수있었다. 




땀에 쩔은 초최한 모습으로 호텔 로비에 들어서자 프론트에서 업무를 보던 전 직원들이 날 쳐다봤다. 


마치 "강자가 나타났다" 라는 표정으로 말이다.


가방을 호텔입구 한켠에 내려놓고 프론트에 다가가 내 안면근육이 허락하는 최선의 미소를 지으며 제일 저렴한 방을 요구했다.


프론트에 서 있던 직원은 나를 한번 훑어보더니 선풍기방은 다 나가서 에어콘방밖에 없는데 괜찮냐며 알수없는 미소를 짓는다.


'페이스에 말리지 말자' 라는 생각을 하며 그럼 "가격먼저 알려다라" 요구했더니 방 요금이 적혀있는 차트를 보여주며 $17 이란다.


"$34" 은 너무 부담된다고 하니까 이해를 못하겠다는 표정을 짓는다.


"다른데 알아보겠다" 라고 말하며 돌아서려는데 직원은 그제서야 이해한듯 


방값은 "$17"이고 두명이서 자도 가격은 똑같다며 차트를 내 코앞에 내밀었다.


게다가 전신마사지도 무료이용할수있고 조식도 무료, 심지허 공항 픽업, 드롭오프까지 무료란다...


'하... 진작에 알았으면 오늘 개고생 안했을걸...'


"리얼리? 리얼리?" 를 열댓번 외치니 직원이 피식 웃는다. 


경계를 낮추고 긴장을 풀었더니 다리에 힘이 풀렸다, 그걸 눈치챘는지 체크인은 자기가 알아서 해줄테니 일단 옆에있는 레스토랑에 가서 레몬티 한잔을 마시란다. 물론 무료로.


얼음을 동동띄운 레몬티를 품위없게 쪽쪽빨아마시며 잠시 휴식을 취했다.


캄보디아 물가가 상당히 맘에 든다. 하지만 그건 이 나라의 상황이 얼마나 절박한지, 그리고 우리가 앞으로 얼마나 많은 삐끼질을 당해야 하는지 예고하고있었다.



샤워만 후딱하고 침대위에서 잠깐동안 밍기적댄 다음에 현진이와 저녁메뉴를 의논했다.


태국에 온 이후로 우후죽순 내 취향위주로 음식선정을 한거같아 현진이에게 선택권을 주었다. 잠깐동안 가이드북을 정독하더니 "삼겹살!" 을 외쳐댄다.


"콜" 을 외치고 바로 방을 나섰다. 


나가는 길에 매우 흡족한 표정으로 호텔정문에서 사진을 한방 박아두고 저녁을, 아니 삼겹살을 먹으러 나섰다.




해가 뉘엿뉘엿 저물어 가는 길 위에 삼겹살을 향하는 우리의 발걸음은 신속하고 실용적이었다.



뒤에서 잘 따라오던 현진이가 나에게 잠깐 멈출것을 요구했다.


"왜?" 라고 물어보자 


"너 겁나탔어' 라며 내 뒷모습을 담은 사진을 보여줬다.


성의없는 리액션을 취해주고 "삼겹살" 을 외치며 발걸음을 계속하였다.



$5에 무제한으로 삼겹살을 먹을수있다는 말에 처음오는 길을 한번도 안 헤메고 정확히 찾아왔다. 


정말 난 선천적으로 음식을 찾아낼때 필요한 모든 필수조건을 갖추고 있는게 아닐까 생각해본다.  


정말 미친듯이 흡입해댔다. 얼마만에 먹는 반찬이냐며 숟가락으로 접시를 싹싹긁어먹는 내 모습을 본 사장님은 김치찌개와 부대찌개 그리고 음료수까지 서비스로 주셨다. 


화장실에서 똥도 한번 시원하게 싸지르고 삼겹살을 한그릇 더 주문한 뒤에야 저녁식사를 마쳤다.


그리고 비장한 모습으로 캄보디아 역사에 길이 남을 한마디를 외쳤다.


"삼겹살은 역시 캄보디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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